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73
제572화
스윽…
스으으윽…
10살쯤 된 부드러운 살결의 소년이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직 소년에게 캔버스는 컸지만, 다행히 성인용은 따로 있었기에 그럭저럭 다룰 만했다.
색료(色料)를 짜고 그것을 문댈 때, 온갖 신비로운 색이 만들어졌다.
스윽…
스으윽…
소년은 매일 보는, 저택의 창밖 풍경을 그린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릴 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런 상태임을 즐겼다.
사람은 아직 잘 그리지 못했다. 인물화엔 영 소질이 없었다.
인물을 그릴 땐, 생각하게 된다.
잘 그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잘 못 그린다.
그러니, 잘 안 그리게 된다.
“으음… 세상일이 그러한 법이지.”
괜히 노인의 목소리를 내는 소년. 그림을 그릴 땐 종종 혼잣말을 하곤 했다.
“유리코.”
“읍….”
소년 유리코는 멈칫했다.
뒤에서 들려온 소리는 분명 그의 아버지가 낸 소리다. 혼이 날 것이다.
“또 그림을 그리는 것이냐….”
“네…….”
“수도 없이 말하지 않았느냐, 정진할 때라고.”
“…네.”
아이는 의견을 표출할 수 없었다.
이 화구(畫具).
이 저택.
하인들로 가득한 이 환경.
모두 그의 아버지가 마련하고 준비한 것들이니.
“너는 위대한 10가문의 일원. 프로이 유리코다. 늘 그 점을 잊지 말도록 해라.”
또 그 소리다.
“…알겠어요.”
“…….”
스윽…
유리코의 발치에 놓인 이미 완성된 그림들을 확인하는 그의 아버지.
“…이 자는.”
“아! 그건….”
유일한 인물화.
첫 번째 마도사 우르다.
“…며칠 전에 거절한 것 때문이더냐.”
“아, 아니에요… 그냥….”
며칠 전, 유리코는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첫 번째 마도사 우르, 그가 수도에 온다는 것을 알고.
유리코가 어렸을 때 보았던,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어렸을 때 보았던 한 마도사가 있었다.
그가 새하얀 로브를 입고 당당히 귀족들 사이를 활보할 때, 유리코는 그에게 사로잡혔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리코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마도사, 우르.
그가 수도로 되돌아왔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카곤 의회는 그에게 죄를 물었고 그는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오늘, 뇌옥에서 꺼내진 우르가 민중들 사이를 가로질러 의회의 판결을 받기 위해 호송된다.
이것은 다분히 의회의 권위와 힘을 보여주기 위한, 의미 없는 연극이었지만 어린아이가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다만, 유리코는 그를 사로잡았던 우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당분간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네?”
“그렇다면, 네 부탁을 들어주마.”
“이, 일주일?”
“최소 한 달이다.”
몸에서 떼어놓으면, 흥미도 식기 마련이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그 나이 때 흥미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 사소한 일에 매달리지 않으리라.
그의 아버지인 프로이 아센트는 그렇게 판단했다.
“…알겠어요!”
“좋다.”
“정말! 정말이죠?”
“약속한 것은 지킨다. 따라나서라.”
“잠깐만요!”
주섬주섬 품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그림을 챙기는 유리코.
“쯧….”
우르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아센트는 고개를 흔들며 아들을 데리고 저택을 나섰다.
호위가 따라붙었지만, 멀리서 부자(父子)를 지켜볼 뿐,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부자의 시간은 귀중했다.
아센트의 아내이자 유리코의 어머니였던 여성이 아주 오래전 병마로 세상을 떠날 때쯤부턴 더더욱 가치가 높아졌다.
이제 유리코의 가족은 아센트뿐이었고 아센트의 보물은 유리코뿐이었다.
팟-!
팟-!
유리코가 폴짝폴짝 뛰며 행렬 사이에 형성된 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경박하게 뭐 하는 짓이냐.”
“그렇지만, 보고 싶은걸요!”
“…….”
아센트는 말없이 유리코의 양다리를 그의 어깨에 짊어졌다. 그 모습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평범한 부자의 모습이었다.
“호송대가 보이면, 내려야만 한다.”
“어째서요?”
“카곤의 마도 중진들이 이곳을 보고 있다. 그들의 눈 밖에 나선 곤란해.”
“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권위는 쓸수록 흠집이 난다. 특히나 이런 사소한 일일수록. 아니, 이 얘기는 너에게도 중요할 것이다. 너도 언젠가 마도사가 될 것이고 그들의 눈에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은, 소년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자라온 시간만큼 들었던 말이니 새삼 억울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마도사가 되어야 한다.
너는 제국의 씨앗으로 태어났으며 마력의 축복을 받았으니 번영을 이끌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늘 들었던 말이다.
“저도… 마도사가 되어야 하나요?”
“10가문에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만 한다. 운명의 선택을 받았으니까.”
제국을 지탱하는 마도의 힘.
위대한 10가문.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렇지만… 10가문을 만들어낸 건 우르잖아요.”
“…….”
“그에게 선택받은 게 우리인데, 우리는 왜 그를 벌하는 건가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목소리를 낮춰라.”
히히히힝-!
선두를 맡은 말이 울었다.
많은 사람이 말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동물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슬슬 시간이다. 내려주마.”
“자, 잠시만요.”
“억지를 부릴 셈이냐?”
“이대로… 잠시만요.”
“…열을 세고 내리마.”
유리코가 내리길 망설인 이유는,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마도사가 이곳을 보고 있다.
그를 보고 있다.
철창에 갇힌, 첫 번째 마도사가.
“…되었다.”
스윽…
땅에 내려오는 유리코.
“왜 최초의 마도사를 저렇게 대하는 거예요?”
“그건…. 네가 알 것 없다.”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한다.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팟-!
“유리코!”
히히힝-!
“무슨!”
유리코가 내달려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 바람에 호송을 맡은 마도 기사단이 당황했다.
“…짓밟아라.”
후우우우웅-!
일순, 마력이 일었다.
평온한 기운이 전해지며 말들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센트 경?”
“제 아이입니다.”
“이런, 이 아이가 그 명성이 자자한 꼬맹이였군. 그런데… 영재라 그런지 하는 행동도 비범한 것 같군?”
“아직 어리숙해 그렇습니다.”
첫 번째 마도사의 호송은, 그에 걸맞은 자가 맡아야 했다.
호송의 책임자는 마도 기사단의 수장이자 10가문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옌 가문 출신이었다.
“아센트 경의 아이라면, 필시 제국의 미래가 되어주겠지. 그런 아이에게 관용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바다와 같은 이해심에 감사드립니다. 유리….”
유리코는, 우르에게 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거, 그렸어요. 우르.”
촤르륵…
“…나를 아나?”
“봤어요! 마도사!”
“……그림, 제법이군.”
“정말요?”
“좋아하나?”
“뭐, 뭘요?”
“그림.”
“네! 좋아요.”
“…네 아비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만.”
스윽…
아센트가 유리코를 덥석 안아 들었다.
“유리코는 마도사가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마도사여.”
“…꼬마야, 마도사가 될 생각이냐?”
“……네.”
“어째서?”
“마도사가 되어야 한대요.”
“마도사가 되지 마.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지 마. 버림받을 뿐이니까.”
유리코가 반발했다.
“우르도 마도사잖아요!”
“나는 이 길이 좋았다.”
“…….”
“…그림, 고맙다.”
* * *
마주르 학원.
마도사에 도전하는 자들을 위한 카곤 제국의 중등 교육 기관.
10가문의 아이들을 비롯한 상급 귀족뿐만 아니라 출생이 하찮은 자들도 자질만 충분하다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
격이 떨어진다고 하여 이와 같은 입학 제도에 반대했던 귀족들이지만, 최초의 마도사는 마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며 이를 확고히 했다.
그 결과, 마주르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카곤에 마지막 남은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이곳의 학생들은 이후에 심화 과정인 학술원에 진학하게 될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마도사라는 꼬리표를 가지게 된다.
유리코는 마주르에서도 특이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마도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가진 재능으로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몸은 허약했으며 성격은 유순했다.
그의 이러한 특징은 혈기 넘치고 사회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았다.
파아아악-!
“으윽….”
그가 앉은 의자를 걷어차는 동급생.
“이런, 미안… 내 의자인 줄 알았네.”
“…….”
“뭐, 괜찮지?”
유리코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들을 상대해주지 않는 게, 그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야… 이건 또 걸작이네.”
“…돌려줘.”
그가 그린 그림을 빼앗아 웃는 아이들.
“안 그래? 마주르에서 이런 괴상망측한 짓거리나 하는 게 10가문이라니.”
“10가문을 모욕하지 마.”
“프로이는 10가문에서도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데 이런 거나 그릴 시간이 있는 거야?”
유리코는 이 아이들을 괴롭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안다.
이들이 10가문을 욕보였다고 정식으로 마주르에 항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급 귀족인 이들과 이들의 부모는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리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들의 잘못이 그들의 부모까지 이어지기를 바라진 않았다.
선했으나, 어리석은 마음가짐이다.
그를 물어뜯는 승냥이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물리칠 수 없다.
유리코는,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을 했다.
“…원숭이들이란.”
“뭐?”
“하찮은 가문의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실수로 말을 섞었으니 내 잘못이야.”
“…너 뭐라고 했냐?”
“하층민은 귀까지 안 좋은 거야? 그것까진 몰랐….”
빠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눈이 핑 돌았다.
유리코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당연히, 또래의 아이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쓰러진 그대로 두들겨 맞았다.
빠아아악!
“아악!”
빠아아아악!
“아아아악!”
“개자식이… 개자식이!”
누군가 빠르게 사태를 중재할 사람을 부르기 위해 뛰쳐나갔다.
빠아악-!
빠아아악-!
“그, 그만….”
인정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하는 자들.
마법으로 대항할 순 없었다.
이곳은 마주르.
교육자의 적절한 인도 없이 마법을 폭력에 사용하면 곧장 퇴학이다. 저들도 그것을 알기에 마음껏 매질했다.
그때.
“그만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아아아아아악-!
유리코를 짓밟던 녀석이 주먹 한 번에 나동그라졌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아이.
“아스모돈….”
“괜찮아?”
“도와줘, 나 좀….”
“그럴게.”
망설임 없이 답하는 용기 있는 자.
빠아악-!
아스모돈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곧장 되돌아와 주먹을 뻗은 상대를 노려보았다.
콰지이익-!
빠아아아아악-!
아스모돈은 동급생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아스모돈은 영웅이었다.
상처 입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친구인 그를 지켜주었다.
유리코에게 대인 관계는 늘 어려웠다.
사람에게 관심을 주고 관심을 기대받는 건 서투르고 괴로운 일이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그와 함께다.
“그만둬라! 뭣들 하는 짓인가!”
처절한 싸움은 마도사의 개입으로 끝이 났다.
그 잠깐 사이에 아스모돈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부어올랐다.
그에게 얻어맞은 동급생들이 말했다.
“아스모돈, 너 속고 있는 거야. 저 자식이 10가문 출신이 아닌 자들은 모두 쓰레기와 같다고 말했어.”
“그건….”
“유리코는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스윽…
아스모돈이 그를 뒤돌아보았다.
…아니야.
“난….”
말문이 막힌 유리코가 더듬거렸다.
악의에 항변하기 위해선, 악의에 사용된 힘과 시간보다 더 큰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말대로 아스모돈은 10가문 출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
“어쩌라는 건데?”
기분이 상해버린 짐승들은 주춤주춤 물러나 되돌아갔다. 그들은 아마도 오늘 중으로 이 싸움의 원인부터 구체적인 개요까지 마도사에게 낱낱이 고해야 할 것이다.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아스모돈, 있잖아… 난 그런 말을 하려던 게….”
“괜찮아.”
“…….”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아스모돈이 배시시 웃었다.
“나는 너를 알아.”
“…….”
“그러니까, 괜찮아.”
굳이 말로 교감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닌, 정말로 의지할 만한 존재.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이다.
* * *
15살의 겨울.
이제는 학술원에 진학할 시기가 다가왔다. 학술원에 진학하면 본격적인, 마도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스윽…
스으으윽…
생각이 많아진 유리코는 요즘, 부쩍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다. 여전히 풍경을 그렸다.
그의 아버지인 아센트는 이제 그림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편으론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하였다.
최근, 그의 아버지가 어딘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센트는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급격하게 말라간 것으로 모자라, 잠을 못 잔 것인지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곤 했다.
“그림을… 그려주겠니.”
“…아버지?”
“…그림 말이다.”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유리코에게 아센트가 그림을 그려달라 말한 것.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저… 마음에 안 드실….”
“괜찮다. 필요한 일이야.”
필요한 일?
유리코는 의아함을 느끼며 붓을 들었다.
문득, 아버지의 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자 주름은 깊게 파였으며 미간은 늘 인상을 써 각이 잡혔다. 눈 밑에는 검댕을 문댄 것처럼 피로가 가득했고 머리는 희끗 했다.
이상했다.
진짜 이상하잖아.
그래도, 열심히 그렸다.
부족한 실력을 메꾸는 것은 정성과 애정일 테니.
그저, 노력했다.
그림을 다 그려갈 때쯤, 아센트가 입을 열었다.
“열다섯, 중요한 나이이지.”
“아버지, 저는….”
장래에 관한 얘기가 오갈 것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니 기다려달라 말해야 한다.
기다려달라…
“마도사가 될 생각이냐?”
“있잖아요, 저는….”
“그 길을 걷지 마라.”
기다려달라… 말해야 했는데.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어째서….”
“앞으로는 마법 따위는 잊고, 네게 맞는 길을 가도록 해.”
“…….”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선지 그 말이 뭔가 무서웠다. 그것을 듣는 게, 두려웠다.
“너만의 길을 찾아라. 그거면… 된다.”
스으윽…
아센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은….”
“그대로 두도록 해.”
“…이곳에요?”
“그래.”
그가 뒤돌아 떠났다.
“쓸 데가 있을 거다.”
* * *
달린다.
“허억… 허억….”
이것은, 아스모돈의 눈이다.
아스모돈은 달리고 있다.
“헉… 허어억….”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달려야 했다.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존재를 지탱하기 위해.
“이봐, 너!”
마주르의 학생증을 들이밀자, 반응이 누그러졌다.
“누굴 찾아왔지?”
“아, 아센트 경의….”
“…들어가도 좋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겁니까?”
“끝났다.”
휘청…
아스모돈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가 오늘 급하게 전해 들은 소식.
유리코의 아버지인 프로이 아센트.
그의 교수형이 집행된다는 것이다.
그가 그러한 벌을 받는 이유는 위험한 연구에 가담했다는 것인데,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까지도 정쟁 때문에 프로이 가문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급작스러운 교수형은, 분명 피해자를 만든다.
저벅…
저벅…
형장에 들어서는 아스모돈.
꽤 광활하다 할 정도로 형장은 넓었다. 의자가 그만큼 많기도 했고 그만큼 의자가 비워졌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에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
이 죽음과 관련된 일이 꺼림칙했는지, 모두 연관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물지 않은 소년 혼자 이 모든 괴로움을 감당하게 하다니.
“유리코.”
“…왔어?”
스윽…
곁에 가 앉았다.
유리코의 얼굴은 창백했다.
가만히 앉아 울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다웠다.
정작 경동맥이 차단되어 즉사한 것은 그의 아버지일 텐데, 오히려 유리코 쪽이 머리에 피가 돌지 않는 듯했다.
반응 체계가 고장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곧 끝을 고한다.
유리코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해방이다, 감정이여.
“허억… 어… 허… 어헉….”
“유리코!”
그가 유리코의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눈을 마주 보게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만 같은 유리코.
유리코의 눈은 탁했다.
그제야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생기가 돌았다.
혈색 역시도, 돌아왔다.
피가 돌며 사람이 되었다.
감정을 지탱해줄, 마지막 저지선인 친구에게 괴로움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공허한 듯, 멍하니 형장을 바라보는 둘.
이곳에는 아센트 경의 숨이 머물다 갔다. 형이 집행된 후 30분이 지나자 시체 역시 다른 이에게 거두어졌다.
“시간이 그대를 벌한다.”
“…….”
카곤에게서 그런 선고가 내려졌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웃기지.”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프로이 가문의 가주는 유리코가 되었다. 유산에 얽힌 문제들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아마도, 10가문의 지위는 유지할 수 없겠지.
받아들여야만 한다.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을.
15살의 소년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는.
스윽…
유리코는 발치에 두었던 그림을 교수대와 맞춰본다. 아센트의 마지막 모습이 딱 들어맞는다.
화르르륵…
그림이 불타기 시작했다.
유리코가 마법으로 불태웠다.
마지막 남은 아센트의 모습일 텐데도.
소년의 꿈은 그림처럼 찢어지며, 그 안에는 악과 독기가 대신하여 스며들었다. 그것은 열망으로, 불꽃으로 변했다.
상처 입은 새끼 사자가 할 수 있는 건 꿈을 꾸는 것뿐이었다.
– 마도사가 되지 마.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지 마. 버림받을 뿐이니까.
– 앞으로는 마법 따위는 잊고, 네게 맞는 길을 가도록 해.
새로운 꿈을.
“나, 마도사가 될 거야.”
아센트의 염려와는 달리 그의 그림은, 유리코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소년을 움직이는 건, 이제 추억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아스모돈.”
그가 웃었다.
“함께해줄 거지?”
아스모돈 역시, 웃었다.
“물론.”
최초의 마도사 우르가 알카트론에 봉인된 지 5년.
이것은 그가 모르는, 시간의 제국 카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