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23
제522화
휘오오오오오…
주변을 암흑으로 뒤덮었던 그림자가 서서히 강설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아… 하아….”
식은땀도 말라 사라져버린 듯, 휑한 감각만 남았다.
강설은 바닥을 구르는 유리병을 손에 쥐고는 인상을 썼다.
시초의 피를 상실하기 직전인 이때, 최대한 위험한 상황만큼은 피하려 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나.’
투명한 액체에 담겼던 건 시초자의 의지인가 시초의 의지인가.
“뭐… 아무튼.”
지금도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시초를 소화하고 있는 느낌.
강설은 변화된 부분을 메시지로 확인했다.
[권능 : 그림자의 왕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발돋움합니다.]
[권능 : 그림자의 왕이 시초의 그림자를 거느립니다.]
[이제 스노우맨의 그림자는 더욱 똑똑해집니다.]
[이제 스노우맨의 그림자는 더욱 유연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스노우맨의 그림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합니다.]
[이제 스노우맨의 그림자는 전보다 확장된 범위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제 스노우맨의 그림자는 자신보다 격이 낮은 상대의 그림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일단은, 뭔가 잔뜩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그림자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건가?’
강설의 그림자는 그에게 단단한 갑옷이기도, 날카로운 창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전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할 때마다 체감하게 되는 건, 강자와의 싸움에선 철저하게 기본기가 중요시된다는 것이다.
검술, 움직임, 빠르기와 같은.
강설의 그림자는 이와 같은 기본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보조하는 존재이므로 그림자의 강화는 꽤나 효율이 좋았다.
[시초가 스노우맨의 그림자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생명력이 부여된 그림자는 신체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며 이때의 회복 속도와 회복력은 그림자 공간에 저장된 그림자의 양에 비례합니다.]
[시초가 그림자 공간을 크게 확장합니다.]
……
‘…응?’
메시지의 내용을 꼼꼼히 다시 읽기 시작하는 강설.
놀랍게도 그 내용은, 이제 그림자가 시초의 피가 하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슥…
손바닥에 상처를 내본다.
휘오오오오…
순식간에 그림자가 밀어닥쳐 상처를 봉합한다.
“하하….”
사용된 그림자는 극히 일부.
그마저도 순식간에 다시 가득 찼다.
시초의 피가 이전에 가졌던 문제점 중 하나는, 강한 회복력과 비례한 빠른 탈진이었다.
회복을 거듭할수록 신체에 피로가 누적되어 전투가 더 힘겨워지고 이어 탈진 상태에 치닫게 되는 문제.
강설에게 그림자 공간에 저장된 그림자는 전투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므로, 이는 분명히 전보다 오히려 발전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회복력이 어디까지냐는 건데….’
느껴지는 생명력은 오히려 이전에 몸속을 흐르던 시초의 피보다 강력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제는 그림자가 이전에 시초의 피가 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슥-
휘오오오…
슥-
휘오오오오…
그 회복의 과정이 신기해 몇 번이고 손바닥을 그어보는 강설. 이젠 정말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났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 형씨, 무섭게 왜 이래.
– 말로 해…
– 힣…히히히히힣힣힣히 그림자 조아아아…
– (。•́︿•̀。) 무서워 ㅠㅠ
시초가 가진 생명력이 그림자에 미친 영향은 다른 능력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의 능력이 변경됩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이 그 효과를 유지합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으로 창조된 피조물들이 전보다 강화됩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의 영향을 받은 능력들이 강화됩니다.]
[절기 : 어둠살이의 육체를 순수한 그림자가 대체합니다.]
[절기 : 어둠살이가 더 높은 경지로 발돋움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절기 : 까마귀 군대의 수가 늘어나며 까마귀 병사의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
시초의 그림자는 피조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젠 강설에게도 피조물을 활용한 능력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 능력들까지 전반적으로 강해진 것이라 봐도 좋았다.
– 시초자… 포만감이 훌륭한 녀석.
– 맛은 매우 안정적이야…
* * *
쏴아아…
쏴아아아아…
테트라에 비가 왔다.
아니, 테트라뿐만 아니라 서부 전체에 비가 쏟아졌다.
“…그 시기인가.”
하늘이 우는 시간.
판데아의 서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굉장히 긴 장마가 해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찾아왔다.
강설은 비를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순식간에 옷에 스며든 습기를 털어낼 만한 강자였지만 이 기간만큼은 우산을 쓰기로 결심했다.
“잠깐 쉬었다 하자고!”
“그래, 일단 비부터 피합시다.”
테트라의 재건은 비가 와도 계속된다. 아니, 애초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비는 쉽게 그치지 않을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재건을 멈췄다간 테트라가 제 모습을 찾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테니까.
쏴아아아…
강설은 쌍둥이 기사에게 장마 동안 입을 만한 옷을 건넸다.
다행히 테트라의 상점들은 그나마 멀쩡하게 남아있어 몸에 맞는 옷을 구하기는 쉬웠다.
셋은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만히 테트라를 바라보았다.
차멜리와는 새벽에 이미 인사를 마쳤다. 강설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그녀였지만, 그의 발걸음을 붙잡을 순 없었다.
강설은 그런 사람이니까.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사람.
그녀는 강설이 바라노아에 오게 된다면 언제든 환대할 것이라 약속했다.
‘…또 오게 될까?’
쏴아아아아…
강설은 비에 젖은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까지 스쳐 지나갔던 장소에 대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아련하지만,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할 장소들.
그만큼 판데아는 거대했고, 그만큼 강설은 가야 할 길이 분명했다.
‘남은 말들의 유지를 모두 모으기 전까지는….’
그리고 불사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필시 안 좋은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게 분명한 이상…
그 아니, 그녀를 막아야 했다.
이제, 승천에 도전했던 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을 만났다.
‘남은 건… 넷인가.’
은둔한 오르고를 포함한 네 명의 말.
모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떠나는 건가요?”
기이잉-
소피아와 함께 강설에게 다가오는 그리즈.
강설은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아쉬워요. 내 친구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나는군요. 이 그리즈의 매력이 볼품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리즈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밀란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랬습니까?”
“네. 모르는 게 없었고 용감했으며… 진취적이었죠. 이번에도 역시, 그의 위대함을 느낀다고요.”
강설이 갸웃하자, 그리즈가 악수를 건넸다.
“새로운 친구를 내게 보내준 것. 그것만으로도 모든 문제를 해결했잖아요? 밀란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자예요.”
그 손을 맞잡고 작별을 고한다.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말해줘요. 굉장히 바쁜 일이 있어도 도움을 고려할 테니.”
“…고려입니까?”
“충분하지 않나요?”
“…충분합니다.”
소피아와 그리즈를 조력자로 맞이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딸칵…
강설에게 브로치를 선물하는 그리즈.
“이거라면 어디에 있든지, 당신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어요.”
“조금 꺼려지는데….”
“조용히 하세요! 혹시 모르니 밀란 것도 드릴까요? 아무 말 말고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사양하겠습니다. 저로 만족하시길.”
“쳇….”
이로써, 그리즈와의 일은 일단락되었다.
그래, 남은 건 이제…
“볼일은 다 끝나신 겁니까?”
“…마엘.”
“하하하!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마엘은 껄껄 웃으며 강설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그러더니, 사뭇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2년 전,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했습니다.”
“…….”
“스노우맨… 아아, 이제는 강설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던가요?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강설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마엘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오래전 함께 고난을 헤쳐나갔던 젊은 주술사 마엘인가 혹은 유물회의 원로인가.
“…알고 있습니다.”
“오오!”
마엘이 품에서 두툼한 서적을 꺼내 책갈피까지 순식간에 넘긴다. 깃털이 달린 필기구를 들고 해맑게 질문하는 그.
“알려주시겠어요? 궁금합니다! 이 마엘의 역사에 공백이 생겼거든요.”
헤진 표지.
삐뚤삐뚤 쓰인 표지의 글.
마엘은 단지, 세상이 궁금할 뿐이다.
피식…
그는 그대로였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나….”
쏴아아아…
빗소리와 함께,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마엘. 그 이야기는 참으로 신비했다.
“그 빙하아귀의 브론이 어느 날 살아 돌아왔다는 게 수상쩍긴 했습니다. 역시… 당신과 관련이 있었던 거군요.”
만상 도서관에서의 이야기.
신종 마약 홈에 의한 연방의 붕괴.
비통치 구역의 3대 부족 동맹.
의회에 가담했던 위험한 존재들.
고대 난쟁이의 후손.
“자, 잠… 그 시리온의 후손이라고요? 놀랍군요!”
이에 대해 따로 각주까지 달아가며 침을 튀기는 마엘.
“그럼….”
마엘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끝은 어떻게 맺어졌습니까?”
“…….”
“세상이 이렇게 변한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강설은 불사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시대 전쟁이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도.
“…과연, 그래서….”
“…마엘?”
마엘의 반응이 어쩐지 좀 이상했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그의 행보도, 당신을 여기서 만난 이유도.”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강설, 2년 전에 벌어졌던 일 중 가장 큰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시대 전쟁 이후 벌어진 판데아의 변화. 그중 가장 큰 사건을 말하자면….
“고르고지아.”
“…맞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수호자 탄크리드가 스쳐 가듯이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는 잊힌 땅이지요. 이른바, 첫 용의 땅.”
“…….”
“서쪽 끝 해역에, 그 땅으로 향하는 항로가 있다고는 하는데…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죠.”
“음….”
마엘과의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강설이 누구에게도 듣지 못할 정보를 그에게 건네면, 그 역시 강설에게 필요한 정보를 내밀었다.
“강설. 찾고 있는 이들이 있지요?”
그의 통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건 어떻게?”
“쟈마드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리고 우르 역시.”
“…….”
“음… 어쩌면 당신과 그 일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일?”
“최근의 일입니다. 서쪽 해역에서 벌어진 일이죠.”
마엘이 신중히 말했다.
“폭풍에 휩쓸려 서쪽 대해에 표류하게 된 교역선 한 척이 구조되었는데, 선원들이 이상한 얘기를 했다더군요.”
“무슨 얘기를?”
“검은 용이, 서쪽 땅을 향해 날아갔다고.”
“…….”
검은 용.
아자닉이 사망했으니, 판데아에 남은 검은 용은 딱 하나다.
“…탄시아.”
“역시, 용의 정체를 알고 계시는군요.”
“탄크리드의 아이입니다.”
“당신과 마지막까지 함께 싸운?”
끄덕…
“탄시아의 행방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쪽도 나름 고르고지아로 진입할 방법을 찾는 중인데 검은 용 아아… 탄시아와 접촉해서 묻지 않는 이상은….”
첫 용의 땅 고르고지아.
비밀을 품고 있다는 그 땅에 탄시아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무사했구나.’
살아있다면 되었다.
언젠가는 만날 테니.
“우르 쪽은… 소식이 없습니다만….”
그때, 마엘이 강설이 관심을 끌 말을 꺼낸다.
“쟈마드 쪽은, 나름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하하… 모르는 게 이상하지요. 최근 부족 연맹이 어수선한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말한다.
“부족 연맹의 총동원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제까지 중 가장 큰 규모의 원신제가 예정되었고… 쟈마드, 그는….”
쟈마드에게 몇 번이고 들었던 트롤 부족 연맹의 총회합.
“그날, 그곳으로 향할 겁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