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61
제560화
똑똑이의 주장에 반하는 자는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확실한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수뇌부는 특정 인물 몇몇을 제외하고 전부 회담이 파하자 대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대전에 남은 건 칸의 세 공왕, 강설이었다.
“…알려야 할까?”
“제국민들이 받아들일까요?”
“유일한 승리의 가능성이다. 남아 있는 선택지가 몇 없다. 시간을 지체하면 이마저도 사라지겠지.”
“그렇다고… 그게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잖아요….”
“그게 선택이다.”
“…….”
“범인이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군주다.”
개개인의 삶과 자유를 존중한다면, 모든 사실을 알게 하고 그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 이는 중요한 전쟁을 앞두고 또 다른 분열로 격화될 수 있으며 결국엔 원래의 계획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군주가 후에 닥쳐올 겁화에 대해 함구하게 된다면 군주는 원래의 계획대로 전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군주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다. 칭송보단 힐난이 그를 짓누를 것이며 그 끝엔 죄의 무게에 질식할 것이다.
“제가 남겠어요.”
“…설홍.”
“홍아. 섣부른 판단은 일을 그르칠 뿐이다.”
“누군가 이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 우리 중 누구라도 상관없을 거예요. 형제의 뜻이 곧 저의 뜻일 테니.”
“…….”
“…….”
이들에겐 용의 피가 흐르고 있다.
고난 앞에서 담대할 것이며 위기에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그 말은, 다른 의미로도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오라버니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태율과 신요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도 칸에 남겠다.”
“저 역시도.”
“…그런!”
“우리는 통치하는 자들이다. 또한, 전장에서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칼날에 위치한들, 그것이 칼날을 더 강하게 할 순 없다.”
태율이 눈을 감았다.
“하나, 우리가 칼날이 언젠가 돌아올 곳이 된다면 그것은 의미를 갖게 된다.”
“칸이, 그들의 제국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죠.”
강설은 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설홍이 던진 물음에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혹, 대공께서 우리의 대답에 실망하시는 건 아닌지?”
피식…
“똑똑이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세 공왕께서 모두 칸에 남을 것을 예측했습니다.”
“…….”
그것이 칸이기에.
죄를 짊어지고 죽을 자들이 결정되었다.
* * *
스으으으으…
강설은 뿌연 안개를 헤치며 나아갔다.
분명 잠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곳은 꿈속이었다.
“오셨네요.”
“…쟈넷.”
광기 상인 쟈넷이 구현한 꿈의 세계.
그녀는 오늘, 혼자 방문한 듯했다.
강설이 기운을 풀어 살피니, 기운의 출입이 차단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소곤소곤할 계획이에요.”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나름의 결심이 필요해서….”
“그보다 그 눈은…?”
그녀의 악귀 가면 속, 한쪽 눈에 안대가 씌워져 있었다.
쟈넷은 오호호 웃으며 손사래 쳤다.
“제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계셨네요? 조금 감동.”
“보통 멀쩡한 눈이 하나 사라지면 물어보는 성격이긴 합니다.”
“자상하신 성격이네요. 아무튼!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예요.”
“작별 인사?”
“어쩌면, 우리가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설은 어쩌면 마지막 싸움에 내몰려 있는지도.
“앞으로는, 이곳에 방문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찾지 말아요.”
“그렇군요.”
강설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을 이어가다 말했다.
“제게 광기가 있습니까?”
“광기는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스며들죠.”
“모두 가져가도 좋습니다.”
“정말요?”
“내겐, 이제 필요 없는 것들이니.”
광기는 인간이 갈구하는 관심이자, 누군가의 시선이었고 힘이었다.
“아하하… 이젠 타인의 시선이 감히 당신을 흔들 수 없다는 건가요?”
“편한 대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저….”
강설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겐 필요 없는 것들이, 당신에겐 다를지도 모르니까요.”
“…선물?”
“의미 역시 편한 대로.”
“곤란해요… 장사꾼에겐 선물이란 말이 없거든요. 모두 뇌물이잖아요?”
“…….”
쟈넷은 그녀도 모르게 무심코 강설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요,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어차피 할 거잖습니까.”
“맞아요!”
그녀는 심판관이 던졌던 물음을, 약간만 손보아 말하려 했다.
“만약에 온 우주에 있어 당신은 먼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라면, 혹은 그 우주가 당신을 지배… 에이 씨… 때려치울게요. 이런 질문은 저랑은 어울리지 않네요.”
“…힘들어 보였습니다.”
“하핫! 그렇죠? 자, 이제 광기를 가져갈게요. 저항하지 말아요.”
스으윽…
쟈넷이 손을 횡으로 꺾어 손바닥을 강설의 입술로 가져갔다.
강설이 당황해 눈을 부릅떴지만, 앞서 저항하지 말란 말을 들었기에 긴장을 풀었다.
스르르…
그 순간, 쟈넷의 악귀 가면이 사라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쟈넷의 본모습을 처음 보게 된 강설은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당신이라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지도.”
“…….”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요. 이 이상함도, 이 우울함도 언젠가 그 이유를 알게 되겠죠. 곧, 때가 될 테니까.”
스으윽…
손바닥을 떼어내는 쟈넷.
강설이 의문을 표했다.
“쟈넷?”
“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싸우고 있다. 이치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다. 지배하고 지배받으며 그것을 당연시한다. 저항은,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말한다. 그것참….”
쟈넷이 눈물지으며 미소를 띠었다.
“…시시한 우주 아닌가요?”
강설은 그녀가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 어쩌면, 우리가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이유.
그건, 강설 자신의 상황과는 무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찾아왔다.
쟈넷은 작별을 말한다.
그녀가 떠난다.
“우리, 다시 만나요. 꼭….”
그리고, 오지 않을 재회를 그린다.
* * *
치이이이이이이…
철컹…
철컹…
쿠우우우웅…
인류 최후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
카스트랭에는 매일 물자와 병력이 오고 갔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전쟁을 준비하며 사람들은 활력을 되찾았다.
치이이이…
카스트랭은 연합군의 비수가 될 자들을 끊임없이 타이몰론, 그리고 그곳과 연결된 골두안의 자철광 전초기지로 실어날랐다.
몬트라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찰은 연합군 측 강자들이 도맡았다. 지형과 병력 배치 현황 등, 갖가지 정보들을 수집하며 때를 기다렸다.
정작, 칸의 제국민들은 연합군 전력이 칸의 영토에서 대부분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전히 칸을 지키기 위한 병력이 일부 남았지만, 이 정도로는 몰려오는 죽음의 군세를 전부 막아낼 순 없을 것이다.
밀리고 밀리다, 벼랑 끝에 떨어져 모두 죽을 것이다.
상대는 대항할 수 없는 파도.
끔찍한 대군이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건, 통치자들만이 알고 있는 문제.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국민들은 물론 타이몰론의 국민들 역시 피부로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웃고 울었다.
이것은 명백히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생은 후회하고 타오르는가.
일찍이 타올랐다면, 후회조차 없었을 텐데.
일찍이 깨달았다면, 무언가 바뀌었을 텐데.
강설은 타이몰론을 떠나기 전, 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까아앙-!
까아아아아앙-!
난쟁이가 오우거의 거대한 투구를 손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투구의 주인인 오우거는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발을 쭉 뻗은 채로 앉아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까아아앙…
난쟁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곧이겠다.”
“간다. 내가 마지막이다.”
오우거와 난쟁이가 대화하는 모습은 이곳 타이몰론에서는 제법 흔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어딘가 특별했다.
“하하하! 잘된 일이다.”
“어째서?”
“오우거는 싸움을 좋아하잖아. 너도 이곳은 싸움이 없어 지루하다며.”
“…그랬나?”
“그래, 그랬지. 벌써 까먹었냐.”
“나, 잘 까먹는다.”
“…다 됐다. 한번 써 봐라.”
스으윽…
거대한 투구를 머리에 쓰는 오우거.
오우거는 딱 맞는다든지, 조절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내뱉었다.
“가기 싫다.”
“…뭐?”
“나, 가고 싶지 않다.”
“…….”
“싸우러 가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이냐?”
“싸움 재미없어. 지루한 게 좋아.”
도무지 오우거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들.
“집에 있고 싶어. 죽는 거 무서워.”
천부적인 전사인 그들이라면 두려움은 없어야 할 진데, 그들의 안에서 무엇이 생겨난 것일까.
“무서워, 집에 못 돌아올까 봐.”
“…….”
“좋았는데, 집.”
난쟁이가 웃으며 눈물지었다.
“으하하하하! 좋은 거다.”
“좋은 건가?”
“그래, 이제부턴 집에 돌아오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돼?”
“다들 그런 거야.”
돌아갈 곳이 생긴다는 건, 약해진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때로는 그 약점이 그 존재를 더 강하게 이끌기도 했다.
“죽지 마라, 녀석아.”
“죽지 마. 난쟁이.”
“으이……이… 가!”
괜히 버럭 화를 내고 뒤를 도는 난쟁이.
골두안으로 향하는 마지막 카스트랭이 난쟁이와 인사한 오우거까지 싣고 움직였다.
비수는 골두안의 자철광으로 향한다.
“후우우….”
강설이 골두안의 자철광에 도착했다.
전쟁 준비가 막바지에 치달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쿠구구구구…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무슨 일….”
휘오오오오오오…
비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몬트라에서 솟아오른 게 분명한 검은 기둥이 하늘의 빛을 가리기 시작했다.
한낮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프래넌이 말했다.
“…시작할 모양이군.”
“적들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터무니없는 힘입니다.”
휘오오오오오오오…
빛이 사라져갔다.
그렇게 계속될 밤이 시작된다.
[세력 : 몬트라가 극야(極夜)를 불러옵니다.]
[극야가 유지되는 동안 죽은 자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극야가 유지되는 동안 몬트라 사령체의 제한이 해제됩니다.]
……
“큰, 큰일 났습니다!”
똑똑이에게 헐레벌떡 달려오는 마법사.
“장벽이… 장벽이 무너졌다는 급보가….”
칸의 장벽이 무너졌다.
미리 깔아둔 마력 반응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곧바로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칸의 위기.
누군가에게는 재앙의 신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내달려야 하는 신호이다.
“진군하라, 전군 목표 지점까지 이동.”
그 속도는 아주 천천히.
거병들과 함께 오우거들을 앞세운 비수가 전초 기지를 빠져나와 몬트라의 영역 경계선까지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은 무려 반나절이 넘도록 계속됐으며 그들은 어둠에 물들며 최소한의 빛으로만 시야를 획득했다.
마침내, 정해진 위치에 비수가 도달했다.
반나절.
칸의 비명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괴로운 선택지만을 떠넘기는 자는 누구인가. 이 최초의 선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저 멀리, 아득히 먼 곳에 몬트라의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태양제, 진이 거하는 곳이다.
검은 기둥은 저곳에서부터 이어져 있다.
똑똑이가 손을 휘저어 신호했다.
그 순간.
화르륵…
화르륵…
화르르륵…
순식간에 수많은 불빛이 생겨났다.
그 불빛들 사이로, 붉게 물든 오우거들의 눈빛이 자리했다.
후우우우…
후우우우우우…
뜨겁게 달아오른 피.
선봉장은 누구인가.
후우우욱…
후우우욱…
기괴한 투구를 쓴 오우거.
아자닉을 한 차례 추락시켰던, 트리엄의 폭군.
그가 타이몰론의 대장군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모두 짓밟아라!”
똑똑이의 광포한 외침에, 야성을 깨운 오우거들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세력 : 몬트라와 세력 : 연합군의 전면전이 시작됩니다.]
[세력 : 장막은 현재 세력 : 연합군 소속입니다.]
[승리한 세력이 패배한 세력의 모든 시대력을 흡수합니다.]
[진행 중인 모험이 대장정 : 대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왕은 대장정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대장정이 서사시로 변경됩니다.]
[서사시 : 뒤집힌 태양으로 이어집니다.]
……
[강력한 조력자 ‘불꽃 먹은 뚱뚱이’가 이번 모험에 등장합니다.]
[강력한 조력자 ‘불꽃 먹은 뚱뚱이’가 이번 모험에 당신의 아군으로 합류합니다.]
[강력한 조력자 ‘삐뚤어진 천칭 프래넌’이 이번 모험에 등장합니다.]
[강력한 조력자 ‘삐뚤어진 천칭 프래넌’이 이번 모험에 당신의 아군으로 합류합니다.]
……
조력자 출현의 메시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