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
제4화
스릉-
달의 기사가 검을 들어 올렸다.
잊힌 달의 신전 수호령.
‘월광 기사 카루나.’
잊힌 달의 신전 난이도가 악명 높았던 건, 지금 그가 서 있는 달의 광장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공략을 짜낼 땐 난감했었지.’
대체 이 게임이 주사위 굴려서 웃고 떠드는 게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밤의 춤 난이도는 상상 초월이었다.
카루나의 공격을 피해, 저 멀리 보이는 안전지대에 닿아야 하는 것.
문제는 카루나에게 단 한 번만 공격을 허용해도 달빛에 타 죽는다.
보스 몬스터가 즉사 패턴을 가진 끔찍한 구간.
– 오… 뭔가 있어 보이는 친구가 나왔어….
– 속보) 얘가 마지막 관문에 도달한 첫 번째 플레이어임 ㄷㄷ
– 우린 지금 인류의 최전선에 있어!
– 풀린 정보가 설정집뿐이네. 와 ㄷㄷ 능력치 뭔데!
– 이게 튜토리얼 모험이라고?
술래잡기나 마찬가지인 단순한 구조.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 단순함에 몇 가지 단순함이 더 더해져 있었고, 그 결과물은 단순함을 넘어 복잡함에 들어섰다.
‘발판….’
일전에 보았던 양보 없는 사자, 질투 많은 늑대, 포용하는 달, 유순한 양.
발판엔 전부 그와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다가 색까지.’
빨강, 파랑, 검정.
앞서 경험했던 모든 발판이란 발판은 다 튀어나와 있었다.
이런 발판을 밟으면서 카루나의 공격을 피해 저 끝에 도달한다. 초창기, ‘쉬운데?’라고 말했던 자들의 말은 카루나의 달빛에 전부 타 죽었다.
‘오랜만이야.’
그의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발판이 보입니다.]
1. 검은색 양 발판을 밟는다.
2. 검은색 늑대 발판을 밟는다.
3. 검은색 달 발판을 밟는다.
4. ……
그가 광장의 첫 번째 발판을 밟았다.
붉은색 사자의 발판이었다.
탁.
“오만하구나!”
발판을 밟는 순서는 당연하게도 이전 관문을 본 따 사자, 늑대, 달, 양의 순서였다.
이는 달의 광장을 지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유효했다.
발판을 밟는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카루나가 달빛을 충전해 플레이어의 말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색은 각기 다른 역할을 하지.’
붉은색 발판은, 카루나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면서 그의 갑옷에 씌워진 달빛을 한차례 걷어낸다.
지이잉-
강설이 붉은색 사자의 발판을 밟자 달빛으로 빛나던 카루나의 갑옷이 조금 빛을 잃었다.
‘붉은색을 족히 세 번은 밟아야 해.’
그래야 카루나의 방벽을 완전히 벗길 수 있고, 그를 굼벵이처럼 느리게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 페널티를 주지 않으면 카루나가 보무로 당당히 걸어와 말의 머리통을 베어버린다.
강설은 계속해서 발판을 밟아갔다.
탁.
붉은색 늑대.
탁.
붉은색 달.
지이이잉-
“지이그음… 모오오그으을 베어어어….”
붉은색 발판이 작동해 카루나의 힘을 빼앗아오는 만큼, 카루나의 말도 느려졌다.
그렇다고 그 움직임을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고, 강설이 빠르게 걷는 정도의 수준.
이대로 아예 카루나가 모든 힘을 빼앗겨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붉은색 발판은 아무리 연속해서 밟아도 3번 이상 효과가 중첩되지 않는다.
‘다음은….’
탁.
검은색 양.
철컹.
펑!
뻐어어억!
검은 발판을 밟자, 어디선가 발사된 철구(鐵球)가 카루나의 갑옷을 때렸다.
“흥!”
후우웅-!
갑옷이 조금 움푹 파였지만, 곧 달빛이 충전된 카루나의 갑옷.
새로이 달빛을 충전한 카루나는 다시금 원래의 기세를 되찾아 왔다.
철구는 그의 갑옷에 드리운 빛을 또 걷어내기 전까진 타격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거기 서라!”
후우우웅.
조금 거리가 멀어지자, 카루나의 몸이 달빛으로 홀연히 빛났다.
발검(拔劍) 자세를 취하는 카루나.
‘즉사 패턴이다!’
거리가 벌어졌다고 안심할 때쯤, 카루나의 즉사 패턴이 발동한다.
저 발검은 광장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뿐더러, 아무런 장비도 없는 모험가가 저 발검에 노출되면 그대로 짚단처럼 이등분된다.
대응할 방법은 단 한 가지뿐.
탁.
푸른색 사자 발판에 올라선 강설은 그대로 멈췄다.
그의 몸에 달빛이 깃들었다.
후우웅-
곧, 카루나의 즉사 패턴인 월광참(月光斬)이 광장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달빛은 강설이 있는 곳도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는 타죽거나 이등분되지 않았다.
“잘 있어라.”
푸른색 발판에 올라서면, 카루나의 월광참을 방어할 수 있었다.
강설이 다시 붉은색 발판을 밟으면서 카루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만한 자! 심판을 받을….”
탁.
탁.
탁.
“지이이이이 어어어어어어 다아아아아….”
이번엔 검은색 발판.
탁.
펑!
콰직!
카루나의 갑옷이 한눈에 보기에도 크게 흠집이 갔다.
하지만, 다시 달빛을 충전한 그가 강설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왔다.
‘신월보(新月步)….’
단순히 카루나가 월광참 원 패턴이었다면 그렇게 악명 높지 않았을 것이다.
플레이어는 카루나와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졌든 간에 늘 목숨을 위협받았다.
달빛을 회복한 카루나는 언제 타격을 입었냐는 듯 순식간에 기세를 회복하고 플레이어에게 돌진해왔다.
‘이때가 제일 위험해.’
검은색 발판의 철구를 얻어맞은 카루나가 다시 달빛을 머금고 덤벼드는 이때가, 플레이어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때의 카루나는 영원의 세계에선 주사위 눈에 보너스를 받았다.
어차피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한 대만 맞아도 타 죽으니 크게 의미는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그 무게가 달랐다.
‘무지막지하게 빠르다!’
탁.
탁.
“가아암히….”
하지만 붉은 발판을 밟으니 다시 꼼짝 못 하는 카루나.
그 광활했던 광장의 끝에, 강설이 거의 도달했다.
“노오오옿치이이지이이….”
강설이 검은색 발판을 힘차게 밟았다.
탁.
펑!
콰지직!
철컹!
철구에 왼쪽 어깨를 얻어맞자, 카루나의 견갑이 탈락했다.
“노오오오옴!”
강설은 어느새, 마지막 발판을 남겨두고 있었다.
카루나를 성공적으로 따돌렸고, 이제 저 발판을 디디고 넘어가면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지겨운 카루나도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을 것이고.
그의 발이 마지막 발판으로 옮겨갔다.
* * *
원래 잊힌 달의 유적은 앞서 돌파한 신들에 의해 설계된 완벽한 공략법이란 게 있었다.
새로운 말의 사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공략법.
공략을 성실하게 이행했을 시, 주사위의 눈이 최악으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카루나에게 피해를 받지 않고 마지막 관문을 넘어가는 게 가능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 모험을 통과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스노우맨의 말도 대부분 이 공략을 사용해 최종 단계의 보상을 획득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하다는 말만큼 허울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이제는 정체가 드러난 신들은 그것을 믿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인 강설은 미리 짜인 공략들에 대해 대부분 의구심을 가졌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잊힌 달의 유적을 카루나를 피해 이렇게 돌파하는 게 과연 정답인 걸까?
강설은 그런 의문을 품었고, 다른 신들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다.
돌아온 대답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 그건 위험하잖아. 말이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 그렇게 되면 패턴이 추가되는 건데 뭐하러 그 고생을 해?
–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그때의 강설은 신들에게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신들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은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강설은 곧 다른 이들에게 밝히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공략을 시도해 보았다.
“이것 봐, 되잖아.”
일단, 방법은 옳았다.
* * *
우뚝.
강설은 마지막 발판을 밟으려다 말고 광장으로 되돌아갔다.
“놓고 갈 뻔했네.”
광장을 돌파한 보상은 훌륭할 것이고 앞으로의 모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힘든 모험을 훌륭하게 완료했을 때, 다음 모험은 조금 수월하게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엔 강설에게 그러한 보상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달빛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탁. 탁. 탁.
“이 고오오오… 야아아안….”
탁.
펑!
콰지이익!
“크허어억!”
이제, 카루나에게 들어가는 공격은 전부 치명적이었다.
그의 갑옷은 이미 군데군데 탈락했으며 달빛을 머금었을 때조차도 움직임이 조금 둔해져 있었다.
‘슬슬, 카루나의 마지막 패턴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공략을 자신이 직접 펼치는 것이 굳이 어려울 게 무엇인가.
스노우맨이 강설이었고 강설이 곧 스노우맨이었으니, 두려움은 조금도 없었다.
후우우웅-
또 한 번, 월광참 패턴이 돌아왔다.
비장한 각오로 검에 달빛을 모으는 카루나.
“정녕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화르륵-!
[월광(月光) 기사 카루나가 달빛에 잠식됩니다.]
[카루나가 지속적인 피해를 받습니다.]
[카루나의 민첩이 10% 상승합니다.]
[민첩 상승치는 5초마다 증가합니다.]
[적을 쓰러트릴 때까지 계속됩니다.]
10%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했다.
5초마다 퍼센트가 상승하니 시간을 조금만 지체하면 갑자기 휘몰아치는 공격에 허무하게 목을 베일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교한 움직임이 핵심이었다.
“죽어라!”
카루나의 외침이 무의미하게, 이미 강설은 한참 전에 푸른색 발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광장을 뒤흔드는 달빛.
강설은 그것을 비웃을 뿐이었다.
‘이래서 달밤의 춤이군.’
보드 판에서 주사위를 굴릴 땐 참 은유적인 표현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현실로 부딪혀 보니 이만큼 직설적인 표현이 없었다.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강설은 굳이 카루나를 적대하지 않았고 둘이 맞부딪히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쪽은 다른 한쪽에게 다가서려 하고, 다른 한쪽은 발판을 밟으며 그를 조롱했다.
달빛이 서린 광장의 풍경은 그러했다.
그렇게 또 발판을 밟는 싸움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이 보였다.
카루나가 숨을 헐떡이며 흐릿한 동공으로 강설을 쳐다보았다.
“슬슬 끝내지.”
“겸손하라… 침략자여!”
죽음의 카운트.
붉은색 발판이 밟힐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세어지는 것 같았다.
탁.
4.
탁.
3.
“주우이이인님께서어 너어르을….”
탁.
2.
그리고 강설이 밟은 마지막 검은색 발판이 방점을 찍었다.
탁.
1.
펑!
이번에 쏘아진 철구는, 카루나의 두꺼운 투구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리고, 명중했다.
뻐어어어어억!
“컥….”
철그럭….
카루나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그의 무릎이 풀썩 꺾였다.
투구는 충격에 날아갔고 이제, 그의 갑옷은 달빛을 머금지 못했다.
“주인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투구가 벗겨진 카루나의 얼굴은, 눈처럼 새하얀 피부의 요정과도 같았다.
머리가 찌그러진 카루나, 그의 얼굴 곳곳에서 피가 흘렀다.
“죄송….”
탁.
강설은 조금 떨어진 위치의 검은색 달 발판을 밟았다.
펑!
콰지이이익!
카루나가 가슴에 철구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
그리고, 한꺼번에 메시지가 치솟았다.
[잊힌 달의 유적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석 상자가 생성됩니다.]
[카루나가 쓰러졌습니다.]
[보상이 향상됩니다.]
[보석 상자가 달 상자로 향상됩니다.]
[보상을 선택하면, 모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업적 ‘달 사냥’을 달성합니다.]
[칭호 「달을 떨어트린 자」를 얻습니다.]
“후우….”
달빛을 받은 강설은 이제 광장에 홀로 남았다.
그는 보상 최고 등급인 달 상자를 확인해보기 전, 카루나에게 접근했다.
“주인이라….”
강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부턴 내가 네 주인인데.”
–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방법은 옳았고,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었다.
지금의 강설에겐, 카루나를 꼭 쓰러트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강설이 그림자 소환사의 권능을 발동했다.
“섬겨라.”
[그림자 소환을 사용합니다.]
찌지직-
카루나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