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26
제525화
콰르르릉…
끼이익…
끼이이이익…
거센 폭우에 창문이 흔들린다.
개방감보다 중요한 건, 온몸을 파고드는 오한을 잠재우는 것.
기력이, 다 되어간다.
태엽이 녹슨 인형처럼.
수평선 너머로 반쯤 몸을 담근 해처럼.
쇠하는 걸 멈출 수 없다.
스으으으…
스으으으으…
어느새 숨은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로 뒤바뀌었다.
그 하나하나의 떨림에 공기와 함께 생명이 빠져나간다. 전신이 회중시계가 된 것 같다.
딸칵…
딸칵…
임종을 기다리는 회중시계의 초침이 회전한다. 혹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자의 발걸음 소리일지도.
창밖을…
창밖을 보고 싶다.
감은 눈을 뜬다.
죽음의 신이, 그곳에 서 있다.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며.
“닫지 마십시오.”
“…….”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지막이구나, 이제 죽음으로 가는구나.
정신을… 정신 차려야 해!
살아온 시간이 허망하다.
하나, 긴긴 시간 남은 것은 무엇인가.
걱정이다.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소중한 이에 대한 걱정.
그래, 걱정만이 남는구나.
“…그간 폐를 끼쳤군요.”
“아닙…니다.”
“딸아이가 걱정이군요. 남은 삶에 의지할 만한 존재가 없으니.”
“…….”
내가 이렇게나 약한 사람이었던가?
나는 철인이 아니었던가?
아니, 아니다.
죽음 앞엔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구나.
“죽음은 무섭고… 두렵지만… 괜찮습니다.”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진다.
두려워.
무섭다고.
누가… 누가 나를 좀…
“아버지, 손을 잡아주세요.”
감각은 없다.
하지만… 느낄 수 있어.
따뜻한 마음.
죽음의 신이여, 당신은 상냥한 분이군요.
“따뜻한 손… 아아….”
[‘필소드’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았습니다.]
[죽은 이의 능력을 전승합니다.]
[파란만장을 이어받습니다.]
[당신은 파란만장을 이어받습니다.]
[뜻하지 않게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발동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소명 : 되찾아야 하는 것들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
* * *
“그래서?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
“으음….”
슬슬 말들의 유지를 회수하는 일에 속도가 붙고 있다.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 작금의 시대였기에, 회수할 수 있을 때 전부 회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나침반이 향하는 곳 중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
‘…타무토 밀림?’
가장 가까운 위치는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매우 큰 삼림에 속하는 타무토 밀림 한가운데인 듯했다.
‘…이상한데?’
타무토 밀림과 관련이 있는 말은 없었다. 행여, 사체가 그곳에 있을 만한 말을 떠올려 보았을 때도 딱히….
‘…아.’
설마.
‘그 녀석인가?’
강설이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자 카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긴 한데….”
“그럼 뭐가 문제야? 가자!”
카렌이 용기를 북돋아 주긴 했지만, 강설은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
‘타무토 밀림은 미뤄두고 일단 다른 곳부터 들러야….’
문제는, 일정상 그렇게 여유를 부리기가 어려웠다. 정해진 일정이란 게 딱히 없는 지금이지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었다.
부족 연맹의 대원신제였다.
그곳에 갈지 가지 않을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가지 않는다고 선택하게 되더라도 시간적인 여유는 남겨두고 싶었다.
즉, 지금 가장 알맞은 선택지는 타무토 밀림에 누가 잠들었는지 확인해보는 것. 그 외 다른 예정지는 거리가 좀 되었으니까.
“음… 좋아, 움직이자.”
“좋아! 저택에서 오랜만에 푹 쉬었으니까 조금 활동적인 걸 해보자고.”
“저도 찬성입니다.”
그렇게 목적지는 타무토 밀림으로 결정되었다.
약 열흘 간의 이동.
일행은 그리 큰 고생 없이 타무토 밀림에 발을 들였다.
“여기지? 응? 여기 맞지?”
“여기서 한참 들어가야 해. 타무토 밀림은 무시무시하게 크거든.”
“조금… 덥지 않나? 같이 가!”
밀림은 웅장하고 신비로웠다.
상상력이 풍부한 화가가 푸른 빛 물감을 흩뿌리고 거칠게 붓질해 만들어낸 것만 같은 풍경.
그리고… 덥고 습했다.
쏴아아아아아…
하늘이 우는 시간.
울창한 거목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해 가는 일행.
타닥…
탁…
모닥불을 피워 옷에 달라붙은 습기를 걷어낸다.
“셋뿐이라 자리도 넓게 넓게 앉을 수 있어서 좋네. 카하핫!”
셋뿐.
강설은 일렁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그 말을 곱씹었다.
처음엔 하나였다가 순식간에 불어나 여섯이 된 적도 있었다.
【나는 왜 빼는 거야!】
“아… 맞다, 너도 있었지….”
비탄이 소외당하자 인상을 썼다.
강설이 비탄을 잠시 바라보다가 비탄과 눈이 마주쳤다.
【방금 나 빼고 생각했지?】
“…….”
비탄은 익숙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아장아장 걸어와 강설의 무릎에 기대어 누웠다.
【날 뺄 생각하지 마! 너희들 다 사라져도 난 함께니까! 끝까지 쫓아갈 거야!】
피식…
비탄의 머리를 매만지며 강설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아마 시작보단 끝과 가까우리라.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났을 땐 어떻게 될까.
다시 혼자가 될까?
아니, 끝이 난다면 정말로 이 세상이 끝나는 것 아닐까?
도달하지 못한 미래는 누구나 겁을 내기 마련이다. 강설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지금의 동료들은, 어떻게 될까.
지금은 쓸데없이 걱정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후우….”
“주인님.”
“…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카루나가 안색을 굳히고 말을 걸어오자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얘기 하려는 거지! 나도 느꼈어!”
“누이도 느꼈어?”
“응! 가슴이 막 두근두근, 그거지?”
“맞아.”
이게 무슨 소리일까.
“무슨 소리지?”
카루나가 카렌이 한 말을 잘 포장해서 설명했다.
“밀림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아마 밀림의 무언가가 내면을 뒤흔드는 듯한….”
“이런 게 첫사랑인가?”
“음… 그렇군요, 이것이….”
강설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둘 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농담이고, 밀림에 들어왔을 때부터 심장 한쪽이 아려오는데? 모르겠어,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
“말한 그대로입니다.”
“불길한 느낌인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본능적인 이끌림? 하… 달리 표현할 말을 못 찾겠네.”
타무토 밀림은 문명이 발을 붙이지 못한 곳이다. 벌목하기에도 그 몸통이 억세고, 벤 그 순간부터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는 게 타무토의 나무였다.
타무토 밀림에 고대 유적이라도 발견되었다면 유적 사냥꾼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테지만, 딱히 그런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밀림의 특성상 생명의 보고임은 분명했고 특이한 동식물들이 많이 자생해 사냥꾼들과 연구자들이 종종 원정대를 꾸려 들르곤 했다.
물론, 그것도 외곽 지역까지지만.
강설은 지금 그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타무토 밀림의 중심지역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린 이대로 중심지로 향할 거야. 혹시 문제가 있으면 가는 길에 말해줘.”
“응, 알았어.”
“알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 쌍둥이 기사의 이상 현상. 꺼림칙하긴 했지만 돌아가긴 늦었다.
끽끼이이익-!
다음 날이 되어 밀림의 중심으로 향하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원숭이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왜?”
“나침반이….”
나침반이 팽그르르 회전했다.
목적지까지 왔다고 하기엔, 주변은 온통 나무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 카루나가 말했다.
“…이쪽으로.”
그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카렌마저 그와 거의 동일한 속도로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뭐지?’
강설은 의문을 해결하기보단 쌍둥이 기사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목표를 찾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조금 지났을까.
“여기.”
“여기다! 여기가 분명해!”
카루나와 카렌이 동시에 나무뿌리와 얽힌 토벽을 가리키며 강설을 쳐다보았다.
“…뭐?”
“여기로 오라는데?”
“…누가?”
“…누구지?”
카렌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강설이 토벽에 접근했다.
[상급 간파가 발동합니다.]
[이 벽은 쉽게 허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숨겨진 장소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휘리릭-!
강설이 그림자로 토벽을 두들기자, 후두둑하며 무너지는 토벽.
“…계단?”
“그러게? 계단이네?”
“뭔가 발견한 것 같군요.”
유적 사냥꾼이라면 군침을 흘리며 기뻐했을 상황이지만, 강설에겐 아니었다.
“누가 너희를 여기로 불렀다고?”
“모릅니다. 단지… 무언가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응!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았어. …뭐지?”
그건 강설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자신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데, 쌍둥이 기사만 받는 영향이라니.
“…밑으로 이어지는 길이 이곳 한 군데인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어떻게 알지?”
“아까는 양손을 잡아끌었거든. 어느 길로 향하든 되는 것 같았어. 아마… 같은 곳으로 이어지겠지?”
“…솔직히 꺼림칙해.”
“알아, 나도.”
“저도입니다.”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들어갈 거야.”
“맞아, 나도.”
“저도입니다.”
짝-!
비탄이 자신의 이마를 쳤다.
– 비탄마저 포기한 그들.
– 카루나는 이 둘 억제기 아니었냐고 ㅋㅋㅋ
– 속보) 카루나가 제일 신남
스윽…
강설과 쌍둥이 기사가 토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나선으로 이어진 계단.
계단은 중간중간 무너져 끊어진 부분이 있었기에 챙겨온 횃대에 불을 붙여 앞을 비춰야만 했다.
“오오… 신기한데?”
“그것보다는… 편안한 느낌입니다.”
“맞아, 맞아! 내 말이 딱 그거였어!”
신기한 거랑 편안한 건 같은 말이 아니라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강설도 주변을 확인하며 감탄하기 바빴다.
이 나무 밑 토굴은, 규모가 엄청나게 거대했다. 아니, 이제는 이곳이 대규모 유적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정도.
“마엘을 데리고 왔다면 좋았을 텐데.”
그를 먼저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갈림길.”
세 갈래 길이 튀어나왔다.
강설이 우뚝 멈춰 섰다.
[눈앞에 갈림길이 보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돌아가시겠습니까?]
1. 오른쪽.
2. 왼쪽.
3. 직진.
4. 다른 길을 확인해본다.
……
저벅…
저벅…
카렌과 카루나가 머뭇거리지 않고 오른쪽 길을 골랐다. 강설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들을 따라 걸었다.
얼마 뒤, 비슷한 갈래 길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얼마나 깊게 내려왔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정도 규모의 지하라면, 분명 대발견이 맞았다.
“아! 다 온 것 같아!”
“맞습니다. 여기인 듯하군요.”
강설은 그들과 함께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문 앞에는 두 개의 기둥이 양쪽으로 나뉘어 존재했다.
화륵…
횃불을 들어 기둥 뒤편 문을 확인하는 강설.
‘…문양?’
무슨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 같긴 한데, 횃불만으로는 저 거대한 상징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휘오오오…
화르르르르르륵-!
커다란 불꽃의 구체를 띄워 올리는 카렌. 공기는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앗! 미안, 미안!”
휘오오오…
문양을 관찰하기에 알맞은 크기로 줄어드는 구체.
“저 문양….”
“으음….”
태양과 달의 문양.
문의 왼쪽에는 태양이, 오른쪽에는 달이 그려져 있었다.
카렌이 홀린 듯이 태양이 그려진 문 앞에 놓인 기둥에 다가갔다.
툭…
무심하게 올린 손.
치지지지지지직…
손에서부터 시작된 빛의 파동이 기둥을 통해 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음각된 태양의 문양에 카렌의 불꽃이 휘돌았다.
“카루나!”
끄덕…
카렌의 부름에 카루나가 기둥에 손을 올렸다.
치지지지직…
카루나의 검은 파동이 기둥을 통해 달의 문양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치직…
치지지직…
“…뭐지?”
지금 이 상황도 오리무중이었지만 카렌에게는 맹렬하게 반응하는 기둥이 어째서 카루나에게는 그만큼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벅…
저벅…
“반쪽짜리니까.”
“…….”
누군가 근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넌….”
살의도, 투쟁심도 없는 공허한 눈빛. 강설은 상대에게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에게 다가와 카루나가 손을 얹은 기둥을 바라보는 자.
흑기사.
또 다른 카루나이자 불사에게 힘을 보탠 그가, 이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흑기사가 카루나가 손을 얹은 기둥에 손을 포개어 올렸다.
그 순간.
치지지지지지직-!
문의 반쪽.
달의 문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감추어진 장소가 개방됩니다!]
[숨겨진 모험 ‘수호의 전당’의 추가 정보를 얻었습니다.]
[돌발 모험 ‘수호의 전당’이 발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