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76
제475화
화르르륵…
“그 트롤 녀석과 함께 왔겠지?”
아자닉은 당장이라도 강설에게 뛰쳐 들려 했지만, 아그라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지, 진정하시길. 제가 다치면 비록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의식이 조금 늦춰질 겁니다.”
“후우우우….”
아자닉이 분을 삭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상황은 묘했다.
참으로 기묘한 대치다.
카렌은 그레고리와 마주 보았고, 카루나는 그의 분신인 흑기사와 마주 보았다.
“음….”
“…….”
흑기사도 카루나의 존재에 사뭇 당황한 듯했다.
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중요한 건 열망의 고리의 행방이었다.
이 대치가 끝나기 전, 강설은 열망의 고리의 마지막 부분을 빼앗아 의식을 멈출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그라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
“…뭐?”
“열망의 고리라든지 뭔지, 이미 그 안건에선 손을 뗀 지 오래입니다. 마지막 조각이라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추궁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그렇다면…
강설과 헤카이의 시선이 지안에게 향했다.
“히히히….”
광대와 같은 이 웃음.
역시, 뜻 모를 웃음이다.
스윽…
지안이 히죽 웃고는 미완성된 열망의 고리를 들었다.
“미안해, 내가 너희를 속였어.”
“지안!”
“역시… 믿지 못할 자였나.”
강설과 헤카이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따로 입을 맞춰둔 것이 있었지만 일단은 지켜보았다. 무엇을 속인 것인지,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특히 강설은, 긴 원정을 거치며 지안을 신뢰했다. 지안은… 신뢰할 만한 자라고 생각했다.
정작 지안의 배신에 가장 많은 충격을 받은 건 신디오였다.
“지안… 당신….”
신디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신디오.”
“그런… 아니잖아요.”
“…글쎄, 어떨까?”
“제발… 아니라고 해줘요.”
“거짓말 맞아. 그래도 마지막 조각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는 건 정말이야.”
대화의 흐름이 이상했다.
초월자들의 대치도 팽팽한 실이 언제 끊어질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약할지도 모르는 지안이 신기하게도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아그라스는 곧장 지안의 배신을 눈치채고 그를 회유했다.
“하하하! 지안, 잘했습니다. 제 뜻대로 움직여주었군요. 어서 열망의 고리를 제게….”
철컥…
그때, 열망의 고리가 소리를 내었다. 지안이 고리를 목에 걸었다.
“무슨 개소리를 장황하게 하는 거야?”
“…….”
고리의 홈에 지안이 목을 들이밀자, 고리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나타나며 기물이 완성되었다.
비워졌던 마지막 조각이 채워진 것이다.
“마지막 조각인, 열망. 히히히!”
그리고 이 행동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원정대 모두가 알았다.
“…너!”
“고리를 해제해!”
지안은 죽을 작정이다.
아니, 희생할 작정이다.
지안이 사실대로 말했다.
“부활 의식에 이만한 생명이 소모되는데, 봉인이라고 다를 거 없잖아. 조금… 효율이 좋을 뿐이지.”
산 제물을 쓸어 넣어야 부활할 수 있는 존재를, 다시 지하에 처박을 수 있을 만한 무기라는 건 사실 허상에 불과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힘이라지만… 약간의 희생은 필요할 것이다.
– 유적에서 봤어. 고리는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일전에 콘지가 했던 말.
열망의 고리는 지안을 선택했다.
그를,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지안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안 돼! 지안!”
신디오가 지안에게 접근했다.
투우우웅-!
어떤 장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지안에게 닿을 수 없었다.
신디오는 장막을 뚫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지이이이잉…
고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늦었어. 이미 시작됐어.”
“어째서….”
“미안해, 역시. 떨쳐낼 수 없었어.”
“…….”
지안이 강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설. 내 고집이야. 받아줄 거지?”
“…….”
“받아줬으면 해, 네가 아니면… 누구도 내 일을 끝내줄 수 없으니까.”
강설은 지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투명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눈이었다.
그의 눈을 보자,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강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는 맡겨라.”
강설의 끄덕임 뒤에, 신디오의 절규가 따랐다.
“하지 마! 하지 마아!”
히죽 웃는 지안.
파아악!
화르륵…
고리로부터 시작된 불길이 지안을 태우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아아아아!
지안은 천천히 타오르며 진 안으로 들어섰다.
“막아!”
“놈을!”
서로를 경계하던 의회가 마침내, 뜻을 합쳤다.
지이잉…
열망의 고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교착이 무너지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아그라스는 재빨리 강설에게서 벗어났고 아자닉은 아트로밀의 힘을 끌어올리며 진정한 천공 용의 모습으로 변화.
후우웅…
후우우웅…
아자닉의 수하들 또한 주위를 비행하며 상황을 엿봤다.
열망의 고리가 가진 힘은 미지수다.
그것이 정말 세 거인을 봉인한 건지, 아직 멀쩡히 작동하는 건지도.
다만, 걸어볼 만한 건 이것뿐이다.
화르르륵…
콘지가 신디오를 붙잡았다.
“신디오! 가지 마! 너까지 위험해!”
“놔! 놔아아!”
불에 타는 지안.
약속의 성화(聖火)는, 그다지 고결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했으며 그것은 지안을 아주 천천히 불태웠다.
쿵-!
쿵쿵쿵-!
몸이 불타는 이 순간, 지안의 정신은 그를 가두었던 곳에 도착했다.
역시나, 빌어먹을 옷장 속이다.
“개 같은 년이!”
쿵!
쿵쿵!
열어줘.
퍼어억!
퍼어어어억!
“아아악!”
“감히 말대꾸를 해!”
쾅쾅!
쾅쾅쾅!
그토록 열리지 않았던 옷장 문이, 어째선지 오늘은 활짝 열렸다.
“우리 엄마 때리지 마아아아아!”
지안이 울부짖으며 옷장 문을 박차고 나왔다.
옷장을 뚫고 나오자, 그의 어미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십장은 온데간데없었다.
“…지안.”
“엄마아….”
지안은 웃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안겼다.
엄마는 붕어가 아니었다.
피멍이 잔뜩 든 얼굴 대신, 꽃처럼 화사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래, 이제야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착한 일을 해야 볼 수 있었구나.
“엄마아….”
“지안, 착한 아이…. 착한 일을 한 거야?”
“잘 모르겠어요….”
“이런….”
“그래도….”
지안은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다.
“친구가, 괜찮댔어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의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엄마… 있잖아요…. 내가 좀 더 크면….”
지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광부가 될 거예요.”
“…어째서?”
“그러면, 엄마를 지켜줄 수 있잖아.”
지안은 신이 나서 엄마의 팔을 흔들며 걸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될 텐데도?”
“상관없어! 그런 것쯤은!”
“엄마도 좋아, 지안.”
지안의 얼굴은, 불꽃에 타들어 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지아아아아안-!
혼절할 듯한 음성이 지안의 멀어져 가는 이성을 붙잡았다.
하지만, 지안은 부활 진에 잠기며 무릎 꿇었다.
“신…디오.”
– 우리는, 마침내 평화에 다다를까요?
– 좋은 질문이야, 신디오.
어째선지, 그녀가 기억에 남았다.
– 마땅히, 그럴 거야.
“당신만은… 평화에 다다르길….”
털썩…
지안이 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옷장 속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열망의 고리는?
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열망의 고리가 발동합니다.]
[신화 등급의 대상에게 압제를 가합니다.]
……
촤르르르르르르륵-!
거대한 사슬이 풀려나왔다.
사슬은 가장 먼저, 세 거인의 부활 진을 건드렸다.
[세 거인의 부활 의식이 중단됩니다.]
[열망의 고리의 압제가 가해집니다.]
[부활 의식이 온전히 진행될 수 없습니다.]
……
부활 의식의 저지, 성공.
촤르르르륵-!
사슬은 또한, 거대해진 아자닉의 몸을 휘감았다.
[천공 용 아자닉의 힘을 제한합니다.]
[열망의 고리의 압제가 가해집니다.]
[천공 용 아자닉의 권능이 무력화되며 심대한 고통을 줍니다.]
……
사슬이 아자닉을 휘감자, 아자닉은 눈을 부릅뜨고 날아올랐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이 뒤틀렸다.
아자닉의 무위는 이미 강설의 예상보다도 더한 경지에 도달했다.
또한.
후우우웁…
“숨결이다! 피해에에에!”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화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채의 일부가 무너지며 불길에 휩싸였다.
“크으으윽….”
문제는, 아자닉의 행방이다.
“아자닉이 도주했다! 제길… 도주할 생각이야! 높새 날개여!”
강설과 헤카이의 눈빛이 교차했다. 그리고 잠깐의 끄덕임.
“우리는 아자닉을 쫓는다!”
카쿠이를 탄 높새 날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신호탄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데키여! 일어나라!”
“놈들을 쓸어라!”
주술로 몸을 숨겼던 데키와 케시이가 구름 같이 일어나 의회의 병력을 습격했다.
반파된 성채에 남은 일행.
부활 의식 중단.
“감히… 감히….”
아그라스가 강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그레고리가 섰다.
반대편엔 강설과 카렌이.
“대화는….”
“끝나고 듣지.”
스릉…
스르응…
카루나와 흑기사가 대치.
의회의 병력과 강설의 조력자들이 아비규환의 전투를 만들어냈다.
시대 전환 시작.
에라곤이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