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55
제454화
콰아아아아앙-!
비신을 화산토에 처박은 카렌은 한편으론 후련함을, 한편으로는 불안을 느꼈다.
– 잘했다, 카렌!
그녀의 규율.
점점 선명해지는 레인의 환각.
무적처럼 보이는 그녀의 힘에 숨겨진 비밀이었다.
– 카렌….
레인이 카렌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환각과 눈을 마주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완벽하게 똑같은 얼굴.
거스를 수 없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과거로 되돌아갔다.
* * *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에엥…
기억났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허리춤에 찬, 홍련검(紅蓮劍).
진에게 하사받은 그녀만의 검.
성물인 진주에서 발아한 그녀와 닮은 검이었다.
진주는 곧 황가 수호자의 상징.
“난 먼저 들어갈게.”
“응. 난… 아냐, 먼저 들어가.”
그녀와 카루나가 주인공이었던 행사가 끝이 났다. 거대한 종소리도, 사람들의 함성도, 대제국을 향한 염원과 자긍심도 오늘만큼은 그녀와 카루나만 누릴 수 있던 것이었다.
카루나는 주어진 책임과 그 소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반면에 자신은…
“…정말로 돼버렸잖아.”
8인의 수호자.
거기에 전통과 원칙을 깨고 더해진 2인의 수호자.
벌거숭이가 된 숲에서 주운 쌍둥이 요정이 그 자리에 올랐다.
쏴아아아아아…
가장 축하받은 날이지만, 하늘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비가 억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외 연무장 또한 호우에 노출되었다. 물웅덩이가 생기고, 바닥은 진창이 되었다.
그곳에서 카렌은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새하얀 갑옷을 입고 비를 맞았다.
비에 젖어도, 그녀는 새하얗다.
고귀한 기사의 표상처럼.
“후우우우…….”
스릉…
홍련검이 뽑혀 나왔다.
그녀는 신기한 듯이 검병(劍炳)에서 검첨(劍尖)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관찰했다.
“…아름다워.”
그녀의 검이다.
다른 누구의 검도 아니다.
손에 쥔 느낌은, 낯설었다.
무게도 중심도 모두 그녀에게 맞춰졌지만 어쩐지 그랬다.
“하!”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고, 빗방울이 흔들렸다.
사아아아악-!
아니, 빗방울을 베었다.
이 앞에 가상의 적을 만들어냈다. 눈은 여덟 쌍, 팔도 마찬가지, 근육질 체형이 알맞을 듯하고.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1식부터 18식까지.
유려하게 이어지는 검술은 그녀가 수호자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걸 날카롭게 증명했다.
파아아아악-!
쒜에에에에에엑-!
참격에서 이어지는 찌르기.
군더더기 없다.
팍-!
파파파파파팍-!
호흡을 머금은 연격.
역시나 군더더기 없다.
스윽…
검을 늘어트린 카렌이 중얼거렸다.
“이게 아닌데….”
누군가는 손에 넣고 싶어 할 매끈하고 담백한 검술이, 카렌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검술이었다.
비를 맞으며, 고뇌하는 백기사는 그야말로 고고한 백조 같았다. 그마저도 그림이었으니.
그때였다.
파아아아아아악-!
카렌의 뒤통수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억… 어떤 자식이….”
“나다, 이 자식아.”
카렌이 뒤통수를 문질러 머리칼과 한 몸이 된 뭔가를 확인했다.
“…진흙?”
“뭘 폼을 잡고 있어. 재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던져버렸다. 똥이라도 한 포대 싸서 대신 던졌어야 했는데.”
“…뭐 하는 짓입니까, 레인.”
“입니까아? 뭐 하는 짓입니까아?”
“왜 또 시비예요. 예의를 다하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암. 내가 그랬지.”
레인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거 취소한다. 넌 버르장머리 없는 그대로가 좋은 것 같다.”
“하, 이제 와서?”
“그래, 이제 와서.”
레인과 카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카렌은 영문 모를 행동을 하는 레인에게 불만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
“…….”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레인?”
“그래.”
“무슨 할 말이….”
퍼어어어억-!
“우풉풉… 입에 들어갔잖아!”
레인이 이번에도 진흙을 카렌에게 집어던졌다. 카렌은 피하지 않았고 정확히 얼굴에 부딪힌 진흙이 그녀의 코와 입으로 마구 들어갔다.
“퉵… 화낸다?”
“어쭈? 화내 보시든가.”
“…안 되겠네.”
스윽…
홍련검을 앞으로 내미는 카렌.
“자, 검을 뽑아.”
“너 뭐 하는 거냐?”
“응? 뭐가?”
“화낸다며? 그게 네가 화내는 방식이냐?”
“…엥?”
“하아… 이젠 화내는 방법도 잊어버린 거냐?”
“그게 무슨….”
쉭…
바람이 흐르는 듯한 기척.
레인이 갑자기 카렌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좀 맞으면 정신 차리겠지.”
뻐어어어억-!
카렌의 투구에 적중한 레인의 주먹. 놀랍게도 벗겨진 투구가 오히려 찌그러졌다.
“이씨… 이게 무슨 짓이야!”
철컹…
철컹…
쿵…
쿠우우웅…
“…….”
“카렌.”
레인의 갑주가 하나둘 진흙탕 위에 떨어졌다. 원래 저만한 갑주는 종자들이 낑낑대며 달라붙어 떼어내야 하지만, 몬트라의 마법 무구는 그런 불편함이 대부분 제거되어 있다.
결국, 갑옷을 입기 위해 덧댄 의복 외에는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전부 벗어던진 레인.
쿠우우우우우웅…
그의 대검, 태양검이 마지막으로 진흙탕에 빠졌다.
“뭐 해? 파편이 내장을 찔러도 모른다?”
“…….”
입을 꾹 다문 카렌이 레인과 마찬가지로 갑주를 벗었다.
투웅…
투웅…
상대적으로 가벼운 카렌의 갑옷은 경쾌한 소리를 남기고 바닥에 떨어졌다. 백색의 갑옷에 진흙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홍련검을 바라본 카렌.
이것만큼은 진흙에 잠기게 할 수 없었다.
진이 직접 하사한 물건 아닌가.
몬트라 황가 수호자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파아아아아악-!
레인이 어느새 접근해 홍련검을 걷어 차버렸다.
그 바람에 홍련검이 저 멀리 진흙에 처박혔다.
“뭐 하는 짓이야!”
“얼간이.”
“개자식….”
진심으로 화가 난 카렌이 레인에게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동작이 커.”
“닥쳐!”
휙…
파아아아앙-!
“방금 건 제법.”
신장 차이를 고려해 관자놀이를 노린 일격이 무산되었다.
당연히, 반격받을 차례.
팍-!
발을 붙잡힌 카렌이 저 멀리 날아갔다.
타아앙-!
땅에 곤두박질치고 두 바퀴를 구른 후 벌떡 일어나는 카렌.
신기하게도 갑옷을 벗자 몸이 평소보다 기민하게 움직였다.
“덤벼, 뭐 해?”
“그 못생긴 얼굴에 한 방 먹여주지.”
“…기대하고 있다고.”
파아앙-!
카렌이 긴장한 채로 싸움에 임했다.
어째선지 모르지만, 레인이 제법 진심이었다. 그가 제법 진심이라는 말은, 그녀가 전력을 다해도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 정도라는 것.
휘휙…
카렌의 민첩함을 살린 회피.
레인은 쉽게 주먹을 뻗지 않았다.
파아앙-!
그때, 하단을 걷어차는 카렌.
“얕아.”
“알아!”
“알면 됐다.”
그녀의 발차기는 어지간한 급소가 아니고서야 레인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파앙-!
“그래, 질보단 양이란 거지.”
후우우웅-!
치직…
레인의 주먹이 카렌의 머리칼을 찢어발기며 허공을 때렸다.
‘기회!’
단번에 턱이 노출된 레인.
카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밑에서부터 끌어올렸다.
후웅…
레인의 반대쪽 손이 활짝 펴져 카렌의 시야를 가렸다.
‘뭐….’
뻐어어어억…
“우우우욱….”
카렌은 복부에 틀어박힌 게 혹시 대포가 아닌가 했다.
‘이게 사람의 주먹이라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부우우웅…
몸이 공중에 떴다.
충격은 해소했지만, 연계된 공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런… 씨….”
“으하하하!”
카렌의 허리가 레인의 품에 붙잡혔다.
“자! 먹어라! 레인 특제 화산 폭발!”
“그만 둬! 그딴 창피한 이름….”
“땅이랑 입맞춤!”
쿵…
의외로 상냥하게 바닥에 패대기치는 레인.
짜아아악-!
레인이 카렌의 뺨을 후려쳤다.
“컥….”
그대로 그녀의 목을 잡아 흙탕물에 얼굴을 문댔다.
“부으읍….”
“정신 차려라, 카렌.”
카렌은 흙탕물에 머리를 잠그며 생각에 잠겼다.
‘방법을 찾아야 해. …죽을 수도 있어.’
레인은 놀랍게도 진심이다.
그가 이처럼 난폭하게 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쏴아아아아아…
살려면, 레인을 쓰러트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콰르릉-!
순간, 번개가 내리쳤다.
하늘과 카렌의 머리에 동시에.
“음?”
레인이 번개를 바라본 사이, 카렌이 진흙을 움켜쥐고 그의 눈에 퍼부었다.
찰팍-!
“윽….”
“끄아아아!”
레인의 팔을 휘감아 똑같이 진흙탕에 뒹굴게 하는 그녀.
이번엔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진창에 쓰러진 레인에게 올라탄 카렌이 그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퍼어억-!
퍼어어억-!
“이 자식! 이 자식!”
“아하하! 크하하하!”
“뭘 웃는데! 개자식이!”
그녀가 레인의 얼굴을 마구 때릴수록, 그의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레인은 반항하지도 않고 연신 웃기만 했다.
툭…
툭…
새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을 한 레인이 카렌에게 말했다.
“카렌, 울지 마.”
레인에게 떨어지는 빗물 사이에 뜨거운 물이 섞였다.
카렌의 눈물이었다.
레인의 코에서 시뻘건 게 비쳤다.
“이런, 코피다. 내가 졌다, 카렌.”
“으… 왜, 왜 이런 거야. 너 때문에 오늘 하루가 엉망이 됐잖아.”
“…카렌.”
머리는 산발에, 온몸은 진흙을 뒤집어썼다.
레인이 양손으로 카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훨씬 보기 좋아졌구나.”
그녀의 얼굴에 또 한 번, 진흙이 잔뜩 묻었다.
쿵…
카렌이 옆으로 넘어가 레인처럼 누웠다.
“진에게 받은 검인데… 소중한 건데….”
“크하하하! 의미 부여하지 마라. 저딴 건 그냥 검일 뿐이야.”
“말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너 스스로가 잘 알잖아.”
“…내가?”
“힘이 들어갔다. 멍청아.”
“…….”
“카루나는 태생이 귀족적이다. 기품이 넘치고 고귀하지. 넌… 넌 달라….”
“천박하다는 거야?”
“자유롭다, 넌.”
레인이 말했다.
“갑옷을 입어라. 검을 들어. 갑옷에 구속되지 말고 검에 얽매이지 마.”
“…그래 보였어?”
“헛된 생각을 하지 마. 병기로 완성된 너다. 병기는 병기다워야 해. 고귀한 백마 위에서 거들먹거릴 생각은 하지 마라.”
그의 가르침.
“언제라도 진흙탕에 뛰어들어 엉망진창으로 싸울 준비를 해라. 언제고, 이런 일은 벌어지는 법이니까.”
“…확실히 의외였지. 설마하니 오늘 같은 날에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오늘 같은 날이기에 벌인 짓이다. 네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날이니까. 어깨의 짐을 덜어야만 했으니까.”
“……표현이 과격해.”
카렌은 깨달았다.
레인과의 엉망진창의 싸움 이후, 머리가 개운해졌다.
배시시 웃는 레인.
“정말로… 수호자가 됐구나, 카렌.”
“…응.”
“…한다.”
“뭐?”
“축하한다고.”
“시시해! 더! 더 칭찬하라고. 뭐 조언이라든가 그런 거 말이야!”
“흠흠….”
레인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괜히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몬트라의 홍련은 진흙 속에서만 핀다, 카렌. 그 검의 이름, 내가 지어준 거다.”
“…정말이야?”
“그래. 쑥스럽구먼….”
카렌이 레인의 등등 팡팡 쳤다.
“뭐야! 제법이잖아!”
레인이 벌떡 일어나 진흙 범벅이 된 홍련검을 카렌에게 건넸다.
“카렌.”
“…응.”
“진흙 속에서 피어라. 엉망진창인 기사로 남아다오.”
그녀는 검을 받아 들고 경례했다.
수백, 수천 번 다시 새긴 경례를.
“예!”
* * *
으지지직…
으지지지지직…
비신이 의도하지 않은 난투전.
“어째서… 모든 일이… 어그러진 거지.”
후욱…
후우욱…
빠아아아아악-!
“커어어억….”
비신은 쓰러져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카렌도 부패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검은 반점이 동공까지 차올라, 곧 생명이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끝을 내자, 기사여.”
“헤….”
둘 다 한계에 다다른 상황.
먼저 반응이 온 건 카렌이었다.
“커허어어억….”
피를 토하는 그녀.
부패 중첩이 폭발한 게 분명했다.
“끝이다!”
비신이 카렌을 쓰러트리기 위해 팔을 뻗었다.
훅…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이미 팔을 뻗고 난 이후에 깨달았다.
“뭐….”
카렌이 비신의 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천박한 박치기.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악!”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승기를 잡은 카렌이 비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가격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히히… 속았지이….”
피를 입에 머금고 있다 적절한 순간에 뿜어낸 카렌. 비신은 그녀의 행동을 경멸했지만, 달리 할 말은 없었다.
패자는, 아무런 말을 남길 수 없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하아… 하아아….”
축 늘어지는 비신.
그의 사체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싸움은 끝이 났다.
푸스스…
레인의 환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멍청이.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제법이다, 카렌! 이 발동합니다.]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하며 최대 체력의 30%만큼 회복합니다.]
* * *
라진의 심처에는 강설 일행과 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분화구에서 전해진 심상치 않은 진동이 그들을 불안하게 했다.
– 라진이시여, 비신은 평범한 진이 아닙니다.
– 당장이라도 힘을 합하여 놈을 다시 봉인해야 합니다!
– 놈은 잉걸불과 라진을 노리고 있습니다!
진들이 아우성치는 가운데, 라진은 침묵했다. 그릇된 믿음일지라도,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것은 라진의 앞에서 묵묵히 분화구 쪽을 바라보는 강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꽤 흘렀다.
진동은 어느 순간 멈추었다.
일이 있었다면 아까 있었을 것이고 지금은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늦네….”
“혹시….”
“신디오, 강설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할 생각은 아니겠지?”
“호, 혹시 다리가 아파서 잠깐 쉬었다가 오는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임기응변이 영 별로인데.”
“어, 어떡하라고요! 그럼… 아까 그 진동은 대체 뭔….”
신디오의 말이 맞았다.
진동 이후에 시간이 꽤 흘렀다.
라진과 강설은 서로를 응시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철그럭…
철그럭…
쿠우웅…
쿠우웅…
카렌의 발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 비신인가!
– 녀석이….
쿵…
쿵…
분화구 쪽을 바라본 진들과 라진, 그리고 강설 일행은 이 소리가 발걸음 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철그럭…
쿵…
치덕치덕 덧붙여진 갑주가 화산토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맙소사….”
신디오는 너무 끔찍한 꼴을 당한 기사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썩은 갑주가 땅에 떨어져 불꽃으로 부스러졌다.
쿵…
깨진 투구 사이로, 카렌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 손에는 비신을 끌고 나타난 그녀.
“이히히… 라진, 왜 말 안 했어.”
– …무엇을요.
“이 녀석… 꽤 세잖아.”
– ……아아.
비신은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기어코, 강철로 이루어진 거인이 부패의 진을 쓰러트렸다.
[타락한 잉걸불 비신과의 공격대 전투가 끝이 납니다.]
[비신이 부여한 부패가 전부 사라집니다.]
[비신이 가졌던 힘이 잉걸불로 되돌아갑니다.]
[비신의 부패는 분화구 안에서 끝이 납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의 대단한 업적으로 변혁을 이루어냅니다.]
[영원의 세계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비신의 ‘반신 무너트리기’ 모험이 생성되지 않습니다.]
[숨겨진 모험 ‘몬트라가 있었다’가 사라집니다.]
[분화 예정이었던 스프노 화산이 다시 긴 잠에 빠집니다.]
[긴장 상태에 있던 주변 생태계가 느슨해집니다.]
[케시이족은 라진의 고충을 해결한 방문자들을 환영합니다.]
[이후 모든 플레이어가 거점에서 ‘분화구의 썩은 내’ 모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후 모든 플레이어가 거점에서 ‘라진의 또 다른 시험’ 모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정량의 모험가 점수를 얻습니다.]
[모험가 점수가 스노우맨에게 전달됩니다.]
[비신의 끔찍한 계획은 철저히 분쇄되었습니다.]
[일정량의 시대력을 획득합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이 최초 업적 ‘물리적 봉인’을 달성합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이 최초 칭호 「진 살해자」를 얻습니다.]
[최초 업적 ‘아무것도 안 함’을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놈팡이」를 얻습니다.]
[썩은 내 꾸러미를 획득합니다.]
……
스으으윽…
라진을 제외한 진들이 카렌에게 무릎을 꿇었다.
– 라진의 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 그대는 진정 강자다.
– 비신을 해방해준 그대에게 경의를 바치마.
[위대한 경험! 진들이 경의를 표합니다.]
[파티의 위엄이 50만큼 상승합니다.]
[파티 구성원의 모든 능력치가 20만큼 상승합니다.]
– 카렌… 비신을 쓰러트렸군요. 그대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어요.
드드드드…
이 지독한 싸움의 끝.
‘…잉걸불인가.’
권능을 가진 소환수.
소환사라면 바라 마지않는 존재.
휘오오오오…
비신의 사체가 썩어 검은 불꽃으로 화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잉걸불로 스며들었다.
“그거, 괜찮은 거야? 나쁜 놈이었는데.”
– 그의 존재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아픈 존재입니다.
후우우웅…
라진의 몸이 황홀한 빛으로 감싸였다.
– 진을 창조한 불꽃, 이 잉걸불을 그대에게….
“잠깐.”
– …….
카렌이 손을 내밀었다.
“그거, 받지 않을래.”
– …뭐라?
– 잉걸불을… 거부한다고?
– 어찌….
그녀의 말에 진들이 동요했다.
강설 일행도 마찬가지.
“미, 미친 거 아니야? 준다는데 받아야지!”
“그래요! 이런 기회는 다시 없는데….”
라진이 물었다.
– …어째서죠?
“내 힘도 아닌 걸 받아서 뭐에 쓰겠어? 안 그래?”
– 그대는… 그랬죠. 그런 이기에….
카렌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다.
– 한 걸음씩, 태양에 다가서는 거겠죠….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스윽…
카렌이 뭔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부러진 검.
불씨였다.
“이거, 부러졌어. 고쳐줘.”
강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세출인 불씨가 부러질 정도로 싸웠다니.
‘얼마나 처참하게 싸운 거야….’
라진은 둥둥 떠서 잉걸불과 불씨를 번갈아 보았다.
– …새로운 검이 필요하겠군요.
창조와 부패의 불꽃 잉걸불은, 권능이 아닌 새로운 검으로 벼려질 것이다.
[전승 모험 ‘잉걸불’의 내용이 변경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