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45
제444화
푸우우우우…
크어어…
푸우우우우우우…
하루가 고되었는지, 아니면 모투투의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건지 탄시아가 오늘따라 배를 내밀고 코를 골았다.
작은 몸집에 동산처럼 솟은 배를 보자니 강설은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의 몸, 어린아이의 생각, 어린아이의 감정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같았다.
끼이이익…
강설은 숙소를 나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휘이이이…
멸망한 인간의 도시가 한눈에 보였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인간의 나라를 멸망케 한 똑똑이의 행동,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뚱뚱이는… 강했지.’
분노와 식탐으로 만들어진 괴물, 오우거. 그리고 그 원천만으로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뚱뚱이.
머지않아, 트리엄은 의회보다 훨씬 위험한 집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왔다.
“읏차….”
“…똑똑입니까?”
“맞습니다. 트리엄의 건축물은 튼튼하게 지어져서 좋은 것 같군요. 작지만 그래도 명색이 오우거인데 옥상에 올라서도 괜찮은 걸 보니.”
“…….”
“잠이 없으신 편이군요. 인간은 최소 8시간 정도는 수면해야 안정된 하루를 영위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오우거는 다릅니까?”
“우리는 일주일 정도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전쟁 중에는 한 달도 멀쩡하지요.”
“그거, 참… 편리하면서도 두려운 체력이군요.”
강설도 몸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타입이긴 했지만 전투 종족인 오우거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똑똑이가 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전히 의심하는 겁니까?”
“예? 무슨….”
“우리에게 미약한 지성이나마 주어지는 걸, 걱정하고 계신 것 아니냐고요.”
“…….”
똑똑이는 독심술이라도 익혔는지 강설의 걱정을 단박에 눈치챘다.
“트리엄을 무너트리며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제가 읽을 인간의 책을 무한정 얻게 된 겁니다. 지리학, 역사학, 철학과 윤리학까지. 인간의 세계를 전부 엿볼 수 있었죠.”
오우거가 인간의 책을 읽는다.
그리하여 학습한다.
강설은 똑똑이의 얘기를 좀 더 들었다.
“흥미롭더군요. 모든 게 인간에게서 탄생한 겁니다. 전부! 그리고 우리는 철저히 그들의 사관에서 배척되어 왔죠. 이뿐만 아니라… 온갖 영웅담에서 오우거는 끔찍한 존재로, 우리를 퇴치하는 인간들은 영웅처럼 묘사되었죠.”
오우거의 역사 따위, 오우거의 관점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었다. 똑똑이의 존재 이전에는 말이다.
똑똑이는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아닙니다. 이제는….”
“바라는 건….”
“생존이 아닌, 번영. 우리라는 존재가 이 별에 태어나 생명을 일구어가는 이유를 알고자 합니다.”
강설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와 같은 말을 과거에도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 그리하여… 쟈마드는 진리에 다다를 것이다…. 별들이 태어난, 그리고 내가 태어난 이유에.
‘그런가… 이레귤러들은 전부 이 모양인가?’
이미 같은 사례가 있었기에 똑똑이의 생각이 거짓이라 느껴지지는 않았다.
회색이지만, 선명한 자.
강설은 슬쩍 웃었다.
“간단한 일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군요.”
“뭐라고요? 하하하! 오우거를 돕는다니, 당신은 미친 겁니까?”
“…….”
“아마, 우리가 당신을 도울 일이 더 많겠죠. 그리고 난, 진정으로 그것을 원합니다.”
도움을 받기보다 주고 싶어 한다.
똑똑이는 이상한 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리와 대등한 자가, 우리의 말을 귀담아들어 준다는 것.”
이것이 그가 강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언젠가 발을 뻗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죠.”
강설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대만찬회에서 똑똑이가 그에게 건넸던 상자였다.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대화를 거듭할수록 도저히 받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군요.”
“어째섭니까? 다른 의도는….”
“이건 관계에 있어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입니다.”
보통 선물을 거절하는 건,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 때.
혹은…
“주고받는 건 믿음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더 나은 관계를 바랄 때다.
똑똑이는 책에서 찾았던 감명 깊은 구절을 떠올렸다.
“…진실로, 그대와 같은 마음입니다. 친구여.”
* * *
“그 얘기 정말이야?”
“똑똑이 얘기?”
“그래, 상자를 돌려줬다고?”
강설이 아침이 되어 트리엄을 떠나며 일행에게 말했던 사실. 상자는 돌려주었고, 별문제 없이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강설이 고개를 끄덕여 이 모든 말이 사실임을 알렸다.
“…잘했어! 저주받은 물건들이 분명하다고!”
“맞아요. 꺼림칙하잖아요? 몰락한 자들의 물건을 받는다는 게.”
“몰락하는 병이 옮으면 어떡해. 신디오의 말이 맞아.”
“그런 병은 없어요, 지안.”
“없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지안이 일행의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무튼, 트리엄에서 있었던 일은 잊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묘한 밤이었으니까.”
“인간을 닮은 오우거와 대화를 하고 영령의 고기로 포식을 하다니. 세상 어디를 가도 허풍쟁이 소리를 들을 거예요.”
푸드드득…
신디오를 향해 날아오는 새 한 마리. 저번에도 그렇듯이, 마법으로 창조한 새였다.
새의 발에 매달린 종이.
“음? 2통이네요?”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펼친 신디오. 잠시 그것을 읽던 신디오가 강설에게 말했다.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어요. 원정대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뒤따르고 있다네요. 그리고 일전에 전했던 정보도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그보다….”
스윽…
까마귀 인장이 찍힌 종이가 강설에게 건네어졌다.
“이건, 제가 읽을 게 아니네요.”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장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우욱…
[마력 깃든 인장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파라락…
종이를 펼치자, 괴상한 일이 일어났다.
스르르…
종이 위로 우르의 환영이 나타났다.
종이 크기에 맞추어 아주 작은 우르.
– 강설, 보내준 정보는 잘 받았다. 이 형상은 내가 아니니 쓸데없이 힘 빼지 말도록.
“노, 놀라워요… 마법으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우르와 같은 마법사인 신디오도 눈앞의 편지에는 입을 쩍 벌렸다.
– 얼마 전, 홈 중독자 몇이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
마약 중독자들이 중독 증세를 보이곤 했지만, 발작까지 간 적은 없었다.
– 눈알을 까뒤집고 주변에 공격 행위를 일삼았다는군. 다행히 노인과 빈민가의 아이라 큰 피해는 없었는데,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몇몇 녀석들이 나타났다.
우르의 설명에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다. 겸사겸사 해약도 제조해 보고 말이지. 알아두라는 의미에서 보낸 편지다.
스르륵…
우르의 형상이 사라졌다.
강설이 재빨리 우르의 말을 함께 들은 지안을 쳐다보자, 그가 히죽 웃으며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도 맹약인가.”
“도무지 도움이 안 돼요! 저 사람, 여기 두고 가면 안 될까요?”
지안이 신디오의 심통 난 말에 답했다.
“그럼 너는 누굴 감시할 생각이냐?”
“…그냥 해 본 말이에요.”
강설은 이번 원정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을 따로 적어 새의 다리에 묶었다.
“이제 가죠. 데키족 얘기는 원정대에 따로 해뒀으니, 호루스에는 시간을 두고 진입할 거예요.”
“우리는 상관없지만, 원정대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경우엔 그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겁니다.”
“당연하죠. 애초에 전 이 원정대를 반대했던 입장이라….”
“큭큭… 귀족들이 네가 우리에게 포섭될 거라 여겼던 거지.”
“그러니까요! 그게 분하다는 거예요! 나를 뭐로 알고….”
“귀족들이 불편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 자, 이러다 늦겠다고. 호루스로 간다.”
일행의 발걸음은 북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거쳐 가는 지역은 북부에서도 다소 따뜻한 축에 속했기에 큰 불편 없이 호루스 산맥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지표석도 보이지 않네요.”
“눈이 멀지 않은 이상, 호루스 산에 영령들이 거한다는 걸 알 것이고 여기는 누가 봐도 호루스 산일 테니까?”
휘오오오…
차가움이 맴돌았다.
몸이 아닌, 영혼이 시렸다.
“스산하지 않아요?”
“뭔가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긴 한데… 난 뼛속까지 오염되어 있어서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야.”
“자기 객관화에 성공했군요. 아니, 그보다… 여긴 인간이 견디기엔 영기가 너무 강해요.”
강설은 영기가 강했던 지역을 동방을 주유할 때 몇 번 경험했었다. 영기가 변질되어 귀기가 된 경우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소천 세계의 공기와 흡사하네.’
호루스 산의 존재를, 영원의 세계를 오래 플레이한 강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당연히 영기가 강한 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니 감회가 새롭다는 뜻이다.
강설이 영험한 기운을 느끼고 있을 때, 주변을 둘러싸고 호루스 거주민의 기척이 드러났다.
우-!
우우우-!
“워, 원주민 소리예요. 데키족인가 봐요!”
“소란 떨지 않는 게 좋아 보이는군.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알려야 하니까.”
“낮에 다시 오지 않을래요? 서로 뭐가 보여야 대화를 할 텐데….”
그때였다.
– 부엉.
“…저 부엉이, 방금 부엉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부엉이가 부엉하지, 그럼 뭐라고 해?”
“아니… 그게 아니라… 울음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부엉이라고 말했다고요.”
신디오가 가리킨 방향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부엉이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부엉.
“저, 저! 저거 봐요!”
“정말이군… 뭐지?”
강설만이 침착하게 부엉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지혜로운 부엉이의 영령 카이로시여.”
– …부엉.
“길을 내어주시지요.”
신디오가 웃었다.
“부엉이한테 지금 뭐 하는….”
무표정하던 부엉이가 녹옥의 빛으로 물들었다. 비취 조각상이라도 된 것처럼 투명한 빛이었다.
– 이방인들아, 내 너희를 직접 볼 것이다.
“……말했어?”
신디오가 얼이 빠져 입을 벌리자, 지안이 그 입을 닫으며 말했다.
“오우거도 말하는데 뭐.”
“아… 그랬죠. 그럼 가능하겠네.”
부엉이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음 나무로 건너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 열 발짝 뒤에서 걸어라.
강설의 뒤를 따르던 지안이 물었다.
“혹시 영령이 우릴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쫓겨나겠죠?”
“그럼 의회 놈들은?”
“……쫓겨나지 않을 생각을 해야겠네요.”
긴장한 마음으로 호루스 산의 초입을 올랐다.
– 거기, 멈춰 서라.
곧, 어둠 속에서 신비로운 빛이 퍼져 나왔다.
위치는 하늘.
휘오오오오오오…
“큭….”
바람이 휘몰아쳤다.
일전에 보았던 멧돼지 영령 모투투만큼 거대한 부엉이가 나무를 부러트리며 그들 근처에 착지했다.
콰아아아아…
– 내가 카이로니라.
강설과 일행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경이로운 발견! 대자연의 영령을 목격합니다.]
[지혜로운 카이로를 배알합니다.]
[지혜가 5만큼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제부턴, 카이로의 반응에 따라 그들이 호루스에서 경험할 것이 고난인지 행복인지가 결정되었다.
– 이방인에게서 익숙한 영혼의 냄새가 나는구나.
순간, 모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런!’
– 모투투… 굳건한 멧돼지의 냄새야.
코트에 고기 냄새라도 밴 것인지, 카이로가 정확하게 잔향의 정체를 유추했다.
– 설마… 모투투를 네놈들이…
강설이 재빨리 입을 열어 변명했다.
“이것은 사정이 있어서 그런….”
– 돌아가라! 이방인들이여, 너희들에게 호루스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괜히 먹었나?’
그런데, 조금 억울했다.
능력치를 50 이상 올려주는 음식을 무슨 재주로 거부한단 말인가. 또, 주는 걸 마다할 분위기도 아니었으니….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끼이이이…
부엉이가 볼을 부풀렸다.
금방이라도 바람을 뿜어낼 것처럼 매서운 표정.
– 떠나라! 당장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였다.
끼루루우우욱-!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우웅…
거친 날갯짓 소리와 함께 카이로가 날아왔던 방향으로 또 다른 무언가가 날아왔다.
– 수행 도중에 이게 무슨 짓이냐! 어째서 산을 내려온 것이야!
카이로가 화들짝 놀라 이곳으로 날아오는 존재를 꾸짖었다.
지안과 신디오가 소리쳤다.
“숙여요!”
“제길!”
둘과 탄시아가 납작 엎드리는데, 강설과 쌍둥이 기사는 멀뚱멀뚱 서 있었다.
휘오오오오오…
바람이 가라앉고, 방금 날아온 거대한 새가 강설에게 다가왔다.
쿠르르륵…
그리고 거대한 부리를 그의 몸에 가져다 비볐다.
“…쿠파?”
카이로가 볼에 바람을 빼고 물었다.
– …이방인, 쿠파와 아는 사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