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11
제510화
강설이 플레이어로서 보내온 세월 동안 그를 거쳐 간 말은 모두 30기. 미숙할 때는 미숙한 대로, 능숙할 때는 또 능숙한 대로 모두 애정을 쏟은 말이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게, 강설이 그간 해온 일이었다.
강설은 최대한 말의 잠재력을 끌어내 대륙의 강자 반열에 오르게 했다.
미다르 역시 그중 하나다.
철두철미하며 공명정대한 이단 심문관. 강설이 플레이했을 당시엔, 말단 성기사부터 시작하여 심문관 준비를 한 후 이단 심문관에 발탁되었다.
당시의 바라노아는 이단 심문관의 수를 일정 숫자로 제한했는데 미다르는 그중 10위로 이름을 올렸었다.
‘수석 심문관의 위용이라….’
꽤 오래전에 수석 심문관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는 건, 미다르를 제칠 만한 인물이 출현하지 않았다든가 미다르의 실력이 전보다 늘었든가.
‘…둘 다겠지.’
강설은 시기와 운, 그리고 미다르의 결심만 받쳐줬다면 꾸준히 육성하여 그를 승천에 도전하게 했을 것이다. 그만큼 재능 있는 말이었다, 미다르는.
그러면 반대로, ‘어째서 강설은 미다르를 포기했는가’라는 의문에 도달할 것이다.
오르고와 같은 결말이다.
강설이 이제껏 판데아에서 마주한 말들은 여정 진행 도중 사망했거나, 승천 실패로 이어졌던 자들이다.
불사같이 놓아준 후에, 부활하여 판데아에 되돌아오는 특이한 경우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망하지 않았거나 승천의 코앞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포기한 말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벽 때문이지.’
기벽.
말들이 가지는 특이한 성질.
미다르의 경우엔, 그 기벽을 주렁주렁 매달은 말이었다.
고집불통, 강철 같은 신념, 박애주의자 등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말을 더럽게 안 들었지….’
승천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평화보단 투쟁을 선택해야 한다. 즉, 한 자리에 머물며 평온한 나날을 보낼수록 승천과는 멀어지게 된다.
강설은 미다르를 바라노아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삶을 경험하게 해주려 했지만, 어느 날 벽에 가로막혔다.
[미다르는 현재에 만족합니다.]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해당 선택지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
플레이어로선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던 메시지였으니.
– 난 아직 바라노아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 악의 준동을 감시하며, 선한 자들의 의지를 지켜야 한다.
이런 틀에 박힌 대사만 줄줄 읊어대는 통에 강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다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르고와 같이 세상에 실망하고 스스로 은둔을 선택한 말과는 약간 다른 경우라고 판단했다.
미다르는 경험 자체를 거부했다.
그것이 신의 사명인 것처럼.
강설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의 기도를 듣게 된다.
– 신이시여, 제 마음에 자꾸만 의심이 파고듭니다. 이 길이 맞는지…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마치 강설에게 직접 얘기하는 듯 뚜렷한 인상을 주는 대화문.
– 미혹하지 마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약한 자를 위해 싸울 수 있기를, 악이 그들을 물들게 하기 전에 이 손으로 바로잡을 수 있기를.
압도당했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이처럼, 단단한 신앙이라니.
– 적어도 저만큼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기를. 제가 하늘에 계신 당신께 바라는 소망은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강설은 그 기도에 화답했다.
그에게 후련한 작별을 고했다.
[모험가 미다르는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가슴 뛰는 모험은 끝이 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됩니다.]
……
* * *
돌고 돌아 마주하는 것은 우연인가 운명인가.
강설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지?”
꼬투리를 잡는 미다르.
마녀단의 단장 샐리가 강설을 대신해 말했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녀석이 태평하게 걸어 들어오니 웃는 거 아니겠어?”
정작 샐리가 이끄는 마녀단도 비밀이 많은 집단이기에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기도 했지만, 일단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가? 확실히 우스울 만하군. 이해하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말하고 뚜벅뚜벅 걸어와 차멜리에게 묻는 미다르다.
“내 자리는 어디지, 교구장?”
원칙적으로 이단 심문관의 위치는 주교급인 차멜리보다는 아래였지만, 그것이 수석 심문관의 자리에 오랫동안 몸담은 미다르일 경우엔 또 달랐다.
그는 교황의 지시만을 받들며, 자유로이 행동한다. 그가 무너트린 사특한 이단 집단을 한곳에 모으면 도시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쪽에 자리를 마련했어요, 심문관님.”
“고맙군.”
끼이익…
미다르가 자리에 앉자, 작당 모의 아닌 작당 모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강설은 자꾸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어떻게 모여도 이렇게만….’
껄끄러운 존재만 가득이니, 회합을 주도하기보다는 관망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둘 다 아는 눈치인데?
– 그래 보임.
시청자들은 강설의 이상한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면….”
차멜리가 서둘러 회합을 주도했다. 각 인물을 소개하고 믿을 만한 자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가 이 수상쩍은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를 간결하게 말했다.
“우리는, 성국 바라노아의 타락을 바로잡기 위해 모였어요.”
강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밀 회합 ‘작당 모의’가 시작됩니다.]
[작당 모의에서 결정되는 방향에 따라 모험의 진행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다면 영향력을 발휘하세요.]
[이곳에 모인 이들의 세력 : 장막에 대한 신뢰도는 경계 수준입니다.]
[작당 모의는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피식…
‘발휘할 영향력도 없겠군.’
이후, 몇 가지 안건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강설을 째려보는 샐리.
“근데, 이 사람은 유명해?”
“자매님.”
“그리즈야 대륙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니까 그렇다고 쳐도… 난 이 사람이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 모르는데? 믿어도 되는 거야?”
“제가 보증할게요. 그분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차멜리가 그렇다면야.”
다시 바라노아의 썩어빠진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들의 과오와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까지.
샐리의 마녀단은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집단인 듯했다.
‘그녀에게서 특이한 냄새가 나는데….’
샐리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닌 건지, 실력의 상당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뭐,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평범한 사람이 있겠냐만….’
바라노아를 바로잡는 방법은 여럿이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찾아야 했다.
“마녀단은 이미 공작에 들어갔어.”
“자매님, 섣부른 움직임은….”
“걱정하지 마, 그리 과격한 공작은 아니니까. 신민들이 눈을 뜨게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뜻이죠?”
“바라노아의 지배층에 관한 소문이 만들어지고 있어. 부풀려지고 재조립되어 퍼져나가고 있지. 반년 전부터 노력한 거야.”
강설은 침묵했다.
‘…꽤 하는데?’
천방지축이었던 샐리의 과거 성향을 기억하기에, 강설의 평가는 후했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나 미다르의 표정은 더더욱.
“지금, 신민들을 이용하겠다는 거냐?”
“이용? 뭐… 좋을 대로 생각해. 지배층에 불만을 가진 신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그들을 끌어내리는 건 좋은 거 아니야?”
그림은 좋았지만, 도화지가 찢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 부분을 미다르가 지적했다.
“네 계획은 위험하다. 첫째, 신민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적지근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네 계획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신민들이 피를 흘릴 수 있다는 점.”
“첫 번째는 이해해. 근데 두 번째는 솔직히 동의하지 못하겠는데? 상처 부위를 도려낼 때는 피가 흐르는 게 당연한 거야.”
“그것이 신민들의 피는 아닐지다.”
“…지배층의 타락을 방조한 건 무관심한 것뿐만 아니라 무능한 거야.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어. 신민들도 그런 위험은 어느 정도 떠안아야 하지 않겠어?”
“신민들은 이기적이다. 아니,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무관심? 무능? 전부 맞는 말이야. 하지만….”
미다르는 강설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성국을 사랑하지 않는다. 신민들을 사랑하는 사내다.
“그 이유만이라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상처는 너무 가혹하다.”
“흐음… 말이 안 통하는데….”
[작당 모의가 일시적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중재가 필요합니다.]
차멜리가 때맞춰 나섰다.
“신민들이 상처 입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그래, 좋게 풀리면 이 방법이 제일 좋아.”
“결국,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거예요.”
“옳거니!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다만… 신민들이 이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들 스스로 움직였을 때,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건 경계해야 할 거예요.”
끄덕…
샐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다르도 더는 이 문제에 트집 잡지 않았다.
“샐리…라고 했나?”
“응.”
“넌 뭐지?”
“뭐? 이건 무슨 소리야?”
대신 다른 부분을 트집 잡았다.
“마녀단은 바라노아에서 추적 중인 이단 세력 중 하나다. 아마 심문관 셰틀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셰틀? 그 늙은이가 마녀단을 어떻게 잡는다고? 푸하하하! 아무튼, 마녀단을 미워할 수는 있는데 이 일에는 진심이야.”
“…이유는?”
“…이유?”
“그래, 이유.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도 겉으로는 성국의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영웅 행세를 했지만, 실체는 다들 목적이 있지.”
미다르의 눈이 차멜리에게 향했다.
“주교는 바라노아의 정점에 서기 위해.”
“…….”
“유물회는 주교와의 인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이권 또한 염두에 뒀을 것이고….”
“…눈치가 빠르시네요.”
이번엔 그리즈에게.
“그리즈는 발명품을 회수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발명품이 아니에요오! 그녀는 신이라고요! 소피아는 신이에요!”
“…뭐, 아무튼. 그래서, 넌 어떠냐는 거다.”
“…….”
“대답해야 할 거야, 당장.”
후우우…
샐리가 한숨 쉬며 답했다.
“실은, 바라노아가 어떻게 되든 난 관심 없어.”
“역시….”
“끝까지 들어봐. 성국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긴 해도 애초에 이 쓰레기통이 어떻게 바뀌리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거든. 대신, 목적이 없지는 않아.”
“…….”
“이 일에, 누군가 끼어들었어.”
“…뭐?”
그렇게 말하며 강설 쪽을 바라보는 샐리.
“너희, 심문관을 둘이나 죽였지?”
강설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키힉… 그게 문제였을 거야.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켰어.”
뭐가 문제였는지 얘기를 시작하는 그녀.
“내가 예의주시하는 인물이 있는데, 우리 측 정보에 의하면 이번 일에 그자가 움직였어.”
“…뭐? 누구지?”
“그건… 확실해지면 말해줄게. 아무튼, 내 목표는 그자의 목이야. 바라노아든 뭐든 관심 없다고. 대답이 됐나?”
“…….”
불충분하지만, 그럭저럭 미다르를 납득시킨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심문관을… 둘이나 죽였다고?”
미다르가 강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씨구.’
대답을 잘못하면 칼부림이다.
미다르는 그런 자다.
“네게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는 건데…. 그리즈가 네 정체에 대해 얼버무리는 것도 그렇고… 어쩐다….”
스릉…
‘…빌어먹을.’
쉬이이익-!
강설이 미다르의 검을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붙잡았다.
“…지금, 확인해 봐야겠는데.”
아직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칼부림부터 일어났다.
강설이 한숨 쉬며 답했다.
“이번엔 나야?”
[작당 모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작당 모의가 개판 상태에 이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