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64
제463화
어둠으로 치장된 오래된 성채.
과거에 이 성채의 주인이었던 자들은 모두 죽고 이제는 그 기상과 가치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이 성채를 점거했다.
저벅…
저벅…
“스승님, 이곳은 변함없이 기분 나쁜 곳입니다.”
좀 어리숙해 보이는 제자를 대동한 남자. 제자는 이 불쾌한 장소와는 별개로 스승을 자랑스러워했다.
스승이 이곳에 당당히 걸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의 높은 위상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지금은 괜찮지만, 회장에 들어서면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내비치지 마라. 이곳에 모인 이들은 네 존재 자체만으로도 분노를 드러낼 수 있는 자들이니.”
“하압… 네. 명심하겠습니다.”
성채는 낡았으나 웅장했다.
지금은 쇠퇴했으나, 한때 번영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스승님.”
“무엇이냐.”
“슈라진을 죽인 자, 대체 어떤 녀석일까요?”
제자와 함께 걷고 있는 스승이란 자는 세간에 그레고리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림자의 대가이자, 현시대의 거물 중 한 명.
“조금도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슈라진은 약해서 죽었다. 그것만 염두에 둬라.”
“…배신한 지안과는 별개로 놈에게 붙은 자들의 소행이겠죠. …흔적으로 남긴 그림자를 보셨습니까?”
“…보았다.”
“평범한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스윽…
그레고리가 제자의 앞에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이제부턴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입을 여는 순간이 네 죽음의 때이니.”
“…….”
저벅…
저벅…
동그란 고리 모양의 탁자에 다가가 앉는 그레고리.
“오셨군. 그림자 인간.”
“헤키나 공.”
높새 날개의 헤키나.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처럼 말하는 자.
그러나 그는 트롤이었다.
구름의 원신을 섬기는 대부족 높새 날개의 수장.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을 자는 없었다.
“그런 호칭은 불편하다 말… 좋을 대로 하도록.”
“앉겠습니다.”
“난 이 자리의 주인이 아니니 내게 허락을 구하지 마라.”
후우우우웅…
후우우우우우웅…
후우우우우우우우웅…
실내에 있으나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질 만한 마력 파동이 근처에서 느껴졌다.
“…왔군.”
“변함없이 오만하고 광기가 들어찬 마력이군.”
쿠우우웅…
성채 주변에 무거운 뭔가가 내려앉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으…
곧 기척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만, 기운은 그대로였다.
광오한 자일 것이 분명했다.
그자가 성채 안으로 들어왔다.
“흠… 둘 뿐인가.”
“아자닉이여, 오셨습니까?”
“그래, 뒤에 그 인간은 뭐지?”
“제자입니다.”
“이런, 간식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아자닉이 인간의 모습으로 눈을 부라렸다.
곧, 파충류의 차가운 눈이 그레고리의 제자를 훑었다가 이내 그레고리에게 고정되었다. 제자 쪽은 시선을 마주하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려 덜덜 떨고 있었다.
반면 그레고리는….
스으으으…
차분하게 아자닉과 시선을 마주했다.
“…재밌군. 역시 재밌어.”
아자닉은 여태 그와 시선을 평범하게 마주한 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그레고리를 내심 인정했다.
그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언젠가 네놈의 살코기도 맛보고 싶군. 과연 몸뚱이의 주인만큼 건방진 맛일까 궁금하구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해서 왔다. 한데, 아그라스는 보이지 않는데?”
“저기 오는군.”
저벅…
저벅…
수더분한 차림의 마법사가 의자를 움직여 자리에 앉았다.
“늦었군요.”
“그걸 네놈이 알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구나.”
“몇 가지 조율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이미 첫 번째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급할 것도 없잖습니까?”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다니… 네놈… 벌을 받고 싶으냐?”
“벌이라면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받겠습니다. 그때도 제 벌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말이죠.”
“…아그라스.”
위대한 자 아그라스.
인간의 수명을 초월한 자.
악행을 일삼던 그는 돌연 자취를 감춰 그가 이미 죽은 줄로 아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여전히, 또렷하게.
“먼저, 급한 소집에도 응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사건의 정리부터 시작하죠.”
이들이 급하게 모일 수밖에 없던 이유.
“계획대로 연방은 붕괴했습니다. 하나, 이는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것을 다들 아시겠지요.”
“계획이 어디서 흘러나간 것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막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게 이번 계획이었을 겁니다.”
세 거인의 피가 섞인 신종 마약 홈을 유통해 서리 열병에 감염시킨다. 서리 열병에 걸린 감염자들을 폭사시켜 거대한 마력으로 환원, 그것을 흡수해 세 거인을 부활시킨다.
아그라스는 분명, 중간까지는 성공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감염자들이 예상보다 빨리 폭발의 전조를 맞이했을 땐 일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이 일에 개입했습니다. 서리 열병의 최후를 깔끔하게 봉쇄했죠.”
“정확히 어떤 방법을 사용한 거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서리 열병의 공명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공명에 합류해 흐름을 조작한 느낌? 폭발을 촉진하고 그걸 또 틀어막았습니다. 하… 기가 막힌 방법이죠.”
“감탄할 때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상대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준비 기간을 단 한 수에 틀어막았습니다.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요. 안 그렇습니까?”
“…….”
아자닉은 불쾌했지만 아그라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조차 서리 열병의 폭발을 막을 수 있냐고 물으면 확답할 수 없었다.
“우리의 적들은 이로써 시간을 벌었습니다. 아마도 노리는 것은 의회의 붕괴겠지요.”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집어치워라, 아그라스. 당연히, 대책은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아트로밀을 잔뜩 끌어모았으니까요.”
아그라스가 손을 턱에 괴며 말했다.
“아트로밀 폭탄의 제조를 시작했습니다.”
“폭탄? 연방이 이미 붕괴했는데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이라고.”
“얼어붙은 감염자들의 폭발을 다시 불러올 폭탄입니다.”
“…….”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번 일을 막은 마법사는 감염자들의 공명에 침입해 말도 안 되게 단단한 자물쇠를 매달았습니다. 일반적인 마력 반응으로는 절대로 풀리지 않을 만한 강도입니다.”
“그걸… 폭탄을 이용해 깨부순다?”
“예.”
“…폭탄은 언제 완성되지?”
“확신할 순 없지만 열흘 혹은 스무날 정도 걸리겠군요.”
시간이 끌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자닉이 인상을 쓰자, 아그라스가 그를 달랬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 거인의 직접 부활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뭐? 그게 가능한 것이냐?”
세 거인은 오래된 시대의 왕.
그들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도움을 주겠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제 청을 받아들인 것이겠죠.”
그레고리와 헤키나, 그리고 아자닉이 의문을 표했다.
“새로운 조력자라고?”
“믿을 수 있는 자들이냐?”
아그라스가 조용히 웃은 후 외쳤다.
“들어오시지요.”
스윽…
저벅…
저벅…
남녀 한 쌍이 조용히 다가왔다.
남자 쪽은 검은 갑주를 입은, 창백한 요정이었다.
“음….”
“호….”
심상치 않은 힘.
“영생교에서 나오셨습니다.”
“영생교?”
“불사가 사라진 후 명맥이 끊긴 것 아니었나?”
“그렇다 한들 여전히 강력한 집단임에는 변함이 없지요. 또한, 불사의 영생과 관련된 비밀을 품고 있으니 이번 부활 의식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흑기사가 의자에 앉으려는데, 아자닉이 말은 건넸다.
“그쪽이 아닐 텐데.”
“…….”
“다시 한번 말한다. 그쪽이 아닐 텐데.”
“휘유….”
흑기사의 뒤편에 서 있던 여인이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움찔…
모두 당황할 정도의 빼어난 외모.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진 조각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평가였다.
“그대로 앉혔으면 돌아갈 뻔했어.”
“…못 알아봤기 때문에?”
“상대를 가늠할 줄도 모르는 자들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름은?”
“실로이라고 해.”
실로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그럼에도, 뭔가 불길했다.
거기다 가늠이 안 되는 힘.
강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었다.
뒤룩…
아자닉이 파충류의 눈으로 실로이를 째려보자, 실로이가 히죽 웃었다.
“귀찮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제안은 흥미로웠어. 세 거인을 부활시키려는 거지? 그 녀석들을 부활하게 해서 뭘 어쩌려는 거야?”
“…거기까지 알고 싶은 거냐?”
“뭐, 말 안 해줄 거라면 됐어. 서로 지켜줘야 하는 부분은 있으니까.”
“대답은?”
실로이가 깔깔 웃었다.
“좋아! 세 거인의 부활을 도울게.”
이후에 자잘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의회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흩어졌다.
“스승님, 의회와 손을 잡는다는 게 옳은 일일까요?”
“…그들의 목적은 나의 수단일 뿐. 아마 저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레고리가 떠나고.
“…정녕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인 겁니까, 바브라시여.”
헤카이가 떠나고.
“아트로밀 혈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군요.”
“흥, 내가 널 죽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지.”
“이런, 죽지 않으려면 이유를 더 만들어야 하겠군요. 그런데 역시… 용의 신체는 다르긴 다르군요. 아트로밀이 부작용 없이 스며들 줄이야.”
“네놈의 실험체가 된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지만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구나.”
“혈관이 완성되면… 아자닉께서는 온 땅의 지배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한데, 저 트롤 녀석은 왜 함께하는 거지?”
“그들의 세력은 거대하진 않지만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발두족을 견제하는 용도로는 저만한 자들이 없지요.”
“흥… 뭐, 됐다. 그리고… 실로이란 자 말인데….”
“아! 어떠셨는지요?”
“모르겠다. 녀석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 계획의 일부로 쓰는 정도야 큰 탈은 없겠지요. 후에 가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자닉께서 큰 힘을 얻게 된다면 말이지요.”
아자닉과 아그라스가 떠났다.
“탈리아드.”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들키면 어쩌려고?”
“…실로이. 어쩔 생각이냐? 어째서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지?”
“아하핫! 서로 이용하는 거지. 저들도 마찬가지일걸? 각자가 품고 있는 이상과 계획이 다르다는 걸 보자마자 알았어.”
“세 거인… 위험한 자들이다.”
“아, 너는 봤다고 했지. 어땠어?”
“최악의 폭군이었지. 나와는 접점이 없었지만. 모든 종족을 노예로 부렸다.”
“세 거인이든 뭐든 나와는 크게 관계없어.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 가장 큰 계획에 모두 잡아먹히겠지.”
“그 가장 큰 계획이 네 계획이냐?”
“글쎄? 그때 가봐야 알겠지?”
“…….”
흑기사가 물었다.
“네가 말한 사신들은?”
“찾았어. 둘.”
마지막으로 흑기사와 실로이가 떠났다.
* * *
강설이 아그라스라는 이름을 듣고 감정을 통제하려 애썼다.
“강설, 왜 그래?”
“아니… 아니야.”
그의 안에 있는 야차가, 아그라스라는 이름에 분노를 표출했다. 강설은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의회의 계획에 대해 말해줄게.”
지안이 내뱉은 의회의 계획은 초안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놈들은 하나의 수단으로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이뤄낼 생각이야.”
서리 역병의 매개인 홈을 중심으로 퍼져나갈 막대한 영향을 듣게 된 강설 일행은 충격에 빠졌다.
“…늦지 않게 우르에게 전해야 해.”
“어? 어어….”
“우선, 그것부터야.”
강설이 신디오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적은 천천히 살펴보고 먼저 강설과 소식을 전달하고 올게요.”
“어?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강설과 신디오가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올라갔다.
강설은 쪽지에 지안이 말한 정보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천천히 해요. …음?”
신디오가 하늘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벌써 답장이 왔나 보네요.”
새가 신디오의 손에 앉아 한쪽 발을 들었다.
강설이 쪽지를 풀어 펼쳤다.
쪽지의 첫 문장은, 강설의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 우르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