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60
제459화
이 모든 건 이틀 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에 거짓은 일절 없을 것이다.
에라곤의 출현을 눈치챈 우르는, 다음 날부터 서리 열병 치료제의 연구를 그만두었다.
은사자회에서 오직 마리쥬만이 그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 길로 마리쥬는 아직 새로운 문이 달리지 않은 우르의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약 1시간쯤, 대화를 나누었다. 우르는 그녀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준비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 무시해야 할 것.
마리쥬는 그 모든 걸 잊지 않기 위해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후우우….”
호기롭게 말했지만, 우르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에라곤이 이미 빛을 내고 있다는 건… 언제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인데.”
고작 한 달의 유예기간.
우르는 그것조차 과하게 낙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시대는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붕괴의 전조는 보름이 될 수도 있고 일주일 후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었다.
철컹…
연구실로 향한 우르는 실험용 개와 원숭이들을 꺼내었다.
크르르르르…
키이이이…
모두 서리 열병을 중증까지 앓고 있었다. 완화제를 투여한 피실험체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고 이번 실험에서는 제외되었다.
“뭐, 미안하게 됐다.”
쭈우우욱…
쭈우욱…
차례차례 서리 열병을 일으키는 홈의 병원균을 동물들에게 주입하는 우르.
서리 열병 숙주의 배양에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아까운 실험체들을 잃을 수 있어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다.
완화제나 치료제의 개발에도 큰 의미가 없는 소모적인 연구이기도 했으니.
그러나, 상황이 바뀐 지금 더는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으지직…
으지지지직…
개와 원숭이의 몸이 전보다 더 커지기 시작했다.
“알려줘, 뭐가 오고 있는지.”
쿠지지직…
쿠지지지지지직…
커어어엉-!
커어어어어엉-!
실험실이 그들의 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뭐?”
우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철퍽…
팽창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험체들은 금세 뒤통수에 피멍이 차오르다가 퍽! 하고 살점이 터져 축 늘어졌다.
이것이 서리 열병의 말로인가?
“아니… 아니야.”
서리 열병은 애초에 전파 매개가 홈이라는 마약이었다. 그건 개와 원숭이가 들이마실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인간을 노리고 만들어진 거지….”
홈은 인간을 노리고 만들어졌고 인간은 서리 열병의 전염 수단으로 선택되었다.
우르는 서리 열병의 치사율에 주목하지 않았다. 현재 서리 열병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는 사람들은 장기간의 투병 때문에 발생한 다른 문제들 때문에 사망한 것이지 서리 열병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니었다.
즉, 서리 열병의 투병자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밝혀진 게 없었다.
‘그건 그렇고 분명 언뜻….’
실험체가 과도한 자극으로 사망하기 전, 두개골이 있는 부위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약간이지만 마력 반응을 보였다.
그건, 분명 마력 반응이었다.
철컹…
철컹…
크르르르르…
우르가 쇠창살에 갇힌 실험체들을 차례차례 꺼냈다. 생명을 온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해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은 언제나 정의라는 저울의 중심축으로 사용되어왔다.
요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우는 날이 많아졌다.
* * *
다음 날.
“흠흠흠….”
한소미는 우르의 집무실 근처에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인사말을 고르는 중이었다.
첫인상은 꽤나 중요한 가치였다.
그건 첫 만남이든 잦은 만남이든 마찬가지였다.
“아아, 짜자안! 음… 이건 좀 경박해서….”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인상.
그것이 그날의 만남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갈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소미는 생각했다.
“후우….”
밝게.
최대한 밝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한소미는 자각하고 있었다.
“응?”
문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쟈마드가 또 하나 해 먹었지.
어쩔 수 없이 문이 있어야 할 공간에 슬쩍 발을 내밀며 집무실에 들어서는 한소미.
“드, 등자아아앙… 어라?”
우르가 자리에 없었다.
“…뭐야.”
한소미는 우르가 올 때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집무실을 살폈다.
어제 이후로 늘어난 문짝도 보이고, 벽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도 보였다.
책상에는 서류가 가득했다.
그중 몇 개는 완화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전부 어려운 말이네… 대단해.”
전문 의약사도 아니건만, 효과가 있는 약을 시간만 주면 뚝딱 만들어 내질 않나 오만방자한 은사자회의 귀족들이 고분고분 말을 따르질 않나….
“음? 이건….”
서류 더미 속, 눈길을 잡아끄는 종이가 있었다.
“…명단?”
슥…
스으윽…
한소미가 그것을 꺼내 확인하려는 찰나.
“도둑고양이나 할 법한 행동인데.”
“어? 와, 왔어요?”
“무슨 일이냐?”
“쌀쌀맞게… 그냥 와봤어요.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말이 걸려서.”
“별게 다 걸리는군. 주변에 신경 쓸 시간에 본인 안위에 대해서나 더 신경 쓰도록 해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근에 우르를 만났던 한소미는 그가 좀 이상해졌다는 걸 느꼈다. 뭐랄까… 접근하기 무안할 정도로 과한 날 선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일 있어요?”
“알 것 없다. 일이 있다면 쟈마드에게 전달하지. 아니… 이미 그에게 전달했다.”
“눈이 좀 퀭한데….”
“원래 그렇다.”
“큼큼… 냄새도 좀 나고.”
“씻지 못한 건 맞다.”
“…제대로 쉬고 있는 거 맞아요? 혹시… 뭔가 문제가 있다면 제가 도울게요.”
“…도와? 네가… 나를?”
역시, 이상하다.
평소의 우르는 냉정했지만, 상대의 기분을 이렇게 짓뭉개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가, 당분간 여기엔 오지 마라.”
울컥, 악에 받쳤다.
“싫어요!”
“…고집부리지 마.”
“그것도 싫은데!”
“……큭.”
우르가 웃었다.
“큭큭… 크핫… 이거, 웃기는군.”
“이제 웃네요?”
“한소미.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제 돌아가.”
“역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스윽…
한소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우르.
“오늘부터 절대로, 쟈마드에게서 떨어지지 마라.”
“네?”
“쟈마드에게도 말해뒀어. 시키는 대로 해라.”
따아아악-!
우르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소미는 빛무리에 휩싸여 건물 밖으로 추방되었다.
“후우….”
그녀가 쥐고 있던 명단을 되찾은 우르는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 2층.
비공개 실험실이다.
의자에 손이 뒤로 묶인 죄수복의 남녀 4인이 앉아 있었다.
“아까보다 한결 나은 얼굴이군.”
“네가 상관할 게 아니다.”
“인체 실험이나 해대는 녀석이 뻗대기는….”
우르는 그들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칼리 오마지아, 일가족 다섯 명을 살해했지.”
“그 집안 식구들이 내 동생을 강간하고 강가에 내다 버린 건 왜 빼고 말해.”
“이야기만 길어지니까. 나는 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오늘이 집행 예정일이라는 걸 설명하고 있는 거다.”
“흥. 옆에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지?”
흉악한 인상의 범죄자들.
모두 오늘 사형이 예정된 자들이었다.
“비앙, 수사관까지 모두 12명 살해….”
“그만, 죽일 거면 빨리 죽여. 내 변명까지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
우르는 실험을 위해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맞다. 너희는 오늘 죽는다.”
“…….”
“재수 없어.”
“오늘이었군.”
체념하는 자와 비아냥대는 자.
“너희들, 혹시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
“혹시 이거, 그거야?”
“최후의 만찬이라니… 애도 아니고.”
“집어치워. 그냥 죽이기나 하라고.”
“고통 없이 빨리 끝내줘.”
우르가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고통스럽게 죽을 거다.”
“…뭐?”
“이게 무슨 개소리야?”
“너! 누, 누가 보낸 거냐?”
그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믿지 않겠지만….”
우르는 실험에 강제로 참여한 자들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말했다.
에라곤의 존재와 새로운 시대. 그리고 연방의 몰락뿐만 아니라 인류 그 자체의 존망까지.
“…그걸 믿으라고?”
“재밌군.”
반응은 일관됐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서리 열병이 최후까지 진행되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생각이다. 너희들이 이미 감염자라는 것도 차출된 이유 중에 하나다.”
“…이미 더럽혀진 우리라면 죽어도 상관없다 이건가? 너무 냉정하잖아.”
“인간의 자유의지나 뭐… 그런 거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건가?”
우르의 표정은 시종일관 똑같았다. 지나치게 사무적인 표정.
“이쪽도 어찌 됐든 전력으로 간다. 인륜이든 도덕이든 쓰잘 데 없는 건 뒤로 미룰 생각이야.”
“사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사용한다는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우리, 꽤 참혹하게 죽을 거 같은데.”
“큭큭… 간덩이가 작은 놈들은 시체만 봐도 지려버리지. 너는….”
우르가 그들과 마주 보는 책상에 양팔을 걸치고 턱을 괴었다.
“자주 있던 일이라 괜찮다.”
“…….”
“…….”
그제야, 모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다져 넣은 음료.”
“냄새나는 돼지고기, 잔뜩.”
“어린 양.”
마지막으로 제일 구석진 자리에 있는 청년이 말했다.
“엄마 음식.”
“……구체적으로.”
“어, 엄마가 해주던… 못난이 감자죽, 좋아했어.”
청년이 덧붙였다.
“…힘들겠지? 그래도 그것만 먹고 가면 최대한 협조할게.”
따악-!
우르가 은사자회의 병사를 불러 청년의 어머니를 수소문했다. 확실히 살아있고, 얼마든 대접하겠다고 했다.
“이봐, 나 바꿀래. 저 녀석 엄마가 해주는 음식 먹고 싶어.”
“나도, 난 엄마가 없거든.”
“못난이 감자죽은 실패가 없는 편이지. 나도 좋아한다.”
잠시 후, 4인분이라기엔 지나치게 넉넉한 못난이 감자죽이 그들의 식탁에 놓였다.
텁…
텁…
“제기랄, 맛없잖아.”
“우리 엄마, 요리 못해요.”
“왜 미리 말 안 했어? 망할 자식아.”
“큭큭… 키히히….”
여인이 웃었다.
“너무 맛없어서 죽기 전에 먹기엔 딱 맞는걸. 이런 음식을 먹고 살라고 한다면 죽어버리는 게 나아.”
“칭찬 고마워요. 제가 아직 살아있는 게 대단한 거였군요.”
“그래, 아가야. 뭐… 네 어머니가 널 좋아하시긴 하나 보다.”
“느껴졌나요?”
“…응.”
식탁을 물린 다음…
지이이잉…
철컥…
실험실의 격벽을 내렸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4개로 나뉘어졌다.
“이건 뭐 하는 거?”
“난동을 부려 실험을 망치면 안 되니까. 서로 영향이 없게 하는 거다.”
“아, 좋네. 내 추한 꼴은 너만 본다는 거지? 서리 열병인지 뭔지 되게 애처롭게 죽는다던데.”
끄덕…
“하아….”
“후후우우….”
우르가 말했다.
“최대한 버텨봐.”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럼, 날 악마라고 생각해라.”
바늘이 닿으면 발작을 일으킬 수 있기에, 가스에 섞어 살포되는 서리 열병 균.
푸쉬이이이이이이…
연기가 투입된 지 1분 정도 지났을까.
“크르르르….”
“크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앙-!
콰아아앙-!
격벽을 후려치는 사형수들.
후려칠 때마다 계속해서 푹푹 꺼지는 격벽이 일견 불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의 변화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푸화아아악…
“제길….”
호언장담하던 여인이 가장 먼저 머리가 터져 죽었다.
푸쉬이이이…
연기는 계속해서 투입됐다.
강제된 반응이기에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질 순 없었다. 단지, 한 명이라도 서리 열병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끄아아아아아!”
쾅쾅쾅-!
이번엔 머리를 격벽에 부딪혀 자살하는 다른 사형수.
“망할….”
시간은 부족한데, 의미 없는 죽음이 벌써 둘이나 발생했다.
“끄으아아아아!”
푸화아아악!
모든 핏줄에서 푸른 피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세 번째 사형수.
이제 혼자 그릇을 싹싹 비웠던 청년만이 남았다.
“…너.”
“…….”
“…의식이 있어?”
청년은 새파랗게 충혈된 눈으로 우르를 노려보았다.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잖….”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인내하는 피실험자. 우르는 그의 정신력에 감탄했다.
“있잖아요….”
“말해. 아직 최후 반응에 도달하지 못했다.”
“냉정해… 개새끼….”
“말해. 정신을 잃지 마라.”
“나는 사람을 죽였어요.”
“알아, 기록을 봤다.”
“수십 명을.”
“봤다.”
“모두 날 괴롭혔던 자식들이에요… 아마 내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제일 많이 죽였겠죠.”
“…그래. 자랑할 건 아니긴 하다만.”
“이거… 나 마지막까지 견디면…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하는 건가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사람을.”
청년이 히죽 웃었다.
“그럼, 난 죽으면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떨어질까요?”
“…지옥에 가는 건 나다.”
씨익…
“외롭진 않겠네요.”
후우우우우우웅…
흠칫!
우르가 청년의 몸에서 일어난 반응에 집중했다.
“이게… 서리 열병의 최후 반응.”
후우우우우우웅…
청년의 몸이 새파랗게 빛나더니 팽창했다. 일전에 그에게 대항했던 은사자회의 귀족 차일라처럼 빵빵하게.
“아… 이제 못 견디겠어요….”
“…수고했다. 최선을 다하마.”
콰아아아아아앙-!
실험실이 폭음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