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09
제508화
심문관 볼두가 검을 맞댄 채로 물었다.
“너… 그리즈의 동료인가?”
강설이 밧줄에 묶인 채로 초원에 널브러진 그리즈를 흘깃 바라보고 말했다.
“친구라고 해두지.”
“큭… 크하하하! 저 외골수 녀석이 친구가 있을 리가 없지. 거짓말이라니, 얕아.”
볼두는 차가운 자다.
이 순간에도 눈빛으로 그것을 증명해냈다.
“…순혈주의자가 보냈나?”
투우웅-!
강설이 검을 밀치며 볼두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입에서 쏟아내는 건 온통 지저분한 말뿐이군. 불쾌하기 짝이 없어.”
“큭… 크흐흐흐… 바라노아의 심문관 볼두다. 지금부터… 널 이단으로 규정하겠다.”
“이단?”
[이단 심문관 볼두가 스노우맨을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세력 : 바라노아와 원수 관계가 됩니다.]
……
바라노아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는 잡다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난 이단이 아닌데?”
“그렇다면 증명하도록.”
투우욱…
보석 박힌 단검이 강설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 목숨으로.”
“자결하라는 건가?”
“증명할 수 없다면 넌 영원히 성국의 추격을 받게 될 거다. 너뿐만 아니라 네가 아는 모든 사람까지!”
“흐음….”
강설이 단검을 슬며시 손에 쥐어 들며 물었다.
“나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
“마을… 너희 짓이지?”
“…마을?”
볼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지금 잡아떼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뿐.
성국을 위한 살육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기에 벌어진 일.
“볼두 님, 며칠 전에….”
“아! 그렇지.”
볼두의 옆에서 기억을 끄집어내 준 여인은 아바니와 신바를 집에 맞이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가증스럽게도 로브 안에 전례복을 입고 있었다. 강설은 그 뻔뻔함이 기가 찼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었나?”
“…….”
“아! 그 상인들. 맞아, 같은 공간에 있었지. 기억이 나는군. 어쩔 수 없었어, 그리즈의 입을 못 믿으니 내 판단을 믿었어야 했거든.”
볼두의 말에 옆의 여인이 웃었다.
“큽… 그렇습니다. 애초에 그리즈와 접촉한 자들은 살려둘 수 없고 말이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는 그녀.
푸우우욱…
“…어?”
입을 가린 손의 손등으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볼두가 자결을 권하며 강설에게 넘긴 보석 박힌 단검이었다.
“찾았군, 다행이야. 너희들이 아니면 어쩌나 걱정했어.”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여인을 옆에 두고 볼두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죽여.”
데에에엥-!
심문관의 행차에 늘 종을 들고 다니는 타종꾼이 종을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포위해라! 놈은 혼자다!”
“섣불리 달려들지 말고 천천히 힘을 빼.”
마치, 사냥하듯 천천히 강설을 몰아넣는 상대.
강설은 결박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리즈를 보고는 한숨 쉬었다.
“이단에, 짐승 취급이라….”
강설의 눈이 반개했다.
“좋지.”
따악-!
[집단 실성을 사용합니다.]
[시전자를 중심으로 넓은 영역에 환상, 환청을 유발하는 검은 운무가 흩뿌려집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큰 소리와 함께, 강설이 검은 운무 속으로 숨어들었다.
“놈이 숨었다! 그리즈를 붙잡아! 도망칠 생….”
푸슈우우욱-!
비탄이 고함을 치는 남자의 가슴을 꿰뚫고 나와 소리쳤다.
【하나!】
“저기다! 붙잡아!”
팟-!
팟-!
운무 속에서 비탄이 번뜩일 때마다 숫자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울….】
【세에엣!】
가슴을 꿰뚫리거나 목을 베이는 성직자들. 하나 같이 상대를 보지도 못했는지 죽는 순간까지도 초점이 흐릿했다.
푸화아아악-!
심문관의 수하가 가슴팍에 날아든 무언가를 덥석 받아 들었다.
“허억….”
또 다른 누군가의 머리.
【일고옵… 아, 먼저 셌다!】
푸우우우욱…
“커어어….”
파지지지지직-!
[이단 심문관 볼두가 신성한 칼날을 사용합니다.]
[무기에 찬연한 빛이 깃들며, 주변을 밝힙니다.]
[상대에게 빛 추가 피해를 주며 상대의 성향에 따라 추가 피해는 2배까지 상승합니다.]
후우우우웅-!
운무가 일순간 밀려났다.
빛나는 검이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춘 강설을 노리고 쏘아졌다.
“노오오옴! 거기냐!”
쑤우우욱…
힘껏 내찌른 검은 허공을 휘저었다.
푸슈우우우욱…
“끄으으으….”
볼두의 어깨에 검이 틀어박혔다.
클루지가 처음 공격을 당한 바로 그 위치.
“이렇게 죽였을 거야, 맞지?”
“너, 너….”
뻐어어억-!
볼두의 배를 걷어차 날려버리는 강설. 그리곤 다시 심문관의 수하들 사이를 헤집었다.
“운무에서 물러나라! 놈의 함정이야!”
푸슈우우욱…
열일곱.
열여덟.
타종을 한 후 멀리서 지켜만 보던 타종꾼마저도 위협을 느낄 만한 숫자. 누군가의 외침을 듣자마자 타종꾼은 운무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헉… 헉….”
검은 운무는 지겹게도 따라붙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운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 거짓말….”
아무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숫자를 세는 소리는 어느샌가 끊어져 있었다.
푸우우욱…
“…어?”
타종꾼은 심장이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물 다서엇….】
검 한 자루가 그의 심장에서 빠져나왔다.
후우우웅…
운무는 순식간에 강설을 향해 빨려 들어왔다.
“개자시이익! 바라노아가 너를 용서치 않으리다! 넌….”
신바의 등에 칼을 꽂았던 여인이 널브러진 채로 악을 썼다.
푸우우우욱…
“꺼…….”
등을 서늘한 검이 파고들었다.
“아… 아아….”
으직…
칼날을 힘주어 회전시키는 강설.
“끅….”
【푸읍… 하아! 스물여섯! 하나 남았다!】
여인의 숨통은 그것으로 끊어졌다.
“킥… 키히히….”
“…….”
심문관 볼두가 처연하게 웃었다.
몸 곳곳에 피가 흘러나오는 구멍이 뚫린 채로.
강설이 무언가 수를 쓴 건지, 볼두가 상처를 재생했는데도 근육이 붙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기분이야… 내가 이렇게 맥없이 당하다니….”
“꿈에서 깬 거겠지.”
“하아… 하아아….”
땅에 꽂힌 검에 기댄 볼두가 기도했다.
“신께서 바라노아의 자식을 보우하시니… 간악한 자들이여….”
“…아쉬울 때만 신을 찾는군.”
“…뭐?”
“아깝잖아, 유언인데.”
강설의 눈이 볼두의 눈보다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
“…….”
“…너, 너 혼자서 바라노아 전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렇지, 그런 말을 기대했어.”
“넌 그분께 결국 너 스스로 죄를 고하게 될 거….”
팍-!
강설이 볼두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고 말했다.
“이 일과 관련이 있는 모든 자를 떠올려 봐.”
“끅….”
“떠오른 녀석들 전부 죽여주마.”
“킥… 할 수는 있고?”
씨익 웃는 강설.
소름 끼치게 차가운 미소였다.
“해왔어, 지금까지.”
푸우우우우욱…
볼두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비탄의 칼날.
“어… 어어어….”
【스물일곱!】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볼두의 신형이 축 늘어졌다.
강설이 툭툭 털고 일어난 후에 뒤에 괴상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자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즈.”
“이것 좀… 이것 좀 풀어주세요. 손목이 뻐근해요오.”
툭…
툭…
성국에서 죄인을 호송할 때 사용하는 포승줄이건만, 비탄의 날이 닿자 사과 껍질처럼 툭툭 잘렸다.
그리즈는 벌떡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는 감탄했다.
“모두 죽었군요! 특히 이 친구는 악독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죠!”
그리즈는 차마 고인을 모독하기는 싫었는지 발만 동동 구르다가 멈칫했다.
“…그대는, 밀란이 내게 보낸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밀란… 혹시 그 친구가 어딨는지는….”
피식 웃는 강설.
대답 대신이다.
“…말해줄 수 없는 거군요.”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그리즈.
곱슬머리에 도수가 높은 안경.
그나마도 한쪽 렌즈에 금이 가 있었다.
“그렇겠죠! 그러니까, 대신할 사람을 보낸 걸 테니까요! 전 아량이 넓으니까 이해한다고요. 직접 오진 못 했더라도… 그 친구의 마음은 알았으니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리즈는 괜히 기운찬 척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름은요?”
“…제 이름 말입니까?”
“그래요, 당신이요.”
“강설입니다.”
“강설… 고마워요.”
강설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알던 그리즈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이다.
일이 잘되면 자신의 덕이고 일이 잘못되면 자신의 탓을 하던 사람이다. 오직 제 잘난 맛에 살았으며 모든 일을 홀로 조율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다.
“나는 지금 위태로운 상황이에요.”
“그래 보입니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관계라는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어요.”
혼자서 중얼거리는 발명가.
“하지만 결심을 하더라도 말이죠… 쉽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리즈.”
“괘, 괜찮으시다면… 치… 친….”
그리즈가 강설을 돌아보며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친구가 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요?”
“…….”
그 다운 제안이었다.
솔직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의 평소 성향을 생각했을 때 이만큼이라도 용기를 낸 게 용했다.
슥…
강설이 그와 악수했다.
“좋습니다, 친구.”
“아하… 아하하! 이제 제 친구는 둘이 됐네요! 전력이 무려 2배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죠!”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건드려야 할 때였다.
“바라노아와는… 어떻게 얽히게 된 겁니까?”
“음, 좋아요! 본질을 놓치지 않는 시각! 바라노아는… 제법 오래된 일이죠. 몇 년이나 지났더라?”
그리즈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었다.
“바라노아의 신성은 고갈된 지 오래됐지요. 애초에 신성한 힘이 깃든 토지 위에 세워진 국가였으나 그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고 신성을 모두 소모해버리고 말았죠. 즉… 말만 신성 국가지 다른 왕국과 그리 다를 바 없게 된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예요.”
이건 강설도 알고 있는 얘기였다.
그의 말이 직접 바라노아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었으니, 어지간한 비밀은 꿰고 있었다.
“신민의 동요는 걷잡을 수 없고, 신권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자들은 선택해야 했죠. 그들이 차지한 많은 특권을 내려놓고 신앙의 본질인 믿음으로 되돌아가든가, 어떻게든 신성을 회복하든가.”
“후자를 선택했겠군요.”
“정답! 그래서 제게 찾아온 거예요, 그들이.”
“그들이 뭘 의뢰했습니까?”
“신을… 아니, 신성을 생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죠.”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 그것이 발명가 정신을 불러일으킨 게 화근이었어요! 하필….”
– …신을 만들었어요, 나.
“정말로… 신을 만들고 만 거죠.”
“설마, 정말로 신성을….”
“맞아요, 제가 발명한 신은 신성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강설은 말문이 막혔다.
이건, 발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기괴한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역천(逆天).
“다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죠.”
“…그 말은?”
“고통을, 신성력으로 변환할 수 있어요. 아직까지는….”
“변환이라… 그것보다… 아직까지는?”
“나도 그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알 수 없어요. 그 힘의 일부를 엿본 것뿐이니.”
강설은 얘기를 듣다 이상한 부분을 잡아냈다.
“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소녀의 외형을 따 조형했죠. 왜, 천사들을 그렇게 상상하지 않나요?”
“고통을… 느낀다고요?”
“…….”
“그리즈.”
“그래요, 그 아이는 고통을 느끼는 평범한 소녀예요.”
“기계 장치이지 않습니까.”
“아니야아아아아아아!”
그리즈는 광증으로 오해할 만한 맹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기계가… 아니야… 잘못 생각했어… 내가, 실수를….”
“실수?”
“감정을… 만들었어요.”
“…뭐?”
“감정을… 감정을 줘버렸어요. 아주 일부지만….”
“그게 무슨….”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어요, 내가… 난….”
– 내, 내가 무슨 짓을….
– 그리즈?
– 미안해요, 소피아. 지금 풀어줄게요. 날, 날 용서해 줄 수 있나요?
– 그리즈, 난 용서라는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 …….
– 미안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놈들이… 내 계획을 눈치챘어요. 하필이면….”
– 그리즈! 무슨 짓이냐!
– 어, 어쩌지… 미, 미안해요! 소피아, 꼭… 꼭 데리러 올게요!
– …안녕히 가시길, 그리즈.
“그 아이를… 그 악마들의 소굴에 두고 왔어요. 나, 나는 최악이야! 나는 최악의….”
팍…
강설이 벌벌 떠는 그리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즈, 차근차근… 차근차근 해결하면 됩니다. 뭘 원하는 거죠?”
“벌집을 건드렸어요… 바라노아는 언제부턴가 내가 모르는 이상한 힘을….”
“그리즈!”
“…….”
“되돌리고 싶은 겁니까?”
그리즈가 울먹였다.
“되돌리고 싶어요… 모든 걸… 그 아이를… 되찾고 싶어요.”
“원하는 건 소피아라는 아이의 파괴입니까?”
“아뇨… 제가 원하는 건… 아니, 아니야….”
그는 비로소 올바른 대답을 내놓는다.
“그 아이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씨익…
강설이 웃었다.
그가 아는 그리즈다.
“벌집째로 태워 버립시다.”
[세력 : 바라노아와 세력 : 장막의 전면전이 시작됩니다.]
[승리한 세력이 패배한 세력의 모든 시대력을 흡수합니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됩니다.]
[대장정 : 이단자로 이어집니다.]
……
[왕은 대장정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대장정이 서사시로 변경됩니다.]
[서사시 :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