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7
제46화
공간은 침묵에 휩싸였다.
비록 강설은 안개의 장막 너머 존재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그들끼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쟈넷이 와 있고, 누가 쟈넷인지.
방금 강설에게 물건을 보여준 상인이 말했다.
“그러길래 내가 말했잖나요? 어차피 자존심들만 꺾일 거라고.”
뭔가 사정이 있는 것처럼 다른 상인들이 움찔했다.
“수작을 부렸구나, 쟈넷.”
“수작? 호호, 정말 노친네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뭐야?”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으로 내 고객을 홀리려고 했다니, 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훌륭한 상인인 저는 고객님의 시간을 낭비한 것만으로도 죄악감에 몸부림이 쳐지네요.”
“이… 이런 망할…. 어떻게 쟈넷인지 안 거지?”
이제는 쟈넷이 분명해진 상인이 한탄하는 상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온 거고, 난 물건을 팔아드리려고 온 거고. 이 차이를 모르겠나요?”
“무슨 차이지?”
강설은 그 차이를 알았다.
쟈넷의 물건을 보는 순간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으니까.
‘거래를 원하는 물건이 필요한 물건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거지.’
쟈넷이 아닌 다른 이들의 물건은 오직 강설의 광기를 노린 듯한 묵직한 값어치의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쟈넷의 물건은 강설이 이 순간 가장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었다.
이러니 쟈넷이 단순히 을의 입장이 아닌 대등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쟈넷이 다른 상인들에게 천둥 같은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모르면 꺼져! 이 삼류들아.”
“…쟈넷, 돌아가서 보자고.”
“얼마든지. 그럼, 있다 봐. 난 중요한 거래가 있어서.”
“크윽….”
“그건 그렇고 아직도 거래량이 그것밖에 안 되면 좀 위험한 거 아닐까 몰라….”
“그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가자!”
다른 상인들이 커다란 구멍으로 줄줄이 떠났다.
서서히 주변의 안개가 걷혔다. 그렇다고 밝아진 것은 아니었다.
붉은 배경과 악귀 가면.
쟈넷을 상징하는 것들이 다시 주변을 메웠다.
“휴, 못 알아봤으면 섭섭할 뻔했어요.”
“물건을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역시! 안목이 있다니까….”
강설은 쟈넷이 내민 물건들을 확인했다.
[피해망상의 젤라틴]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특수 능력 : 휘발성이 강한 기운을 응고해 말랑한 젤리 형태로 굳힐 수 있다.
이건 강설이 원했던 피해망상의 젤라틴이었고.
[독요초의 분말]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특수 능력 : 물에 개어 마시면 특별한 저항력이 없는 이상 5초 안에 절명한다. 단, 독요초의 독보다 강한 독에 중독된 상태라면 독요초의 독이 그 독을 잡아먹는다.
이건 그림자 독의 해독제에 꼭 필요한 핵심 재료였다.
두 물건 모두 강설이 가장 필요로 하던 물건이었다.
“어떻게 안 겁니까?”
“뭐를요? 아! 혹시 그 질문은 이 물건이 스노우맨에게 필요한지 어떻게 안 거냐고 묻는 건가요?”
“잘 아시네요.”
“들으면 실망할 텐데….”
쟈넷은 강설의 소지품을 가리켰다.
“그 검은 꽃.”
“아!”
“흐흐… 맞아요. 그걸 넘긴 게 저라는 걸 잊었나요?”
검은 꽃은 그냥 사용해도 되지만, 가공을 거치면 한차례 엄청난 진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 가공 방법을 쟈넷이 모를 리 없었고.
“단, 제가 검은 꽃의 비밀을 아는 것과 세계의 병합에 휩쓸렸을 뿐인 평범한 인간이 이 비밀을 아는 건 매우 다른 문제죠.”
“…….”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군요.”
쟈넷은 단 한 수로 강설의 많은 부분을 파악했다.
검은 꽃을 넘김으로써 다음 거래의 물꼬를 터놓았고, 실제로 그 거래를 성사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설의 특별한 점을 눈치챘다.
강설은 긴장한 눈으로 쟈넷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반응과는 달리 쟈넷은 귀를 후빈 손가락을 후 불며 말했다.
“뭐, 병합이 일어나면 이런저런 사정들이 생기니까. 당신도 그런 부류겠죠. 안심하세요! 저 쟈넷은 고객의 치부를 들추는 파렴치한 상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악귀 가면이 들썩였다.
“전 물건만 팔면 되니까요.”
“그런데 독요초는 또 어떻게 알고?”
“아! 최근 행보를 훔쳐봤거든요.”
“가능한 겁니까?”
“불가능할 건 또 뭐라고? 아무튼, 둘이 합쳐 3,000 광기예요.”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놀란 강설이 쟈넷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거래 성사!”
강설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다가 뭔가를 깨닫고 쟈넷에게 물었다.
“…더 원하는 게 있는 겁니까?”
“설마 저 거상 쟈넷이 이런 물건만 준비했을까요? 시간만 되신다면야….”
“한번 보도록 하죠.”
“그럼, 거래의 마술사 이 쟈넷이 고객님께 가장 필요한 물건이 뭔지 맞춰볼까요?”
“…….”
강설이 심드렁한 얼굴로 쟈넷을 쳐다보고 있자, 쟈넷이 말했다.
“바지.”
“어?”
“맞췄죠? 어쩐지 다른 건 다 멀쩡한데 그쪽에서 구린내가 나더라니….”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실력 있는 장인을 만나지 못했나 봐요? 하긴, 아직 새로운 세계에 적응이나 하면 다행인가…. 자! 아무튼, 이 쟈넷이 이 물건을 선보일 날이 올 줄이야.”
꽤 성대하게 자신의 물건을 소개한 자넷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분명 소매에 들어갈 만한 크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 딸려 올라왔다.
“자! 확인해 보세요.”
“그럼.”
[검은 망령의 수의]
등급 : 광기
전용 직업 : 그림자 소환사
적정 레벨 : 18 – 25
방어력 : 95
내구력 : 100/100
무게 : 0.3kg
타락한 성수 알케트라의 거미줄로 지어낸 바지. 외관상으로는 특별할 게 없지만, 그림자를 다루는 알케트라의 능력이 담겨 있다.
기본 능력 : 지혜 + 12 정신력 + 7 체력 + 5
특수 능력 : 그림자 소환수의 능력치가 10% 증가, 그림자 소환수의 능력이 치명타로 작용할 확률 5% 증가.
“…‘광기’ 등급?”
“우리를 거친 물건은 일정 등급 이상부터는 광기로 표시돼요.”
희귀까지는 정상적으로 표시되었으니 이 물건은 아마도 보물 등급인 것 같았다.
강설은 검은빛의 하늘하늘한 바지를 손에 올려놓은 채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미, 이 물건의 옵션은 강설에게 차고 넘쳤다.
문제는 가격이다.
강설이 쟈넷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쟈넷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후 사정 고려해서 딱 1만 광기에 넘길게요.”
“이번엔 조건 같은 건 걸지 않는 겁니까?”
“적당한 가격이니까요. 그리고 이젠 당신도 알게 됐을걸요?”
“뭘? 아….”
“내가 필요하잖아요?”
쟈넷의 말이 맞았다. 다른 광기 상인들에 비해 쟈넷은 너무 뛰어났다.
“다음에도 저자들과 같이 오는 겁니까?”
“글쎄요, 맞을 수도 아닐 수도?”
“궁금한 게 생겼는데 당신들은 광기로 무엇을 하려는 거죠?”
“광기는 우리의 전부예요. 짐작 가지 않나요? 한때나마 당신의 신들이었던 자들도 광기를 위해 당신들을 버렸….”
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강설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서늘하게 변했다.
쟈넷은 뜨끔한 눈치로 강설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 그리고 초대장을 잊을 뻔했네요. 여기, 다음에도 즐거운 거래가 되기를! 죽지 말아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아니면 그런 것은 초월한 존재인지도 모르는 쟈넷. 그런 쟈넷에게 강설에 대한 정이 생긴 것일까.
“애써 얻은 거래처 잃기는 싫으니까요.”
그건 아니었다.
[광기의 초대장을 획득했습니다.]
[검은 망령의 수의를 획득했습니다.]
[피해망상의 젤라틴을 획득했습니다.]
[독요초의 분말을 획득했습니다.]
* * *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강설은 일어나자마자 경매장에 들러 해독제의 부수 재료들을 구매하고는 별채로 되돌아왔다.
그가 별채로 되돌아온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뜻밖에도 주방이었다.
“해독제부터 시작할까.”
해독제가 쓰일지 안 쓰일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분말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값어치가 높을 것이다.
해독제 제조에 복잡한 가공 처리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물과 함께 정해진 약초들과 독요초의 분말을 넣고 끓여내기만 하면 되었다.
부그르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큼털털한 냄새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별채에 독약인지 해독제인지 모를 지독한 냄새가 퍼져 두통을 유발했다.
“콜록… 콜록….”
– 죽지 마, 스노우맨!
– 너 죽으면 볼 놈이 없다! 버텨!
– 오히려 휴식 지역에서 죽으면 레전드긴 할 듯 ㅋㅋㅋ
반나절이 지나서야 거무스름한 액체가 완성되었다.
쪼로로로로…
강설은 거대한 냄비에 끓인 그 액체 중 일부를 아주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았고 그것을 소지품에 챙겼다.
‘해독제는 끝, 그리고 이 원액은 당분간 이 상태로 둬야 할 거고….’
해독제를 만드는 과정이 끝났으니, 이제는 검은 꽃만 해결하면 되었다.
강설은 그림자 꽃보다 주로 검은 꽃으로 불리는 물건을 꺼냈다.
[그림자 꽃]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플레게리아에서 자생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평생을 떠돌아도 보기 힘든 꽃.
특수 능력 : 단 한 번, 격차가 나는 상대에게 강제로 그림자 소환을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소환사의 레벨은 10 상승한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림자 꽃을 사용하더라도 상대와의 레벨 차이가 10 이하로 좁혀지지 않을 땐, 그림자 소환에 실패한다.
“이대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긴 한데….”
강설은 꽃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것을 별채의 텃밭에 심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어떤 가루를 꺼내 그 위에 솔솔 뿌렸다.
“잘 자라라.”
강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별채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같은 시각.
텃밭으로 나온 강설은 아이의 키만큼 성장한 꽃을 보고 감탄했다.
“여기까지는 제대로 됐어.”
어제 꽃 위로 뿌린 가루는 그리즈의 연구소에서 얻었던 보상이었다.
[온전한 생명력 가루]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특수 능력 : 생명력을 북돋는 가루. 단, 과대 성장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역시, 온전한 생명력 가루야! 성능 확실하구만!
– 이렇게 커져도 되는 거야? ㄷㄷ
강설은 커다랗게 변한 그림자 꽃을 뽑았다.
[과대 성장한 그림자 꽃]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플레게리아에서 자생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평생을 떠돌아도 보기 힘든 꽃.
특수 능력 : 단 한 번, 격차가 나는 상대에게 강제로 그림자 소환을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소환사의 레벨은 15 상승한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림자 꽃을 사용하더라도 상대와의 레벨 차이가 15 이하로 좁혀지지 않을 땐, 그림자 소환에 실패한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그림자 꽃의 내용.
원래라면 여기서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광기 상인을 통해 다른 재료까지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모인 재료들은 충분히 다음 공정을 진행해도 될 만한 분량이었고.
강설은 그로부터 이틀 동안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시궁창 냄새가 나는 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끔찍한 모습입니다. 요리는 실패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감이 깨어납니다.]
[새로운 식재를 접했을 시 조리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요리 실력이 약간 늡니다.]
젤리를 한 입 베어 문 강설은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 이건 아니야…
– 여러분들은 지금, 지옥을 형상화한 작품을 보고 계십니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심각하게 타버린 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끔찍한 모습입니다. 요리는 실패했습니다.]
“또야?”
– 놀라운 건, 이 조리법엔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럼 왜 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
– 요리야, 연금술이야? ㅋㅋㅋㅋ
강설이 이번에도 젤리를 한 번 베어 물었다.
먹는 순간 욕지기가 튀어나올 만큼 끔찍한 맛이었다.
“으윽….”
[업적 ‘차라리 흙을 먹지’를 달성합니다.]
[칭호 「괴식가」를 얻습니다.]
괴식가 칭호는 다른 옵션은 일절 없이, 실패한 요리를 먹어도 능력치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옵션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감지덕지.
“오늘 안으로는 끝을 본다.”
강설은 구슬땀을 흘리며 요리에 열중했다.
그닥 복잡한 요리 과정이 아닌데도 실패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만큼, 완성물의 수준이 높다는 것일 뿐.
강설은 잠도 잊은 채로 계속해서 젤리를 만들었다. 눈이 몽롱해지고, 꾸벅꾸벅 졸음도 왔다. 그런데도 손은 쉬지 않고 뭔가를 옮기고 매만졌다.
– 이제 그만, 자자…
– 포기하는 게 어떨까? 요리에는 재능이 없어 보여…
– 무려, 간파와 함께 선택한 재능인데 말이야 ㅠㅠ
강설이 가진 재료도 동이 날 때쯤이었다.
‘이제 이걸로 끝인가?’
‘광기가 아깝다.’ 혹은 ‘차라리 다른 보상으로 받을걸.’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세상 모든 일의 대부분은 결과론적인 것을.
성공하면 잘한 것이고 실패하면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강설이 손을 움직이는데,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모든 작업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움직였다.
강설은 이것을 신호로 받아들였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내어주듯이 뭔가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흐린 날의 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좋은 향기가 납니다. 요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정신력이 영구적으로 3 상승합니다.]
[영감이 깨어납니다.]
[새로운 식재를 접했을 시 조리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요리 실력이 약간 늡니다.]
강설의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