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38
제537화
강설이 미스파 항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그에게 새로운 서신이 전해졌다.
서신을 보낸 이는 역시나 마엘.
그는 강설에게 한 가지 정보를 건넸다.
– 고르고지아를 향해 사라진 검은 용에 관해 새로운 얘기를 꺼낸 자가 있습니다. 여정 중에 잠시 만나보는 것은 어떠실지요?
강설이 혹할 만한 정보였다.
단순히 검은 용이 신대륙으로 건너갔다는 정보만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
쿵쿵…
“계십니까?”
강설은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내었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뉘신가?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어르신께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았습니다.”
“여쭤볼 거라… 아하… 그것 때문에 온 거로군. 안개 너머의 땅 말이지?”
“비슷합니다.”
“…혹시 위험한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나는 비밀 같은 거 없어!”
“그럴 일 없습니다.”
“음….”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며 땡볕에서 꽤 오래 일해온 것 같은 구릿빛 피부의 노인이 등장했다.
“들어와, 마침 식사 때라 얘기 정도는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강설이 쌍둥이 기사와 함께 낡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뭐가 그리 궁금해서 날 찾았을까?”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날, 그러니까… 검은 용을 본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맞아! 운이 좋았지. 세상에나, 진짜 용이었다고! 그냥 큰 새를 착각한 거 아니냐는 말을 지금껏 수천 번은 들은 것 같네. 음… 아니, 수백 번 정도….”
“그날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딱히 문제 될 것 없지. 아, 그러니까….”
노인은 교역선의 잡부였고, 항해 중 폭풍을 만나 크게 떠밀려와 배가 대해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그때 시야에 안개로 둘러싸인 무언가가 잡혔다고.
“육지가 분명했지! 암! 뱃일 좀 해본 놈이면 백이면 백 그렇게 말했을 거야. 아무튼, 우리는 그곳으로 향하려고 했어. 그런데 아무리 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더라고.”
“…다가갈 수 없는 거군요.”
“그래, 크게 낙담하고 탈진해 있던 차에 이대로 땡볕에 말라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야? 깜짝 놀라서 하늘을 보니 용 한 마리가 순식간에 우리 배를 가로질러서 안개 너머의 땅으로 사라졌어. 어때, 놀랍지? 놀랍지 않아? 진짜로 용을 봤다고!”
여기까지는 강설도 들었던 내용이다.
“새카만 건 확실한 겁니까?”
“맞아. 어… 아닌가… 멀리서 본 거라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다들 검은 용이었다고 말하는 거 보면 검은 게 맞을 거야.”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어르신만 다르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놈들이 눈이 삔 거지! 난 제대로 봤어! 용의 등에 무언가 있었어. 사람! 사람이 타고 있었던 거야!”
“으음….”
강설이 미간을 찌푸렸다.
‘탄시아는 누구와 함께 간 거지?’
불안감이 불쑥 찾아왔다.
“확실한 겁니까?”
“어… 어어… 근데 남자인지 여자인지까지는 확인할 겨를이 없었어. 워낙 쏜살같았었거든….”
“그 뒤의 이야기는….”
“몰라. 폭풍이 또 한 번 들이쳐서 이젠 끝이구나 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운 좋게도 구조됐거든.”
“알겠습니다.”
“아! 하나 있다. 근데 이건 꿈인지 망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데….”
“괜찮습니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노인은 말했다.
“긴 숨.”
“숨?”
“안개 너머에서 긴 숨소리가 들렸어. 아마도 그건… 용의 숨이 아니었을까?”
“…….”
강설이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하려 했으나 새로운 궁금증까지 떠안게 된 강설.
원정대의 회합 일정이 있기 보름 전쯤의 일이다.
* * *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마차가 총 4대. 마차들은 소리를 내며 황금 왕의 양옆에 넓게 떨어져서 움직였다.
황금 왕의 행색은 특이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에 황금빛 눈동자. 코와 광대를 가로지르는 얇은 사슬 형태의 장식.
노출이 어느 정도 있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전통복을 입었지만 그게 결코 천박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빼어난 미녀이긴 했으나 그것은 흑심보다는 감탄할 만큼 잘 만들어진 조각상에게 바치는 경외에 가까운 감정을 일으켰고 그건 황금 왕이 가진 기운과 어우러져 그녀가 강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
황금 왕은 오연하게 시선을 내려다보며 일어날 듯 말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바라보는 좌중들에게 말했다.
“후키.”
“…….”
“무릇 왕에겐 경배를 바쳐야 함에도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아둔한 자들이여?”
비록 후키가 2년 전,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그녀가 잠들었던 무덤에서 깨어난 강력한 왕이긴 했으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그리 녹록한 자들은 아니었다.
대제국 칸의 공왕 중 1왕.
설홍의 최측근인 치우가 답했다.
“난 나의 왕에게만 무릎을 꿇어.”
다른 이들도 하나둘 말을 보탰다.
“누군지는 알아야 예를 취하든 하지. 원정대끼리 오늘 밤 한잔하고 따로 얘기하자고. 크하하하!”
“당신이 후키로군요, 꼭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요란하게도 나타났군, 그래.”
후키는 잠시 불쾌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이는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두 황금 거한을 움직이게 했다.
쿠웅…
쿠우웅…
장두보다도 거대한 존재들.
이들은 황금 왕 후키가 가진 힘 중 하나였다.
“불손함을 두려움으로 바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법이니라.”
스윽…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는 누군가.
“그러나 그것이 늘 최선은 아니지요.”
“마엘, 호기심 많은 트롤이여. 그대의 방법은 무엇인가?”
“이곳에 머무시며 이들과 앞으로의 일에 관하여 얘기를 나눠보심이 어떠실까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고 황금 왕께서 화를 내시면 원정 일정에 차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원정은 늦춰져서는 곤란하다. 그대의 충언을 받아들이겠다.”
“감사드립니다, 황금 왕이시여.”
뭔가 이상한 관계.
이곳에 있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마엘이지만, 그가 황금 왕이라는 괴팍한 인물을 어떻게 끌어들였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로브에 새로운 조디악의 징표를 매단 마법사가 물었다.
“마엘, 저자와의 관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잘못하면 원정에서 큰 골치가 될 것 같은데.”
“차차 설명드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경계가 더 커지기 전에 급한 불부터 꺼야겠군요. 후키 님과의 만남은… 그러니까 판데아가 뒤흔들린 후에 찾아왔습니다.”
마엘은 자신이 겪었던 신비로운 일에 대해 말했다.
시대 전쟁 이후 벌어진 지각 변동.
그 과정에서 발견된 방대한 크기의 지하 무덤.
당연하게도 유물회인 마엘은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고 무덤의 비밀을 파헤쳤다.
무덤에는 방대한 역사가 중간중간 끊어져 있었지만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이곳에 묻힌 이가 누구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나타냈다.
“메스프.”
“메스프?”
“후키께서는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실제로는 우리… 아니, 저는 아니군요. 여러분들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완전히 인간인데?”
“메스프는 정령이 판데아에 뿌리 내려 의인화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납득이 가는 설명일 겁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적성에 맞는 원소를 다루며 그들의 마력 전도율을 인간과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행동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흐음… 타고난 마법사들이라는 얘기로군. 흥미로워.”
마엘이 끄덕였다.
“맞습니다. 메스프는 마법 사회였고 고위층은 전부 대마법사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록된 바에 의하면 황금 왕께서는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대마법사였다고 합니다.”
“흐하하! 같은 마법사라고 하니 말이 잘 통하겠어!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말하지 않고 있군. 어떻게 여기까지 저 여자가 함께하게 된 거지?”
마엘이 이에 대해 설명했다.
“도굴 중에 마주쳤습니다.”
“…….”
“정확히 말하면 무덤의 비밀에 대해 파헤치던 도중 저 빛나는 두 눈과 마주쳤다고 해야 할까요?”
“…죽지 않은 것이 용하군.”
“하하하! 싹싹 빌었기 때문이죠. 모든 걸 그대로 두고 갈 테니 소원을 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소원?”
후키는 그때를 떠올렸는지 건조하게 말했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더구나, 이 작은 트롤은 내가 알던 짐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것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오호라! 그랬던 거군! 그래, 그럼 황금 왕께서는 상당한 실력자라는 거고… 그래서 이곳까지 불러 뫼신 건가?”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엘이 후키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슬슬 회합을 시작해야겠군요.”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말고 누가 더 오기로 되어 있나? 늦게 와서 이 황당한 여자를 보면 기절할지도 모를 텐데.”
“크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마엘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워낙 소식을 늦게 전해 오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전달받긴 했습니다.”
구석진 곳에 있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귀여운 여인이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늦는다라… 얼간이거나 늦어도 용서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거네?”
말을 내뱉은 여인의 옆에는 그녀의 남동생처럼 보이는 10살배기 인상의 남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한 사람 때문에 기다릴 순 없어요. 그건 화가 날 것 같아요.”
다른 이들도 동조했다.
“맞아, 얼간이 한 명을 기다린다고 이 모든 사람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
“오기만 해봐, 엉덩이를 걷어차서 바다에 빠트려줄 테니까.”
“오! 그러면 나는 그 위로 오줌을 싸주지.”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황금 왕 후키의 말이 더해진다.
“누구도 황금 왕을 기다리게 할 순 없다. 마엘, 그자에게 벌일 내릴 것이니.”
마엘이 턱을 긁적이며 웃었다.
“이거… 어쩐지 제 언행으로 그분이 회합 전부터 여러분께 미움을 사게 된 모양입니다.”
“상관없겠지?”
“…제가 아닌 그분께 따지는 거라면 얼마든지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뒤늦게 딴말하지 않기를 바라마. 그리하면 너 역시 벌을 받게 될 테니.”
“예….”
회합이 시작되고, 구성원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원정 구성원을 요목조목 뜯어보면 가끔 의아한 인물과 세력도 끼어 있었지만, 대체로 정체가 드러나면 납득하거나 놀라움을 표했다.
“음… 천칭께서는 안녕하신가?”
“하하하! 그 자식은 이런 곳까진 안 온다고. 내가 대신 왔지.”
“조디악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긴 하지.”
그리고 이어서 회합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래서, 신대륙 고르고지아로 넘어갈 방법이란 게 뭐지?”
마엘이 황금 왕을 바라보았다.
“이리 내오너라.”
후키가 나긋하게 말하자, 마차에서 무언가를 꺼내오는 시종.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발하는 뭔가를 기품 있는 비단으로 받쳐 들고 왔다.
“이건…?”
“메스프의 신물, 황금 혼이다. 두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금 혼의 힘을 이용하면 안개를 뚫고 나아갈 수 있다.”
“호오… 그런 게 있었다니.”
“그보다….”
치우가 후키에게 물었다.
“후키, 넌 무슨 목적으로 고르고지아로 향하는 거지?”
“…찾고 있는 물건이 있다.”
“그게 뭔지 알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
“늑대, 네가 내 신하가 된다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치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그는 칸 제국의 사자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모욕을 참는다면, 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뒤가 구린 여자군. 네 신하가 될 생각은 없어.”
“…아쉽구나. 주인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으직…
치우가 의자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자 손잡이가 가루처럼 부서졌다.
“…이런 미친 여자를 믿고 살아 돌아온 자가 없는 해역을 건넌다고? 그럴 일은 없다!”
후키가 말했다.
“마엘, 나는 네게 이번 여정이 꽤 흥미로울 것이라 들었다.”
“…예, 그렇게 말했지요.”
“그런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경박한 대화와 가소로운 자들이구나.”
“…….”
“이자에게 벌을 내리겠다.”
그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엘마저 기함하며 만류하려 했으나, 후키의 행동이 먼저였다.
콰르르르릉-!
그녀의 오른팔이 벼락으로 변하며 치우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치우는 칸의 사자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불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이후를 기약할 수 없었다.
“안….”
“그….”
후키의 수법을 처음 본 자들은 그녀의 앞에 선 것이 자신들이 아님을 감사했다. 보고 있지만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찰나지만, 모두에게 공포와도 같은 순간.
빠지지지지지직-!
후키의 번개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빠지지직…
검은 그림자가 번개를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휘오오오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어느 순간 치우의 옆에 서 있었다.
후키가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냈다.
“…왕.”
파지지직-!
강설이 번개를 떨쳐내며 가볍게 좌중에게 말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 이렇게 중요한 일에 늦는다라… 얼간이거나 늦어도 용서 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거네? 나는 전자라는 쪽에 걸게.
좌중들은 말한다.
“늦을 수도 있지, 뭘.”
아까 전, 나타나지 않은 마지막 인물에 대해 비판했던 여인이 히죽 웃었다.
“후자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