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49
제448화
“나는 지혜의 온타나를 받드는 마투다! 너희들이 진려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잘 알았다! 죽이지 않으마, 밖으로 나오라!”
강설과 지안이 서로를 쳐다봤다.
“죽이겠지?”
“죽일 거야.”
마투라는 사내가 계속해서 소리쳤다.
“반항하면 죽이겠다! 하지만 반항하지 않으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다! 너희는 케시이의 영역을 침범했다!”
강설이 인상을 찡그렸다.
‘전투? 아니면, 구속인데….’
이대로 제압당하면 그들의 본거지까지 끌려갈 것 같은 예감이었다.
“방법이 없겠지?”
“다 죽이게?”
“아니, 순순히 제압당하게.”
“좋은 생각이야. 어차피 우리가 수색하는 것보다 추적의 대가인 케시이족에게 물어보는 게 빨라.”
결국, 케시이에게 사로잡히는 모양새가 된 일행.
“…어째서 이렇게 된 건데요.”
신디오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쪽 제안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고, 너무 울 것 같은 표정 짓지 마.”
“잠도 못 자고… 이게 뭐예요….”
“내가 잘 조율해볼게. 잠은 재워주겠지.”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가운데, 살이 통통하게 찐 검은 용을 포박하던 케시이족 한 명이 물었다.
“…이 도마뱀은 뭐냐?”
“도….”
텁-!
탄시아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데, 카렌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있는 거야.”
“그렇군. 특별히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상관하지 않겠다.”
“고마워, 친구.”
“흥.”
나무 부속품을 꺼내 뚝딱뚝딱 뭔가를 조립하는 케시이족.
곧, 그들의 말에 매어진 마차 하나가 순식간에 탄생했다.
물론, 조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지만 속도를 생각한다면 불평할 수 없었다.
“불편하겠지만, 타라. 너희를 야하트만까지 이송하겠다.”
“야하트만… 하핫!”
지안이 웃었다.
신디오는 울었고.
“야하트만이면… 케시이족의 본거지잖아요!”
“그렇다는데? 이야… 이것 봐. 이 마차, 마감이 생각보다 괜찮은 것….”
“아악!”
퍽-!
퍽-!
“아야야… 때리지 말라고. 이 친구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그렇지, 친구?”
“그것보다… 저 사람들, 자꾸 탄시아를 훔쳐보는데요?”
“음? 그러게. 트집 잡히면 가장 먼저 꼬맹이가 식량이 될지도 몰라.”
헉하는 소리와 함께, 탄시아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비통치 구역의 3대 부족을 전부 돌아보겠어요.”
“돈 안 내고 이렇게 관광을 오래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군.”
마투가 소리쳤다.
“이동한다!”
“오!”
달그락…
달그락…
마차가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이라는 생각에 신디오가 여행길의 불편함을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들은 어설픈 마차에 탄 강설 일행을 배려해주었다.
호송 이틀째, 강설은 마투와 대화를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 케시이족이 조금 거칠어진 것은 아닌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습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있었죠.”
“그렇군. 이곳보다 남쪽이었겠지?”
“…예. 상관이 있습니까?”
마투가 말했다.
“녀석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추방자들, 아니… 스스로 부족을 이탈한 자들이다. 지금은 한낱 마적 떼에 불과하지.”
“케시이족은 똘똘 뭉치는 자들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것은 과거. 현재엔 모두 곤두서있다.”
곤두서있다는 말이 잘 넘어가지 않고 걸렸다.
“곤두서있다는 말은… 어째서 그렇습니까?”
“직접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마침… 잘됐군.”
달그락…
달그락…
무리가 길 따라 새로운 마을로 들어섰다. 과거, 구르쟌트처럼 이 근방에 자리했던 마을이었다.
“토갠이로군. 여기도 폭삭 망했지. 근데, 구르쟌트와는 다르게 마물의 습격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지안이 말하자 다른 케시이족 한 명이 답했다.
“직접 보라. 이 땅에 드리운 어둠을.”
후두둑…
폐허가 된 건물들에서 떨어지는 시커먼 물질.
“닿으면 중독된다. 미쳐버리는 건 한순간이야.”
“타락이군.”
“그래, 온 북부에 타락이 스며들고 있다. 늦추는 게 고작이지.”
“원흉은? 이만하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 텐데.”
“모른다. 과거에 흑룡이 이런 짓을 벌이긴 했으나 이 정도 위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일전에 이미 용군주에게 패퇴했다.”
강설은 아자닉이 생각보다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자닉이 벌인 짓 같기는 한데… 그에게 이만한 역량이 있을까?’
타락이 퍼진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호루스의 영령마저 타락에 오염된 상황.
‘아자닉이 벌인 짓이 아니거나… 아자닉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거나다.’
둘 중 무엇이든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일행의 마차는 길 따라 이동하며 수 개의 마을을 거쳐 갔다. 모두 타락에 오염되어 있었다.
“일정이 늦어지는 거 아니야?”
“자바투는 폐광으로 향하라 말했어. 어차피 케시이가 아니었으면 구르쟌트에서 흔적을 찾고 있었겠지.”
“케시이족이 협력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비통치 구역의 3대 부족.
케시이, 데키, 발두.
이들의 본거지는 모두 거대한 산을 끼고 자리했다.
“슬슬 다 와 가는군.”
강설은 케시이의 본거지인 스프노 산에 다다르기 전에 몇 번이고 물었던 질문을 다시 물었다.
“이쯤 되면 얘기해주시죠. 진려가 케시이족의 진을 도둑질했다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공정한 쿤나. 그녀가 도둑질해간 진의 이름이다.”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지! 태양의 진이자 최초의 진인 라진께서는 그 휘하에 여러 진을 두셨다. 공정한 쿤나 또한 그중 하나. 하나의 이름에 하나의 가치를 담지.”
“공정함을 빼앗겼군요.”
진려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쿤나에게 뭔가를 바쳐야만 했다. 공정한 자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런 행동이 필수였던 듯했다.
“그렇다.”
“그녀도 케시이 부족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불쌍한 아이였다.”
“불쌍한 아이?”
“세 부족의 싸움으로 그 부모가 목숨을 잃었다. 진려는 부모 없는 아이가 되었지만 씩씩하게 자랐다. 그리고 쿤나를 도둑질했지. 망할 년이다.”
“…….”
뭔가 뒤죽박죽되기는 했지만, 결론은 진려가 케시이족에게 해악을 끼쳤다는 것이다.
“케시이족은… 우리 말고 다른 이방인들을 보지 못한 겁니까?”
“…….”
“대답해 주시죠. 이쯤 와서는 도망도 못 갑니다.”
“하아… 보았다. 아주 강한 자가 무리를 이끌고 있었지.”
강설의 눈빛이 변했다.
‘…의회다.’
그들의 행방이 곧 다음 목적지일 터.
“그들은 어디로 향했습니까?”
“…너희를 만나기 전, 라진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이 땅에 발을 들였다.”
“라진이라면… 그 최초의 진 말입니까?”
“케시이의 신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카렌이 카루나에게 속닥거렸다.
“있잖아, 카루나. 라진이라는 이름, 나만 들어본 것 같은 거야?”
“난 들어보지 못했어.”
“그으래? 그럼… 네가 맞겠지. 내 기억이 잘못됐을 거야.”
“들어본 이름이야?”
“익숙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니겠지.”
라진의 부름을 받은 자.
‘설마… 의회가 이곳에 온 건가?’
강설이 다급하게 물었다.
“설마… 아까 말한 무리를 라진에게 안내한 겁니까?”
“라진께서 그걸 원하셨다.”
“위험한데… 그게 얼마나 됐습니까?”
“일주일도 더 전이다.”
지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주일의 격차.
이 정도면, 이미 볼일을 다 보고 스프노 산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
“우선, 다 왔다.”
말하는 사이, 그들은 스프노 산의 가장 훌륭한 위치에 도달했다.
후우우웅…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산의 중턱.
완만한 언덕에 즐비한 가옥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푸르르…
에에에에…
말과 양을 구획을 나누어 방목하는데 그 수가 무척 많았다.
“규모가 엄청난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3대 부족이 전부 모이면 연방과도 붙어 볼 만하다는 게 허언은 아니었군. 젠장, 그 녀석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갔었는데.”
신디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방 귀족들은 끊임없이 비통치 구역의 부족들을 경계해왔어요. 지금도 꾸준히 이곳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러한 의도죠.”
십수 명쯤 되는 인파가 보였다.
“하!”
“으… 하!”
케시이족들이 둥글게 모여 씨름을 즐기고 있었다.
“덩치가 마물이나 다름없군.”
“그러게.”
마투는 말에서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라진은 우리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안배한 신. 모든 진의 어버이시다.”
“…그가 악인들을 불러들였다는 것도 아시나요?”
“모르는 일이지. 라진 앞에 가면 탄로 날 정체다. 혹은, 그마저도 의도하셨겠지. 너희는 스스로를 선이라 칭하는가?”
“…….”
“아니지. 모든 개인은 그렇게 오판할 뿐이다. 라진의 선이 선이다. 개인의 선은 하등 쓸모가 없어.”
진을 섬기는 무리답게, 가볍게 개인의 의사 따위는 무시해 버렸다.
‘그게 당연하겠지.’
라진의 말을 따라 이렇게 번성했다면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랐다.
지안이 강설에게 속삭였다.
“이 미친 자식들이 의회 놈들을 끌어안은 것 같은데? 라진인지 뭔지가 한 말이면 똥도 찍어 먹을 기세야.”
“쉽지 않겠어…. 놈들은 어떻게 라진의 선택을 받은 거지?”
“모르지. 어떤 수작이 있었을지. 혹은, 라진이 잘못됐든가. 물론 이 경우엔 케시이가 절대로 그걸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상황에 따라 충돌할 수도 있겠어.”
“자살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안 져. 걱정하지 마.”
“자살이라고 생각해?”
“뭐야? 아니었어?”
바로 그때.
스으으으…
여기까지 강설 일행을 호송해 온 케시이족의 눈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안구는 유리알처럼 투명해졌고 일족의 계시자들이 그 자리에 인형처럼 멈추었다.
신내림을 받은 것 같은 모습.
그들의 입이 차례차례 열렸다.
“라진의 말씀이다.”
“악을 좇는 자들이여, 바람을 따라오라.”
“바람이 너희를 인도할 것이니….”
바람을 따라오라는 말.
강설 일행의 등을 바람이 가볍게 떠밀었다.
“바람을 따라오라, 낮과 밤의 기사여.”
낮과 밤의 기사.
강설은 흠칫하며 카렌과 카루나를 돌아보았다.
둘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카루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카렌은 웃고 있었다.
“…카렌?”
“아! 나 말하는 거지? 응, 그렇네.”
“라진을 알아?”
“…알지도?”
“뭐?”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스으으으…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온 마투는 화들짝 놀라더니, 강설 일행을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라진께서 직접 부르셨다. 구속을 끊어라.”
툭…
툭…
묶었던 밧줄을 끊어내는 케시이족.
강설 일행은 부족의 구성원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이, 곧장 어딘가로 안내되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라진의 신전이다.”
“그게 어딨는 거죠?”
“분화구다.”
“…….”
스프노 산은 화산이었다.
휴화산이긴 했지만, 이따금 분화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하는 곳.
“우리를 분화구에 집어 던질 작정인가?”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는 마.”
후우우웅…
신전 입구처럼 장식된 동굴 초입.
“발길을 허락하소서! 라진이여!”
마투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던 찰나.
[상급 간파가 발동합니다.]
[유황 냄새가 진동합니다.]
[함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푸쉬이이이이…
문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더니 흩어져 사라졌다.
[함정이 해제됩니다.]
“함정이었군.”
“그대로 들어가면 녹여버렸을 거야.”
저벅…
저벅…
케시이 족과 함께 분화구를 향해 나아가는 일행.
치이이이이…
뜨거운 열풍이 중간중간 느껴졌다.
[신디오가 서늘함을 사용합니다.]
[가벼운 열기의 침습을 막아냅니다.]
“라진의 축복을 거부하다니, 이방인들은 특이하군.”
“뜨거운 게 축복이라고?”
“그렇다.”
“끙….”
신디오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꽤 들어온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아까부터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느낌이….”
“어라? 이 친구들 어디 갔지?”
강설의 얼굴이 굳었다.
‘케시이족이 사라졌다.’
풍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
화끈한 열풍이 휘몰아치며 주변에 신전의 내부가 나타났다.
스으으…
거대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와 말, 양 등.
인간의 몸에 머리만 다른 개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하나같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진이로군.”
– 그러하다. 그림자여.
심처에서 울리는 목소리.
‘라진이다… 이 자가 라진이야.’
듣기만 해도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진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
– 그대보다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구나.
휘오오오오…
[위대한 경험! 태양의 진, 라진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 낮과 밤의 기사여, 살아있었구나.
카루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 그대는 나를 모르겠지, 하나 그대의 누이는 나를 기억할 것이다.
저벅…
카렌이 앞으로 나섰다.
– 그렇지?
그녀는 라진의 말에 씨익 웃었다.
“카핫! 오랜만이야, 라진! 살아있었구나!”
갑자기 거리감 없이 라진을 대하는 카렌. 어찌 된 영문인지, 라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 …살아있었구나. 작은 불씨여.
강설이 카렌에게 물었다.
“라진을 알아?”
카렌은 음흉하게 웃었다.
“라진은, 몬트라의 수호성 중 하나였어.”
“…뭐?”
태양의 제국 몬트라.
모래 아래 파묻힌 황제의 땅.
그곳에서 비운의 시기에 탄생한 존재들. 그들이 바로 수호성이었다.
라진은 전혀 신답지 않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카렌에게 말했다.
– 제국은 사토 아래 묻혔고, 기억들은 바람에 흩어졌다. 한데, 어찌….
케시이의 신은 카렌에게 의문을 느꼈다.
– 그대만이 아직, 타오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