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50
제449화
생기가 가득한 머릿결.
붉은 장미에도 비유되는 카렌이 잔뜩 긴장한 채로 대열에 합류했다.
“카렌! 늦었잖아!”
“미안, 미안! 다들 기다렸어?”
“네가 없으면 모두 모인 게 아니니까 그렇지.”
카렌의 복장은, 몬트라 황가의 수호자로 활약했을 때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모두 모이긴… 카루나도 없는 걸, 뭐….”
“어휴… 네가 이러니까 카루나가 마음에 독이 쌓인 거 아니야!”
“뭐어? 독? 너 지금 나보고 독이라고 했어?”
“그래! 독! 이런 독한 것아!”
“야아!”
팍-!
파아악-!
서로 머리채를 잡고 늘어지는 두 여인.
카렌과 같이 수호자를 역임하고 있는 젤린이 그녀의 머리를 잡아챈 카렌에게 한소리 했다.
“아아악! 놔! 놔!”
“너부터 놔!”
“좋아. 셋 하면 동시에 놓는 거야.”
“좋지.”
“하나, 둘, 셋….”
우드드득-!
양쪽 모두 전완근이 도드라질 정도로 팔에 힘을 집어넣었다.
“아아아악!”
“아아악!”
그때, 둘의 머리통에 공평하게 꽂히는 주먹.
“그마아안!”
퍼어어억-!
“컥… 목이 부, 부러진 거 같은데.”
“나 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어?”
그들을 한순간에 잠재운 건 레인이었다. 수호자 중 최고 서열이자 몬트라의 상징인 태양의 기사.
“명색이 기사라는 것들이 싸울 거면 제대로 싸워야지! 머리채를 잡고 싸우다니! 꼴사납기가 이를 데가 없구나!”
“뭐야… 그것 때문?”
“레인, 말리려고 온 거 아니었어?”
“…아차차.”
레인이 물었다.
“아침부터, 왜 싸운 거지?”
젤린이 먼저 답했다.
“카렌이 늦게 나와서요!”
“쟤가 카루나를 걸고넘어졌어요!”
“요컨대, 둘 다 잘못했다는 말이구나.”
“으….”
“으으으….”
젤린과 카렌 둘 다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감히 레인에게는 대들지 못했다.
카렌은 평소에 레인을 거리감 없이 대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중요한 공식 행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렌, 카루나는 내가 인정한 가장 기사다운 녀석이다. 언제고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올 거다.”
“정말?”
“그럼.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네가 그 꼴이라면 다시 말 궁둥이를 걷어차고 도망치겠지.”
“…….”
“머리와 옷을 정돈해라, 젤린 그리고 카렌!”
“예!”
“예!”
젤린과 카렌이 서로를 잠시 쳐다봤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옷과 머리를 정돈했다.
의복을 정돈하는 행위는 곧 기세와도 연관이 있었다. 곧, 그들은 예의 날카로운 기세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몬트라가 자랑하는 황가의 수호자들이다. 제국민들에게 그려지는 우리는 늘 완벽해야 하며 무적이어야 한다.”
레인이 발걸음을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 점검했다.
“설령, 속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 말을 이해했나?”
“…….”
“내 말을 이해했느냐고 물었다.”
“예!”
“이해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레인이 앞장섰다.
“개방하라.”
쿠구구구구궁…
성문이 열리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아!”
“황가의 수호자다!”
“여길 좀 봐주세요!”
“여기예요! 여기!”
좌우로 갈라진 인파가 환호했다.
레인을 필두로 한 황가의 수호자들이 보이는 위용은 어마어마했다.
위가 뚫린 마차가 그들을 뒤따랐다.
몬트라의 황제인 진이었다.
그 역시 공식적인 행사를 위해 제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의 행렬은 제국민들을 위해 한차례 행진한 후, 목적지로 향했다.
새롭게 지어진 신전이었다.
“후우….”
제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신전 인근은 철저한 경계 상태에 있기에 모두 신전에서 멀리 떨어져 행사를 지켜봤다.
“그대가 몬트라의 새로운 수호성인가.”
몬트라의 인공 신, 수호성.
마법과 이치의 힘을 종합하여 만들어진 이 인공 영혼들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한 몬트라의 힘을 상징했다.
둘에 불과하던 수호성은 진의 치세 이후 모두 아홉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열 번째 수호성이 탄생하는 날이었다.
행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작은 불꽃을 닮은 10번째 수호성은 진의 축사와 함께 제국의 안녕을 약속했다.
이것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모두 종료, 10번째 수호성은 이제 몬트라를 떠받치는 기둥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진이 떠나고, 수호자들 또한 떠났다.
그렇게 보였다.
“아… 정말 이러다 들키면 저만 곤란해집니다.”
“걱정 마! 안 들키면 되니까. 들키면 내 잘못이라고 할게. 다들 안쓰럽게 쳐다보기만 할걸?”
“…그야 그렇겠죠. 워낙 못 말리시는 분이니.”
은은한 조명 빛만이 자리한 신전이 갑자기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불쑥, 10번째 수호성 앞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 …안녕?
“너는 이름이 뭐야?”
– 그대는 누구인가요?
“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너처럼 10번째인 사람!”
수호성은 지금 앞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 카렌, 황가의 수호자 제10위. 그대로군요.
“맞아! 이제 네 이름도 말해줘.”
– 수호성은 이름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자아를 갖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어째서?”
– …스스로 황제보다 나은 존재라 판단할 수 있어서겠죠.
“뭐? 이 자식! 위험한 녀석이었네!”
카렌이 찡그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그야 진보다 대단한 녀석은 없는걸.”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름… 내가 지어줘도 돼?”
– 나의 이름 말인가요?
“그래, 네 이름.”
새로이 태어난 태양의 영혼은 카렌의 제안을 곰곰이 곱씹었다. 이것은 악마의 제안인가?
– 역시… 가지고 싶습니다.
“라진.”
– 라진….
“이제부터 넌 라진이야. 내가 그렇게 부를 거야.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 라진… 나의 이름.
수호성이라는 막중한 직책 아래, 짓뭉개졌던 영혼의 자아가 깨어났다.
쉽사리 악에 물들 수 있는 가녀린 자아가.
“난 카렌. 언젠가 레인을 넘어 태양이 될 기사야. 지켜봐 줘.”
– 그렇군요. 카렌… 작은 불씨여.
라진이 불꽃을 꿈틀하며 말했다.
– 당신은 이미 내게 태양입니다.
“…뭐?”
– 라진은 몬트라를 수호할 거예요. 그대가 태양이 되는 날까지.
라진을 마지막으로, 몬트라의 다음 수호성은 태어나지 않았다.
* * *
휘오오오오…
그들이 마주 본 공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카렌과 라진, 둘은 첫 만남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살아있던 거야, 라진?”
– 살아있다… 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아요. 살아있던 적은 없으니까.
“카핫… 뭐, 그렇지? 미안해.”
–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요.
“나 역시.”
카루나가 라진을 모르는 이유.
라진이 태어난 시기는 그가 몬트라를 떠나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국이 몰락해버렸으니, 시간과는 상관없이 라진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 모두 죽었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 마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내가 기억하는 몬트라의 모든 것을 멸했습니다. 마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우우웅…
라진이 진동했다.
– 나는 약속을 어겼습니다. 몬트라를… 지키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카렌.
“괜찮아. 라진이 힘냈다는 건 잘 알겠어. 제국의 운명이 우리가 분투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야.”
– 이제 몬트라를 기억하는 이는 우리밖에 남지 않았어요. 마지막 수호성인 나와… 마지막 수호자인 그대들.
카렌과 카루나가 침묵했다.
– 내게 올 생각은 없습니까? 그대들이라면….
“라진.”
“음….”
– 난 한차례, 실패했습니다. 몬트라의 수호성은 실패해선 안 됩니다.
화르륵-!
라진이 잠깐 검게 타올랐다.
–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회를….
스윽…
카렌이 손을 뻗어 라진의 타오르는 혼을 만졌다.
“라진.”
끔찍하게 타오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손이 불길에 휩싸여도 카렌은 태연했다.
“누구나 실패를 해. 수호성도 예외는 아니야.”
– 카렌….
“카핫… 뭐, 실패해서 배운 점도 있잖아?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그런 거 말이야. 그러니까….”
카렌이 쓸쓸하게 웃었다.
“현재를 걷자. 몬트라는 사라지지 않았어.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잖아.”
치이이이이…
라진의 검은 불길이 잦아들었다.
– 아아… 역시… 당신만이 나의 태양입니다.
휘오오오…
라진이 훌쩍 멀어졌다.
다른 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초의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습니다. 어느샌가 나를 섬기는 자들이 생겨났고 나 또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들 너를 신으로 여기더라.”
– 나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했어요. 긴 세월, 보고 느낀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어요. 그렇기에 알아요. …다가올 미래를.
“…뭐?”
– 하지만, 쉽게 답해줄 수 없죠. 그건 그대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으로 모자라, 나아가 실패하게 만드는 행동이니까.
스르르륵…
도중에 사라졌던 케시이족이 어느샌가 고개를 처박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라진이시여! 이자들은 진려를 알고 있습니다. 공정한 쿤나를 우리에게서 도둑질해 간 여자를.”
“맞습니다!”
이번엔 강설이 라진에게 물었다.
“진려가 쿤나를 도둑질한 것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카렌과 대화하던 말투는 어디 갔는지, 다시 냉엄한 말투로 뒤바뀐 라진.
– 사실이다. 그러나… 그 또한 순리일 터. 그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나?
흠칫!
강설은 진려와 쿤나가 힘을 합하여 무엇을 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만큼 잘 아는 이는 설홍밖에 없을지도.
그녀는 화그무로부터 광야령을 쥔 설홍을 지켜냈다. 인재가 넘치는 칸에서도 그것이 가능한 자는 진려밖에 없었다.
“그렇군… 예비된 거였어….”
강설이 고개를 숙였다.
“케시이의 신을 뵙습니다. 라진이시여.”
– 고개를 들라.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라진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심상치 않았다. 몬트라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었는지도 그의 쭈뼛 선 솜털이 알아서 증명하고 있었다.
“한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그대와의 대화는 재회 이후로 미루고 싶다. 하지만 정 급하다면 질문에 대답해 주마.
“우리 말고, 이곳에 먼저 도달한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설은 지금 의회의 행방을 묻는 것이다.
‘놈들은 라진에게 직접 부름을 받았다… 라진은 대체 무슨 꿍꿍이지?’
– 내가 그들을 들였다. 그들이 찾는 것은 과거에 만들어진 오래된 돌의 파편이다.
손을 불끈 쥔 지안이 소리쳤다.
“우리가 찾는 것도 그겁니다!”
– 나는 그대와는 대화할 마음이 없다.
“이런… 까다롭군요. 알겠습니다.”
신디오가 지안을 토닥이는 사이, 강설이 계속해서 물었다.
“파편의 행방을 아십니까?”
– 나에게 있다.
순간, 잘못들은 줄 안 강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후우우웅…
라진의 앞에 무언가 떠올랐다. 일전에 트리엄까지 가서 얻어온 파편과 흡사한 형태였다.
“…맞는 것 같군요.”
– 그들은 내게 이것을 받아가고자 했다. 나는 그들을 시험했다.
“시험이라니… 어떤….”
– 빈자리가 보이지 않으냐?
강설이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진들이 죽 늘어선 사이에 빈 공간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공정한 쿤나일 거고… 하나는… 뭐지?’
– 타락에 물든 이가 있다. 그를 가두었으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될 수는 없는 법. 내게서 파편을 받아가고자 한다면 먼저 떠난 자들보다 앞서 그를 찾아라.
“…알겠습니다.”
– 네가 아니다.
“…예?”
라진이 타오르며 카렌에게 향했다.
– 그대입니다. 카렌.
카렌이 관자놀이를 긁으며 반문했다.
“응?”
– 내가 시험하는 건 그대입니다.
“날 시험하겠다고? 어째서?”
– 확인해야 하니까요.
화르르르륵-!
순간, 스프노 산의 분화구가 흔들렸다.
드드드드…
“윽….”
치이이이…
“뜨, 뜨거워….”
“저게 뭐….”
라진의 앞에 떠오른 심상치 않은 불꽃.
– 당신에게 이 불을 이을 자격이 있는지.
강설은 한순간에 불꽃에 매료되었다.
‘저건….’
마치 오직 카렌만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듯이, 매끈하게 타오르는 불꽃.
[‘잉걸불’의 전승 모험이 시작됩니다.]
[경고! 소환수의 권능 획득이 임박했습니다.]
[소환사의 권능이 발현되지 않았습니다.]
[장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될 시, 충성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