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34
제433화
육체 강화 능력 같은 건 강설이 수도 없이 보아온 것들이다. 익숙하고, 또 진부한 힘.
‘…차원이 달라.’
용이라는 생명체가 가지는 힘은 그 무엇이든 압도적이었다. 신체, 마법, 숨결, 정신과 영혼까지도.
츄르르륵…
거대화했던 탄시아의 팔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아! 아까워!”
원래의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되돌아오자 탄시아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츠파팟!”
이미 가까이 다가온 강설과 우르는 똑같은 표정을 짓고 탄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츠파팟이야! 츠파팟!”
“그게 뭐야?”
“큰 사슴이, 츠파팟! 하고 떠올랐어! 응!”
강설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자, 모험과 관련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탄시아가 진정한 ‘용’이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자와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자와의 만남이, 실마리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이에 따라 주르륵 변하는 전승 모험 관련 정보들. 강설은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탄시아에게 물었다.
“사슴?”
“응! 큰 사슴!”
큰 사슴.
위대한 자.
보통, 이 두 가지 정보만으로 드넓은 판데아 대륙의 누군가를 떠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강설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에게 가라는 거군… 일리가 있어.’
그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앗! 까먹었다!”
어린아이답게 머릿속에 떠올랐던 형상을 다시 기억해내려 했지만, 쉽지 않은 듯했다.
“잊어도 돼, 탄시아. 누군지 알 것 같으니까.”
“정말? 정말이야? 그럼 츠파팟 안 해도 되는 거지?”
“응. 츠파팟 안 해도 돼.”
주변을 둘러보니 안개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멀뚱히 우르를 바라보자 우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매개체가 되는 마법구는 방금 부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강설은 눈을 지그시 뜨고 우르를 응시했다. 무언가를 추궁하는 눈초리.
“…알아. 의도했다.”
우르의 전투가 일찍 끝난 것은 강설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일부러 상황을 방조하고 있었다.
마치, 앗시리에게 저지를 만큼 저질러 보라는 듯이.
“왜 그랬지?”
“이유가 있어서다. 너도 마찬가지지 않나?”
“뭐?”
“너야말로 상대를 우습게 여겼을 텐데?”
우르는 자신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난 탄시아의 힘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야. 그건 언젠가 우리를 옥죌 만한 중대한 문제다.”
“…….”
“모든 전투에서 그녀를 배제할 생각인가? 그런 사고방식은 오래가지 못해. 우리는 애나 보려고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강설은 우르의 말에 일부 공감했다.
“하지만, 탄시아는 아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그녀는 힘을 자각하지 못했어.”
“누가 그걸 결정하는 거지? 너인가? 그럼 그녀는 언제부터 전장에 설 수 있는 거냐?”
“그녀가 충분한 준비를 마쳤을 때다.”
“…이봐, 강설.”
우르가 머리를 헝클었다.
“탄시아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쏟지 마라. 왜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않지? 왜 늘 과할 정도의 여력을 남기는 거냐?”
우르의 말이 맞았다.
뒤를 신경 쓸 것 없이 앗시리를 끝장냈다면, 더 좋은 상황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강설은 힘을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전력은커녕, 상대를 손해 없이 짓누르는 데만 급급했다.
“넌 보호자가 아니다, 강설. 이대로 있다간 그녀가 결국 네 약점이 될 거야.”
우르와 강설이 설전을 이어가자, 지켜보고 있던 탄시아가 다가왔다.
“싸우지 마… 탄시아가 잘못했어. 응! 맞아! 탄시아가 잘못한 거야!”
“탄시아, 아니야. 그건….”
그때, 안개 속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쿵…
쿵…
“소음의 원인이 이곳이었군.”
“…쟈마드?”
“정리가 끝났다. 하나, 이쪽도 정리가 필요해 보이는구나.”
그 뒤를 이어 한소미와 카렌, 카루나도 안개를 뚫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아직, 설전은 끝나지 않았다.
냉랭한 분위기 속, 어쩔 줄 몰라 하는 탄시아만이 눈에 띄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기에, 더더욱 가시방석일 것이다.
쟈마드는 강설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하군. 모두 내 탓이다.”
“…쟈마드.”
“그녀에게 얘기해다오. 모든 것을.”
강설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탄시아에게 말했다.
“탄시아.”
“잘못했어….”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미리 말했어야 했어.”
스윽…
강설을 올려다보는 탄시아.
눈에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에게는 나름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면, 그녀는 외톨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강설도, 집단의 목표에 관해 얘기하는 우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히, 탄시아는 그녀가 틀린 존재라 생각했다.
“네게 많은 것은 얘기해주지 않은 탓이야. 탄시아, 넌 달라.”
“미안해… 내가….”
“아니, 나와 함께하는 자들은 모두 망자들이야.”
“…어?”
“내가 아닌 모든 이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야.”
탄시아의 탄생은 유색영(有色影)으로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즉, 그들이 완전한 그림자로 살아가던 과거의 일을 알지 못했다.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자가 어찌 망령이겠는가.
“어째서….”
“그들은 나와 한 계약을 통해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어.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된 거야. 하지만… 탄시아, 넌 달라.”
“…….”
“넌… 망자가 아니니까.”
“그럼 나도….”
망자가 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탄시아.
강설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아직 선택할 수 있어.”
“선택해?”
“그래. 네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쟈마드가 입이 닳도록 해주었으니, 기억하겠지?”
쟈마드는 탄시아에게 틈만 나면 탄크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했던 존재인지. 그녀의 머리 색,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순수마저도.
“그녀는 별이었어. 너는 그런 별의 자손이야.”
“…탄시아는 별이 아닌걸.”
“모든 역사에는 아직이라는 말이 존재해. 너 역시도 그렇고.”
강설이 한숨 쉬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르의 말은 틀리지 않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널 보호하는 건 최우선이 될 수 없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선택해야 해, 탄시아.”
“선택?”
“응, 누구나 하는 거야.”
강설은 그녀의 앞길에 펼쳐진 미래를 말했다.
“넌 우리를 떠나도, 언젠가 네 어머니처럼 대지를 은혜롭게 할 존재가 될 수 있어.”
탄시아가 강설의 손가락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떠나기 싫어.”
“그럼, 다른 선택지뿐이야.”
모두가 표정을 굳혔다.
“시체를 수도 없이 봐야 하고 정의는 날마다 뒤바뀌며, 선을 넘은 자들과 싸워야 해. 그게 우리 삶이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고.”
“…….”
“싸워야 해. 모든 것을 걸고.”
강설은 그녀에 대한 과보호를 멈추기로 각오했다.
“탄시아, 마지막으로 물을 거야. 넌 이제부터 위험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해. 할 수 있겠어?”
그가 다시 한번 물었다.
“싸울 수 있어?”
“…….”
탄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손을 힘껏 쥐고.
“할 수 있어! 탄시아는. 어리지만….”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가 쟈마드와 강설 일행을 돌아보았다.
“용이야!”
“…그럼 됐어.”
“응! 이제 싸우지 마!”
“애초에 싸운 것도 아니야.”
위험은 늘 가까이 있고,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은 집단의 목적을 희미해지게 만들 테니 분명 필요한 과정이었다.
강설과 우르가 서로를 잠시 마주 봤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다툼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탄시아도 장막에 소속된 한 명의 전투원으로 인정하는 것. 모두가 합의한 결론이었다.
“저기… 있잖아.”
뼈로 만든 열쇠로 수갑을 제거한 지안이 말했다.
“그래서, 우린 언제쯤 출발하는 거지?”
“마차에 타. 쉬를렌의 수사국으로 간다.”
“그 말을 기다렸어. 그런데… 저건….”
마차가 가야 할 길에, 시체가 즐비했다.
한소미가 지안의 물음에 대꾸했다.
“모르겠어요. 사태를 수습하고 마차를 추적하던 중에 갑자기 공격해와서….”
“전부 죽였다는 말인가?”
“제, 제가 안 죽였어요! 전 기껏해야 대여섯 명 정도….”
그러면서 주변을 힐끗힐끗하는 한소미.
수상해 보이는 쌍둥이와 압도적인 크기의 쟈마드까지.
모두 그들이 벌인 일이다.
강설은 마차에 타기 전, 탄시아의 일격에 짓뭉개진 시체를 바라봤다.
“음….”
“도망쳤어. 꼬마의 팔에 뭉개지는 순간 탈출했을 거다. 아니, 애초에 직접 오지도 않았을걸.”
“눈의 힘인가?”
“그렇겠지. 그래도 앞으로는 마주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거다. 옆에 딸린 어린애가 짐 덩이가 아니라 폭탄이었다니… 내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을 거다.”
“제자의 복수는?”
“그런 것쯤, 이미 잊었을 만한 위인이지. 아마 의회에 우리 정보를 누설하고 당분간 수련을 핑계로 줄행랑을 칠걸.”
강설은 앗시리의 품을 뒤졌다.
징그럽게 생긴 의안들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늙은이가 사용하는 눈들이군. 으깨버려, 어차피 눈을 뽑지 않는 이상 사용할 방법도 없으니까.”
그때, 강설의 눈이 빛을 발하며 의안에 깃들어 있던 기운들을 빨아들였다.
휘오오오오오오…
[붕괴안(崩壞眼)의 힘을 흡수합니다.]
[제물안(祭物眼)의 힘을 흡수합니다.]
[매혹안(魅惑眼)의 힘을 흡수합니다.]
……
‘…뭐?’
[용혈안이 강화되며 새로운 능력을 개방하기 위한 힘을 비축합니다.]
아무래도 용혈안의 새로운 능력이 발현되려면, 약간의 과정이 필요한 듯 보였다.
“…놀랄 만한 일 또 없나?”
지안은 고개를 흔들며 마차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강설에게 물었다.
“이봐, 그런데 인원이 좀 많은데? …크기도 남다르고 말이야. 몇 명은 걸어올 참인가?”
“그럴 일 없다.”
강설이 손바닥을 위로하자, 주변의 그림자가 빨려 들어왔다.
휘오오오오…
쟈마드를 비롯하여 카렌, 카루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자 방금까지 북적거리던 공간이 조용해졌다.
태연하게 행동하던 지안도, 이 광경만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너 설마… 아니, 어쩐지… 과연… 음….”
– 문화 충격.
– 시발 모야! 인형극이었다고?
– 지안 : 이거 몰래카메라인가?
지안은 입을 다물고 한 손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뭔가 홀로 생각할 거리가 있는 모양.
그리고 생각의 정리를 끝마친 그가 피식 웃었다.
“큭… 큭큭… 그래. 어쩐지, 네가 까마귀였군.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이유였어. 군중이되, 개인이었다니.”
한결 느긋한 표정을 짓는 지안.
“이거, 해 볼 만 하겠군.”
덜컹…
마차가 흔들렸다.
마부가 조용히 말했다.
“시체를 밟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 *
연방 수사국 쉬를렌 지부.
시체 청소를 위해 빠져나간 인원들을 제외한 수사국의 모든 인원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말이야? 정말로 붙잡았다고?”
“틀림없어! 국장님 말씀하시는 거 들었다니까?”
“특대위가 하룻밤 만에 사고를 쳤다는 게 말이 돼?”
“그럼 기다려보면 되겠지! 다들 비번인데 뛰쳐나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용모파기도 없는 자들을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수로 잡아내? 거짓말이….”
신종 마약 특별 대책 위원회.
그들은 신종 마약 ‘홈’을 유통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특별 구성된 조직이다.
그들이 쫓는 조직은 흔적조차 잡을 수 없으며, 최근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수사관들 모두가 이들에게 제거당했다는 말까지 돌았었다.
도시에 퍼져나가는 어둠에 모두가 불안해할 때, 특대위가 이 일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을 생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고, 모두 수사국 쉬를렌 본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들어오는 소리.
“온다!”
“…은사자회 마차잖아? 수사국 마차가 아니야.”
“뭐야… 또.”
끼이익…
은사자회 마차가 과한 마중을 받으며 수사국 내부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내린 건 마리쥬를 비롯한 세 명의 귀족.
그중 한 명이 내리자마자 칭얼거렸다.
“그래도 우리가 온다고 나름 태는 낸 것 같은데… 경박하게 서 있는 꼴이라니. 그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건가? 느려 터져서는!”
마리쥬를 비롯한 다른 귀족들이 인상을 썼지만, 그에게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부모의 후광으로 자리에 함께하기는 했으나, 영 거슬리는 것은 모두가 느꼈다.
“옵니다! 와요! 마차가 옵니다!”
“수사국 표식입니다! 정말이에요!”
“흥! 드디어 납신 건가?”
잔뜩 흥분한 수사관들.
그리고 거들먹거리는 철부지 귀족까지.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마차를 따라 길에 희미하게 그려지는 선.
“응? 이게 뭐지?”
“피… 피다.”
“우웩… 우웨에에엑….”
“피가 어떻게 여기까지….”
“홈에 중독된 녀석들의 피는 굳지 않는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바퀴가 거무튀튀하게 물든 마차가 수사국에 도착했다.
쿵쿵!
쿵쿵쿵!
마차의 문을 두들기는 귀족.
“나와! 얼른! 내 직접 거짓인지 진실인지 확인하고자 나왔으니까. 안에 있는 거 맞아?”
그때,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퍼어어어엉-!
“컥….”
마차를 열자마자 안에서 발을 뻗어온 누군가.
발차기에 날아간 귀족이 바닥을 볼썽사납게 구르며 각혈했다.
철컥…
끼이이익…
다시금, 문이 열리는 마차.
“이런, 용의자가 난폭하니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이건 네가….”
강설이 지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지안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씨익 웃고는 말했다.
“평소에 귀공을 질투해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허벅지 힘이.”
이곳의 모든 이들은 늦은 밤 그들을 수사국에 불러 모은 소문이, 정말로 사실이라는 것을.
지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이, 그들을 떨게 했다.
“맙소사….”
“저, 저자가….”
마치 양 무리에 뛰어든 늑대처럼 거친 기운을 뿜어내는 지안.
팍.
강설이 그의 손목을 붙잡자, 난폭한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적당히 해.”
“너도 즐겼으니, 나도 좀 즐긴 거야.”
공교롭게도 지안의 유희가 특대위가 이날 밤 저지른 모든 일을 사실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