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99
제498화
시대 전쟁 이후, 세상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사망자를 모두 헤아릴 수 없기에,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 많은 생명이 죽거나 짓밟혔다.
산이었던 곳은 허허벌판이 되고, 강이 있던 곳은 말라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 산이 생기고 강이 탄생했다.
새로운 세계의 탄생.
이것은 불사가 바라던 세상인가.
아니면 그조차 거쳐 가는 세상인가.
휘오오오오오…
적막한 산 아래에 세워진 탑.
아직도 시대 전환의 여파로 군데군데 문제가 생겨 보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탑의 정상에, 여섯이 모였다.
여섯이나 되는 인원.
하지만 그들의 평가는 달랐다.
“이제 여섯뿐이군.”
“조디악은 무슨… 푸하하하하! 별자리가 반으로 줄어들었지 않나?”
“사자를 포함한 여섯 탑이 붕괴했다. 전술 병기 때문이겠지.”
“…천둥.”
조디악의 전술 병기 천둥.
평상시의 마탑은 거대한 발전소와도 같았다. 지식의 탑은 대지의 마력을 받아들여 그것을 비축했다.
조디악의 설립 이후, 천둥이 사용된 역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이 중립을 표방했을 때 딴지를 걸어온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시대 전환의 때에, 이 천둥이 대규모 마력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낙뢰가 유도되는 것처럼, 마력 재앙이 전술 병기를 보유한 탑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그 결과는….
“희생자들은 전부 수습했고… 남은 인원은 각지로 흩어졌지. 실전된 마법 또한 상당해.”
“살아남은 제자들이 있어서 다행이군.”
“그래, 시간이 우리 편이 되어준다면 어렵지 않게 복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사자궁은….”
말을 잇지 못하는 마법사.
“사자는 전부 죽었다. 한 명도 남김없이.”
“으음….”
재앙이 벌어진 후 시간이 꽤 흘렀다. 쓰라린 상처이기에 아직도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침묵하게 될 뿐이다.
사실, 사태 이후 여섯 탑주가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판데아를 휩쓴 재앙의 원인을 파악한 인원이 많지 않아 모두 혼비백산했다.
그리고 닥쳐온 재앙을 막지 못한 조디악을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고 더 나아가 조디악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거짓 정보가 널리 퍼져 홍역을 앓기도 했다.
“차라리 미치광이들이라면 나았겠지.”
“모두 가족을 잃었을 뿐이다.”
그들이 그저, 괴로워하는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조디악을 침묵하게 했다.
“사자궁의 마법은 드물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마법이었는데 말이지.”
“안타깝게 됐어… 천벌을 짊어진 탓인가.”
“…….”
전략 병기 천벌.
천벌 역시 사용된 적 없는 무기이다.
사자궁이 책임을 지고 관리하던 물건 탓일까, 사자에게 다가온 재앙은 다른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고철이 된 천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군가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답하는 한 남자.
“천칭이 짊어지겠다.”
다섯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삐뚤어진 천칭 프래넌.
“재가동하려면 천문학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할 텐데?”
“천둥과 천벌은 조디악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재가동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니 짊어지겠다…. 음, 확실히 천칭의 자금 사정이 우리 중 가장 낫긴 하지.”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
천벌을 가진다는 건, 그만한 권한도 쥔 셈이지만 더한 책임을 떠안는 것이기에.
“나머지 천둥은… 차차 결정하는 걸로 하자고.”
“그래, 사용할 수 있는 천둥이 몇이나 되는지도 파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마 모두 하나씩은 떠맡게 되겠지. 큭큭….”
“오히려 그러는 편이 불만이 없겠군그래.”
평소,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낙천적으로 가져갔던 인물들이 많았던 조디악.
하지만, 이제 그들도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
“판데아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하루아침은 아닐지도. 어쩌면 징조가 있었는데도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기반 시설이 붕괴한 건 둘째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땅만 파헤치면 시체가 나올 정도니….”
“인구의 절반이 죽은 건가?”
“삼분지 일은 쓸려 나간 걸로 알고 있다.”
“끔찍하군.”
재앙을 당면한 자들의 반응은 뻔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군.”
“그러게, 긴장한 상태로 지켜보았는데….”
“아마도 연방이 붕괴한 것에 더해 칸의 행보가 예상과는 달라 다행이었지.”
동방의 대제국 칸.
재앙을 예견한 주술사들과 풍수사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재앙 직전까지 대비했던 곳이다.
그 결과, 그들은 축적된 국력을 온존할 수 있었다.
“영토 확장에 나설 줄 알았건만… 오히려 질서 수호에 앞장설 줄이야.”
“지혜롭고 어진 공왕들 덕이지. 홍천이 말년에 좋은 일 하고 갔군그래.”
“우리의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군.”
반면에, 다른 양상을 보인 국가도 있었다.
“바라노아는 왜 그 모양인 건지….”
“최악이지, 그토록 최악은 없을 거야.”
“신성 국가는 무슨… 욕망에 충실하잖아?”
“연합 전선을 구실로 약소국을 집어삼키고 있어.”
“그 광신자들에게서 어찌 그런 힘이 흘러나오는 걸까?”
서쪽의 성국 바라노아는 기회를 잡고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국가를 의인화한다면 욕심 많은 뚱보처럼 표현될 것이다.
회담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사사로운 안건부터, 중차대한 안건까지.
다만, 집중하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프래넌.”
“아….”
“천칭께서는 우리가 앞으로 어찌해야 한다고 보시나?”
“내 의견이 중요한가?”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걸.”
산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가… 더 높아졌군요?”
“…….”
“푸하하하하! 아즈란이라도 되려는 거냐? 다 늙어빠져서는 깨달음이라도 얻은 거냐고?”
프래넌은 싱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느꼈다.
그에게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힘을.
제왕과도 같은 마력.
그리고 기세.
사실 프래넌은 본인도 이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알카트론 이후, 그의 경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졌다. 더군다나 그의 마법은 마령 연구와 짝을 이룰수록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데, 이 마령 연구 또한 한층 진일보했다.
“앞으로 우리 조디악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오늘 결정해야 하네.”
“마법 공학에 관심 있는 나라들이 우리를 포섭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어. 개중엔… 더러운 수작도 있지만.”
“2년 전의 일이 그들에게도 충격이었던 거지.”
“막을 수 있었던 일인가?”
“아니, 막지 못했을 게 뻔하지만.”
프래넌이 책상에 양팔을 걸치고 손바닥을 모아 입 가까이 가져갔다.
“시대가 불운하다.”
“…….”
“마법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마법사로 태어나 마법사로 살다가 마법사로 죽을 자들에게 주어진.
“인류는 더 나아갈 수 있는가? 지금보다도 마법이 발전한다면, 무언가 바뀌는가?”
“…….”
“더 세련된 마법, 더 정교한 마법, 더 강력한 마법은… 이제 소용없을지도.”
결정해야 한다.
마법의 발전이 전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발전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그들 역시 다른 가치를 좇아야 하는지.
여섯은 토론했다.
서로와 싸웠다.
중요한 일이기에 찝찝한 것은 모두 털어내야 했다.
마침내 모든 것을 토해냈을 때, 길은 하나가 되었다.
“책상에서 멀어질 때가 됐군.”
“프래넌이 주창하게.”
한쪽 눈에 안대를 쓴 노인이 히죽 웃었다.
“조디악의 중립은 오늘부로 끝이다. 이제부터 우리 마법사는….”
프래넌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에 힘을 보태겠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전부 무시하고….”
그들의 결심은 다음 날이 되면 온 대륙에 퍼질 것이다.
“짓누를 것이니.”
푸드득…
프래넌이 창가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그랬다.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살아남았는지.
그의 시선이 날아가는 새의 꽁지에 닿았다.
푸드득…
푸드득…
새가 쉬지 않고 먼 길을 날았다.
새의 시선은 또 다른 새에게로, 또 그 새에게서 또 다른 새에게로 옮겨간다.
마침내, 한 마리 새가 외딴 고지에 둥지를 틀었다.
홀로 떨어진 작은 나무집 앞 나무에.
새의 시선이 집에서 나오는 남자를 담는다.
“후우….”
입김을 내뱉는 남자는, 용의 눈을 했다.
철그럭…
철그럭…
그의 곁에는 오직 두 기사만이 보였다.
어린 용도, 주술사도 보이지 않았다.
* * *
팟-!
팟-!
폴짝폴짝 뛰는 누군가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대륙의 끝에 솟아오른 거대한 산, 발제른.
발제른은 때로는 너무 춥고 때로는 너무 더웠으며 때로는 너무 외로웠다.
파아앗-!
콱-!
“흡….”
절벽에 가까운 지형도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자.
암벽을 어떻게든 붙잡아 길을 찾는다.
겉모습은 로브처럼 보이는 거적을 뒤집어썼기에 제대로 분간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덩치가 매우 컸다.
후루룹…
수도자는 산에 존재하는 샘에서 목을 축였다.
우우…
우우우…
산짐승들이 다가와 그의 곁에서 함께 물을 마셨다.
수도자의 품에선 약초 향이 흘러나왔고 기운 또한 매우 편안했다.
“목이 말랐나 보구나.”
스윽…
스윽…
수도자가 산짐승의 목을 쓸어넘기자, 수도자를 몇 차례 혀로 핥고 급하게 사라지는 짐승들.
쿠웅…
쿠우우웅…
“…저것 때문이었나.”
산에는 마물 역시 존재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정령이나, 야생 오우거들까지.
수도자에게 이들과 대적할 시간은 없었으니, 야음을 틈타 그들을 피해 이동했다.
팍-!
푸스스…
정상 직전에 붙잡은 암벽이 부서져 내려 위험했지만, 수도자는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고 버텼다.
다시 차근차근, 정상으로 올랐다.
“흐읏… 후….”
상쾌하고 강렬한 바람이 그의 몸을 훑었다.
밤이었으나 주변은 어둡지 않았다.
곧 아침이 밝을 것처럼 보였다.
그때, 수도자에게 내리꽂히는 음성.
– 이곳까지 도달하다니, 평범한 자가 아니구나.
“당신은….”
– 나를 만나고자 한 것이냐?
수도자는 양손을 합장하고 말했다.
“의문이 생겨 답을 얻고자 이곳을 찾았습니다.”
– 수도자로군. 너와 같은 이들은 많았으나 이곳까지 도달한 자는 몇 없었다.
음성에서 느껴지는 박력은, 압도적이었다.
– 좋다, 얼마든지. 필멸의 고민은 나에겐 유희와도 같다.
“우선… 하나,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시대에 적응해 본래의 제 야망을 바꾸어야 합니까?”
– 어리석은 질문이다. 네 목표를 좇아 시대가 바뀌게 하라.
“하나, 모든 자연이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원신께서는 나서시지 않는 겁니까?”
– …….
수도자의 질문에 낮은 숨을 토해내는 상대.
이로써,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콰득…
콰드드드드득…
산의 정상에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곰이 나타났다. 그 크기가 쉬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흉악했으며 기세는 과하게 흉포했다.
산의 원신 그아몽.
거대한 바위 곰이다.
산만큼 거대한 자가 나타났다.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낼만큼 엄청난 기세.
– 대지는 신음하고, 하늘은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
“…이 모든 게 자연스럽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러하다.
“하나, 본디 섬김을 받는 존재는 책임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 책임? 나를 힐책하는 것이냐?
“의문일 뿐입니다.”
그아몽은 답했다.
– 책임 따위는 없다. 탄크리드가 추락한 이후, 대지는 이제 나 그아몽의 것이니….
“그렇군….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 그것이 네 마지막 질문이어야 할 것이다. 네가 나의 잠을 깨워 허기를 만들었으니, 나 또한 네게서 보답받을 것이다.
“이번 원신제에는…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 원신제라… 물론이다. 먹음직스러운 제물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두겠지. 대답이 되었느냐?
“충분하다.”
– 너는 불경한 자다. 그러하지 않은가?
“그아몽, 널 만나고 나서 확실해졌다.”
– 무엇이 말이냐?
수도자는 투쟁을 드러낸다.
“나의 야망이, 옳은 일이라고.”
– …야망?
“나의 야망이 곧, 많은 것을 바로잡으리라고.”
수도자는 이 거대한 자를 보고도 위축되지 않았다. 도리어 화를 냈다.
“너의 대답은 틀렸다. 넌 우리에게 섬겨질 자격이 없다.”
– 너희는 그것을 결정할 수 없다. 받아들일 뿐이지.
“그렇다면 싸울 뿐이다.”
그아몽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아니, 기가 찬 것이다.
– 재밌군.
으지지지지지직…
바위 곰이 일어난다.
거대한 재앙이.
– 감히 산에게 대적하려 하는가!
어리석은 자를 꾸짖는 듯, 일갈하는 그아몽의 앞에 선 수도자.
“산에게 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르윽…
로브를 벗자, 바람이 로브를 낚아채 갔다.
빼곡한 근육이 드러난 수도자.
그의 정신보다도 위대한 육체가 그곳에 있다.
또 하나의 산이 서 있었다.
쟈마드였다.
대지의 어머니 탄크리드의 유언.
– 이 땅엔 언제나 수호자가 필요하다. 쟈마드… 내가 사라지면 세계의 균형은 어긋날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청했다.
– 그대가… 이 땅의 수호자가 되어다오.
시대 전환 후 2년이 지났다.
많은 것이 전환점을 맞이할 때이다.
쟈마드 또한,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송곳니를 내비치며 악귀같이 웃는다. 그리고 말하니, 새 시대가 걸음마를 시작한다.
“내가 산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