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65
제464화
– 우르가 죽었다.
그 한 문장이 압축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은 강설을 얼어붙게 했다.
“…뭐?”
소식을 전한 주체가 쟈마드라는 것은 문체와 사용한 단어들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간결하다 못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
그에게서 전달받은 내용은 수도 세르비온을 비롯한 연방 전체가 얼어붙게 된 사연이 주였다.
감염자들의 폭증, 서리 열병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일으켰는지. 그리고… 우르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까지.
“강설… 괜찮아요? 무슨 내용이길래….”
강설은 신디오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 망설이면 다음엔 더 힘겹게 말을 꺼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그가 신디오에게 연방에 일어난 사건을 전달했다.
“…거짓말이죠?”
“사실일 겁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모두, 모두 죽었다고요?”
“…….”
신디오는 충격을 받은 듯 휘청이다 근처의 유적 잔해에 걸터앉았다.
연방의 소멸은 신디오에게 큰 의미였다. 그녀에게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는 통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녀는, 또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싫어… 싫다고 이제는….”
강설에게나 신디오에게나 떠나보낸 이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디오는 그러했지만, 강설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우르가 정말 죽은 걸까?’
세상에서 우르의 죽음을 가장 믿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강설일 것이다.
우르가 가진 힘, 잠재력, 그리고 방대한 지식과 세월을 관통하는 지혜까지.
‘확실히 거리가 벌어져서 그런지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쟈마드도 마찬가지.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오고 가는 쪽지를 통해서일 뿐이다.
“…어?”
신디오가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더….”
푸드득…
푸드드드득…
처음 보는 전령 한 마리가 강설의 어깨에 앉았다.
스윽…
“음?”
발에 매달린 쪽지를 풀자마자 스르르 사라지는 전령.
강설은 황급히 쪽지를 폈다.
– 강설, 지금쯤이면 연방의 소식을 들었겠지.
우르에게서 온 편지였다.
– 연방의 상황은 솔직히 최악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결과적으로, 난 죽을 거다.
강설이 이를 악물었다.
그조차 죽음을 언급했다.
– 그러니 이번 일에 네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이걸로 끝이다. 뭐, 이제 남은 건 네 몫이다. 힘을 모아,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라.
‘…우르.’
– 그럼 다음 시대에 만나자, 강설. 후에 찾아올 만남을 고대하고 있으마.
강설이 우르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쪽지를 움켜쥐었다.
‘…죽은 게 아니야.’
강설의 눈빛이 변했다.
‘죽지 않았어.’
그가 최후에 남긴 말.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라.
강설은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 * *
“뭐? 연방이 궤멸했다고?”
“엥? 정말이야?”
“정말입니까?”
소식을 들은 일행 모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대한 땅이 그대로 얼어붙었다니.
그리고 우르가 죽었다는 소식까지 전하자…
“카핫! 그 녀석답네.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갔어. 그래서, 언제 돌아온대?”
“…응?”
“언제 올지는 말 안 했어?”
“아, 응.”
“때가 되면 알아서 슬그머니 곁에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카렌과 카루나의 반응은 우르가 마치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가벼웠다.
그들도 믿지 않는 것이다.
아니, 알카트론에서 확인한 우르의 힘은 믿음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종류의 힘이었다.
꼭, 경외와도 같은 힘.
그렇기에 죽지 않았다.
“이봐, 신디오. 괜찮은 거야?”
“…….”
지안은 걱정하며 신디오의 곁에서 계속해서 말을 붙여주었다.
“원정대는 어쩌지?”
“…해산이 마땅하겠죠.”
“우리는?”
“우리는….”
신디오가 지안을 잠시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나? 내 의견을 묻는 거야?”
“네, 당신이요. 일이 이렇게 되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닌가요?”
강설이 신디오를 만류했다.
“신디오.”
“당신도… 그들과 한패였잖아요! 그들을 도와….”
“응, 맞아. 한때는 연방 따위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지안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야. 절망보다 강한 건 아주 얄팍한 희망이니까. 놈들을 막을 약간의 전력이 있는 지금은, 아주 달라.”
“이 원정을 계속하겠다는 건가요?”
“난 계속 갈 거야. 신디오, 넌?”
“…….”
“돌아갈 곳이 없겠지. 먼저 외톨이가 된 내가 지내보니까 여기도 꽤 안락한 편이야. 어때?”
신디오가 정색하며 말했다.
“정말로, 최악이에요. 당신.”
“하하하!”
“당신이 또 어떤 못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니 계속해서 당신을 지켜보겠어요.”
일행은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눌 얘기는 세 거인과 의회의 계획을 저지하는 방법이다.
“강설, 한 가지 알아낸 게 있어.”
“뭐? 정말이야?”
지안은 콘지에게 바톤을 넘겼다.
“너희가 모은 조각! 하나의 고리였어.”
“고리?”
“응. 4조각으로 쪼개진 고리. 저길 봐!”
꽤 잘 보이는 위치에 새겨진 벽화.
세 거인과 대적하는 작은 자들이 동그란 고리를 앞으로 내세우고 또 그 고리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그 밑에 새겨진 글을 콘지와 강설이 차례차례 읽었다.
“세 거인은 폭군이었다. 거인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발아래에 두고 짓밟았다. 이에 기회를 노리던 자들이 세 거인을 쓰러트리기 위해 열망의 고리를 벼려냈다.”
“열망의 고리는 세 거인을 깊디깊은 수렁에 봉인했으며 주인을 잃은 다른 거인들을 흩어져 죽게 했다.”
지안이 반쪽짜리 고리를 들고 멍하니 섰다.
“이게 그만한 힘이 있다고?”
“내용이 더 있어.”
“열망의 고리는 사명을 다하자 네 조각으로 쪼개어졌다. 믿을 수 있는 자들에게 나누어진 고리는 언젠가 다시 환란이 찾아오면 그 소임을 다할 것이니.”
지안이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세 거인을 숭배하는 전당이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의 재림을 경고하고자 지어진 건가?”
“뭐 아무튼, 이러면 정해진 건가?”
강설이 말했다.
“열망의 고리의 나머지 조각을 찾는다. 그리고… 의회를 부순다.”
콘지가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열망의 고리를 찾는 것까지는 나도 도울게! 관심이 있거든.”
“…돕겠다고?”
“응.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지안이 끄덕였다.
“한 사람이라도 전력이 느는 건 좋지. 좋아! 환영하지!”
“…뭘 또 대장인 것처럼 행동해요.”
신디오가 변함없이 발랄한 지안의 행동을 보며 핀잔을 주었다.
연방이 얼어붙어도, 모든 건 원래대로다.
유적을 떠나는 일행.
지안이 기대어 서 있던 문 외부의 비석. 그가 떠나자 기대어 선 자국만큼의 먼지가 사라졌다.
– 문을 열기 위해선 거인에 필적….
거대한 문의 귀퉁이에 세워진 비석. 비석의 먼지는 사라졌지만, 누구도 그곳에 숨겨진 구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끝끝내 알지 못했다.
* * *
그들이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은 비통치 구역의 대부족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부족.
발두족의 본거지였다.
그들은 대부족답게 협곡을 낀 큰 산에 터를 잡았는데 산의 이름은 조룬 산.
그리고… 끼고 있는 협곡의 이름은 전설과 함께 언급되는 날개 협곡이었다.
판데아에서 가장 크고 긴 협곡.
규모에 더해 날개 협곡이 널리 알려진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날개 협곡의 바람은, 비행하기 쉽지 않았다. 기이한 마력을 품은 바람은 상승을 억누르고 조금만 방심하면 비행체를 바닥으로 추락하게 했다.
비행에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개 협곡에서의 비행에 성공하면, 협곡을 빠져나오는 즉시 마력의 바람이 익막(翼膜)에 따라붙게 된다.
협곡을 벗어나는 순간, 폭발적인 가속이 붙어 활동 범위가 훨씬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발두족은 어렸을 때부터 날개 협곡에서 교감한 원시 비룡과 함께 비행을 익힌다. 워낙 괴이한 환경 덕분에 발두족의 비행술은 용보다도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모두 그것이 과장된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저 부풀리기 좋아하는 자들의 허세일 뿐이라고.
그러나, 과거에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천공 용 아자닉이 휘하의 세력과 함께 영향력을 떨치기 위해 날개 협곡에 자리 잡았다.
당연하게도 천공 용 세력과 발두족과의 충돌이 일어났고, 많은 피가 흘렀다.
발두족의 패배가 점쳐졌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발두족의 대전사 카-잔이 그의 원시 비룡 막투스를 타고 천공 용 아자닉과 일전을 벌였다.
그날, 아자닉은 날개 달린 생명체로서 최악의 굴욕인 최초의 추락을 경험했다.
전설적인 날개 협곡의 혈투 이후, 아자닉은 발두족의 영역을 벗어나 근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카-잔은 발두의 대전사를 넘어 용 군주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가장 최근의, 북부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었다.
그리고 지금, 강설 일행은 발두족의 본거지, 조룬 산의 자락에 와 있었다.
“마주치자마자 비룡으로 쪼아대면 어떡하지?”
“혹시 제가 비룡에게 물려가면 구하지 마세요.”
“휴, 하마터면 구할 뻔했는데 미리 경고해 줘서 고마워.”
퍼억-!
“으윽….”
“정말로 구하러 오지 않을 거예요?”
“아니지! 구하지! 강설이 구할 거야!”
“이….”
“그만, 발두족의 정찰병이야.”
얼굴 반쪽에 비룡 문신.
저런 문신은 발두족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공격해오면 어쩌죠?”
“발두족은 자신들을 긍지 높은 전사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생명을 빼앗지 않습니다.”
과연, 정찰병이 차분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연방에서 왔습니다. 발두족과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연방이라… 생존자들인가요.”
“윽….”
“하하….”
신디오와 지안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제 연방은 사라졌고, 그곳 출신에게는 생존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아마 그들이 죽는 날까지, 시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계속 듣게 될 말이다.
“부족이 어수선한데… 아마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수선하다고요?”
“…소식을 모르는 걸 보니 불순한 의도로 찾아오신 건 아닌 듯하군요. 안내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지만, 뭔가 꺼림칙한 느낌.
사박…
사박…
산을 한참 오르자, 만년설이 눈에 들어왔다. 조룬 산의 정상은 늘 눈이 쌓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우와아아….”
“허억… 허억… 무슨 산이 이렇게 높은 거야….”
“이제까지 올라본 산 중에 제일 높네요.”
“저기 보이는 게 날개 협곡인가?”
“…대단하네요.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려요.”
“발두족은 어떻게 저런 곳을 날아다닌다는 거야?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쉿, 듣겠어요.”
정찰병이 말했다.
“들었습니다.”
“헙….”
“조, 조용히 하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까요. 자, 저기 계시는군요.”
“예?”
“대족장께서 그대들과의 만남을 기다리십니다.”
“잠… 벌써요?”
부락에 도착하기도 전, 발두의 대족장이 그들을 마중 나왔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확실해. 발두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군.’
그건 강설 일행에게 행운일까 불행일까. 발두의 대족장과 대화를 나눠보면 알게 될 것이다.
등을 돌리고 협곡을 바라보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다.
“저 사람이 대족장….”
“크다… 발두족은 저렇게 다 큰 건가?”
대족장이 등진 채로 말했다.
“지금 이 시기에 연방에서 손님이라… 공교롭다. 참으로….”
강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발두의 대족장이시여, 위대한 날개여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음? 말솜씨가 제법이구나. 고개를 들라.”
“그럼….”
스윽…
고개를 들자, 대족장이 뒤돌아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강설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
“나의 이름은 카-부.”
카-부.
익숙한 이름.
– 아버지! 저도 언젠간 아버지처럼 위대한 전사가 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설마.’
그 어렸던 아이다.
카-잔과 첫 비행을 함께했던, 그 아이.
“위대한 용 군주 카-잔의 후손이자 일족의 대전사, 그리고 발두족의 대족장이다.”
아이는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