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75
제474화
“데키와 케시이가 와주었나….”
“발두는 날개 협곡에 머물 거야.”
비통치 구역의 세 부족이 차례대로 합류했다.
비룡을 조련하는 발두.
진의 힘을 사용하는 케시이.
영령의 힘을 받아들인 데키까지.
“네가 해낸 거다. 갈라져 있던 세 부족이 힘을 모은 거니까. 의회도 이 힘은 무시할 수 없어.”
“…그래도 아직 상대에 비하면 부족할 거야.”
강설은 상황을 낙관하지 않았다. 헤카이의 말처럼 세 부족의 힘을 모으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열세였다.
그들은 지금, 잿가루 성채 인근에 와 있었다. 곧, 회합이 시작된다.
“보여?”
“음… 하나같이 단단해 보여.”
의회가 끌어모은 병력은 한눈에 보아도 막강했다.
헤카이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의회 직속 수하들은 아그라스가 따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진즉 반 토막이 난 것 같고 그레고리의 세력은 애초에 소수 정예야.”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높새 날개는 우리와 함께하니… 위험한 건 세 거인의 부활과 아자닉의 병력뿐인가. …영생교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군.”
“제길… 아자닉이 생각보다 병력을 많이 끌고 왔어.”
“…어쩔 수 없지. 반대급부로 발두의 비룡을 되찾는 건 수월하게 진행될 거야.”
아자닉의 병력은 날개 협곡이든 잿가루 성채든 따라붙을 것이고 어느 쪽에 무게를 쏟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척 보기에는, 잿가루 성채 쪽의 인원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패배 조건은 간단해. 세 거인이 부활하면 끝장이다. 우리는 세 거인을 막을 만한 강자가 없어.”
“…맞아.”
세 거인의 부활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따라붙는 조건 한 가지.
“아자닉의 드러나지 않은 무위도 문제겠지.”
“음….”
강설은 일전에 아자닉과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땐, 잠꾸러기의 권능으로 무사히 그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확실히 말해 제대로 붙지는 못했다.
아마 제대로 붙었다면 당시의 수준으론 초살당했을 것이다.
“그가 힘을 보인지 너무 오래됐어. 어쩌면….”
“…어쩌면?”
“이건 가정일 뿐이야. 아자닉과 아그라스 사이에 뭔가 거래가 있는 건 아닐까 싶군.”
“거래? 어째서?”
“회합 당시에 느꼈던 건데, 아자닉의 힘은 그레고리나 아그라스보다도 위에 있었어. 그가 힘을 억눌렀을 게 분명한데도 그 정도였지. 그런 강자가 굳이 이 일에 가담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세 거인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충분히 고려해볼 문제였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세 거인이 부활하면 모든 게 끝장이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부활 의식의 성패야.”
강설의 말에 헤카이가 동의하며 병력 배치 현황을 말했다.
“케시이와 데키에게 성채 주변에 매복을 지시했어. 일족의 장로들이 술법을 펼쳐 연막을 쳐두었으니 아자닉이라 해도 높새 날개의 술법을 꿰뚫어 볼 순 없을 거야.”
강설이 집중하여 케시이와 데키의 기운을 잡아내려 했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인데.”
“의회 놈들이 괜히 우리에게 접근했겠어?”
“남은 건….”
“그래, 열망의 고리뿐이야. 저 남자에게 마지막까지 확인한 것 맞지?”
강설이 지안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래, 성채에서 마지막 조각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니… 아마도 아그라스겠지.”
“빼앗을 수 있을까?”
“아그라스의 신변만 손에 넣을 수 있으면… 가능할 거야.”
“만일의 경우엔 아자닉이 곧장 나설 수 있어.”
“상관없어, 쉽게 당하진 않아.”
“푸하하하! 그런 자신감이라니.”
강설은 지금보다 훨씬 나약했을 때도 아자닉에게 한 방 먹인 전력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를 두려워할 이유 따위, 조금도 없었다.
헤카이와 강설이 계획의 부분 부분을 점검하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일행도 일전에 앞서 각오를 다졌다.
“콘지, 들어가면 숨소리도 내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 지금 잔뜩 흥분한 상태니까. 내 눈으로 이 싸움을 끝까지 확인할 거야.”
신디오가 콘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정작 긴장한 것은 신디오였다.
그녀는 심장에 손을 올리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떨림이 멎질 않아요.”
“응?”
“남이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코 파지 말아요!”
“아, 미안. 못 들었어.”
지안이 신디오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긴장이라는 걸 몰라요?”
“긴장? 준비한 대로만 하면 돼. 뭐가 걱정이야?”
“승부는 알 수 없다잖아요.”
“나는 큰 무대에 강하다고. 원래 광대들은 그래.”
“광대라니….”
초월자들의 싸움.
그 사이에 낀 지안과 신디오가 활약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중요한 건 결과야.”
“결과요?”
“신디오는 어떤 미래를 그려?”
“그야… 연방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겠죠.”
“그건 미래가 아니라 망상이지.”
“너무하잖아요!”
“말했잖아. 이미 연방은 틀렸어. 산 자가 죽은 자보다 적어. 전부 얼어붙고 전부 중독되어 죽었지. 내가 말하는 미래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난 다음의 미래야. 그래야 나아갈 수 있거든. 연방은 이미 없어졌어. 자, 네가 바라는 미래는 뭘까?”
지안의 말이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신디오가 망설이며 말했다.
“전….”
연방은 이미 사라진 과거.
미래를 그려야 했다.
신디오는 자신에게 무엇이 남았는가를 곰곰이 떠올렸다.
이 여정이, 텅 비어버린 자신에게 무언가를 채우지는 않았는가.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안과는 달리,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동료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이 싸움을,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개인적인 소망보다도 큰 가치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인간의 존속 혹은 멸망이라든지, 끝끝내 유지되어야 하는 평화라든지.
그러나 그것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자들에 대한 복수?
그것조차도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선명한 색을 가진 건 단 하나.
희망일 뿐이다.
“지안, 당신은 정말로 나쁜 사람일까요?”
“말도 마. 얼마나 나쁜 놈인데. 내 손에 죽은 녀석들이 꿈에 나올 때마다 다들 줄을 길게 선다고.”
“연방이 사라진 이상… 당신의 악행을 평가할 사람은 이제 나뿐이에요. 모두 죽었으니까요. 원정대는 해체됐고, 우리는 더 큰 싸움을 앞뒀어요.”
신디오는 겁이 났다.
그래, 겁이 난 거다.
그러니까 주변을 의지해야 한다.
“내가 당신을 용서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비겁하지만, 용서하기로 했다. 정의감은 이제 흐릿해졌기에. 이 또한 인간이다.
“당신은 모든 일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어때요?”
“신디오.”
“나와 함께, 다시 새로운….”
꾸욱…
지안이 신디오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힘을 불어넣으려는 의도 같았다.
“그러지 마.”
“…그렇죠? 비겁하죠?”
“응. 뭐… 일이 끝나면 조그마한 감옥에 갇혀서 여생을 보내도 나쁘진 않겠지. 날 누가 가둬줄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제가 할게요.”
신디오가 웃었다.
“감옥이야 뭐, 뚝딱 지으면 되지 않겠어요?”
“하긴, 마법사였지?”
그녀가 팔을 구부려 알통을 드러냈다.
“보기보다 힘도 세요.”
“하하하! 맞아, 내가 직접 봤어.”
“남쪽은 어때요?”
“더운 건 싫은데….”
“이것저것 바라는 건 많네요!”
“그래서, 신디오의 바람은 정한 거야?”
“이곳에 있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꽤나, 선명한 바람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원정대뿐이었다.
“…그거, 꽤 괜찮네.”
지안과 신디오가 침묵할 무렵, 헤카이가 다가왔다.
“시간이 됐다. 성채로 향한다.”
끄덕…
일행은 구름 주술로 몸을 휘감아 헤카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투쟁의 시대의 상징이었던 잿가루 성채로 향했다.
* * *
저벅…
저벅…
“저기들 오시는군요.”
잿가루 성채는 헤카이가 이전에 들렀던 당시와는 달리, 꽤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가 앉았던 탁자는 온데간데없고 의회는 서로를 경계하며 떨어져 있었다.
아자닉, 그레고리, 아그라스.
그리고 영생교의 흑기사.
성채 안은 온통 정보로 가득했다.
아자닉의 용 병력은 천장과 기둥을 점하고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고 영생교의 인물들은 흑기사가 고작이고 나머지는 전부 의식을 진행할 교도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헤카이. 오늘은 딸린 식구들이 많아 보이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내 아우, 헤쿰이다. 나머진 호위고.”
“흐음… 뭐 좋습니다. 편하신 대로.”
헤카이가 물었다.
강설도 언질을 받긴 했지만, 정체를 모르는 인물에 대해.
“실로이는 오지 않았나?”
“아, 실로이. 대답은 저기 무뚝뚝한 분께 들으시지요.”
거대한 부활 진.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진에는 알 수 없는 도료가 뿌려져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저 진으로 세 거인이 몽땅 튀어나온다 해도 납득할 만한 크기였다.
“실로이는 오지 않았다.”
“어째서?”
“그걸 말해야 하나? 의식과는 관련 없다.”
“음….”
강설과 카루나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흑기사의 목소리는 카루나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일전에 한 번 경험했던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응은 어렵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일행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바로 모두를 아우러 보는 위치에 있는 아자닉이었다.
그 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들 노력했다.
“흥… 무슨 꿍꿍이든, 너희가 약속한 것은 해내야 할 것이니. 나는 시간 낭비를 가장 싫어한다.”
아자닉의 말에 흑기사도 지지 않았다.
“약속한 만큼은 해낸다. 걱정하지 마라.”
누가 감히 천공 용 아자닉에게 대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흑기사는 더한 존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음.”
흑기사의 당찬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자닉은 굳이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모두 침묵했다.
세 거인의 부활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이 균형이 되었다.
후두둑…
후두두둑…
영생교의 교인들이 문양이 새겨진 뼈를 잔뜩 가져와 진에 얹었다.
“무슨 방법인가 했더니, 그냥 산 제물을 바치는 거였군요.”
아그라스의 산 제물이라는 말에 뼈를 자세히 관찰했더니, 뼈에서 신음 같은 게 흘러나왔다.
아마도, 살려줘나 괴로워 같은.
“다르다. 네 놈들의 엉터리 부활 의식보다는 훨씬 복잡할 거고.”
“푸흐흐… 꽤 독한 혀네요.”
아자닉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는군.”
“큭큭큭… 참으십시오, 천공 용이시여. 서로에게 득이 될 만한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저 부활 의식은 꽤 그럴듯합니다.”
흑기사가 부연했다.
“연방이 소멸하며 많은 생명이 흩어졌다. 굳이 마력이 아니더라도 생명 그 자체에는 힘이 있으니, 세 거인의 부활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당신이 고안한 건가요?”
“…실로이다.”
“흐음….”
헤카이와 강설이 눈빛 교환을 했다.
아직, 아직이다.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분명히 틈이 있을 것이다.
영생교의 교인들이 등장해 진의 가장자리에 서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부활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후우우우웅…
쿠구구궁…
아그라스가 양팔을 활짝 피고 소리쳤다.
“마침내, 세 거인께서 오시리라!”
드드드드…
저 진 너머에서 느껴지는 힘은 가히 지옥과도 같았다.
강설 일행의 목에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이게… 세 거인….’
시대를 호령한 자가 가진 힘이 이토록 거대하니. 모두 전설을 피부로 느낄 만큼 압도적인 힘이었다.
역시, 세 거인이 부활한다면 판데아의 인간들은 존망의 기로에 설 것이다.
“다시 제위에 올라, 이 땅을 그들의 색으로 물들이시리다!”
쿠구구구구…
이때다.
의식이 시작되어 경계를 늦춘 바로 이때.
파아아아앗-!
헤카이가 아그라스에게 달려들었다.
“큭….”
“무슨!”
헤카이는 신묘한 술법을 사용했는지, 아그라스에게 순식간에 도달해 그를 제압했다.
양팔을 붙잡고 머리를 바닥에 찧게 했다.
“아그라스, 마지막 조각을 내놓아라.”
“헤헤… 이게 무슨 짓일까요?”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
아그라스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이걸 어쩌나? 나는 인형인데.”
“…뭐?”
스으으으으…
아그라스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목각 인형만이 존재했다.
낭패.
아그라스가 저 멀리서 걸어왔다.
“낌새가 이상하더라니, 역시….”
스으윽…
그레고리가 경고했다.
“아그라스, 뒤… 음….”
새로이 나타난 아그라스의 목줄기에 차가운 손이 맞닿았다. 손은 언제라도 가녀린 목을 부러뜨릴 수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았다.
“…….”
“아그라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조각은?”
헤쿰으로 분했던 강설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아자닉이 갑작스럽게 불타올랐다.
“네놈….”
이제야, 지하 정원에서 그를 쫓아낸 강설을 알아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