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63
제462화
“…콘지?”
일전에 봤던 그녀의 얼굴은 생기 있었지만, 지금은 시든 잡초처럼 퀭했다.
“배고파… 나… 이틀째 굶었어….”
여행자들은 종종 식량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다. 전이자가 아닌 세계의 원주민들은 기껏해야 가방 정도 되는 크기의 짐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비롯하여 야영 물품까지 챙긴 후 마지막으로 식량과 식수를 챙긴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여행자라면, 식량 정도는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었고 거기다 많이 들고 다녀봐야 부패하기 일쑤였으니.
다만, 여행자 본인이 언제든 식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며칠, 사냥과 채집을 공치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쫄쫄 굶는 것도 모자라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콘지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다 탄시아를 보고 고개를 멈췄다.
탄시아는 오랜만에, 새끼 용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요, 용이다. 근데… 나… 밥….”
추우우욱…
아예 술 취한 사람처럼 몸을 강설에게 늘어트리는 콘지.
실신한 듯, 코를 고는 그녀.
강설이 일행을 쳐다보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중요한 건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달그락…
달그락…
굶은 기간이 좀 있기에 간단한 죽을 뚝딱 만들어내는 강설. 트리엄의 오우거들에게서 영령의 고기를 맛볼 기회를 받은 이후로 요리 실력이 나날이 급상승 중이었다.
강설은 그녀의 목을 떠받친 후, 의식이 깃들게 힘을 줘 그녀에게 죽을 떠먹였다.
주르륵…
처음에는 입가로 죽을 다 흘리던 콘지가 죽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번쩍 뜨고 죽을 퍼먹었다.
“아뜨… 하아… 뜨….”
콘지가 입천장을 다 델 정도로 빠르게 죽을 해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죽을 좀 식힌 다음 깨울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강설.
“으햐아아! 살 것 같다! 고마워!”
“아직 몸 상태가 회복된 건 아니….”
벌떡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콘지.
“핫! 개운해졌어. 힘이 좀 없긴 한데, 그래도!”
꾸욱…
그녀는 연체동물처럼 팔을 늘여 발끝에 닿게 하거나 한쪽 다리를 쫙 벌려 머리 위로 올린다거나 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빠르게 회복했다는 건 희소식이긴 했지만, 아직 강설과 그녀 사이엔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 있었다.
“콘지.”
“응!”
“물어볼 게 있습니다. 대답해 줄 수 있나요?”
“나한테?”
콘지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본인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리고 뭔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무슨 말이든 답해야겠지. 해! 다 답해줄게!”
강설은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전에 봤을 때, 북부를 떠도는 것 같았는데 맞나요?”
“응! 북부를 떠돌고 있어.”
“…어째서요?”
“고고학자니까!”
“고고학…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강설.
– 놀랍게도 이분은 트롤 고고학자를 알고 있습니다.
– 트롤 고고학자는 괜찮지만 콘지, 너는 고고학자가 안 어울려!
콘지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나, 고고학자인 거 이상해?”
“아,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
“그랬군요.”
강설은 주제에서 너무 벗어나기 전에, 이어진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고고학자가 됐죠?”
“중요한 거야?”
“꽤?”
“나, 버려졌었어. 할아버지가 주웠어. 할아버지가 고고학자였어.”
“할아버지의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야. 이름 없어.”
“…….”
“진짠데?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
“지금은 할아버지와 같이 움직이는 겁니까?”
“아니, 할아버지 죽었어.”
“……미안합니다.”
툭툭…
두꺼운 책을 두드리는 콘지.
“할아버지가 남긴 책. 이거 채우려고.”
그녀가 여행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왜 하필 북부인 거죠?”
“당연하잖아? 유성이 오고 있으니까.”
흠칫!
순간, 이야기를 듣던 모든 이들이 움찔했다.
“왜, 왜 그래? 나 뭐 잘못 말했어?”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겁니까?”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말했어. 유성이 오고 있다고, 새 시대의 왕이 탄생할 거라고.”
라진은 시대 유성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가 현시대에는 몇 없을 거라 했다. 그런데, 길을 나서자마자 마주칠 줄이야.
“두근두근하지 않아? 누가 왕이 될까?”
“콘지…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유적엔 무슨 이유로 방문했죠?”
“말하지 않았나? 나 고고학자인데.”
“위치는….”
“유적은 눈감고도 찾을 수 있어. 왜?”
“…콘지, 당신이 원하는 건 뭡니까?”
“원하는 거? 다른 건 필요 없는데. 난….”
콘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진실을 원할 뿐이야.”
눈빛 교환을 하는 강설 일행.
“좋아요, 콘지. 혹시 동행을 요청해도 될까요?”
“정말? 그래도 돼?”
“네, 유적의 정보를 고고학자의 눈으로도 확인하고 싶으니까요.”
“그럼… 밥줄 거야?”
“얼마든지.”
콘지가 강설을 끌어안았다.
“최선을 다할게!”
지안이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저… 저!”
콘지는 뭔가 떠올렸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응? 없네?”
“뭐가 말입니까?”
“용! 분명히 봤는데, 이상하다?”
탄시아는 인간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착각했나 보다. 배가 고프니까 헛것까지 보였나 보네…. 자! 이제 재무장했으니까 출격!”
콘지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자칭 고고학자다. 유적에 들어서기만 하면 훌륭한 전력이 되는 게 바로 고고학자와 유적 사냥꾼들이다.
콘지는 돋보기 같은 것을 꺼내 벽에 드문드문 보이는 삭은 벽화들을 바라봤다.
“그거 알아?”
“뭘 말입니까?”
“벽화를 새겨넣는 기술이 오래됐어. 기록에 남겨진 양식은 아닌데… 거기다 이 질감, 이건 고대에 근접한 것 같은데!”
유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막힘 없이 쏟아내는 콘지. 그간 유적들을 거칠 때마다 옆에 마엘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강설은 이 순간이 썩 만족스러웠다.
괴짜이긴 했지만 콘지도 어쨌든 고고학자이긴 했으니까.
“오오… 이 부분. 혈액을 사용한 건가? 그래서 지워진 거네.”
지안이 그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흠흠… 어디, 나에게도 알려줄래?”
“느끼해! 저리 가!”
“…….”
콘지는 지안을 매몰차게 대한 후, 강설에게 물었다.
“이거 봐, 강설. 벽화의 배열이….”
지안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자, 신디오가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죠.”
“위로하지 말아 줄래….”
강설 일행이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동했다.
“마물은 없는 것 같은데….”
“나도 그래! 악한 기운은 없는 것 같아!”
다행히 유적에 흔히 있을 법한 악령이나 마물은 생겨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말이야, 강설. 할아버지가 그랬어.”
“뭘 말입니까?”
“마물이 나오지 않는 유적이 더 위험하다고.”
“…신기하네요. 어째서 그런 말을?”
“마물들도 두려워하는 유적일 수 있다고.”
“유적을요?”
“아니. 보통 유적은 과거에 사이비 신이나 반신, 혹은 악한 존재를 섬기는 장소였으니까 숭배의 대상 그 자체를 무서워하는 거랬어!”
“한마디로, 숭배받는 자를 두려워해 유적을 더럽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역시! 이해가 빨라!”
콘지와 강설의 대화가 오고 갈 때, 저쪽 구석에서 탄시아가 소리쳤다.
“있다아아!”
“탄시아! 뭐가?”
“계단! 여기 계단 있어!”
탄시아의 말대로 그곳엔 더 깊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강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푸스스…
“콜록… 콜록….”
“건조하네….”
콘지가 말했다.
“건조하다는 건, 좋은 유적이라는 거야! 촉촉하면 균이 자라거나 습한 곳을 좋아하는 마물이 터를 잡거든. 그리고 냄새가 심해!”
“하하… 유적에 대해 알게 되는 게 많은 하루네.”
카루나가 조용히 말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어쩐지 유적의 규모가 커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맞아.”
강설도 동감했다.
구조물의 크기, 벽화의 범위나 잡다한 것들로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의 규모.
지하로 내려온 순간부터, 벽화가 커지기 시작했다.
“콘지, 유적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해?”
“몰라? 벽화는 대부분 지워졌고 의미도 퇴색해서. 아마 지하에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으니까 차차 알게 되겠지? 자! 내 고고학자의 감각이 말해. 이 밑으로 조금만 더 가면 뭔가 시대를 특정할 만한 게….”
투욱-!
콘지의 머리에 주먹만 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어? 으끼아아아아악!”
그녀가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강설을 끌어안았다.
“떼줘! 떼줘어어!”
팍-!
콘지의 머리에 얹어진 건 착지를 잘못한 거미였다. 생김새는… 콘지가 곧장 울음을 쏟아낼 만한 비주얼이었다.
“후우우….”
신디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안이 그녀를 툭 쳤다.
“왜 그래? 거미 때문이야?”
“조금 놀랐나 봐요. 심장이….”
“업어줄까?”
“됐어요!”
“싫음 말고.”
신디오가 머리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좀 더 힘들어지면 말할게요.”
“그래.”
일행이 마침내, 지하의 끝에 도달했다.
“여기다!”
자신의 집을 소개하듯 팔을 활짝 펴는 콘지. 그 앞엔 정말로 엄청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석상들이….”
“엄청난 규모예요!”
이런 유적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대발견일 정도의 규모.
석상들이 줄을 맞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석상들은 하나 같이 완성도가 높았다.
[경이로운 발견! 오래된 무언가의 발자취를 확인합니다.]
[지혜가 2만큼 상승합니다.]
[하루 동안 피로를 덜 느낍니다.]
“요 녀석! 요 녀석! 파헤쳐주지!”
콘지가 신이 나서 유적의 이모저모를 파헤쳤다.
강설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 유적을 둘러보았다.
‘조금… 이상한데.’
유적이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유적은 라진이 말한 그대로, 다음 시대의 왕으로 추정되는 자의 비밀을 품은 듯했다.
단지, 조각상들이 어딘가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어색한데.”
“이상하죠?”
“나만 느낀 거 아니었지? 그렇지? 다들 이상한 거지?”
그렇다.
모두가 느낄 정도의 괴이함.
조각상의 존재들은 여러 생명체였다.
요정도 있고, 난쟁이도 있었다. 비룡과 수인 그리고 수많은 이종족의 조각까지.
“왜 전부… 땅을 기는 거지?”
“제대로 된 자세가 없군. 전부 바닥을 기고 있어.”
모두 양손, 양발을 바닥에 대고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
꼭… 짐승을 조각한 것처럼.
콘지가 중얼거렸다.
“으음… 계급의 표현인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조각된 생명 모두 이족 보행을 하는 종족이잖아? 근데 전부 땅을 기도록 조각했다는 건 행여나 조각을 본 사람들이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 거야.”
“…….”
“노예나 가축을, 병사 혹은 친교의 대상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지안과 신디오의 솜털이 쭈뼛 섰다.
“…다른 종족을 모두 노예나 짐승처럼 부렸다는 건가요? 이곳에서 숭배받던 존재가?”
“아마도? 좀 더 가보면 알겠지. 저길 봐.”
거대한 문.
정말로 거대한 문이 조각상 행렬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여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
일행은 문 앞에 선 후, 강설이 여는 것을 기다렸다.
으으읍…
‘응?’
문은 힘을 아무리 줘도 열리지 않았다.
“…혼자서는 안 열리겠는데?”
“붙어! 붙어!”
콘지가 일행을 재촉해 문에 달라붙게 했다.
쿠구궁…
쿠구구구구궁…
곧,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거대한 조각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인…간?”
“아니, 아니야.”
콘지가 단언했다.
“거인이네. 여긴… 서리 거인의 유적이었어.”
무장한 거인 조각상이 대열을 맞춰 양쪽으로 도열.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저벅…
저벅…
강설 일행은 그사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향했다.
“콘지, 거인들에 대해 잘 압니까?”
“할아버지한테 들은 정도는? 복색이나 아까의 조각들을 봤을 땐 서리 거인이 확실한 것 같아. 전쟁의 시대에 북부를 제패하고 중앙까지 넘보았던 존재들.”
그들은 마침내, 행렬의 끝에 도달했다.
거대한 세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앉은 세 명의 거인.
벽면에는 거인의 언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 굵직한 문장을 읽는 콘지.
강설도 그녀가 캐치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따라 읽었다.
“마지막 거인 왕. 뭄, 쟘 그리고….”
강설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홈.”
신디오와 지안이 눈을 부릅떴다.
“홈? 설마….”
“홈이라면….”
콘지가 강설이 따라 읽자 얼떨떨하게 이어 말했다.
“으, 응. 홈. 세 거인은… 다시 돌아오리라? 나머지는 온갖 미사여구인….”
“으아아아아아악!”
지안의 얼굴에 핏줄이 잔뜩 돋아났다.
“으흐으… 으흐흐흐….”
“지안!”
“헤헤… 으헤헤헤… 이 녀석들이었던 거야?”
“왜 그래?”
지안이 침을 흘리며 말했다.
“이 순간, 맹약에서 해방됐다. 모든 걸 말할 수 있게 됐어.”
“…뭐?”
지안의 혓바닥에서는 한시도 늦출 수 없다는 듯 의회의 인물들의 면면이 토해졌다.
“그레고리… 사역하는 자. 높새 날개 부족장인… 이름은 몰라, 트롤 녀석이 한 명 있었어.”
강설이 중얼거렸다.
“…헤키나.”
“뭐?”
“겁쟁이 헤키나. 높새 날개의 부족장.”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또?”
“천공 용 아자닉….”
역시나.
북부에 터진 타락 또한 녀석의 소행이 분명했다.
한 가지 의문인 건, 어째서 그가 의회와 힘을 합친 것인지다.
“아자닉이 그들의 우두머리인가?”
“아니… 의회의 장은 다른 녀석이야. 모두 표면적으로는 대등한 위치지. 우두머리의 이름은….”
강설은 잊고 있던 이름을, 그에게서 듣게 되었다.
“위대한 자, 아그라스.”
야차라는 존재를 탄생시키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 저주받은 마법사.
아그라스는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