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03
제502화
판데아 전역에 형성된 암흑천지는 미궁과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지역에서 불쑥 솟아오르고, 들어간 사람 중 생존자가 거의 없다는 것.
암흑천지의 경우, 여태껏 생존자가 아예 없었지만 최근에 살아 돌아온 몇몇이 발견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신변을 확보해 암흑천지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는 집단이 많았다. 그리고 태반이 그 비밀을 집단의 야욕을 위해 사용하려 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판데아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한 조디악도 그러했다.
저벅…
저벅…
“상태는?”
프래넌이 묻자, 옆에 있던 선임 마법사가 답했다.
“의식도 돌아왔고 정신적인 불안도 일단은 붙잡아 두었습니다. 다만, 길게 얘기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알았다.”
프래넌을 포함한 탑주들은 진귀한 경험을 하고 탈진한 채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반갑군.”
“흐… 흐흐… 높으신 분들 얼굴도 보고, 출세했네.”
“암흑천지의 생존자라 들었다.”
“…맞아, 그 거지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왔어.”
탑주들의 표정이 움찔했다.
청년 정도의 연배로 보이는 사내가 경우 없이 말을 해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저, 정말인가? 암흑천지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그것도 멀쩡히….”
사내는 탑주들이 놀라는 모습에 피식 웃고 답했다.
“멀쩡하지… 않아.”
“…….”
“지금도 난, 지옥 속에 있다고.”
프래넌이 물었다.
“무엇을 보았지?”
“죽음.”
이 자가 발견된 곳은 자유도시 홀른을 집어삼킨 암흑천지 인근. 여름날의 풀벌레보다 사람이 더 많을 지경이었던 도시였다.
“그날… 홀른이 암흑천지에 삼켜진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나?”
“…그래.”
“모두 어떻게 됐지?”
사내는 숨을 가쁘게 색색거리며 말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시야를 잃어. 딱, 이만큼. 시야는 손바닥만 하게 줄어들지. 그게… 더 무서웠어.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고.”
작은 희망은 때때로 큰 절망보다 큰 파괴를 가져온다.
“계속해서 듣지. 암흑천지의 구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킥… 2년이 지난 이제 와?”
“2년 동안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싸워왔다.”
잠깐의 정적.
프래넌의 굳은 눈빛을 마주한 사내는 말투를 바꿨다.
“실례를… 했군요. 아마 전부 죽었을 겁니다. 그럴 만한 환경이니까.”
“그 안의 환경은 어떻지?”
“낮과 밤이 사라지고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마물들이 득시글거렸습니다. 갑자기 나타나 도시의 주민들을 물어뜯었어요.”
남자는 손가락을 쫙 펴 날짜를 셌다.
하나, 둘.
“며칠 동안은 비명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곧 그 비명도 끊어졌고요. 그 뒤에 따라온 건… 짐승의 울음. 2년 동안 들은 소리예요.”
“어떻게 살아남았지?”
“부친이 홀른에 식료품을 유통하는 상인이셨죠. 창고에 숨어 2년… 먹고 싸고….”
“용케 미치지 않고 살아남았군.”
“저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비슷비슷한 집들이 많았는데 놈들이 소리를 듣고 왔는지… 다음 날부터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더군요.”
이제 가장 중요한 걸 물어야 했다.
“암흑천지를 빠져나온 방법은?”
“어…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빠져나오지 않았는가.”
“암구에 문제가 생긴 건지… 제가 있던 곳이 어느 날 암구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다른 도시로 향한 겁니다.”
프래넌이 다른 탑주들과 짤막한 의견을 나누었다.
암흑천지에 관한 것들은 밝혀진 부분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기에 큰 소득은 없었던 대화.
“으으….”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자 프래넌이 말했다.
“힘겨워 보이니 쉬었다 얘기하지.”
“자, 잠깐… 꼭 말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프래넌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말을 짜냈다.
“아, 암구에… 뭔가 살고 있습니다.”
“…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어, 분명하게….”
* * *
나이로와 팔치온을 찾은 건 강설이었다. 그는 암흑천지에 들어올 때 두 기사와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암흑천지에 들어온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따로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에.
‘근데, 이 반응은….’
암구로 향했다던 원정대의 마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암구 내부에 있을 거라 가정. 강설 일행은 암구 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특별하게 강하지 않았기에 발을 들였다.
“앞이… 앞이 보여….”
“톤가시여….”
눈앞에 있는 이들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강설은 우선 이곳에 온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해야 했기에, 울음이 잠잠해질 때쯤 물었다.
“혹시, 나이로라는 여성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이로…? 나이로라면….”
팔치온이 나이로를 바라보자,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접니다! 저예요! 나이로를 찾으셨나요?”
“아… 예.”
“…왜, 왜요?”
살짝 불안해진 그녀가 망설이며 묻자 강설이 답했다.
“사실은 여기 오기 전….”
협회 지부에서 만난 어린아이, 그 아이가 언니를 걱정해 부탁했다는 내용.
“내 작은 행복… 언니를 찾았구나. 으….”
그녀가 지탱해야 했던 어린 생명이 도리어 그녀를 구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눈물을 흘리는 나이로.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 그보다, 파벨! 파벨은 보지 못했나요?”
“…파벨?”
“네! 좀 얼간이 같이 생긴 남자앤데 같이 이곳에 휘말렸거든요.”
“…확신할 순 없겠네요.”
“아….”
조금 진정한 다음, 강설의 모습을 살피는 둘.
암흑천지 안에서 앞을 볼 수 있을 줄이야. 되돌아온 시야는 어두웠지만 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어두운 조명이 드리운 길을 걷는 느낌.
“일단 이대로 나간 다음….”
나이로의 제안에 둘 다 미동하지 않았다. 나갈 생각이 없다는 의미일까.
“…팔치온 경?”
“동료들을….”
“…설마.”
“혹시 모르니까… 이 근방만이라도 수색할 수 없을까?”
“미, 미쳤어요. 지금 그게 무슨….”
“그날, 이곳에 왔었어. 녀석들이 근성을 잊지 않았다면 분명… 나처럼 살아 있을 테지.”
팔치온이 강설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한 녀석쯤은… 그래, 한 녀석쯤은 있지 않을까? 내가 손수 돌보았던 녀석들이야. 마지막쯤은….”
나이로는 그의 감정을 이해하긴 했지만, 강설이 손에 쥔 거대한 마물의 사체를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위, 위험해요. 마물이 돌아다니잖아요….”
마물은 위험하다.
그러니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선 도망쳐야 한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이런 결론을 내놨을 것이다. 하지만, 팔치온은 보다 영악했고 관찰력이 높았다.
“아까 그 소리… 마물이 당한 소리였지. 자네… 평범한 모험가는 아니지?”
“…….”
“톤가가 보낸 거야… 나를 돕고자. 내 마지막 사명을 잊지 말라는… 계시인 거지.”
마물을 순식간에 처리할 정도면, 그보다 많은 마물이 몰려들어도 일행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는 팔치온의 기대.
노장의 안목은 무시할 수 없었다.
가정 상당수가 어설펐지만, 결과만큼은 맞았다.
“오래 걸리는 일입니까? 근방에 수상쩍은 기운이 도사립니다.”
“그렇지 않네, 몇 군데만 돌아보면 되니까.”
“흐음….”
강설이 턱에 손을 잠시 올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대신 소란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제 앞이 보이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끼이이익…
강설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둘.’
상당히 먼 거리.
마물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시죠.”
“고맙네….”
“이거….”
나이라가 아까 건네받은 단검을 주섬주섬 팔치온에게 돌려주었다.
팔치온이 단검을 받고는 씩 웃었다.
그리곤 곧 수색에 열중했다.
“있을 만한 곳으로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까?”
“이 근방에 몇 곳 있네.”
저벅…
저벅…
오묘한 기분.
텅 빈 도시를 걷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이상 울적해질 수밖에.
“우선 여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다다르지 못할 만한 거리. 이만큼이나 떨어졌으니 2년이나 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음….”
시체가 즐비했다.
부패하고 뜯겨나간 시체가 가득했다.
팔치온은 그중에서 그나마 멀끔한 시체를 찾았다.
“오, 여깄었구나.”
이미 죽은 자.
부서지고 썩은 살점이 한 점 발라져 있는 두개골.
찌그러진 갑옷과 견갑에 장식된 까마귀 인장만이 시신이 팔치온과 같은 기사단이었다는 것을 나타냈다.
팔치온은 그것으로 충분한 듯했다.
그는 이곳에서 발견한 수하들의 시신 몇 구를 가지런히 모아 부서진 가옥에 들여놓았다.
“언젠가, 꼭 묻어주마.”
팔치온은 몇 군데를 더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참한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맙군. 이제 돌아가도 괜찮네.”
“전부 찾은 겁니까?”
“아니… 하지만 이곳에 더 있어 봐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 그래요… 우리 돌아가는 게….”
강설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보죠.”
“저기? 저기는 광장인데….”
사방이 트인 장소.
“너무 위험해요!”
“괜찮습니다. 동료들이 저곳으로 오고 있는 듯하니.”
“동료가 있었군. 자네만큼 강한가?”
강설이 싱긋 웃자, 팔치온은 안심했다.
“그렇다면 안심이지. 합류해서 빠져나가는 게 나을 거야.”
“으….”
나이로는 겁을 집어먹어 마땅치 않은 눈치였지만 그것을 주장할 위치도 아니었기에 얌전히 따랐다.
저벅…
저벅…
인근에서 느껴지는 마물들의 숫자가 점차 불어났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저벅…
강설 일행이 광장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건….”
“끔찍해… 우읍….”
시체의 산.
썩고 조각난 인간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까 마주했던 마물들은 모두 미약한 지성만을 가졌을 뿐, 마치 전리품처럼 시체로 산을 쌓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뭔가 있군.’
저벅…
저벅…
그때, 누군가 해맑게 인사해 왔다.
“찾았다!”
“…카렌.”
“오셨군요.”
카렌과 카루나가 모험가 몇을 데리고 있었다.
“파벨!”
나이로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자, 파벨이 뛰어왔다.
“나이로! 살아 있었구나!”
“어흑….”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부여잡고 우는 그들. 암흑천지에 다시 없을 광경이기도 했다.
카렌과 카루나가 강설에게 모여들었다.
“조금 수상하지?”
“주인이 곧 나타나겠군.”
“어디….”
화르르륵…
카렌이 불씨를 집어넣자, 시체의 산이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호탄처럼 보였다.
혹은 선전포고이기도 했고.
선전포고의 의미는 단순했다.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것뿐.
곧, 엄청난 기세의 질풍이 느껴졌다.
“…온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건물을 부수고 나타난 자가 날붙이를 휘둘러왔다. 강설의 목을 노린 그 공격은 두 기사에 의해 제지됐다.
타아아아앙-!
“어? 빠르네?”
카렌이 금세 빠져나간 상대에게 놀라움을 표하자 상대 역시 웃었다.
“이쪽이 할 소리를. 하하하하! 드디어 와줬구나?”
강설이 시체의 산을 바라보며 뒤돌아선 자에게 물었다.
“이곳의 주인이냐?”
“맞아, 나야. 내가 이곳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어때, 멋지지?”
미치광이.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연원을 알아내야 했다. 그게 강설이 이곳에 온 원래의 목적이기도 했다.
“이 암구는 네가 만들어낸 건가?”
“어… 이거? 뭐 비슷하지? 이 마기와 함께 나도 깨어난 것이니까.”
강설은 불빛에 비춘 상대의 모습이 특이하다는 걸 눈치챘다.
짐승의 귀, 날카로운 이빨과 주둥이. 그러면서도 인간의 신체를 가졌다.
“죽음에서 깨어나는 건 정말로 멋져… 시시한 마무리를 되돌릴 수 있잖아?”
“…목적이 뭐지?”
“살육.”
돌아보며 히죽 웃는 상대.
“간단하지?”
“명쾌해서 좋아.”
“승부 하자! 어때? 날 죽이고 싶은 거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무슨 승부?”
“이렇게 멋들어진 장식물을 뭐하러 만들었겠어. 너희 같은 녀석들을 불러내기 위함이지.”
크르르르르…
크르르륵…
털로 뒤덮인 마물들이 광장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근방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던 녀석들이다.
“마, 마물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나이로와 일행들.
“카하핫… 어쩐지 멀찍이서 보기만 하더라니.”
상대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난 던커. 왕이 되기 위해 되돌아왔어. 그간 배도 채웠겠다… 딱 너 정도의 실력자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어째서?”
던커가 웃었다.
[칼날 이빨 던커가 등장합니다.]
“널 먹고, 난 왕이 될 거야.”
“그렇군.”
강설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했다. 시대 전쟁 이전에 만났다면, 아마도 백중세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강자.
“솔직히 말이야, 내 첫 번째 죽음은 조금 어이가 없었거든. 상대가 나빴어. 그 녀석만 아니었어도 내가 왕이 되는 건데.”
불사는 온 세계에 이런 끔찍한 존재들을 풀어놓았다. 오직 승천에 이르겠다는 그 욕심으로.
“망할 자식….”
“응? 나한테 한 얘기?”
스르으으응…
던커의 검은, 양날에 그 자신의 이빨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카렌이 상황을 보고 강설을 쳐다보자 강설이 말했다.
“직접 하지.”
“좋아! 그럼 이쪽만 신경 쓸게.”
휘리릭…
“비탄, 일어나.”
스릉…
비탄이 말했다.
【깜빡 졸았네!】
“오래 잤어.”
【깜빡 오래 졸았네!】
강설이 검을 뽑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자, 던커가 히죽 웃으며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 미동하지 않았다.
“…어라?”
늑대의 얼굴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내가 왜… 이러지?”
스으으으으…
강설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풀려나와 주변을 잠식했다.
“눈치가 없는 편이군.”
2년이라는 시간은, 왕관을 훔친 자가 진짜 왕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 아아?”
휘오오오오…
[스노우맨이 권능 : 그림자의 왕을 사용합니다.]
……
파츠즈즈즛…
파아아앗-!
강설의 권능 해방과 동시에, 던커가 짐승 무리로 몸을 감추었다.
“젠장하아알!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