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8
제57화
황제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기사들은 언제라도 황제의 명이 떨어지면 저 어린 생명들의 목을 수확하기 위해 검을 굳세게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료들과 조언자들은 혹 황제의 노여움을 살까, 말을 아꼈고 황제는 카렌과 계속해서 대화했다.
“몬트라의 황제인 짐이 죽어줬으면 한다?”
“바라는 것을 말하라고 했잖아….”
“그랬지. 한데 궁금하구나. 어째서? 어째서 내 죽음을 원하는 거지?”
태양의 제국 몬트라의 황제.
그는 자신이 만백성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 편이었다.
부정, 색욕, 사치를 멀리하고 오로지 제국만을 생각하는 그를 싫어하는 이보다는 좋아하는 이가 많았다.
그 말은, 싫어하는 이가 없지는 않다는 얘기였다.
“몬트라 따위, 망했으면 좋겠어.”
“저… 저!”
“감히! 누구의 앞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쉬이. 어린아이 목소리보다 큰 소리를 내면 대화가 끊어지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 아이와의 대화를 끊은 자에겐 벌을 내리겠다.”
입을 열었던 자들이 황제에게 대답했고 황제는 다시 카렌과의 대화에 열중했다.
“몬트라가 왜? 대륙의 헐벗은 이들을 제국의 품 안에서 보호하는 것을.”
“너는, 몰라. 허기와 추위를.”
“네 말이 맞다. 과인은 모른다. 그런 것을 깨닫기도 전에, 나는 이 자리에 앉았으니.”
“제국만 아니었다면… 우리 마을이… 흑….”
카렌과 카루나가 살던 요정의 마을은, 제국의 군대에 의해 짓밟혔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어린 쌍둥이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노예 생활로 그 삶을 시작했다.
카렌과 카루나의 이야기였다.
두 아이의 사정을 들은 황제는 미간을 좁혔다.
“요정의 마을? 아, 웅기드와 영토 분쟁 때 일어났던 그 일 말이군.”
인간의 제국 몬트라는 트롤의 제국 웅기드와 국경을 맞대고 끊임없이 반목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피해자가 생겨난 것은 물론이었다.
“하하… 이거, 이래서는 내가 꼼짝없이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할 것만 같구나.”
“…….”
“좋다, 네 부탁을 들어주마.”
대화에 끼어들면 벌이 떨어질 터라, 모두 입을 다물고 황제의 말만 기다렸다. 만일, 정말로 황제가 정신이 어떻게 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면 벌을 받더라도 뛰어들 생각으로.
하지만 다행히도 황제는 초지일관 웃으며 그다음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야?”
“너무 불공평하지 않으냐? 네가 언젠가 제국 최강의 기사가 되면 그때 생각해 보마.”
“…기사?”
“그래, 그땐 기꺼이 내 목숨을 주마. 이 제국을… 네 손으로 멸망시킬 기회를.”
“하지만 노예는 기사가 될 수 없는걸.”
“너희는 지금, 과인의 앞에 선 순간부터 노예가 아니다. 이제, 너희를 가로막는 것들을 하나둘 치워주마. 신분, 금전, 제도, 인식, 생활까지도. 나는 이로써 너희에게 과인의 아량을 증명하겠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노예 소년과 소녀를 위해 제국의 황제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니.
“어째서?”
“대신 너희 또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네가 입에 담은, 그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좋아.”
“마커스 경!”
“예!”
“자네가 이 아이들을 신경 쓰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스르륵…
치지직…
또다시 강설과 카루나가 보고 있는 장면이 어그러졌다. 강설은 이때마다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추억을 떠올리는 와중에 그 추억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기분.
“카루나, 이건?”
“제 과거인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든 일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아무래도, 저와 과거를 공유하는 인물의 정신세계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카루나는 오히려 냉철해졌다.
강설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치지직…
그들이 다음으로 본 장면은 아까보다 규모가 훨씬 큰 장면이었다.
“와아아아아!”
“카렌 경!”
“카루나 님! 여기 좀 봐주세요!”
카렌과 카루나의 어렸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전부 장성하여 순백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백성들이 올려다봐야 하는 우뚝 솟은 연단 위, 황제의 앞에 8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황가의 수호자라 불리는 8명의 인간 병기들.
8인의 기사는 제국이 가진 힘의 상징이었다.
8은 태양의 제국 몬트라에서도 신성한 숫자였고, 큰 의미를 내포했다. 몬트라가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수호자들의 숫자가 변동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려 했다.
황제가 한쪽 무릎을 꿇은 카렌과 카루나에게 다가갔다.
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카렌과 카루나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
물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음에도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황제의 미모 또한 기이한 것이었지만.
황제가 입을 열었다.
“15년 전 그때를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과인을 죽이고 싶다고 했지.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느냐?”
“변함이 없습니다.”
백성들이 술렁였다.
“무, 무슨!”
“불경하다!”
“끌어내!”
“조용!”
8인의 수호자 중 누군가가 좌중의 입을 닫게 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테니 모두 입을 다물었다.
“짐은 그때의 어린아이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기억합니다.”
“제국 최강의 기사가 된다면 이 목을 내어주기로.”
“예.”
“지금의 네가 그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카렌이 대답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또한, 카렌은 어느 순간부터 제국의 모순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제는 신이 아니었다. 이 거대한 제국을 완벽하게 다스리기에는 부족했다.
지금도 그의 능력은 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완벽하다 못해 넘쳤지만, 제국의 황제로서는 부족했다.
아니, 누가 황제가 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부단히 노력했다. 그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서.
카렌은 어느새,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토록 시간을 주었는데도… 안타깝구나. 이러다 약속의 날이 오기도 전에 과인이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뜰까 우려되는구나.”
“반드시, 반드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그대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전히 제국을 위협하는 거대한 힘들이 도사리고 있다. 내 목 또한 언제든 땅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지.”
“…….”
“카렌, 그리고 카루나.”
“예.”
“예.”
“내 기사가 되어다오. 언젠가, 날 죽인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그를 지킨다.
모순된 시대, 모순된 세상.
그리고 이 모순을 받아들이는 쌍둥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맹세해라.”
카렌과 카루나.
그들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된 말을 내뱉었다.
“카렌과 카루나는 몬트라의 황제, 진 아우뎀 몬트라의 기사가 되겠습니다. 이를 태양과 별무리에 맹세합니다.”
“너희는 이제부터 황가의 수호자이다. 제국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라.”
데엥- 데에엥-
거대한 종이 황도를 울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함성이 종소리를 사라지게 했다.
황제를 죽이기 위해 황제의 기사가 된 자들.
그들은 황가의 수호자는 8인이어야 한다는 규칙을 최초로 깨고 각기 9번째, 10번째 수호자가 되었다.
위대한 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설의 옆에 있던 카루나가 조용히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몬트라의 기사였습니다.”
“몬트라….”
안타깝게도, 강설은 몬트라가 어디에 있는 건지 그리고 어떤 위용을 자랑하는지 알지 못했다.
‘몬트라는 지금, 판데아에 없는 국가인데?’
제국이라면 거대한 영토 또한 그 조건일 터였다. 한데, 대륙에 그 위용을 떨치는 제국은 강설이 알기로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들의 이름은 둘 중 어느 곳도 몬트라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후우웅…
치지직…
장면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카렌과 카루나, 둘이 다투고 있었다.
“정말 떠나려는 거야, 카루나?”
“이미 얘기했잖아. 나는 세상을 둘러볼 거야. 과연 진이 내게 보여준 게 세상의 전부인지, 확인해봐야겠어.”
“…알았어.”
“미안, 카렌. 끝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 거 알지? 몬트라 제국의 사람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억해.”
“기억할게.”
약속.
카렌과 카루나는 떠나기 전, 한 가지 약속을 나눴다.
“네가 나를 찾으면, 언제라도 몬트라로 되돌아올게.”
“너무 늦으면 안 되는 것도!”
“그래.”
“약속 꼭 지켜.”
“언제 보내줄 건데?”
“지금.”
카렌이 카루나의 양손을 힘껏 붙잡았다. 미련이 남은 손짓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카루나에게 말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함께 고생했잖아.”
“…그래.”
“망할 자식, 떠나!”
치지직…
장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황제와 카렌의 모습만이 대전에 비쳤다.
다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카루나인가?”
“응, 진.”
“무례하구나, 대체 언제쯤 존경을 표할 건지….”
“히히… 좀 봐줘. 그리고 그런 딱딱한 관계는 본인이 더 싫어하면서.”
“얼마만의 편지지?”
“글쎄, 3년?”
“카루나도 참 매몰차군.”
“그만큼 바쁜 거겠지.”
“세상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기도 하고.”
몬트라의 황제 진은 아련한 눈빛으로 창문 너머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
“이토록 넓은 제국을 다스리는데, 황도 밖으로 나가본 경험은 손에 꼽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저런! 동정해줄까? 필요해?”
“하하, 동정이 필요한 건 그대 아닐까? 카루나가 떠난 후로 밤마다 울었잖은가.”
“닥쳐! 약속을 당장 이행해줄까?”
“아직 태양의 기사 레인 경이 남아있는데?”
“끄응… 그렇긴 하지.”
“그래도 얼마 안 남았을 것이다. 레인 영감이 너희에 대해 한 말이 있으니.”
“뭐?”
진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네가 자신을 앞지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정말? 그 고집불통 영감이 그렇게 말했어?”
“이제 레인 영감의 앞으로의 10년은 늙어가는 일만 남았지만 그대들의 10년은 다를 테니까.”
“헤… 그날이 오긴 오는구나.”
왠지 둘, 모두 말이 없어졌다.
카렌은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진에게 물었다.
“진.”
“왜.”
“우리를 왜 거둔 거야? 자비? 호기심? 그도 아니면 수집가적 면모?”
“너희는 특별했으니까.”
“뭐?”
“달의 힘과 불꽃의 힘을 나눠 가진 쌍둥이 요정. 내가 아니어도 너희는 누군가에게 거둬졌을 것이야. 물론, 결국엔 내 품으로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런 힘은 왜 타고난 걸까?”
“글쎄… 레인 영감이 그러더구나.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너희가 자기가 없던 시기에 제국에 자리했다면 수호자의 선봉장 자리는 카렌, 너의 것이었을 거라고.”
“그거 엄청난 칭찬인데.”
태양의 선봉장.
태양을 숭상하는 몬트라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였다.
“뭐, 근데 카루나한테 연락은 어떻게 온 것이냐?”
“얼마 전에 내가 연락했거든.”
“왜?”
“뭐! 왜, 왜? 보고 싶어서. 남매끼리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이 망할 황제야?”
“누가 뭐라고 했는가? 혹 쑥스러운 것이냐?”
“조용히 해!”
“하하하! 그래서?”
카렌이 머리를 긁적이고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고 있대. 약속이니까.”
“얼마 만인지… 나도 보고 싶구나, 카루나.”
후우웅…
치지직…
장면의 전환.
강설은 카루나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카루나?”
“하아… 하아….”
“왜 그래?”
“저는… 저는….”
새롭게 나타난 장면은, 아까까지와 같이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다.
화르륵-!
“찬탈이다! 찬탈이야!”
“꺄아아아악!”
“사, 살려….”
푸우욱…
제국의 황도가 불바다가 되었다.
빛이 내리쬐던 황도가 뜨거운 열기로 몸서리쳤다.
“레인 영감!”
“카렌! 조심해라! 수호자 중에 배신자가 있어!”
배신자.
배신의 칼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을 겨눴다.
“이 악랄한 자들을 성안으로 들여보내지 마라!”
“하아… 하아….”
채앵-! 채애앵!
푸슉-!
칼과 칼이 부딪치고, 그보다 많은 비명이 가득했다.
카렌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치달았다.
까드득…
입에서 울컥 솟는 피를 무시한 채, 그녀는 불길의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더러운 찬탈자들! 내가 있는 한, 너희는 결코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카렌, 문을 열어라.”
“…리오나, 너였군.”
진의 곁에서 신비로운 관을 쓰고 조언을 하던 여인.
그 여인은 배신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성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몬트라는 끝이다. 진 또한 오늘로써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겠지. 너 또한 바라던 것 아니었던가?”
“…까불지 마.”
화르륵-!
카렌의 검이 바닥에 금을 그었다.
“선을 넘어오면 죽인다. 비열한 이리들이여.”
“무슨 자신감이지?”
“…카루나가 올 거야. 온다고 했으니까.”
찬탈자들의 무리에서 당황스러운 눈빛이 오갔다.
카렌과 카루나는, 함께할 때 배로 강해지는 특이한 체질이었다.
카렌 하나만으로도 성으로 진입하기가 껄끄러운데 카루나까지 더해지면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한데, 카렌의 말에 리오나는 웃었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희망을 버려라, 카렌.”
“닥쳐! 올 거야! 온다고 했어! 돌아온다고!”
“끌어내, 죽여도 좋다.”
“으아아아아!”
콰아아아앙-!
폭발하듯 카렌의 신형이 불길에 타올랐다.
붉었던 그녀의 갑옷과 흩날리던 붉은 머리칼은 재처럼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푸욱… 푸욱…
“킥… 킥킥….”
“이런 괴물이….”
카렌은 무수히 많은 적을 베었다. 그보다 많은 적을 불태웠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비틀린 고개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찬탈자들을 성안으로 스쳐 보내며, 그녀는 말했다.
“약속… 했으면서….”
치지직…
“돌아온다고….”
치지직…
찌직… 쩌저저적…
강설과 카루나가 머무는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카루나는 넋을 놓은 채로 말했다.
“가지 못했어. 난… 난….”
“카루나!”
스르륵…
어둡게 변해버린 공간에, 회색빛의 인영이 나타났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강설과 카루나에게 다가오며.
“어째서…”
저벅. 저벅.
쩌저저적…
“위험해!”
강설의 고함과 함께, 잿빛의 여인이 말했다.
저버리다
“약속을 저버렸는가.”
콰지이이익-!
마침내, 세계가 붕괴했다.
[사망 선고의 수정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시체의 정신세계에서 빠져나옵니다.]
[보상이 책정됩니다.]
[연계 모험이 이어집니다.]
[모든 모험이 끝나야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