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93
제492화
이것은 불과 바람이 부른 환영.
혹은, 천공 용 아자닉이 빗장으로 잠가둔 오래된 기억.
시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그의 일족이 번영했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용의 시대.
그때의 아자닉은 어렸다.
타다닷…
“아자닉, 도서관에선 뛰면 안 된다.”
“…네에.”
동공보다 작은 안경을 쓴 고룡이 아자닉을 꾸짖는다.
“하하하! 얘들아, 아자닉 또 혼났어.”
“…조용히 해.”
“그러게, 뛰지 말라니깐….”
아자닉과 비슷한 또래의 새끼 용들. 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용의 도서관을 거닐고 있었다.
“애초에 뛰면 안 된다는 건 필멸자들이 놀랄 수 있다는 규칙 때문이잖아. 우리가 왜 작은 생명의 눈치를 봐야 해?”
“헉….”
“아자닉….”
“무식해….”
탄크리드를 포함하여 지그, 카르시엘라까지. 모두 아자닉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용족이 그들의 스승이기 때문이잖아.”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야, 섬세하게 대해야 한다고. 신사라면 기본이지.”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 아자닉.”
흑발의 소년은 콧방귀를 뀌었다.
“애초에! 도서관에 들여서는 안 돼! 뭐 하러 지식을 전하는 거야? 지식은 강자의 전유물이야. 아랫것들은….”
“아자닉.”
붉은 용 지그가, 싱긋 웃었다.
“그만해. 화내기 전에.”
“윽….”
“나는 널 좋아해. 그런 위험한 생각 빼고는 말이지.”
“…….”
“자, 아자닉. 도서관에서 떠들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 오랜만에 같이 날아볼까?”
지그라는 소년은, 아자닉을 잘 알았다. 그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도.
“…좋아!”
“하하하! 그것 봐! 너희도 갈 거지?”
“응. 또 싸우지 않는다면.”
“나도 좋아.”
타타탓-!
“너희들! 도서관에서 뛰면 안 된다고….”
“하하하!”
재기 넘치는 어린 용들은 도서관을 벗어나 내달렸다.
으직…
으지지직…
그들은 어느새, 용의 모습으로 변해 하늘을 날았다.
부유성, 반즈.
용의 대지 고르고지아에서도 손꼽히는 지혜의 도시였다.
이 땅의 모든 지혜를 거느린, 침묵하는 첫 용이 똬리를 튼 곳.
후에 용의 땅 고르고지아와 부유성 반즈는 대해에 잠기게 되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다.
쒜에에엑-!
아자닉, 탄크리드, 지그, 카르시엘라까지.
아자닉은 검은색이다.
탄크리드는 초록색이다.
지그는 붉은색이다.
카르시엘라는 푸른색이다.
그들의 외형은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정신세계는 입체적이다.
자유롭다.
그들이 하늘을 지배하는 세계는.
“…….”
“아자닉, 아직도 삐쳐있어?”
검은 용은 주둥이를 삐죽 내밀었다.
“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
“건강한 토론! 반즈에서는 건강한 토론이라면 언제나 권장해. 싸움만 아니라면 말이지…. 맞지, 탄크리드?”
“…응.”
카르시엘라가 눈치를 살피며 분위기를 아우르자, 지그가 피식 웃었다.
“네 생각을 말해줄래, 아자닉?”
“작은 생명들은 어리석어.”
“어째서?”
“그들을 다스리는 건 우리인데도 신이라는 존재를 떠올리잖아? 정작 신은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말이야.”
“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뭐?”
“그들을 만든 건 우리가 아니잖아.”
“…….”
“첫 용께서는 용들에게 지식을 전하시고는 입을 닫으셨지. 그분께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어.”
“그게 신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잖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또한 아니지.”
지그와 아자닉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첫 용은 신을 보셨을까?”
“보셨을 거야. 지금 판데아와 고르고지아의 모든 생명의 탄생을 목격하신 분이니까.”
“있잖아… 그렇다면.”
아자닉은 묻는다.
“첫 용에게는 이 모든 게 처음일까?”
“…뭐?”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반신과 악의 화신이 탄생하는 것도… 전부 처음 있는 일일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자닉은 망설이며 입을 뗀다.
“혹시… 지금보다도 더 오래된 세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야… 이상하잖아. 우리는 첫 용에게 모든 걸 배웠어. 그럼 첫 용은 그 방대한 지식을… 누구에게 배운 거야?”
“……제법 매서운 통찰!”
“하핫! 정말?”
옆에 있던 카르시엘라도 감탄했다.
“아자닉! 뭐지? 뭘 잘못 먹은 거야? 어떻게 갑자기 똑똑해졌지?”
“난 원래 똑똑해!”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첫 용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이런 게 있었어.”
카르시엘라가 노래하듯 말했다.
“정적이 깨지는 날이 오리라.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결국에 나중에 알려준다는 거네?”
“아하하… 맞아!”
“첫 용 치사해….”
“맞아, 치사하셔….”
아자닉이 물었다.
“우리는 왜 태어나면서부터 수호의 의무를 짊어졌을까?”
“글쎄? 아마도 우리가 힘이 세니까?”
“우리보다 힘이 센 종족들도 깨어나고 있잖아.”
“우리가 지혜로우니까?”
“우리도 모르는 게 많잖아. 조금 아는 게 많을 뿐이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판데아와 고르고지아를 지키는 걸까?”
“난 알아.”
조용히 있던 탄크리드가 입을 뗐다.
“우리가, 이 땅을 가장 사랑하니까.”
“…….”
“…이런.”
“맙소사, 탄크리드….”
지그가 비행 중에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했다.
“당신의 뜻이 옳습니다.”
“그… 당신의 뜻이 옳습니다.”
“왜들 이래… 나는 그냥 한 말이야.”
“아하하! 그 말을 하는 탄크리드 표정에 거짓이 없었거든. 맞아! 용이야말로 이 땅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지. 그리고 그 땅을 딛고 선 생명까지도.”
그들이 수학하는 반즈는, 토론의 끝에 모두가 인사를 나누는 전통이 있었다.
특히나 상대의 뜻에 감화된 자는 지그와 카르시엘라가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어야 했다. 그들은 격한 논쟁 후에 상대를 존중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문화였기에.
유연하고 다른 이들을 포용하는 마음가짐이었기에.
“나는 아니야.”
“아자닉!”
“나는, 사랑하지 않아.”
“…….”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치지 않는 저들을, 사랑하지 않아.”
탄크리드가 배시시 웃었다.
“배우게 될 거야.”
“…뭐?”
“첫 용께서는 감정만큼은 가르치지 않았어. 우리 스스로 깨달은 거야. 새로 태어난 존재들과 부딪히면서. 아자닉, 너도 그렇지 않을까?”
“…….”
아자닉은, 탄크리드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직 그의 안에 미움이 싹트지 않았기에.
동족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았기에.
“네 말대로 되기를, 바라야겠지.”
“응.”
지그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다른 문제도 있잖아.”
“아….”
“새로운 용들이 태어나지 않은 지 좀 되었지?”
“…응.”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세대인 건가?”
“지그!”
“이크… 그냥 멋있어 보여서 한 말이야. 화내지 마.”
카르시엘라가 씩씩대며 지그에게 치댔다.
“아악! 추락해? 추락한다?”
“추락해버려. 흥.”
“하하하… 걱정하면서 뭘…. 아자닉, 고룡들이 말해. 우리의 시대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라고.”
“…나도 들었어.”
“그때가 왔을 때, 이 땅이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버려지지 않도록 우리는 작은 생명을 열심히 가르쳐야만 해.”
지그가 웃었다.
“그때가 오더라도, 아쉽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이 땅을 떠나게 되더라도… 너희와 함께였으면 좋겠어.”
“으아악… 너무 싫어.”
“카르시엘라, 이리 와.”
“저리 가!”
아자닉이 피식 웃었다.
그 짤막한 웃음이, 희망을 품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자닉.”
“지그… 지그으으!”
“먼저 가서… 미안.”
“가지 마라, 지그!”
용의 시대가 저물 때, 지그는 죽었다. 대륙을 휩쓴 전쟁의 여파였다.
푸우욱…
칼날이 누군가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고마워, 아자닉. 그리고, 탄크리드….”
미쳐버린 용 카르시엘라는 한때 동료였던 아자닉과 탄크리드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대지를 수호해야 한다는 그들의 사명이 동료를 죽음으로 몰았다.
“…탄크리드.”
“…….”
“너는 아직 이 땅과 생명을 사랑하는가?”
탄크리드가 쓰게 웃었다.
“응.”
아자닉은 어느 날부턴가 표정을 잃었다. 그가 있을 곳을 잃고 부모를 잃었으며 마침내 친우마저 잃었을 때다.
“나는 아니다.”
“…아자닉, 작은 생명들에겐 시간이 필요해. 그들에게 시간을 줘. 분명… 그들은 증명해낼 거야. …자신들의 가치를.”
“나는, 신이 될 것이다.”
“아자닉!”
“신이 되어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다시… 이 땅에 군림할 것이다.”
* * *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난… 나는….”
쇠 긁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불길에 타오르는 아자닉.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을….”
그의 날개가 지나는 곳엔 화염과 광풍뿐이었다. 모두에게 미움받으며 하늘을 날았다.
“쫓아!”
“크아아아악-!”
화르르륵…!
협곡에 만개한 불의 꽃에 휩싸여 바닥으로 추락하는 자들.
저리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죽었단 말이냐, 탄크리드.
아자닉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견디며 비행했다. 그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불로 몸을 태우면서도 똑바로 날아가는 그의 정신은….
“…이건 증명이다.”
아자닉은 마침내, 날개 협곡의 마지막 바람의 문을 빠져나갔다.
“내가 옳았다, 탄크리드여.”
콰아아아아아아앙-!
날개 협곡을 빠져나오는 순간, 아자닉은 두 가지 행동을 취했다.
기이이잉…
아트로밀의 힘을 끌어올려 몸에 붙은 불을 끄고 상처를 치유했다.
콰아아아아아-!
그리고, 불덩이를 뿜어 마지막 문을 부쉈다.
예상되는 결과는 여럿이지만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로써, 추격자들을 떨쳐냈다.
피이이이이이이잉…
5문을 통과하며 바람의 힘을 받은 아자닉이 가속하며 날아갔다.
연방에 다다르면, 그는 마침내 신이 될 것이다.
끝이다.
긴 인고의 시간이.
오랜 세월을 견뎌낸 그가 마침내 승리를 거두리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자닉은 믿지 못했다.
한쪽 날개가 무언가에 꿰뚫렸다.
크르르르…
“기다리고 있었다, 아자닉.”
“…탄크리드여. 너는 아직도 내가 틀렸다고 말할 셈이냐.”
탄크리드의 딸 탄투이누가 아자닉의 날개에 숨결을 적중시켰다.
“심판의 날이다.”
탄투이누가 상처를 회복하려는 아자닉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콰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지직!
5문이 부서졌다.
이건, 4문이 부서진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쿠루루룩…
– 협곡에 갇혀 있던 바람이 흩어질 것이다. 휩쓸리면 죽을 테니, 목숨을 보전하라.
쿠파의 몸을 빌려 카이로가 말했다. 3문과 5문 사이에 갇혀 있던 바람이 5문이 파괴되면서 모두 흩어질 것이다.
일부는 다시 날개 협곡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그대로 날아가 어딘가로 떠다닐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아자닉의 황혼 비행은 끝이 났다. 그는 날개 협곡을 통과해 가속하여 연방으로 향할 것이다.
날개 협곡에서 풀려나온 바람은 그의 추격자들을 따돌리게 도울 것이다.
부서진 5문은, 아자닉 외에 누구도 바람의 도움을 받아 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이다.
“크으으….”
“이제… 정말로 끝났군.”
불덩이를 피해 외벽에 숨은 자들은 날뛰는 바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읽을 수 없었다.
날 수 없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
멀어져가는 아자닉에게 문제가 생겼는지, 붉게 달구어진 빛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마지막 기회.
이건, 아자닉에게 다다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모두 망설였다.
폭풍 속에서 날아오를 자는 없다.
그 시작과 끝이 죽음임을 모르는 이 또한 없다.
그렇기에, 다시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다시 날아오르는 이가 있었다.
후우웅…
후우우웅…
“저건….”
아자닉이 5문을 붕괴시킬 때, 휩쓸려 추락했던 탄시아였다.
비행경의 한쪽 렌즈가 깨져 볼품없는 모습.
팍-!
강설과 탄시아는 비행경을 내던졌다.
기이잉…
파아아아아아아앙-!
치고 나가는 탄시아.
폭풍을 꿰뚫은 살처럼, 흔들리지 않고 상승한다.
드드드드드…
협곡의 바람이 그들의 상승을 저지했지만, 소용없었다.
“따라잡는다아아아아!”
콰르르르릉-!
검은빛이 하나의 선을 만들며 천공의 용에게로 향했다.
– 정말로… 아름답구나.
탄시아가, 탄크리드가 남긴 수호의 의지가 시대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은 북부 어디서도 보였다. 화려한 밤이다. 모두 희망을 기도하라.
라진이 지키는 스푸노 화산에서도.
데키가 머무는 영산 호루스에서도.
발두가 있는 조룬 산에서도.
그리고 얼어붙은 연방에서도.
파아아아아앙-!
가속하라.
밤하늘엔 온통 별천지.
상승하는 검은 유성.
파아아아아앙-!
가속하라.
새벽이 오고 있었다.
새로운 새벽이 오고 있었다.
파아아아아아앙-!
가속하라.
강설의 시야에, 아자닉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마침내 다다른 것이다, 그에게.
“아자니이이익!”
아자닉이 탄투이누의 목을 물어뜯으며 내팽개쳤다.
후우우우웅…
탄투이누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밑으로 추락했다.
화르르륵…
“오라, 탄크리드의 뜻이여. 나는 관철할 것이다.”
전신의 아트로밀이 푸르게 타오르며 그의 몸을 부풀게 했다.
“피해! 탄시아!”
“…아니, 피하지 않을 거야.”
탄시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벌써 아자닉이 내뿜을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차피 한 번의 여유밖에 없는 호흡이었다.
흐으으으읍…
볼을 부풀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
– 자, 여기. 입을 쩌억 벌리고….
– 쩌어어억….
– 기합이야, 기합. 쏟아버려.
– 쏟아버려?
– 말했잖아. 네가 가진 모든 걸 쏟아버린다는 마음으로 내뱉으라고.
원시 비룡 막투스의 가르침.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아자닉의 숨결이 눈이 멀 것 같은 빛을 만들어냈다.
토해내야 한다.
반드시, 맞서야 한다.
가진 모든 힘을 쥐어짜내 탄시아가 숨결을 내뱉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은하수가 퍼져 나온다.
분노의 불길을 잠재울 별의 강이.
– 약해… 네 마음은 고작 그 정도냐? 애송이네.
– 애송이 아니야.
– 그럼 더 크게!
탄시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계.
막투스는 숨결과는 거리가 먼 사내였다. 하지만, 사랑을 알았다.
그가 탄시아의 모습을 본다면 어디선가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옳지, 좀 나아졌다.
사아아아아아아아…
아자닉의 숨결이 은하수에 밀려났다.
사르르르…
황홀한 불길이, 아자닉을 감쌌다.
시야에 탄시아와 강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뻔했다.
후우웅…
아자닉보다 높게 몸을 띄운 그들.
강설이 아자닉을 향해 말했다.
“용이여….”
이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 용이여…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탄크리드가 잠든 날.
그때도, 이 둘이었나.
– 네놈은 추락할 것이다.
강설이 비탄의 창날을 아래로 향하여 돌진했다.
“추락하라.”
쒜에에에에엑-!
콰르르릉!
검은 번개가 가슴을 꿰뚫었다.
“…그래.”
아자닉은 하늘을 바라보며 추락했다.
그의 날개는 기능하지 않았다.
그 어설펐던 사내와 트롤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분노도 희미해져 갔다.
지금까지 무엇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모든 것을 잃게 된 지금,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문득, 그의 동지들과 함께 비행했던 하늘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니,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질 테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일생의 대적 카-잔의 웃음소리와 탄크리드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떨어진다.
추락한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추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탄크리드….”
저들은 증명했다.
스스로 이 땅에 설 자격을.
그래, 당신의 뜻이 옳습니다.
“피해에에에!”
탄투이누가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삐이이이이이-
아트로밀 폭탄이 몇 초 내로 터질 것이다. 아자닉은 물론이고 그와 싸운 상대들도 무사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날개 협곡까지 폭발의 여파가 미칠 수도 있었다.
아자닉은 흐릿해져 가는 동공을 하고서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올렸다.
기이이이이잉…
그의 몸에 남은 마지막 용의 피가, 마법을 부릴 것이다. 그가 일생 동안 펼쳐왔던 그 어떤 마법보다 대단한 마법을.
아자닉이 피식 웃었다.
탄크리드, 그대가 이겼소.
그대의 뜻이.
그대의 사랑이.
“마지막만큼은… 사랑해보리다.”
마치 태초로 돌아가듯, 아자닉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후우우웅…
동그란 구체가 아트로밀 폭탄을 감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가히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었다.
온 초목이 흔들렸으며 충격으로 산이 뒤흔들렸다.
후우우우우우우웅…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푸른 꽃잎 같은 먼지가 비처럼 퍼졌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니.
기도를 멈추어도 좋다.
마침내, 새벽이 도래했다.
[천공 용 아자닉의 황혼 비행을 저지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왕이 곧 결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