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57
제556화
“너, 먹어도 되냐?”
“안 돼.”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보초들 넷이 모여서 수군댔다.
“사실은, 먹어도 되는 거 아닐까?”
“똑똑이가 아무거나 먹으면 아무것도 못 먹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어!”
“똑똑이 무서워… 그럼 안 되겠다.”
“근데 걸어서 온 건가? 오우거 말, 하던데.”
자신들의 목소리가 어지간한 천둥소리보다 크다는 걸 지금껏 전혀 자각하지 못했는지, 태연하게 다시 다가오는 오우거들.
“너, 우리 속이는 거냐?”
“…속여?”
“나쁜 녀석들, 만났냐?”
“아.”
죽음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다.
강설 역시 그들의 군대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생명을 닥치는 대로 습격하는 망자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마주치는 족족,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줬지만.
“만났지.”
“어… 만났네. 그럼, 진짜 밖에서 온 거네….”
오우거가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어디서 왔냐?”
“칸.”
“거짓말! 칸 녀석들, 말 타고 온다. 그리고 많이 온다.”
“난 혼자 왔어.”
“당당하네…. 그럼 진짠가….”
“진짜야. 들여보내줘.”
옆구리를 긁적이던 오우거가 답했다.
“알았다. 근데 오우거 말, 할 줄 알면 미리 전해야 한다. 똑똑이가 그러라고 했다.”
“그래, 얼마든지.”
쿵쿵!
오우거가 조금 멀리 걸어가 발을 굴렀다.
그러자, 진동을 느꼈는지 땅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두더지, 혹은 천산갑과 흡사하게 생긴 짐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가서 전해라아! 말하는 건더기, 간다아아!”
이 특이한 짐승은 오우거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말하는 건더기 간다아아아아!”
이렇게 따라 하고는, 오우거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부시럭…
오우거가 허리춤에 매단 가죽 주머니에서 동그랗게 뭉친 고깃덩이를 꺼내 짐승의 입에 집어넣었다.
“좋아!”
푸두두두두두…
짐승이 눈 깜짝할 사이에 땅을 파고 사라졌다.
“…신기하네.”
“너, 가방 필요하냐?”
“가방?”
“타이몰론, 지금 간다. 금방 가긴 한다.”
“…아.”
뼈갈갈이가 짊어졌던 통발과 흡사한 나무 감옥에 실려 이동했던 기억을 떠올린 강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어깨 위에 있을게.”
“떨어져도 모른다.”
“응.”
철그럭…
오우거가 강설을 어깨에 올리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속도에 풍경이 접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속도라면 지도에 새겨진, 타이몰론의 수도까지는 금방 도착할 것이다.
강설은 오우거의 어깨 위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에 잠긴 이유는 보초들이 입은 갑옷과 정보 전달 체계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짐승을 사용해 조금 빨리 소식을 전하는 정도지만, 이전의 오우거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행동이다.
여기까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입은 갑옷에서는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상당히 정교해. 오우거에게 이런 기술이 있었던가?’
나뭇잎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거나 그들이 사냥한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감싸는 정도에 그쳤던 자들이다.
그런 원주민들이 어느 순간 철기를 주렁주렁 무장하고 나타난 듯한 충격이다.
불순물이 잔뜩 섞인 통짜 철갑도 아니었고 의외로 굴곡과 장식까지 제대로 구현한 갑옷이다.
‘…무언가 있다.’
변화가 일었다.
이들은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것일 수도 있다.
오우거들은 시대 전쟁 이후 트리엄으로 되돌아가거나 떠돌아야만 했던 상황에서 판데아 북동쪽, 재앙에 휩쓸려 무너진 인간의 왕국을 아무런 피해 없이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주변국들은 몰려오는 오우거들에게 혼비백산하여 대응할 시기를 놓쳤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멸망을 막았다.
애초에 그들은 소왕국의 군집 정도 수준이었고 거기에 재앙을 수습하고 있던 와중이었으니 그 상황에서 들이닥친 대규모 오우거 군대를 막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이들은 그저 오우거들이 자리 잡는 것을 지켜만 보았을 뿐,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세간에 알려진 사실은 여기까지였고, 이후엔 이 소왕국들에 대한 정보가 끊어졌다. 이들에게 향하는 모든 교역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공교롭지만, 오우거들이 자리 잡은 새로운 오우거 왕국 타이몰론은 이들이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길목에 세워졌기에.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풍경을 뒤로 밀어내며 나아가는 오우거.
“이름이 뭐지?”
강설의 물음에 오우거가 답했다.
“새알.”
“세 알?”
“새알. 알이 좋다, 맛있다.”
“그래, 세 알.”
“새알이다.”
“엄격하네, 그래도 세 알이라 부르는 게 편한데.”
“좋아! 허락할게. 대신 새알이 생기면 내게 가져와라, 좋은 가격에 사준다!”
새알의 답을 들은 강설이 흠칫했다.
‘…산다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새알, 구하기 힘들다. 다들 먹어버려! 그래서 산다. 그래서 일한다!”
무언가 변했다.
그들 안에서.
후우우우웅…
후우우우우우웅…
전속력으로 달리는 오우거는, 판데아의 어떤 생명체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듯했다.
“이런 초소가 국경에 얼마나 있지?”
“어… 새알은 모른다. 똑똑이만 안다.”
“똑똑이만 안다는 말은… 다른 누구도 모른다는 뜻이겠군.”
“똑똑이는 똑똑하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따른다.”
절대적인 군주.
그가 오우거들을 변하게 한 것일까.
아직, 많은 의문이 남았다.
“날개 협곡에서 많은 오우거가 죽었을 텐데… 수가 줄지는 않았나?”
“판데아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똑똑이 왕국 세워서 많이 모았다.”
“…전보다?”
“훨씬!”
“이거… 그간 골치 아프긴 했겠군.”
트리엄의 오우거들도 굉장한 규모였지만, 그것보다 많은 오우거라니.
강설은 지끈지끈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이곳에 오기 전 용제 대전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그러니까, 칸의 사절이 되어달라는 겁니까?
– 타이몰론은 오우거가 새로이 둥지를 튼 신생 왕국. 그 무엇보다 위험한… 새로운 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 그들과의 교류가 원만하지 않은 것이군요.
– 우리는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 아니, 판데아의 모든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 적절하겠군. 지금껏 사절을 여럿 보냈지만, 그쪽에서 모두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시간이 없어… 마지막 대화가 필요해.
천칭과의 대화 중에, 신요가 끼어들었다.
– 오만한 왕. 오우거는 야만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들이다. 상황이 이리 치닫지만 않았어도….
– 신요.
태율이 신요를 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지막을 끝으로, 강설의 회상은 끝이 났다.
회상이 끊어진 이유는, 목적지에 지금 막 도착했기 때문이다.
후우우우웅…
타이몰론, 오우거 왕국의 성문이 보였다.
“…대단하군.”
“자랑이다! 우리 집!”
타이몰론의 첫인상은, 경악스러웠다.
그들의 왕국을 보호하는 성곽은 어쩌면 칸이 죽음의 군대를 막아내기 위해 세운 장벽보다도 견고하고 높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규모뿐만이 아니야.’
자세히 살피니 단순하게 돌을 높게 쌓은 것이 아니었다.
이건, 완벽한 건축이다.
“음….”
강설의 의심은 깊어졌다.
무엇이 이들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인가.
새알이 성문 앞에서 말했다.
“말하는 건더기!”
“들었다! 들어가! 천천히, 밑에 인간 있다. 밟으면 혼나는 거 알지?”
“깜빡할 뻔했다!”
성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만약 강설만을 위해 닫혔던 성문이 눈앞에서 열렸다면 감탄했을 크기다.
“조심… 조심… 살금… 살금….”
새알이 문지기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멈춰, 새알!”
“어… 어어….”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잘했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네게 주어진 상을 확인하도록 해라.”
“오오… 상이다… 고긴가?”
“직접 확인하길. 기대해도 좋다.”
새알이 강설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역시, 너 안 먹길 잘했다!”
“그만, 복귀하도록.”
새알이 잔뜩 신이 났지만, 성 내에서 난동을 부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지 애써 좁은 보폭으로 사라졌다.
스윽…
양피지를 펼쳐 그림을 확인하는 여인. 오우거를 통제한 건 그들의 말을 하는 인간이었다.
“말하는 건더기, 확인했습니다.”
“누구십니까? 어째서 인간이….”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똑똑이는….”
싱긋 웃는 여인.
“곧 만나게 되실 겁니다. 왕께서도 고대하고 있는 만남일 테니.”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됩니까?”
“썩은 엉덩이.”
“……예?”
여인이 말한 건, 오우거들의 언어다.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절 만나면 다들 인상을 써요. 아, 진짜 엉덩이가 아니라 근방에서 자생하는 독초의 이름입니다.”
“…네.”
“이제부턴 제가 모시겠습니다. 타이몰론에선 길을 잃기 쉬우니까요.”
똑똑이가 보낸 자니,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강설은 썩은 엉덩이의 밀착 안내를 받으며 도시를 활보했다.
도심은 잘 정돈되었다기보다는, 단단하게 굳혀 바닥이 깨지지 않게만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가옥은 무조건 크게, 그리고 그 옆에는 인간이 살 법한 크기의 집들이 붙어 있었다.
“…같이 사는 겁니까?”
“아, 노예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오우거가 노예까지 거느립니까? 그것도 인간을?”
“이곳에선 흔한 일입니다.”
특이한 일이다.
오우거가 인간을 부양하다니.
그리고 그 위에 선다니.
촤르륵…
“이리 와라, 똑바로 걸어!”
눈빛이 퀭한 노예들.
철로 된 구속구로 그들의 목을 옭아맨 노예상이 강설의 곁을 지나갔다.
모두 인간이었다.
강설이 우뚝 멈추자, 썩은 엉덩이도 함께 멈추었다. 그녀는 강설의 반응을 이해하고 말을 걸지 않고 지켜보았다.
“신품이다.”
“출신은?”
“연방 출신 떠돌이. 증명할 건 없고.”
“음….”
노예상과 대화를 나누는 자도 인간.
인간이 노예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눈이 맛이 갔군. 좋게는 못 쳐줘.”
“그 정도는 이해하니까 그래도 잘 좀 구슬려줘. 응?”
“으음….”
노예상에게서 노예를 건네받은 자가 화려한 의자에 앉은 오우거에게 말했다.
“연방 출신 떠돌이들이랍니다.”
“별로다아….”
“그래도, 그간 좋은 거래가 오고 갔으니 이 정도는 이해해주심이 어떠신지요?”
“이해해야 하나?”
“보통, 이런 경우에는 빚을 지워둬야 나중에 좋은 상품을 우리 앞으로 당겨올 명분이 생깁니다.”
“나 속이는 거 아니냐?”
“만약 제가 속이는 거라면, 잡아먹으시지요.”
“나 너 안 먹는다. 똑똑이가 인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럼, 믿어주시지요.”
“믿는다, 사라.”
이들이 나눈 언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오우거의 언어였다.
“세 개다!”
강설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우거 둘이 일정한 크기의 금덩이를 들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너 두 개 줬다!”
“아니다! 나 세 개 줬다. 봐봐라!”
“세 개네?”
“세 개다!”
“가져가라! 착각했다!”
가죽 부대를 짊어지고 사라지는 오우거.
이것은 문명이다.
절대로 마주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
낯설다.
이 모든 것이.
그리고 거북했다.
오우거들에게 스며든 인간의 모습이.
“타이몰론은 노예를 허용하는 겁니까?”
“확실히, 판데아에서 노예는 사라져가고 있지요. 타이몰론에선 허용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왕국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 수준을 갖추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노동력이라….”
“오우거들은 거대한 돌을 옮길 수는 있어도 조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철을 녹일 수는 있어도 그들을 위한 갑옷을 단련하기에는 그들의 손은 너무 크고 투박하죠.”
“그렇다면 돈을 주고 고용하면 될 일 아닙니까?”
“잊고 계신 게 아니라면, 이곳은 오우거의 나라입니다.”
“……그랬군.”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잡아먹던 오우거들이 사는 나라에 발을 들이는 인간은 수가 매우 적습니다. 왕께서 원하시는 노동력의 수준에는 한참이나 모자라겠죠.”
“굳이 그만한 노동력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동하지 않는 사회는 짐승들이 지배하는 사회고 그것은 과거 오우거의 사회입니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사냥을 나섰고 식량을 비축하지 않았으며 내일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썩은 엉덩이가 잠시 숨을 골랐다가 말을 이었다.
“타이몰론은… 우리의 방식대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내일을 준비하고 있지요.”
강설은 그제야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오우거가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꽤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어 어떤 반응을 내비쳐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썩은 엉덩이가 싱긋 웃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자들도 있겠지요.”
강설은 그녀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가 앞으로 만날 자에게서 알게 될 테니, 오판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을 함부로 사랑하거나 함부로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썩은 엉덩이와 함께 마침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야외 건축물이었다.
강설은 이와 비슷한 규모의 건축물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투기장?”
이때부터, 강설 주변으로 시중을 드는 노예들이 잔뜩 따라붙었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강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한다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기에.
타이몰론의 인간들은 이미 이 상황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강설은 시대 전쟁 후에 긴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조력자를 마주했다.
투기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화려하게 수놓은 장포를 입은 오우거가 앉아있었다. 그 옆자리는 그가 앉은 의자와는 비교되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다. 인간이 앉기엔 더할 나위 없는 크기.
똑똑이가 강설과 시선을 마주했다.
“앉으시지요.”
강설은, 날개 협곡에서 보았던 똑똑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위험한 자다.
칼날과 손잡이의 위치가 뒤바뀌어 떨어지는 칼과 같은 자.
이번에 받게 될 것은, 칼날인가 손잡이인가.
휘오오오…
강설이 억누르고 있던 기운을 약하게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똑똑이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고 투기장을 바라보았다.
촤르르륵…
투기장의 양쪽에서 검투사가 등장했다.
한쪽은 갑옷을 껴입은 오우거.
다른 한쪽은 그와 비슷하게 무장한 인간이었다.
칼날이다.
칼날에 가까워졌다.
결국엔, 부러트려야만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