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5
제54화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정도가 있지, 지금 상황은 강설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문?”
하문은 강설을 평온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오르고, 나의 스승은 평생에 있어서 악인에게 검을 넘긴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장인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재주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이라고 했지요.”
“…….”
“나는 아직, 당신을 믿지 못합니다. 따라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이 잘못됐다면, 검을 녹여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입니다.”
“하문!”
월광검을 녹여버리겠다니, 얼마나 광오한 말인가.
– ㅈ돼따 ㅋㅋㅋㅋ 트롤러한테 딱 걸렸네?
– 꼴받네? 던진다? 아 미드 달린다고? ㅋㅋㅋ
– 외주를 맡겼는데 저작권이 넘어간 기막힌 실제상황.
– 그래 봐야 희귀템인데 던져주고 저 새끼 목 치자.
– 이게 감히 비공개좌한테 까불어?
– 스노우맨 마빡에 힘줄 돋았다 ㅋㅋ 폭발 일보 직전.
순간, 강설은 하문의 무례함이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강설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겁니까?”
“이 검은… 잘못된 이의 손에 들어가면 많은 피를 짜낼 검입니다.”
– 염병하고 자빠졌네, 희귀따리 들고 유세 떠는 게 딱 사짜네 ㅉㅉ
– 일단 죽여!
강설은 이미 투구를 건네받았고, 하문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나 때문이군.’
오르고를 플레이할 때, 악인들에게 속아 검을 팔아넘겼던 것들.
작품들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했던 강설이었지만 정작 오르고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정신적으로 몹시 괴로워했고, 승천이라는 선택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초야에 묻힐 것을 원했으니.
강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하문을 보고 오르고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하문은 스승의 괴로움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강설이 오르고를 플레이할 때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하문의 이런 말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강설은 오르고, 그리고 하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하문을 이해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문이 입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물었다.
“당신의 그림자를 불러주시죠.”
후우웅…
휘리릭!
검이 없는 카루나가 강설의 앞에 소환되었다.
푸른 눈빛이 하문을 응시했다.
“당신은, 이 검으로 뭘 할 생각입니까?”
대답은 단박에 튀어나왔다.
“주인님을 따를 생각이다.”
“의지가 없군요. 결국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스노우맨.”
강설이 하문을 쳐다보았다.
같은 질문이 강설에게도 전해졌다.
“스노우맨, 이 검으로 뭘 할 생각입니까?”
“…….”
‘답을 모른다.’
정말 당황스럽게도 선택지 한 줄 떠오르지 않았다.
객관식으로만 생각했던 문제가 주관식이 되어버린 상황. 그렇다고 힌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르고가 하문에게 무슨 말을 남긴 거지?’
강설은 오르고를 플레이할 때 하문과 일상적인 대화 말고는 그다지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저 질문은 오르고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도 아니면 내가 그를 놓은 이후, 그가 떠나기 전 하문에게 남긴 가르침일지도.’
어느 쪽이든, 강설은 선택해야 했다.
“대답하세요. 당신은 이 검으로 무엇을 이룰 생각입니까?”
강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을 입에 담았다.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검으로 뭘 할지, 아직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직 모른다?”
“적을 마주하면 적을 벨 것이고, 반대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지키기 위해서 휘둘러지겠죠?”
“정말 되는 대로군요. 자신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겁니까?”
“미래를 모르는데 확신을 가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죠. 대답이 되었습니까?”
“…스승님께서 제게 남긴 말이 있었습니다.”
하문은 검을 든 채로 굳었다.
그의 스승이자 평생을 가도 넘지 못할 게 분명한 거대한 산, 오르고.
그가 세상에 실망하여 하문을 떠나며 남긴 말이 있었다.
– 하문, 나는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속아왔다. 그들의 거짓된 맹세에 넘어가 대륙에 많은 비탄을 낳았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물어봐라, 네가 만든 물건을 가지고 무엇을 이룰 생각이냐고.”
“…….”
–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하문이 눈을 감은 채로 스승의 말을읊조렸다.
“확신에 찬 자는 네가 만든 물건이 필요치 않을 것이고, 네가 만든 물건이 필요한 자는 확신하지 않을 것이다.”
– 모순된 말입니다. 스승님! 떠나지 마세요!
– 하문, 굳세어라. 언젠가 네 가치를 세상에 대신 떨쳐줄 이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실패하였으나, 너는 이루리라.
강설은 하문의 변화를 느꼈다.
그에게서 서늘한 기운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하문이 눈을 떴다.
“스노우맨, 이 검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휙-!
강설이 검을 넘겨받았다.
펄럭…
흰 천에 가려졌던 검집이 드러났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검집.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 정도 물건을 만들어낸 건지.
[불세출 : 숨결을 획득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물건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일순, 인터페이스에 떠오른 두 줄기 문구에 강설의 사고가 정지했다.
“잠깐, 무슨….”
“당신은 이 검을 휘두를 자격이 있습니다.”
당연히 월광검이 제아무리 강화를 거쳤더라도 잘해봐야 보물일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뭐야씻팔!’님이 광기를 3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 불…세출?
– 순간 오류인 줄 알고 다시 봤다.
– 갑자기 여기서 불세출이 나온다고?
– 하문 몬데!!!!!!!!!
‘속았다’님이 광기를 2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희귀템 가지고 더럽게 육갑떤다 싶었는데, 뒤통수가 얼얼하네;;]
– 이제 하문의 똥꼬쇼가 이해가 되는군요.
– 나였으면 100문 100답 시전했다.
– 압박면접… 하문이 옳았습니다.
– 하문,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 하문 : 하문예~
– 아 시발 피식했어 ㅋㅋㅋ 자존심 상해 ㅋㅋㅋ
강설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숨결의 상세 설명으로 향했다.
불세출(不世出) : 숨결
등급 : 불세출
적정 레벨 : 15 – 30
공격력 : 89 – 100
내구력 : 200/200
무게 : 1.8kg
월광기사 카루나가 사용하던 검이 오르고의 후예 하문의 기적을 만나 탄생한 검. 오르고의 첫 작품이었던 폭풍을 녹여 힘을 끌어올렸다. 검의 기운이 크게 치솟았는데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있다.
기본 능력 : 근력 + 24, 민첩 + 19, 체력 + 28, 모든 능력치 + 10
특수 능력 : 선수 필승(고유) 작용, 위기를 기회로(고유) 작용, 상처 입은 적에게 치명타를 입힐 확률이 25%로 고정, 공격형 능력의 범위와 파괴력 10% 증가.
– 이에 마이애?(이게 말이 돼?)
– 너무 놀라서 턱이 빠지셨군요.
– 와 미쳤다 ㅋㅋㅋ 우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양심 없다고!
– ㅖ? 그건 허리띠고요 ㅋㅋ 이건 무려 주·요·부·위인 무기랍니다? 나 두 번 말 안 해요?
강설은 무기의 정보를 확인하고 카루나에게 넘겼다.
[월광(月光) 기사 카루나에게 불세출 : 숨결을 착용시킵니다.]
카루나에게 숨결을 장착시킨 강설이 하문에게 말했다.
“좋은 검입니다.”
“오랜만에 기운을 썼더니 피곤하군요. 저는 할 일을 마쳤으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종종, 들러주시죠. 일에서 물러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가끔 도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력적인 존재’가 발동합니다. 추가 호감도를 획득합니다.]
[조력자 ‘오르고의 후예 하문’을 얻습니다.]
[‘오르고의 후예 하문’의 등급은 영웅입니다.]
[조력자는 모든 모험에서 등장할 확률이 있습니다.]
[그들은 호감도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줍니다.]
일이 풀리려니까, 이렇게 풀린다.
이 불친절한 세계는 정보와 기회 모든 것을 플레이어가 직접 알아내야 했다. 따라서 정보를 많이 알고 인맥이 단단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힘은 산과 조약돌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하문이 조력자가 되다니, 불길한 여행 운치고는 너무 일이 잘 풀리는데?’
초반에 마엘이라는 트롤 조력자를 얻을 때, 함께 획득했던 칭호인 매력적인 존재.
아마, 하문을 조력자로 얻게 된 데에는 이 칭호의 호감도 추가 상승효과 덕을 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마엘이 모험에서 등장하지 않았네.’
아직 모험의 극 초반부였으니, 마엘은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아무튼, 지금까진 완벽한 흐름이야.’
강설은 정보의 보고이자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이였지만, 때때로 알 수 없는 흐름에 이끌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결과가 항상 좋았다.
‘오히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인 거 아닌가?’
이제는 이런 의심까지 생겨날 정도.
강설이 시야에 계속 머물러있던 하문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졌다.
– 직거래 오졌다
– 하문 : 쿨거래 완료, 글 내립니다.
– 이거 믿고 직거래하면 나쁜 형 나와서 친한 척한 다음 돈 뺐습니다. 모두 조심하세요.
강설은 숨결에 달린 고유 능력들을 확인했다.
‘선수 필승’은 상대보다 먼저 공격할 경우, 상대는 반격 불가능 판정.
‘위기를 기회로’라는 고유 능력은 피해를 받았을 시 5초간 입히는 피해가 50% 상승.
‘말도 안 되는 능력들이야.’
특히나 저레벨 구간인 지금은, 어딜 가도 이만한 능력을 구할 수 없었다.
심지어 능력 점수를 투자하여 얻는 능력들에도 비할 수 있을 정도.
‘투구도 확인해봐야지.’
강설은 검에 정신이 팔려 투구를 잊을 뻔했다.
[냉정의 투구]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8 – 20
방어력 : 110
내구력 : 100/100
무게 : 5kg
오르고의 후예인 하문이 정령석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투구. 저주와 얽혀 정령석에 깃든 힘이 희미해졌지만, 장인의 손길이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었다.
기본 능력 : 근력 + 10, 체력 + 12
특수 능력 : 상태 이상 ‘공황’에 면역, 동체 시력이 상승한다.
“흠….”
– 흐음? 방금 흐으으음이라고? 나 들었어!
– 보물에 고개를 갸웃하는 미친 사람이 있다?
– 이제 눈이 높아져서 미친 ㅋㅋㅋ
– 방금 숨결을 봐서 그래… 30까지 졸업템이나 마찬가지다 ㄹㅇ
– 카루나는 주인보다 먼저 불세출 무기를 얻었다…
[월광(月光) 기사 카루나에게 냉정의 투구를 착용시킵니다.]
“어때?”
강설은 새로운 무기와 투구를 얻게 된 카루나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 나름의 친근함을 표하는 방법이기도 했는데, 카루나의 대답은 딱 그 다운 짤막한 답변이었다.
“좋습니다.”
– 주인이나 소환수나 ㄹㅇ
– 어후 답답해 ㅋㅋㅋ
– 그럼, 좋아서 헤드스핀이라도 돌길 바라냐? ㅋㅋ
카루나까지 새로운 장비로 무장을 하자, 강설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제, 어떤 위험한 순간이 와도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적어도 그리즈의 연구소처럼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쟈마드가 홀로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낙오되는 장면이 아직도 강설의 기억에 선명했다.
분명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큰 사고가 터졌던 것.
카루나가 새로운 장비로 무장한 지금,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문과의 일이 마무리되고, 강설은 모험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감각이, 곧 그에게 전해졌다.
지이이이잉-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아홉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9. 사령술사들의 비밀 의식]
모험 9. ‘사령술사들의 비밀 의식’
당신은 여전히 대삼림 인근에서 차오를 찾고 있습니다. 차오는 분명 대삼림 부근에서 흔적이 끊겼고, 아직 수색하지 않은 곳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많은 흔적 중, 유달리 눈길을 끄는 흔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흔적을 쫓아 대삼림 깊숙한 곳의 비밀스러운 야영지까지 찾아왔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의 깊게 살필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침 여기, 사령술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목표 : 야영지에서 벌어지는 일 확인, 차오의 흔적 발견.
현재 남은 시간 「23 : 59」
강설이 수많은 입자에 둘러싸여 전송되었을 때, 그의 인터페이스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이곳으로 마차가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누군가 이곳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강설은 첫 번째 간파 메시지보다 두 번째 간파 메시지에 몰두했다.
간파가 발동한 구역을 확인하니, 나무에 칼로 그은 흠집이 나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이었다.
이 흔적은 아마도 마차를 모는 이, 혹은 그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아니라면,
‘차오다.’
차오의 흔적일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