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08
제507화
“클루지! 노새에서 짐 내리는 것 좀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설이 여행 중 만났던 상인들, 아바니와 신바 그리고 그들의 호위인 클루지는 따로 떨어져 나온 지 이틀째에 인적 드문 마을을 찾았다.
마을이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한, 가구가 서넛쯤인 민가였다. 보통 이런 곳은 가끔 숙식을 제공하는 가구가 하나쯤은 있었는데, 이번엔 운 좋게 그런 집을 잘 찾아 들어왔다.
“주인분께서 친절하셔서 다행이야.”
“응, 노새 먹일 건초와 당근도 챙겨 주신다고 하셨어.”
“좋으신 분이군요.”
행장이 묵직한 편이었기에 잠자리가 늘 불만족스러웠는데, 오늘은 아마도 푹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정에 여유만 있다면 한 이틀 쉬었다 가고 싶은데 말이지.”
“주인분께서 경기를 일으킬 만한 말이군요.”
“음… 그래도 이런 외딴 데 떨어져 나와 살고 계시면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으시지 않을까? 우리도 가진 것 중에 좀 불필요한 물건을 놓고 가고 싶은데.”
“신바, 팔 생각을 해야지.”
“아바니, 그 생각을 못 했네!”
클루지가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녁 준비를 시작하기에 딱 알맞은 시간대. 슬슬 노을이 피어오를 것 같았다.
“들어가시죠, 혹시 근처에 몸을 씻을 만한 곳이 있다면 좀 여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
“안 그래도 찝찝했는데!”
똑똑…
“들어오셔도 돼요.”
끼이이익…
문을 열자 아직은 주름살을 찾아보기 어려운 나이의 여인이 그들을 반겼다.
“하룻밤 실례하겠습니다. 호위인 클루지라고 합니다.”
“시라라고 해요…. 이 집에 남자를 들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고민하긴 했는데, 편히 쉬다 가세요.”
“배려 감사합니다.”
클루지가 싱긋 웃으며 여인의 행색을 살폈다. 그는 친절한 인상 속에 늘 경계를 숨기고 있었다.
“앉아 계세요, 저녁을 내올게요.”
“뭔가 도와드릴….”
“괜찮아요. 별거 없는 요리라 딱히 도움을 주실 부분은 없겠어요.”
셋은 어깨를 으쓱하며 가운데 마련된 식탁에 앉았다.
“으흠… 기대된다.”
“고기 냄새도 살짝 섞인 게….”
유독, 클루지의 표정이 어두웠다.
“저….”
“…왜 그래?”
낌새를 눈치채고 신바가 나직이 묻자, 그가 답했다.
“손이 이상합니다.”
“…손? 주인분?”
“예. 단련한 자의 손입니다.”
그 대답에 아바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는 산골짜기나 마찬가지잖아. 산 생활에 적응하려면 험한 일도 종종….”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손에 새겨진 흔적은….”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어머, 바깥사람이 돌아왔나 봐요. 문 좀 열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아바니가 벌떡 일어났으나, 클루지가 다시 그녀를 앉혔다.
“제가.”
“…응.”
아바니와 신바는 클루지가 괜한 염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클루지의 과잉 반응이라고 밝혀진 적이 있었기에.
끼이이이익…
문을 열자 멀끔한 미남이 서 있었다.
“…안녕?”
로브를 걸쳤지만 누가 봐도 그 안에는 갑옷을 입은 풍채.
팟-!
클루지의 손이 재빨리 그의 검으로 향했다.
푸우우우욱-!
“끄으으윽….”
클루지의 어깨에 꽂히는 검.
“클루지!”
콰아아아아앙-!
“커허어억!”
클루지가 사내의 발길질에 날아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도… 도망….”
아바니와 신바가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이려 했다.
팟…
“어딜 가려고?”
안에서 저녁을 준비한다고 했던 여인이 어느샌가 아바니와 신바 뒤에서 나타나 그들을 제압했다.
“아아악!”
“둘까지는 필요 없으니, 먼저 하나.”
푸우우욱-!
등쪽에서 가슴을 노리고 꽂히는 단검.
“신바아아아아!”
“남자 쪽도 굳이 필요 없을 것 같군.”
클루지가 벌떡 일어나 반격하기 위해 반대쪽 팔을 움직였다.
서걱-!
팔이 통째로 잘렸다.
절망적인 실력 차이.
“미안, 시간 낭비는 질색이라.”
푸화아아악-!
남자의 검이 클루지의 머리를 통째로 베었다.
“꺄아아아악!”
저벅…
저벅…
남자가 눈물범벅이 된 아바니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 왜 이러는….”
“이 근래, 말투가 특이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
아바니는 순간적으로 지난번 마을에서 언뜻 들었던 말투가 떠올랐다.
“…봤군.”
“머, 멀리서 보기만 했어요.”
“말투가 특이하다는 건 어떻게 알지?”
“그게… 말소리가 들려서….”
푸우우욱…
단검이 아바니의 허벅지에 꽂힌다.
“으윽… 으아아아아!”
“대화를 나눴군… 그렇지? 무슨 얘기를 듣지 않았나?”
아바니가 부들부들 떨더니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개자식… 천벌 받을 거야… 너….”
“천벌?”
씨익 웃는 남자.
“나는 신을 섬긴다. 천벌은 내게 오지 않아.”
남자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는 너희에게 닥치는 거지, 바로 지금처럼.”
푸우우우우욱…
가슴에 틀어박히는 검.
“커… 어….”
아바니의 동공이 흐릿해졌다.
쓱…
천을 꺼내 검에 묻은 피를 닦는 남자.
“그리즈는?”
“거의 따라잡았습니다. 이자들과 이동 경로가 비슷해 조력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영악한 자식, 흔적을 종잡을 수 없군.”
“여기 흔적은….”
“내버려 둬, 산짐승에게 주는 선물이니. 보자… 마을 주민들은?”
“건물 한 채에 전부 모아두었습니다.”
“깔끔해서 좋군. 태워버려.”
“예.”
남자의 눈엔 죄책감이 없었다.
스스로의 정의를 맹신하는 자의 눈이었다.
“이로써,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내 죄는 사하여질 것이다.”
“성국을 위한 행동은 애초에 죄가 아닙니다, 형제님.”
“…그 말이 옳다.”
불태워지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한 채, 이 끔찍한 일을 벌인 자들은 사라졌다.
현장은 마치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는 듯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행동.
하루.
정확히 하루가 지났을 때, 그 현장에 누군가 도착했다.
끼이이익…
용의 눈을 한 남자는, 현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벅…
저벅…
“아바니, 신바.”
보기 흉하게 떨어져 있는 클루지의 머리를 그 몸에 갖다 대었다.
“클루지.”
남자는 그들을 한 곳에 묻어주었다.
차멜리는 그에게 말했었다.
– 여행 중에 귀한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 조급해하지 말라더군요.
– …….
–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리라고.
남자는 매장을 마친 후 조용히 중얼거렸다.
“순리라….”
남자의 시선이 이 일을 벌인 자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었다.
* * *
아아아아아아-
성국 바라노아의 예배 현장은 기이한 열기로 가득했다.
“기도하시오, 신민들이여. 2년 전, 우리에게 닥쳐온 시련은 신께서 우리의 나약함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오오-!”
“기도하라, 바라노아의 축복받은 자들이여!”
“기도하소서, 우리 모두 기도하소서.”
“우리가 이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간절히 바라는 것에 대해.”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광신과 신앙의 경계 사이에 있는 느낌. 바라노아의 성직자들은 특권 계층이었다.
막대한 권한을 쥐고 나라의 대소사를 다스리는, 왕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열 명의 주교.
다섯 명의 대주교.
세 명의 추기경.
한 명의 교황.
이번 예배는 대주교 중 한 명이 주관하는 행사로, 수많은 신민들이 참여했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건 대주교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더욱 컸다.
최근, 바라노아에서 발생하는 정체불명의 사건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예배가 끝나고 모두 흩어질 무렵에는 대주교를 찾는 이도 있었다.
“으흑… 저희 아이가….”
“소식 들었습니다….”
“대주교님… 대주교님의 신통력이라면, 우리 아이를 찾아주실 수 있지 않으신가요?”
“으으음….”
대주교 투앙은 난색을 드러냈다.
“제발… 제발… 가엾은 저를 보아서라도….”
“바람은 본디 인간이 아닌 신에게 바쳐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는 특히나 말이지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하나….”
“…….”
“세상사 모든 일을 칼과 솜으로만 나눌 수 없으니.”
“그렇다면….”
“한번 힘써보겠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오늘 밤, 저를 찾아오시길.”
“저… 알리지 말라는 이유는….”
“부정이 개입하면 사건은 더더욱 미궁에 빠질 테니까요. 아이를….”
“그럴게요! 예! 그러겠습니다!”
“좋습니다.”
원하던 것을 얻었는지, 신민이 물러나 사라졌다.
대화를 마친 대주교 투앙의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투앙이 뒤에 선 자를 보지도 않은 채로 물었다.
“그 미치광이는 생포했나?”
“심문관 볼두가 나섰습니다.”
“일 처리가 깔끔한 친구지, 필요한 만큼 잔인하고 필요한 만큼 폭력적이고. 그래도 방심하지 말게.”
“예.”
“그리즈가 입을 연다고 해도 믿을 녀석도 없겠지만 설사 헛소문이라도 일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 실수 없이 처리하도록.”
성국의 어둠은 보이는 것보다 깊었다.
* * *
바라노아의 어둠이 그토록 붙잡고 싶어 하는 남자, 그리즈.
그는 지금 드넓은 초원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지나가야겠죠?”
추격이 붙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말만 잘 듣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눈을 감을 것이다.
그리즈가 품에서 동그란 구체를 꺼냈다. 호박에 구멍을 내 얼굴을 만들어 준 것처럼 조악한 생김새.
구체가 말했다.
“일어나요, 게토.”
– 일어났습니다, 그리즈.
“좋아, 이로써 천재의 머리가 둘이 된 셈이로군요!”
– 천재는 그리즈뿐입니다. 게토는 천재가 아닙니다.
“좋아요, 고장은 아니군요. 걱정했는데.”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상당히 위기예요. 저 허허벌판을 가로질러야 놈들을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 양측의 전력 계산…
일명, 인공 석학 게토.
– 탈출 불가능, 압도적인 패배입니다. 무릎을 꿇고 순종하길 권합니다.
“그래요, 기대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러니까 천재가 아니죠. 진정한 천재는….”
그리즈가 씨익 웃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전할 때 가려져요.”
– 그리즈답지 않은 말이군요.
“맞아요. …그가 해준 말이에요.”
– 존중하겠습니다.
“적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벼락같이 달려야겠어요. 조만간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도 들킬 테니.”
– 시기를 예측하겠습니….
“바로 지금!”
그리즈가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살짝 언덕진 곳에 기형적으로 형성된 토굴에 숨어 있던 그가 튀어나오자 초원의 사방에서 심문관의 수하들이 튀어나왔다.
“저기다!”
“잡아!”
그리즈의 신발에서 연기와 불이 치솟았다.
[그리즈의 너무 빨라 보이지 않는 발의 특수 효과가 발동합니다.]
[이동 속도가 2배 가까이 증가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습니다.]
……
타다다다다다닷-!
엄청난 속도로 초원을 주파하는 그리즈. 지금 그는 어지간한 기마병보다 빨리 달렸다.
“나는… 친구를 만나야 해요… 그 친구라면 답을 알려줄 테니까!”
슥…
그리즈가 품에서 동그란 원통 두 개를 꺼내 던졌다.
[그리즈의 간접 흡연탄의 특수 효과가 발동합니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연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굉장히 거슬리게 광범위한 지표면에 머무릅니다.]
[연기는 마력에 강한 저항력을 가집니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엉-!
“크으으윽… 놈이 숨는다! 연기를 밀어내!”
“잡아라!”
허억… 허억…
숨이 차오를수록, 연구에 치여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째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을까.
틀림없이 특이한 성격 때문일 거야.
아닌가? 열등한 녀석들을 친구로 둬봐야 나를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잖아.
“헉… 헉….”
그래도, 이럴 때 구하러 와 줄 친구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후우우우웅…
촤라라라락-!
연기를 뚫고 누군가의 빛나는 채찍이 그리즈의 몸을 휘감았다.
“으, 으아아악!”
“성가시게도 하는군….”
아나비와 신바, 그리고 클루지를 죽인 남자였다.
바라노아에서 파견된 이단 심문관.
볼두였다.
“아파요! 난 아픈 게 싫어요! 놔요!”
“조용히 하지, 그리즈. 나도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생각은 없었으니까. 얌전히 되돌아간다면, 윗분들께서도 큰 문제 삼지 않을 거야.”
마력이 깃든 밧줄로 그리즈를 구속하는 자들. 로브로 감추었지만, 모두 성직자들이었다.
그리즈가 말했다.
“당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나요? 당신들은 틀렸어요! 그 소녀를….”
“입 다물어, 그런 당신은 옳았다고 생각하나? 소녀? 웃기는군….”
남자가 히죽 웃으며 그리즈의 뺨을 때렸다.
짜아아악-!
“아아악!”
“네가 만든 거잖아.”
“그러니까… 놓아줘요….”
“하하하… 그런 건, 반대 상황에 놓였을 때나 하라고. 이렇게 불쌍하게 묶인 채로 할 말은 아니잖아?”
“…….”
밧줄이 몸을 꼼짝도 못 하도록 꽉 조여졌다.
아, 그런가.
실패군요.
어렵군요, 어려워요.
이번 문제는, 지금껏 살아온 생에서 가장 난제가 될 것 같단 말이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말해 봐요, 밀란.
당신은 모든 것을 알잖아요.
나는 난생, 처음 확률이 희박한 싸움에 몸을 던졌어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 그리즈, 자네는 스스로가 선하다고 생각하나?
떠오른다.
밀란,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 이 몸은 선과 악에 구애받지 않아요. 늘 상상력과 호기심만이 나를 움직이는걸요!
– …그렇지 않아.
– …에?
–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네. 자네는 선한 사람이야.
– …어째서?
–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니까. 자네의 발명품은 늘 괴악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선한 마음이 느껴지네.
– 아하하핫! 웃기는군요! 밀란, 아무리 당신이라도 나를 규정할 순 없어요. 당신이… 내… 그러니까… 음….
– 하나뿐인 친구일지라도 말인가?
– …그래요, 그거. 친구. 으흠… 그것, 참 낯간지러운 단어군요.
팍-!
그리즈의 질질 끄는 다리를 걷어차 똑바로 걷게 하는 성직자들.
“밀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어떻게 했어야….”
“시끄럽군, 혀를 자르면 안 되려나?”
“위에서 시끄러울 겁니다.”
“음….”
– 그리즈. 그대는 모든 문제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물론이에요! 그리즈는 어떠한 난제도 풀었는걸요?
– 그런가… 하지만 세상엔 그리 명확하지 않은 일들도 있는 법이야. 감히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말이지.
– 그리즈는 그들과는 달라요! 우수하거든요!
“약속…했잖아요….”
– 하하! 그게 자네지. 하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문제가 어렵다면 나를 찾아오게.
– 어째서요? 당신이 모든 답을 안다고 자신해서인가요? 만일 그 때문이라면….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아아악…
– 자네를 돕겠네, 친구로서.
– …….
– 답은… 뭐, 함께 궁리해보자고… 하하!
그리즈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바로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흔적을 쫓아 밤을 새워 추격해 온 강설이었다.
“…뭐 하는 녀석이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은 형체에 볼두가 검을 빼 들었다.
스릉…
“그때 그 청년….”
“밀란.”
“뭐, 뭐… 지금 뭐라고….”
“밀란이 보냈습니다. 그리즈.”
그렇구나.
밀란이 지켜보고 있었구나.
어쩐지! 거짓말을 할 친구가 아니지!
“놈을 죽여.”
“흐으읍!”
무방비 상태의 강설에게 쏟아지는 칼날 세례.
투우우우웅-!
“커허어억….”
“끄으윽….”
강설의 그림자가 달라붙는 자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리즈가 눈물을 흘리며 히죽 웃었다.
“도와줘요… 나를 좀….”
“그리즈, 이 이상 말을 하면….”
볼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즈의 입을 막아야만 했기에.
“…신을 만들었어요, 나.”
“그리즈으으으으! 쳐죽일 놈이!”
스르으으으응-!
카아아아아아앙-!
볼두가 빼든 검은 강설의 검에 가로막혔다.
강설이 히죽 웃었다.
“언젠간 저지를 줄 알았는데, 결국 저질렀군요.”
“…도와줄 수 있나요?”
답은 곧장 들려왔다.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