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77
제476화
카아아앙-!
캉!
카루나와 흑기사의 전투는 전초전 분위기만 봐도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탐색전부터 시작하는 양측, 전장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흑기사가 내뻗는 발.
파아아악-!
턱-!
팔등의 갑주가 그 공격을 흘려냈다.
후우우웅…
카루나는 간조를 사용해 흑기사를 잡아당겼다.
“흡!”
예측 못 한 힘에도 흑기사는 중심이 무너지지 않았다.
끼릭…
카드드드득!
검을 맞댄 두 기사.
초월자들이기에 도리어 화려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자그마한 허점이 곧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듯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어째서… 영생교에 있는 거지?”
“각자에겐 사정이 있으니까.”
“…뭘 꾸미는 거야!”
“알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퍼어어억-!
“욱….”
카루나의 복부를 무릎으로 차올린 흑기사.
후우우웅…
“큭….”
이어진 연계 공격은 카루나가 만조를 사용해 밀쳐내며 막았다.
둘의 전투는 한동안 교착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곳은 역시나 초월자들이 맞붙는 곳이었다.
그레고리가 턱을 쓰다듬었다.
“일이 조금 복잡해졌군.”
“열망의 고리… 과연, 투쟁의 시대가 가진 힘이군요. 솔직히, 이만한 위력을 보일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어요. 제 실책이군요.”
아그라스는 아자닉까지 휘감아 울부짖게 한 그 힘을 보고 몸을 떨었다.
“그 힘이 아자닉 공에게까지 미칠 줄이야… 정말로 터무니없단 말이죠. 그리고 일을 이렇게 만든 당신들, 각오는 되었겠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카렌과 강설.
강설이 아그라스 방향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카렌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이리 와, 마법사. 내가 잘 설명할 테니까.”
“아… 싫어요. 딱 봐도 의욕이 넘치잖아요. 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싫어요.”
[아그라스가 권능 : 패배주의를 사용합니다.]
[아그라스가 상대를 부정에 물들입니다.]
[패배주의에 낙인찍힌 대상은 100의 활기를 보유합니다.]
[전투에서 피해를 입으면 활기가 저하됩니다. 반대로 피해를 입히면 활기가 회복됩니다.]
[모든 활기를 잃으면, 아그라스의 인형이 됩니다.]
[아그라스의 인형은 아그라스의 뜻대로 움직이며 그의 숙주가 될 수 있습니다.]
“상성이 밀린다고요….”
“어쩔 수 없다. 그럼, 이쪽을 상대하겠나?”
“음… 어느 쪽도 쉬워 보이진 않네요. 얼른 끝내고 제 쪽을 도와주세요. 저는 전투가 전문이 아니에요.”
“알았다.”
강설을 일찍 끝내고 아그라스 쪽을 돕겠다고 약속하는 그레고리.
파아아앙-!
공중으로 치솟는 아그라스를 쫓아 카렌이 사라졌다.
단둘만 남은 그레고리와 강설.
마치 운명처럼,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레고리는 강설을 차분하게 노려보았다. 강설은 그에게 전할 말이 있었지만, 그레고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군. 동종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내가 보기엔 이래도 나이가 조금 있다네.”
“존칭을 바라나? 악인에겐 삼가는 편인데.”
“전혀, 그저 알기를 바라지.”
후우우우…
강설은 지안의 죽음으로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이건,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상대는 강자고 마음속 투지를 다듬어야 했다.
날카롭게, 아주 날카롭게.
무턱대고 충돌하는 건 투지를 다루는 가장 어설픈 방법이다.
“얘기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내 착각인가?”
“나야말로 궁금해, 당신은 의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칭찬인지 흠을 잡는 얘기인지 알기 어렵군.”
“말 그대로. 당신은… 의회의 허튼 망상에 사로잡힐 만한 사람이 아닐 텐데.”
“나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군.”
“이름값에 더해 그 무게 정도는.”
“역시, 그렇다면 대화를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레고리는 짐짓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넌 왜 싸우지?”
“……뭐?”
“싸우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밝힐 수 없다.”
“후후…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 온 세상이 싸운다. 싸운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야. 결론에 이르는 편리한 수단이고, 과정일 뿐이다. 하나, 싸우는 녀석들도 진짜와 가짜는 있는 법. 구분하는 법은 간단해.”
손가락을 치켜드는 그레고리.
“왜 싸우느냐다.”
“싸우는 이유?”
“인류의 편의를 위한 과학도,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신앙도 결국엔 목적이 있다. 나 또한 그렇지. 나 역시, 꿈이 있다.”
“꿈이라….”
강설은 그레고리의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투지를 가다듬을 시간을 번 것이나 마찬가지다.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것. 아무도 떠들지 않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
“…행보를 봐선 거리가 먼데?”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다. 조금 소란스럽긴 하군.”
주변은 굉음이 가득했다.
케시이와 데키, 그리고 의회의 병력이 한데 어우러져 싸우는 전장은 어지러웠다.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림자?”
“그래, 강력하고 근원에 가까운 힘이지. 사실 모든 힘은 깊숙이 파헤치면, 그만한 잠재력이 있어. 다만, 그림자는 특별하다.”
“어째서?”
“창세 전부터 존재했던 어둠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지.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어둠에 기반한다.”
“처음 듣는 얘기군.”
“이 성채도, 아자닉도, 너도 결국엔 어둠으로 이루어졌다는 거다. 그러니 서로 다르더라도 공통점 하나 정도는 있지.”
불쾌하고 끈적한 느낌.
강설은 그레고리의 결론이 어디에 도달할지 예상이 되었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거야.”
그레고리는 순수하게 미쳤다.
“모두를 그림자로 만든다. 그럼, 세상이 조용해질 거야. 싸움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고.”
“미쳤군. 거기까지 듣지. 내가 싸우는 이유는 한 가지도 아니고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아. 그러나 여기서 내 앞을 막겠다면….”
스릉…
후웅…
강설이 비탄을 쥔 채, 자세를 취했다.
“널 베겠다.”
“…젊다는 건 좋아, 나도 그 젊음을 좋아한다. 그것 아나? 강자와의 싸움은 영감을 주지. 더군다나 동종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짜아아아악-!
“너와의 싸움이, 조금은 영감을 주기를.”
휘오오오오…
[그레고리가 권능 : 강탈자를 사용합니다.]
[그레고리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그림자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는 대상의 동의 없이 그림자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는 대상을 특수한 형태로 그림자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는 그림자 공간은 방대합니다.]
……
[상대는 그림자 소환의 대가입니다.]
[서로에게 엄청난 영감을 선사하는 전투입니다.]
[유성우(流星雨)! 유성우 상태를 유지할 경우, 깨달음이 지속적으로 찾아옵니다.]
휘오오오오…
그레고리가 손뼉을 부딪치자, 분대 규모의 소환수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왔군.’
그레고리가 어떤 소환수… 즉, 어떤 패를 가졌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우선, 탐색전의 의미인지 특별한 소환수는 아닌 듯했다.
“지금은 사라진 테모호 왕국이 비밀리에 실험하던 군대지. 오래전에 폐기됐지만, 이제 내 손에 들어왔다.”
“이들의 뜻은?”
씨익…
“그런 게 중요하나?”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접근한 그림자.
쒜에엑-!
그리고 근처에 도달하자마자 그림자의 목을 베어버리는 강설.
“…힘을 아낄 생각인가?”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뭐, 좋아. 지켜보지.”
싸움은 한순간에 결판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심상치 않은 상대라는 걸 가늠하는 둘.
빈틈은 최대한 숨기고 상대의 약점은 뜯어봐야 했다.
‘피해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중요해.’
오늘 하루는 무척 길 것이다.
전력을 다해 그레고리를 쓰러트려도, 일어설 수 없다면 강설의 패배다.
협곡으로 넘어간 아자닉이 계속 떠올랐지만, 지금은 차근차근 몸을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다.
파아아악-!
또 한 번, 머리를 베는데 아까 머리가 잘린 그림자가 재생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재생까지… 성가시군.’
그림자가 어느 정도의 재생 능력을 보유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가 아니다. 순식간에 잘린 머리를 붙인다는 건, 감춘 힘이 있다는 거다.
쒜에에엑-!
쒜에에에엑!
방위를 점하고 침착하게 교전해오는 그림자. 한두 명쯤은 아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더라도 십여 명의 그림자를 한꺼번에 쓰러트리려면 힘을 쏟아야 했다.
효율이 아주 나쁘고, 그레고리가 노리는 것 또한 그것일 터.
파아악-!
파아아아아악-!
솜씨 좋게 머리만 노려 날려버리는 강설. 그림자들 또한 일반 그림자보다는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보유했으나, 강설의 신체 능력은 이미 같은 경지의 검사보다 높을 정도였다.
“…….”
“…….”
쒜에에엑-!
쒜에에에에엑-!
같은 정보가 반복될 뿐이다.
강설은 자신을 둘러싼 그림자들에게 일검을 선사하며 포위망을 빠져나갔고 그림자들은 다시 포위망을 좁혔다.
이 같은 전투가 수차례.
“…여기까지.”
파아아앙-!
강설이 별안간 비도(飛刀)를 날렸다. 비도는 쏜살같이 날아가 특정 그림자를 노렸다.
파악은 끝났다.
이미 수십 번쯤 베었을 때, 감을 잡았다.
중심이 있다.
이 재생력엔, 반드시 중심을 지탱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여태, 나설 것처럼 기세를 높였지만 묘하게 다른 그림자들을 앞장세운 녀석이.
그리고 녀석은 이제껏 한 번도 강설의 공격에 닿지 않았다.
애초에, 가까이 오지를 않았으니까.
“너야.”
쒜에엑-!
비도를 가로막기 위해 그림자 몇이 앞을 막았다.
하나, 비도는 반드시 상대에게 꽂힌다.
[칼의 노래 : 인연을 사용합니다.]
[허공에 날붙이를 띄워 올릴 수 있으며 공격과 방어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날붙이는 지속적으로 내구도를 소모하며 무기 공격력의 100%의 발휘합니다.]
유화의 힘이 장애물을 지나쳐 비도를 대상의 미간에 인도했다.
콰지익…
비도가 꽂히자, 강설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숨겨져 있던 그림자가 있었나.
아니, 그렇더라도 분명 알아챘을 텐데.
그렇다면, 그레고리다.
‘신유!’
비탄을 쥔 오른손이 벼락처럼 반응했다.
파아아아아앙-!
카가가가각!
공격은 막아냈다.
근육이 놀란 듯했지만, 금세 회복할 정도였고.
“음… 이게 막힐 줄이야. 분명히 허점이었는데 말이지.”
“…음흉하잖아.”
“그레고리는 음침한 약골이다. 소환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분명 잘 속여 넘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만한 실력이 드러나지 않은 거지?”
“드러낼 때마다 다 죽이면 된다. 간단한 일이지. 물론, 오늘도 역시나다.”
후둑…
강설이 검에 묻은 그림자를 털어내고 상황을 살폈다. 그레고리는 전혀 예측 밖의 행동을 해왔다.
바로, 직접 검을 들고 나선 것.
조금 특이하게 생긴 검이었다.
그의 어깨부터 검첨까지 연결된, 그러니까 갑주와 검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었다.
“제자다.”
“…뭐?”
후우우웅…
검이 가늘게 떨렸다.
[그레고리가 일곱 번째 제자, 세이니를 사용합니다.]
[전투 중에 소실된 그림자만큼, 강도가 증가합니다.]
[전투 중에 소실된 그림자만큼, 그레고리에게 능력치를 더합니다.]
[그림자 병기는 동시에 하나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신기하지 않나? 인간의 영혼이 물질화가 가능하다는 건?”
“…기괴하기 짝이 없군.”
“마령을 연성하는 것과 그리 다른 과정은 아니야.”
“네 목적을 위해 희생된 거냐?”
“뜻을 위해 영혼을 바친다는 건 숭고한 거다. 것보다, 네 신체 능력.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
“우리 둘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군. 역시 강한 힘이 있어야 굴종이 따라오는 법이야.”
“대화가 된다는 건 착각일지도 모르겠군. 것보다, 세 번째 이후로는 제자를 들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미레이를 말하는 거군. 그래 제자는 이제 들이지 않지. 그저… 구실일 뿐이야.”
“네 목적을 이룰 희생양을 끌어모을?”
그레고리가 피식 웃었다.
“그러면 안 되나?”
“그냥…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