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98
제497화
광기 상인 쟈넷은 자신이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오를 수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고된 나날이었다.
초신성 출신이기에 언제나 미심쩍은 눈으로 의심받아야 했고 그녀가 이 길을 선택한 후부터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온갖 진상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도 골치 아팠지만, 정이 든 고객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따금, 다정한 사람인지 냉혹한 사람인지 헷갈리곤 했다.
평상시에는 그 누구도 그녀를 다정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약해지는 때가 있었다.
그녀의 출신 행성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이들을 볼 때다. 거래를 트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때도 멍하니 그들을 애도했었다.
한데, 최근에 거래를 이어가던 상대가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행성이 초신성 단계로 접어들면, 모든 가능성을 토해낸다. 그리고, 최후엔 사멸한다.
아직 그 가능성과 빛이 가득한 행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속단이었던 것이다.
“신들이란… 이기적이군.”
그녀 역시 초신성 출신.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자신이 경험한 일에 유달리 공감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쟈넷의 연민 또한 그렇다.
그녀는 술잔을 빙글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알아봐야겠어.”
“우으… 녜?”
비싼 고급 안주를 입에 때려 넣고는 웅얼거리는 쟈넷의 후배 오리아.
“선배… 아니죠?”
“…….”
“초신성에 관심을 가지는 건….”
빙긋 웃는 쟈넷.
하트는 이미 술에 떡이 되어 귀가했다. 심판관의 대지, 그리고 그곳 신도에서 오리아와 나누는 은밀한 사담이다.
“행성의 멸망에 관심을 가지는 건 무척 위험하다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생명은 대부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지.”
“그거랑 이거는 다른 거잖아요. 호기심은 지옥의 문턱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요?”
“못 들어봤는데?”
“제가 방금 한 말이에요!”
“그럼 호기심이 반대로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는 말은?”
“어… 그런 게 있었나요?”
“이건 내가 방금 한 말이야.”
오리아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했다.
“…절대 설득 안 당하실 거죠?”
“응, 네가 포기하고 응원할 때까지.”
“선배 원래 이런 분 아니시잖아요.”
오리아는 멈칫했다.
과연, 쟈넷의 원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초신성 출신.
겉으로는 냉혹하고 세상사에 달관한 듯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만을 보고 판단했을 뿐.
“어… 맞나?”
“하하….”
“아무튼… 미친 짓이에요. 위험한 관심은 금세 들킬 거라고요! 심판관님은 별들의 명운에 관심을 가지는 걸 극히 싫어하는 거 아시잖아요.”
“들키지 않으면 되지. 알잖아? 나 꽤 잘나가.”
퍼뜩, 오리아는 떠올렸다.
쟈넷이 어떤 위치에 올라 있는지를.
“설마… 아카식에서 알아보려는 거예요?”
“그편이 기록도 남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거기까지 추론해냈어?”
“난 몰라! 나중에 붙잡히면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주세요.”
“관련인으로 소환당할 거야. 손톱도 미리 뽑아두는 게 좋을 거고.”
“으아아아악!”
“아하하… 농담이야, 그런데 우리 친한 거 아니었어?”
“그야… 신도에서 좋은 곳에 데려가 주실 때는 친하죠.”
“내가 끌려가면?”
“다른 술친구를 찾아야겠죠?”
“앞으로 신도에 올 일은 없겠네.”
오리아가 인상을 썼다.
“진정하고 그거 내려놔요.”
“아무튼,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야. 하트는 분명 길길이 날뛸 테니까.”
“하트가 선배 아끼잖아요. 나중에 고백하면 시원하게 걷어차 주세요.”
“후후… 생각해보고.”
“제가 선배 좋아하는 거 알고 있죠? 부디 죽지 마세요.”
쟈넷이 오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죽으면 심판관이 범인이야.”
“아아악! 안 들린다, 안 들려! 하나도 못 들었지!”
씨익 웃는 쟈넷.
“갈게, 오리아.”
“선배, 조만간 또 봐요. 안전하다 싶으면… 얘기도 좀 들려주시고요.”
“그럼 위험해질 텐데?”
“호기심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면서요?”
둘은 미소를 교환했다.
* * *
그리 바쁘지 않은 오후, 쟈넷은 신도에서도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후우….”
겉으로 보기에도 웅장한 건물이긴 했지만, 그 내용물의 가치는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녀가 심판관의 힘이 미치는 우주에 발을 들인 이상, 이것보다 위대한 유산은 또 없을 것이다.
“아카식….”
관념의 역사관.
우주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또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
압도될 만큼 웅장한 크기이긴 하지만, 과연 이곳이 심판관의 힘이 미치는 우주의 모든 기록을 담을 만큼 거대한가?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볼 생각이다, 쟈넷은.
마름모꼴의 가면을 쓰고, 축 늘어지는 의복을 입은 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마치 신과 같은 힘.
아니, 신도에 거하는 이들은 애초에 변방의 신들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그들도 심판관의 율법을 거스를 수 없다. 심판관의 지배하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마치 인간처럼, 포식자에게 몸이 움츠러든다.
“쟈넷 님이시군요.”
“오… 나를 아나요?”
“7대 거상을 모르면 이곳을 지키고 있을 수 없죠.”
7대 거상.
그녀가 아카식의 출입 권한을 받은 이유 중 한 가지.
엄청난 광기와 신앙을 교역으로 벌어들이는 자들. 그중에 쟈넷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은 심판관께서 아카식의 출입을 허용한 몇 안 되는 상인입니다.”
싱긋 웃는 쟈넷.
상대의 매서운 눈초리가 그녀의 미심쩍은 부분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쟈넷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놀러 나온 것처럼 보였다.
“출입을 허가합니다.”
스르르륵…
아카식으로 진입하는 쟈넷.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이곳에서 정보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다행히, 아카식에서 무엇을 들여다보았는지는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판관조차도 말이다.
이건, 아카식의 탄생과 긴밀하게 관련된 특성이었다.
별들이 폭발하는 힘으로 만들어진 이 관념의 도서관은 내부에 소우주를 품고 있었다.
즉, 우주 안에 또 다른 우주가 있는 셈이다. 모든 기록이 담겨 있는 대신, 무엇이 오고 가고 무엇이 쓰여 있는지는 호기심을 가진 자만이 알 수 있다.
너무도 방대한 양이기에, 대부분은 타인이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아카식의 기록 재생 장치에 손을 올리는 쟈넷.
그녀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던 땅, 그러나 이제는 초신성이 되어버린 비운의 행성을.
쿠궁…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아카식이 진동했다.
그녀만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소우주를 품은 아카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상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카식이 진동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이 우주에, 그녀만을 위한 공간이 탄생한다.
드드드드드드드드…
쿠구구구…
낡은 종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
“도서관…인가.”
수천, 수만 권이 넘는 장서가 가득히 쌓인 거대한 도서관.
고작해야 마지막 불꽃을 태워 가는 먼 우주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행성일 뿐인데, 활자로 기록되었을 것이 분명한 역사가 이렇게 방대하다니.
“흐음….”
역시,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쟈넷은 판데아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그러니까 먼지 하나에서 시작된 부분이 수록된 책을 찾으려 했다.
시작.
시작을 찾아야 했다.
툭…
툭…
책의 표지를 살폈다.
“몇 권인지 적혀 있네.”
그렇다면 더 간단해진다.
1권을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표지에 몇 권인지가 적혀 있고, 그것은 순서대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책장이 무척 많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규칙이 있을 테니까.
책장이 배열된 규칙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첫 번째 역사가 있을 것이다.
되짚어가면 된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396…
395…
394…
“…안으로 말려드는 구조인 건가?”
책장의 순번이 안쪽으로 향할수록 1과 가까워졌다.
나선형의 미로를 탐험하는 느낌.
실제로 탐험이라 부를 만했다.
도서관의 규모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방대했고 어떤 신비를 품고 있는 듯했다.
“오늘… 전부 밝혀드리죠, 찝찝한 건 질색이니까.”
그녀가 판데아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강설.
뭔가 비밀을 가진 것처럼 움직이는 그에게 흥미를 느꼈던 것이 시작이었을 테다.
흥미는 식지 않았다.
도리어 뜨겁게 이어져갔으니.
그가 걷는 길마다 마주하는 인물들의 면면, 그리고 뭔가 꺼림칙한 이야기까지.
쟈넷은 얼른 이 흥미를 떨쳐버리고 싶었다. 만일… 떨치지 못한다면 이 흥미가 언젠가 그녀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아니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102…
101…
100…
99…
그녀는 책장을 지나칠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똑같은 표지.
권수만 다른 책들이 가득한 책장이 계속해서 나왔다.
문명이 이룩한 역사는 보통 책 한 권으로 표현이 가능했다. 인물의 행동만이 표현될 뿐이지 생각이나 말 등이 따로 기록되진 않기에.
물론, 판데아가 여러 문명이 탄생하고 끝내 져버린 행성이긴 했지만 판데아보다 훨씬 거대하고 오래된 행성도 이만큼의 책을 만들어내진 못할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쟈넷은 떨림을 바로잡으며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빙글 돌아가는 나선.
모든 역사가 탄생한 지점.
마치 은하와도 닮아 있는 도서관의 구조에 그녀는 얼굴을 굳혔다.
3…
2…
1…
마지막 책장.
그곳에 비로소 도착한 쟈넷은 책장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 책을 꺼내 들었다.
스으윽…
그녀는 책을 들고 그 내용을 읽어 나갔다.
판데아 행성에 생명이 둥지를 트고 번영을 시작한 부분부터는 완벽하게 몰입했다.
행성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모든 역사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번영하다가 웃풍에 꺼져버린 촛불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만다.
“…카곤.”
잊힌 역사도, 아카식을 피해갈 순 없었다. 쟈넷이 판데아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이유다.
아카식은 모든 것을 기록한다. 어떤 몰락한 문명도 번영의 순간을 드러내기 마련.
관념의 역사관 아카식은 의도 없는 기록가이며 호사가이다.
쟈넷은 문득, 책을 읽는데 가면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면을 품에 집어넣고 긴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책의 내용을 차례차례 살폈다.
역사상 첫 번째로 번영했던 제국.
그러나 우르를 제외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
“아하하… 이때구나.”
우르가 시대 유성 에라곤과 접촉하며 마법을 깨닫고 그것을 인간과 나누었다.
그것이 카곤의 시작이었으니.
그리고 이어지는 역사들.
쟈넷은 눈을 고정한 채로 떨었다.
“…뭐?”
카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 모든 것이 기록된 1권을 든 채로 멍하니 섰다.
“자, 잠깐….”
그 내용도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온갖 문명의 역사를 아는 쟈넷이 감당하지 못할 비밀은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 그는 선택했다.
한 문장.
이 한 문장이 갑작스럽게 반복되기 시작했다.
–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그는 선택했다.
……
무엇을?
“아니… 아니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팍-!
그녀는 어차피 같은 문장이 반복된 책을 집어 던지고 책장의 아무 책이나 꺼낸 후에 그 내용을 확인했다.
– 그는 선택했다.
역시나, 똑같은 문장으로 가득 채워진 책.
그녀의 시선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책장으로 향했다.
타다다다다닷-!
나선형의 미로를 빠져나간다.
아니, 빠져나가려 했다.
무작위 순번의 책장.
무작위 순번의 책.
– 그는 선택했다.
오직, 같은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시간선 붕괴!”
시간선이 무너졌다.
역사를 고정하고, 사건을 확정 짓는 시간선이.
판데아의 시간선만이 그들이 속한 우주의 시간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두려운 건…
“이건… 의도한 거야.”
누군가 같은 역사를 반복해 아카식의 기록에 부하를 준다.
소우주의 힘을 가진 아카식이라 할지라도, 영원을 기록할 순 없다. 시간 붕괴로 압도적인 물량의 역사를 아카식에게 보여줘 아카식이 이상한 문장을 반복해서 기록하게 된 것.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런 짓을?”
탓-!
그녀는 머리칼을 뒤로 흩날리며 내달렸다.
나선의 미로를 빠져나가기 위해.
가면을 벗길 잘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걸렸다.
“히… 히히히히히….”
이 반복되는 시간의 의도를 깨달았기에.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내달려도.
얼굴에서 분비되는 액체로 아름다운 얼굴이 범벅이 되더라도 달렸다.
콰아아아앙-!
그녀가 부순 것은 도서관에 들어올 때부터 보였던 문.
“하하… 하하하….”
해방이 아니다.
“감추려는 거야…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그리고….”
그녀는 전율한다.
“무엇을 하려는지를.”
자신에게서.
관찰자에게서.
신들에게서.
아카식에게서.
그리고, 머나먼 별의 심판관에게서.
상위 신조차도,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막을 수 없다.
쟈넷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있었던 도서관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새로운 도서관 우주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애초에 보았던 도서관은 그 시작일 뿐, 이곳엔 영원이 담겨 있었다. 아카식은 아직도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가 보내는 행성의 가짜 역사를, 그 반복되는 기록을.
저벅…
저벅…
스윽…
그녀는 책 한 권을 꺼낸다.
– 그는 선택했다.
쟈넷은 공포를 느꼈다.
그래.
호기심은 역시나, 지옥의 문턱이다.
그녀는 한 발짝 내디뎌, 지옥에 발을 들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