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9
제48화
강설이 내민 것은, 독요초의 분말로 만들어 낸 그림자 독의 해독제였다.
사실상 강설만이 만들 수 있고 그 값어치도 강설이 정해야 하는 물건.
그가 건넨 해독제를 바라보던 키보가 잠시 침묵했다.
“이 물건… 그림자 독의 해독제인가?”
“보시는 대로.”
“조제법은… 아니, 그보다 어떻게 구한 거지?”
“중요한 겁니까?”
“아니지. 중, 중요한 게 아니야. 실수했군.”
유미라가 생전 처음 보는 당황한 키보의 모습에 놀라며 강설에게 말했다.
“해독제? 이게 그림자 독의 해독제라고?”
“같은 질문은 사절이야.”
“그, 그럼 키보가 회복할 수 있는 거야?”
“그것도 비슷한 질문.”
“하지만….”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손녀처럼, 유미라는 해독제의 존재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 모습에 키보가 유미라를 한쪽 손으로 다독였다.
“미라야, 지금부터는 듣기만 해라.”
“키보!”
“가만히 들어, 유미라.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아니면, 나가 있을 테냐?”
“읏….”
엄중한 목소리의 키보. 유미라는 이런 기세를 내뿜는 키보를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이때의 키보는 정말 무섭다.
유미라가 앓는 소리를 내며 강설을 힐끔거렸다. 강설은 그 행동에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는 부정적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키보를 많이 아끼나 보군.’
특이한 관계였다.
전이자인 여자와 구를 대로 구른 유적 사냥꾼들의 대장.
키보는 계속해서 유미라를 가르치려 하고 그녀는 그것을 별다른 의심 없이 따랐다.
강설이 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을 때, 키보가 입을 열었다.
“대가로 원하는 게 있을까? 설마 갈로타의 혓바닥인가?”
“그건 이미 거래의 수단으로 올라온 겁니다. 다른 것을 원합니다.”
“…다른 것?”
“보물이나 희귀한 소재, 혹은 제게 쓸 만한 정보 정도면 좋겠습니다.”
강설의 말에 키보가 입을 꾹 닫았다.
뭔가 곤란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우리도 헤카와 냉전 상태라 따로 모아둔 보물은 진작에 다 매각했다, 조금만 사정을 봐줄 수 있을까?”
“글쎄요… 은혜는 이미 베푼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이 해독제를 당신들과 거래하는 것 자체가 당신들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그렇군.”
“이게 무슨 소리야? 키보?”
키보가 옆에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라는 둘 사이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자의 말은 사실이다. 상대가 이 해독제를 가지고 헤카에게 갔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봐라. 미라야.”
“아… 그렇구나.”
“상대는 우리를 이미 배려하고 있어. 이 물건을 우리와 거래하겠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건 그렇고 이걸 어쩐다….”
키보는 강설의 의중을 이미 헤아리고 있었다.
그가 키보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과 이미 친절을 베풀었음을.
‘하지만 호의는 여기까지다.’
키보가 상황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허튼수작을 부리면 거래는 어그러질 것이다.
“하지만, 아까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네.”
“보유한 보물을 모두 매각했다는 것 말입니까?”
“그래, 안타깝게도 거래로 사용할 만한 보물은 대부분….”
대부분이란 말은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래도 아직 거래할 물건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스윽-
키보의 열 손가락에 전부 채워진 반지 중, 가장 짙은 색을 발하는 반지가 탁자 위에 놓였다.
“키보! 그건….”
“안다, 하지만 물건의 값을 치르려면 어쩔 수 없어.”
“당신의 상징인데 어째서….”
“나를 상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이건 한낱 물건일 뿐이야.”
강설이 늑대의 머리 모양 반지를 집어 들었다.
[늑대의 경고]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10 – 20
저항력 : 30
내구력 : 68/68
무게 : 0.1kg
늑대 신을 숭상하는 부족에서 전해 내려오는 반지. 신통력이 있는지, 착용자의 위험을 경고한다.
기본 능력 : 근력 +2 민첩 + 3 지능 +1 지혜 + 8
특수 능력 : 착용자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보 쪽 권능이군.’
맷집, 체력이 낮은 캐스터 계열이 착용하기에 안성맞춤인 반지였다.
애초에 반지나 목걸이 등 장신구 계열의 효능이 다른 주요 부위보다 뛰어나기가 어려웠으므로 대부분은 이런 권능이 더 쓸모가 많았다.
– 실례합니다. 왜 자꾸 이분한테 보물이 들어가는 거죠?
– 저희도 알 수 없는 사안입니다.
– 기적의 연금술 ㅋㅋ 해독제가 보물로 변했다!
– 심지어 해독제 개많이 남음 ㅋㅋㅋ
– 미친, 하다 하다 반지까지 보물이네 ㅡㅡ
– 근데 불세출 효과가 어마어마하긴 한가 봐
– 왱?
– 보물 능력치를 보고 실망했어ㅋㅋ
– ㄹㅇ ㅋㅋ 하지만 놀랍게도 스노우맨은 둘 다 있다…
강설이 슬며시 웃고 반지를 올려놓은 손을 꽉 쥐었다. 키보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거래를… 받아들이는 건가?”
“마음에 듭니다.”
“하하! 하하하… 소중히 다뤄주게! 20년 동안 한 번도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던 물건이니.”
옆에서 유미라가 울상을 지었다.
“그거… 키보가 단원들을 물려받을 때 함께 받은 거라며….”
“미라야.”
“그런 걸 줘도 되는 거야?”
“내 가족들은 아직 살아 있다. 더군다나 좋은 기회도 얻었고.”
“…….”
“정을 붙여야 할 건 물건이 아니다. 가족이다. 반지야 언제든 다른 보물로 되찾아오면 되고.”
“…알았어.”
키보가 강설을 흘끗 살펴보며 해독제를 들어 올렸다.
“그럼 어디 효과가 있는지 볼까.”
“얼마든지.”
뽕.
강설이 건넨 해독제의 뚜껑을 열어젖힌 키보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치이익…
“크으으…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군. 내가 마신 술 중에 제일 독한 술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야.”
“그야 독약이니까.”
강설의 말에 유미라가 펄쩍 뛰었다.
“뭐? 뭐라고?”
유미라가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려는 찰나, 키보가 그녀에게 답했다.
“미라야, 머리가 울린다. 제발 조용히 좀 해라.”
“독약이라잖아!”
“아니,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닌데… 분명 효과가 있다.”
치이이이이…
힘없이 축 늘어졌던 키보의 검은 팔이 서서히 원래의 피부색으로 되돌아왔다. 팔꿈치부터 시작된 변화는 손목,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까지.
츠으으으…
검고 지독한 냄새의 연기가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유미라가 동전만 해진 눈동자로 이 모든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키보의 팔이 나았어?”
“하아… 하아….”
“꽤 고통스러웠을 텐데….”
“한쪽 팔을 잃은 고통에 비할까. 이 덩치로 울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줄 걸세.”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은 보물의 교환입니다.”
“아, 그래. 얼마든지.”
경매장 관리인 리타가 업무 시간임에도 불려 나와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두 보물을 가지고 왔다.
슥-
키보에게 쉐이즈의 은총이 건네어지고.
슥-
강설에게 갈로타의 혓바닥이 건네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리타가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각자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수수료는 모두 이쪽에서 치르도록 하지.”
키보가 선뜻 거래 성사 수수료를 전부 내겠다고 선언했다. 강설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키보는 거래가 성사되자, 사람들을 물렸다. 또다시 강설과 유미라, 그리고 키보만이 자리에 남았다.
“거래는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아직 한 가지가 남았지.”
스스스…
쉐이즈의 은총을 손에 쥔 키보가 검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썩 괜찮은 기세라 강설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리고는 그도 은연중에 대항할 수 있도록 슬며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뭐 하는 짓입니까?”
“장난 한번 쳐본 걸세. 한데, 놀라지도 않으니 섭섭한걸.”
키보가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한 눈으로 강설에게 말했다.
“이번 헤카와의 항쟁에서 우리를 좀 도와주게.”
“거절합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 질색이라서요.”
“흐음… 쉽지 않을걸? 노비라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사건이라 빵집 주인이나 하다못해 하수구의 쥐조차도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할 테니까.”
“하실 말씀은 끝난 겁니까?”
“뭐, 여기까지 하지. 좋은 거래였네. 이름을 알 수 있겠나?”
여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설이 조금 놀랐다.
“스노우맨이라고 부르십시오.”
“아, 스노우맨. 우린 다시 만날 걸세.”
“서로 볼 일이 있다면야.”
유미라와 키보가 떠났다.
유미라는 키보를 뒤따라 나서며 뭔가 아쉬운지 연신 강설을 훔쳐보았다.
키보와 함께 강설의 거처를 나선 유미라는 입이 툭 튀어나와 키보에게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왜 저 눈사람한테 설설 기는 거야? 세력도 없잖아?”
“…세력이 없기에 더 무서운 거란다, 미라야.”
말을 하는 키보의 턱에 땀이 맺혀있었다.
“키보, 키보? 키보 왜 그래? 역시! 해독제가 아니었구나! 이 개자식! 당장…”
이 모습을 본 유미라가 화들짝 놀라는 건 당연한 순서였고. 하지만, 뒤돌아 뛰쳐나가는 일은 없었다. 곧 키보가 상황을 설명했다.
“미라야.”
“키보? 괜찮아?”
“이제 진정이 됐구나. 후….”
“그 땀은 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미라야, 잠시 앉아봐라.”
둘은 안전한 장소의 화단에 잠시 멈춰 앉았다.
키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유적 사냥꾼들이 남들과 달리 특출 난 게 뭘까?”
“눈?”
“그렇지, 정확히는 눈과 감이다. 내가 너를 거둔 것도 그 이유에서고.”
“…고맙게 생각해.”
“너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알고 있어. 나도 내가 변했다고 느끼거든.”
유미라는 처음 노비라에 건너온 날을 기억한다. 비가 오는 날씨, 불 꺼진 상가들.
무엇 하나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유미라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원래 그녀가 있던 세상도 그때의 상황과 다를 것 없었으니까.
그녀는 혼자였고, 있는 힘껏 괴롭다고 소리쳤지만, 그녀의 외모에 관심을 가진 가짜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녀를 거둔 게 키보였다.
“그때, 날 거둬줘서 고마워.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너라면 살아남았을 거다. 그 핏발 서린 눈에 독기가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아무튼, 그래서?”
“호사가들이 떠들어대는 말로는 헤카와 나를 사자와 늑대에 비유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헤카는 거칠고 용감하다. 나는 그보다 규모가 작은 사냥단을 이끌고 있으며 꼭 해야 하는 싸움이 아니면 피하는 편이지.”
“키보가 옳아. 헤카는 미친놈이야.”
유미라는 키보를 절대 선이라 생각하며 따랐다. 지금도 그렇다. 키보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았다.
“키보는 유일하게 전이자들과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잖아. 우리를 이끄는 목자인걸.”
“큭큭… 늑대가 목자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 녀석아. 내 얼굴에 금칠 좀 그만해.”
“정말이야! 정말, 키보는 대단하잖아.”
키보가 한숨을 쉬며 유미라에게 말했다.
“미라야, 내가 이 말을 꺼낸 건 다름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 스노우맨인지 눈사람인지 그 자식?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내가 그에게 기세를 보였던 것 기억하니?”
“응, 장난이라며?”
“아니, 떠본 거야. 그런데… 눈과 감,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가 경고했다. 그자는 위험하다고.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고작 감을 믿는 거야?”
“근거 또한 있다. 너는 노비라에서 세력이 없는 개인이 보물을 보유한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아!”
키보의 의심은 당연했다.
유적 도시 노비라에서도 보물은 대규모로 유적 사냥단을 운영하는 파벌들만이 유통했다. 대부분 보물은 그런 사냥단이 힘을 쏟아 발굴해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한 명의 사내가 보물을 대수롭지 않게 교환하며 심지어는 심각한 상태까지 갔던 키보의 병까지 해결했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건 이미 많이 모순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보물은 이것보다 훨씬 많을 게 분명하다. 그의 허리띠만 보아도 생전 처음 보는 귀한 물건이었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수정구보다 훨씬.”
“…누구일까?”
“지금부터는 새겨들어라, 함부로 그에게 다가가지 마.”
유미라는 키보가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말한 적이 없어 당황할 따름이었다.
키보는 그녀의 반응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미라야, 내가 중요한 일과 중요한 자리마다 너를 데리고 가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뭔데?”
“늑대 무리는 가장 강한 늑대를 따르지 않아. 가장 지혜로운 늑대를 따르지.”
“…….”
“언젠가 네가 우뚝 설 날이 오면 내 말을 꼭 기억해라. 힘은 뒤처지지 않을 만큼 쌓고, 지혜는 앞서나갈 만큼 쌓아야 한다.”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앞서나갈 만큼….”
“아마 헤카가 저자와 마주했어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사자든 늑대든….”
키보가 강설의 눈과 그 작은 몸 안에 숨겨진 기운에 떨고 침을 삼켰다.
“결국은 인간의 아래니까.”
“눈사람을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했길래 그래?”
“곧 알게 될 거다, 너도.”
“무슨 방법으로? 거래는 끝났잖아?”
“리타에게 그에 관한 얘기를 전달받고 난 후에, 정보망을 총동원해 이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알아봤다.”
“결과는?”
대답은커녕, 키보는 오히려 유미라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전이자들끼리는 노비라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 알 수 있다고 했지?”
“응, 내가 얼마 전에도 말했잖아. 내가 35만 점이나 됐는데도 이상한 놈 하나 때문에 5위에서 밀려났다고… 어라?”
“거기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였지?”
“그… 비공개라고 되어있는데?”
“비공개가 나타난 날짜가 저자가 들어온 날짜와 정확히 일치한다.”
“에이, 우연이겠지.”
“나도 처음에는 의심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했다. 나는 그를 실제로 보았어. 그러니 말하는 거다.”
꿀꺽…
유미라는 키보의 태도로 앞으로 나올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 ‘설마’라는 단어가 새겨졌을 때, 키보는 말했다.
“그가 비공개다. 그리고 아마, 헤카 쪽에서도 눈치를 챘을 거다.”
“그럼 어떡해야 해? 그가 헤카에게 넘어가면?”
“글쎄… 일단 곧 전면전이 벌어질 테니 준비해야 할 거야. 그는 아마 이 항쟁에 가장 중요한 폭풍이 될 거야. 부디, 폭풍이 사자 쪽으로 몰아치길 바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