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72
제571화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날뛰는 바람.
신비로운 분위기.
이건 실로이, 아니… 탈리아드의 기억이다.
탁…
탁…
발걸음이 무겁다.
세상의 무게가 전해진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어떠했는지 완벽하게 전해진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승천의 과정 중 경험하게 되는, 하늘로 향하는 계단.
파지지지지직-!
“아… 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마력 폭풍이 탈리아드를 무너트린다. 도전자라 할지라도 감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힘.
“안 돼에에에!”
휘오오오오오…
떨어진다.
그렇게 하늘이 멀어진다.
지상으로의 추락.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랐다.
단절감.
버림받았다는 슬픔이, 곧이어 찾아왔다.
“버리지 마, 아버지….”
그를 이곳까지 오게 한 신은, 그를 버렸다.
“나를… 포기하지… 마….”
불사 탈리아드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전했다.
“잘 해낼 수 있는데…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는데.
…믿어줬으면 했는데.
츠즈즈즈즈즛-!
기억 속 장면이 뒤바뀐다.
고오오오오오…
끔찍한 힘의 응집.
10인이 원탁에 모여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직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추락한 녀석들 전부가 이곳에 모였군.”
“하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처음 말을 꺼낸 건 용군주 카-잔.
웃으며 호응한 건 대덕 혜명이었다.
강설이 본 적 있는 남자가 말을 꺼냈다. 밀란이다.
“모두 보았습니까? 그자를.”
“아… 확실히. 강하잖아!”
“강해? 글쎄… 그자를 강하다고 표현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부터가 의문이군.”
“위험해, 그자.”
무슨 얘기일까.
“놈이 보여준 미래를… 믿어도 좋을까?”
“녀석은 꿍꿍이가 있어, 확실해.”
“계시자. 부정적인 미래만을 드러냈지. 희망도 생명도 없는… 끝이라는 미래를.”
“므흐흐… 그럼에도 그자가 보여준 미래를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고 느껴지더군요. 그자는 아마도 우리에게, 최악의 미래만을 보여준 거겠지요.”
밀란이 얘기를 정리했다.
“그러나, 계시자는 우리의 계획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 계획을 실현할 방법 역시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자가 보여준 미래가 곧 도래한다면, 시간이 없습니다.”
“…맞아.”
“분하지만, 맞는 말이지.”
고리가 말했다.
“누군가는 되돌아가야 해, 판데아로.”
“그게 가능한 자들을 추려본다면….”
“아즈란, 고리, 무기나… 그리고 탈리아드 정도인가.”
서리 대공 아즈란, 순수혼 고리, 경계의 무기나 마지막으로 불사 탈리아드.
전설의 10말 중 이 넷은 각자 판데아로 되돌아갈 수단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들만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다루는 힘을 생각했을 땐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 늦지 않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 이 땅에서 영원히 생명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여야만 한다는 건가….”
신강이 말했다.
“피로써 씻어내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죄겠군.”
“여기까지 온 자들 중, 악업을 쌓아 이 자리에 온 이는 없었으니… 더욱 힘든 결정일 겁니다.”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지나온 길이 더럽혀지는 것이기에.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는 행동이기에.
그러니, 그가 나선다.
“내가 갈게!”
또랑또랑한 목소리.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그 순수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내가 갈 거야. 나밖에 못 하는 일이니까. 아버지는 이 일을 저지른 녀석이 누구일지라도 기어코 죽일 테니까.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난 죽어도 죽지 않아!”
“…탈리아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는 있나?”
“…….”
무기나가 말한다.
“무너질 수도 있다. 수많은 생명을 네 손으로 더럽히는 일이니까.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생명의 분노는 필시 너를 향할 거다.”
탈리아드가 히죽 웃었다.
“괜찮아! 아니, 신경 쓰지 않아!”
“……뭐?”
“그러니까 가는 거야. 그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해내야 한다는 건 그만한 각오와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 나의 마음은 커다랗지.
하늘만큼! 우리의 거리만큼.
“아버지를 가장 사랑하는 건, 나니까.”
“…….”
꾸깃…
아즈란이 탈리아드의 소매를 손가락으로 잡아끌었다.
“탈리아드….”
“해낼게! 걱정하지 마!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세상 전부를 죽일 수도 있어. 그게… 나니까! 그러니깐, 괜찮아.”
사랑하는 아버지.
이것으로 전해지겠지.
[탈리아드가 환상 절기 : 이기적인 일기장을 사용합니다.]
[원하는 기억을 붙잡습니다.]
……
두근거린다.
일기장의 귀퉁이에,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곧, 만나러 갈게…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보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 * *
[‘실로이’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았습니다.]
[죽은 이의 능력을 전승합니다.]
[완성된 신체를 이어받습니다.]
[당신은 완성된 신체를 이어받습니다.]
[어떠한 속성의 피해일지라도 그 피해로부터 생존한다면 받은 피해의 50%를 매우 빠르게 회복합니다.]
[소명 : 되찾아야 하는 것들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20개의 유지(遺志)를 획득했습니다.]
……
“허어억… 허어억….”
강설이 깨질 듯한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쌍둥이를 잃었다.
누군가를 미워해야 한다.
누군가를 증오해야만, 이 상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넘겨받은 불사의 기억은 강설에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기억은, 전승보다도 더 강렬하게 불사의 마음에 접근했다. 잠시의 합일.
그가 그리고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여과 없이 전해진다. 증오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세상을 불태운 그 근원이, 악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는 걸 의심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불사 역시,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발버둥 치는 인형이었을 뿐이다.
분노의 화살, 활에 시위를 매긴 채로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시자.
그대는 누구인가.
널 증오한다.
널…
툭…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걸 새롭게 깨달았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
“뭔가가….”
달랐다.
의심인가.
착각인가.
‘아니. 아니야!’
강설은 자신이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20개.
20개의 유지(遺志).
“…20개라고?”
이제까지 20개의 유지를 모았다는 그 말.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이제까지 모은 유지는 모두 21개.
혹시, 실로이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 그것은 유지가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다.
이 전제 역시 틀렸다.
확실히 그녀의 능력을 회수했고, 소명 역시 변화가 생겼다.
강설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간다.
거꾸로, 거꾸로.
실로이.
그윈, 레그리프.
오르고.
몹스.
필소드.
미다르.
카이라.
볼드가.
유화.
신립, 신현.
유현.
대산.
산토스.
골런.
리안 쿠르오스.
토키.
키리.
질리악.
스노우맨.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말.
그 순간, 소명은 어그러진다.
파직…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아!”
기억이 재배치되고 있다.
애초에 이 소명은, 불완전하게 시작되었다.
게임판에 추락했을 당시, 강설은 말들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고 어떤 일을 계기로 부서진 기억을 가지게 된다.
– 마침내 백야(白夜)가 도래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니에르의 예언은 실현된다.
“아아… 아아아….”
그의 기억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잘못 꿰어진 첫 번째 단추가, 뒤따르는 단추들을 방황하게 한다.
첫 번째 말.
지금, 그 기억들이 누군가의 비웃음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 * *
휘오오오…
흰 나무가 판데아의 붕괴를 막았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잠시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생명이 말살당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답을 찾아야 한다.
스으으으으…
강설은 지금,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 와 있다.
콩고리의 묘지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전란, 대재앙, 멸절까지.
모든 풍파에 휘말린 이 마을의 묘지가 어째선지 말끔했다.
매일같이 유족들이 가꾸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 역시 이미 죽었을 테니까.
강설은 묘비 앞에 선다.
–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았던 사람.
분명, 이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분명히!
– 때가 되었다.
이따위 의미를 알지도 못할 각인이 아니라!
스윽…
사라락…
강설이 얇은 사슬이 늘어진 부서진 회중시계를 손에 쥐었다.
묘비에 올려져 있는 그 회중시계.
첫 번째 말, 스노우맨이 선물 받았다던 그 시계다.
이 역시 이상한 일일 뿐이다.
시체도 없는 묘비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중시계는 정말로 이상하다.
강설이 회중시계를 개방했다.
딸칵.
– 용기 있는 자의 앞날에 행운이 따르길.
보다 더 안쪽.
딸칵.
이곳엔 원래, 스노우맨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치직…
치지지직…
각인이 반응한다.
거짓된 각인을 불태우고, 진짜 각인을 드러낸다.
– 아스모돈.
“…….”
그에 따라, 그의 기억들도 하나둘, 바뀌었다.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첫 번째 말.
서리 마법사 스노우맨.
그것은, 회중시계가 꾸며낸 거짓이었다.
이제껏, 많은 심층 의식에서 드러났던 말들의 모습.
그러나 그 어디에도 스노우맨은 없었다.
칠흑의 미궁, 꿈의 심연에서조차도 강설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얼굴 없는 자를, 떠올릴 수 없기에.
기억조차 없는 자를 만날 수는 없다.
강설은 이 순간, 누군가를 떠올린다.
– 그 시계, 내가 만든 것 같다고.
이 회중시계를 만든 자를.
– 반갑네, 내 이름은 빌 마커스. 빌이라고 부르게.
“빌… 마커스.”
그자다.
시계를 손에 쥔 채로 달렸다.
그를 만나야 했다.
반드시.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반드시 만날 수 있다.
그가 기다릴 테니까.
“…….”
이곳, 콩고리의 시계 공방에서.
물에 잠기거나 부서진 건물들.
그것들을 지나치자 홀로 부자연스럽게 물 위에 떠 있는 건물이 있었다.
빌의 시계 공방이다.
모험이 시작된 그곳에서, 모든 게 뒤틀렸다.
자신을 의도된 운명으로 이끌었다.
누군가가.
끼이이이익…
공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벽과 선반에 가득한 다양한 종류의 시계들.
강설은 문을 닫은 채로 공방의 한 가운데에 섰다.
스으으으…
스으으…
환영들이 나타났다.
반가운 이들이다.
– 탄시아… 이곳이다.
– 응!
– 시간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시간선 붕괴다. 이곳의 시간은… 뒤틀려 있어. 이럴 수가!
우르의 환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 틀렸어, 함정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 어떡해!
– 죽지는 않을 거다, 아마도….
우르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강설이 있는 위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강설, 아마도 너 역시 이곳에 오게 되겠지.
강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우르를 바라보았다.
– 조심해라, 시간의 제국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
– 카곤은….
강설은 손을 뻗어 환영을 만지려 했다.
그대로 환영을 통과하는 손.
우르와 탄시아는 사라졌다.
강설이 중얼거렸다.
“…그들을 어떻게 한 겁니까?”
“곧 알게 될 걸세.”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빌의 목소리였다.
기억에서 지웠던, 그자의 목소리.
“곤란한 일이 생겼나 보군, 이곳까지 날 찾아온 걸 보면.”
– 아무튼, 난 다시 콩고리에 자리 잡을 생각이니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게.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시계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으니.
“빌… 마커스.”
“…….”
“당신의 이름은… 빌 마커스가 맞습니까?”
“아닐세.”
“…그렇다면.”
강설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은 아스모돈입니까?”
“글쎄… 어떨 것 같나?”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 노인.
강설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짓을….”
“…….”
“왜 나에게….”
“때가 된 것일 뿐. …시계는 돌려받겠네.”
어느샌가, 회중시계가 노인의 손에 가 있었다.
방금 벌어진 사건은, 노인이 어떠한 존재이든 간에 초신성이 된 강설의 손에서 시계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자라는 걸 드러냈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약속도 했으니 새로운 시계를 만들어주겠네.”
스윽…
강설이 손바닥을 펴자, 그 위에 비슷한 회중시계가 놓여 있었다.
딸칵…
시계는, 멈춰져 있었다.
그 순간.
기이이이이이잉-!
째깍… 째깍…
공방의 모든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침도, 분침도.
강설의 회중시계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그것들은 푸른빛을 내뿜으며 공간을 열어젖힌다. 아니, 이건 착각이었다.
공간을 여는 게 아니다.
시간을 열었다.
“시간 여행이다, 눈사람.”
노인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다.
휘오오오오…
동시에 그들의 몸과 영혼은 시간의 틈으로 전이된다.
“카곤은 이 순간까지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운명이 장막을 들추고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