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64
제63화
툭…. 툭….
어두운 공간에 물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졌다.
“죽은… 건가?”
머리를 긁적이는 잿빛의 기사 카렌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녀는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죽은 후에 그녀가 맞이했던 것은 완전한 암흑, 이처럼 홀로 어떤 공간에 남겨진 기억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즉, 죽은 건 아니라는 얘긴가?”
그녀를 붙잡고 애원하던 그녀의 형제, 카루나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미련이… 아직, 남았나.”
그때였다.
치직… 치지직…
어두웠던 공간이 잠시 밝아졌다. 그리고 누군가의 시야가 카렌에게도 보였다.
“허억… 허어억….”
두근… 두근…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군가의 시야로 바라본 세상.
마치, 직접 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모습. 시야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이 말을 탄 상태인 것 같았다.
“기억… 인가?”
이건 누군가의 기억이 분명했다.
“가야 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두두두두두…
굵직한 목소리.
카렌은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카루나! 카루나구나!”
반갑기도, 슬프기도 한 목소리.
카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따라갔다.
꿀럭… 꿀럭…
카렌의 시선이 그의 아랫배로 향했다.
피.
지혈도 하지 못한 채로 안장에 올랐는지, 말이 속도를 낼 때마다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카루나!”
카렌은 다급하게 외쳤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카루나에게 닿지 않았다.
“하아… 하… 카렌이… 기다린다고… 했는데… 약속… 했는데… 돌아가겠다고… 나….”
툭.
시야는 그렇게 꺼졌다.
퍼어억-!
말에서 떨어진 게 분명한 소리, 허공에 몸이 붕 뜬 감각.
촤아아아악…
철썩… 철썩…
“떠, 떨어진 거야?”
카렌은 마치 자신의 몸이 직접 절벽으로 떨어진 것처럼 당황했다.
그 이후의 변화는 없었다.
몸이 물살에 휩쓸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뿐.
카렌은 이 기억이 그의 형제인 카루나의 기억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돌아오고 있었구나.”
“그래.”
“…….”
카렌의 뒤편, 어두운 공간에서 카루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투구를 벗은 그의 얼굴은 카렌과 닮았지만 조금 더 선이 굵었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몰라, 황도로 향하던 도중 습격을 당했으니까.”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카렌.”
카루나가 눈을 올곧게 뜨고 카렌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중요하지 않다고? 어째서?”
“다른 시대가 왔으니까.”
“하지만….”
“몬트라는 이제 이 세상에 없어. 네가 알던 몬트라의 모든 사람은 죽었어.”
“…….”
“너와 내 죽음도 마찬가지야. 무슨 일이 있었든, 이젠 중요치 않아졌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려면….”
“새로운 시대? 웃기지 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으지직…
그녀의 분노에 공간이 잠시 불안정해졌다.
“진은… 진도 결국 죽었을 텐데… 그 찬탈자들에게….”
“안 된 일이지만, 세상의 모든 생명은 죽어.”
카루나는 차분하게 그녀를 달랬다.
“나도, 너도, 그리고 진도.”
“…모르겠어. 뭘 말하려는 거야?”
“함께 가자, 새로운 세상에.”
“무엇을 위해?”
“뭐든.”
“새로운 세상에는 네가 원하는 게 있어, 카루나?”
“아니, 모르지.”
“그런데 왜 함께 가자고 하는 거야?”
“새로운 세상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야.”
카루나가 카렌에게 다가왔다.
“함께이고 싶어서지.”
“…카루나.”
“제국 너머의 세상을 보니, 제국이 정말 좁다는 걸 알았어.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어.”
“난… 난….”
“세상은 넓어, 카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운 일들도 가득해.”
카렌의 마음은 카루나의 제안에 기울어져만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붙잡는 단 한 가지의 장애물이 있었다.
“난 모든 걸 잃었어. 너도, 진도, 제국도. 이제 난 무얼 위해 불태워야 해? 이제, 다 타버렸는데….”
카루나는 그 질문에 아까와 같은 답을 했다.
“뭐든.”
“…재수 없어.”
“그 말 오랜만이야. 글쎄, 어쩌면 뭘 위해 타올라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도 좋지 않을까?”
“이유를 찾는다….”
다 타버려, 재만 남은 기사는 형제의 말에 눈을 감았다.
“함께 가자, 카렌. 함께, 바다에 가자.”
그리고, 다시 그의 말에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다시금, 이유를 품고.
으지지직…
그녀는 부서지는 공간을 바라보고 답했다.
“좋아, 날 데려가 줘.”
카루나가 갑자기 검은 번개에 휘말린 순간, 강설은 직감했다.
‘카루나에게도 변화가 일어나는 건가?’
그로서는 카루나를 잃지 않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상황은 더 격렬하게 흘러갔다.
‘만일 카루나가 잘못된다면….’
그럴 확률은 희박했지만, 강설은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는 수밖에.’
쏴아아아아…
꽤 오랜 시간 비를 맞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더 빗줄기 속에서 묵묵히 카렌과 카루나를 기다렸다.
– 집 나간 주인 기다리는 댕댕이 같아 ㅠㅠ
– 솔직히 여기 방 있는 사람들 다 똑같이 기다리고 있잖아 ㅋㅋ
– 이럴 때 함께 해야 찐팬이지!
– 그럼 후원하던지.
– 쉿, 내게 그런 속물 같은 얘기하지 마.
“콜록… 콜록….”
센 기침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비를 이렇게 오래 맞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를 피할 수단도 마땅히 없었고, 이 상황에서 비를 피하자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웃기다 생각해 그냥 그대로 맞은 결과였다.
쩌저적…
마침내, 기다림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검은 번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성공…했나?’
파지이이이익-!
번개로 감싸였던 검은 공간이 기나긴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스으으으…
안에서 등장한 건, 고혹적인 검은 기운을 발산하는 여인이었다.
그림자로 된 옷을 입고, 그림자로 된 휘장을 코끝부터 턱까지 내린 여인이.
그녀의 눈동자는 태양처럼 붉었다.
[쌍둥이 기사 : 카렌의 그림자 소환에 성공합니다.]
[전승을 시도합니다.]
[카렌의 그림자가 몬트라 검술의 복제에 성공합니다.]
[그림자 소환의 등급이 낮습니다.]
[갈로타의 혓바닥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높은 지혜가 능력을 보조합니다.]
[불태우기, 화염의 손아귀, 상급 체술을 봉인하는 대가로 능력이 온전히 전승됩니다.]
[카렌의 그림자가 불의 꽃의 복제에 성공합니다.]
[그림자 소환의 등급이 낮습니다.]
[갈로타의 혓바닥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높은 지혜가 능력을 보조합니다.]
[막판 뒤집기, 화상 저항, 긍지를 봉인하는 대가로 능력이 온전히 전승됩니다.]
[카렌의 그림자가 홍련참(紅蓮斬)의 복제에 성공합니다.]
[그림자 소환의 등급이 낮습니다.]
[갈로타의 혓바닥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높은 지혜가 능력을 보조합니다.]
[기사도, 파쇄, 일당백을 봉인하는 대가로 능력이 온전히 전승됩니다.]
[카렌의 그림자가 정신 조작 저항의 복제에 실패합니다.]
[그림자 소환의 등급이 낮습니다.]
[갈로타의 혓바닥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높은 지혜가 능력을 보조합니다.]
[정신 조작 저항이 아지랑이로 왜곡되어 전승됩니다.]
[소환수는 원래의 50%의 힘만을 발휘합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전승 메시지.
강설은 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새로 떠오른 메시지를 발견했다.
[쌍둥이 기사의 이어진 영혼이 발동합니다.]
[두 소환수의 등급이 전설 등급으로 강화됩니다.]
[쌍둥이 기사의 균형이 발동합니다.]
[두 소환수의 능력치는 합산된 상태에서 때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쌍둥이 기사 : 카루나의 전승이 완료되기까지 42일 16시간 38분 26초가 남았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강설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들에 잠시 멍해졌다.
전승까지는 그렇다 쳐도, 마지막 메시지들은 아예 예측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어진 영혼?’
카렌의 특수 능력.
아마도 문제가 생기기 전 카루나의 특수 능력이기도 했던 능력 같았다.
아주 간단하게도, 이 능력은 두 기사의 등급을 영웅에서 전설로 상승시켜버렸다. 이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다른 두 메시지 또한 엄청난 파급을 가져왔다.
‘능력치를 합친 다음 나눈다고?’
그 말은, 둘의 균형이 유지되는 이상 한쪽이 지나치게 처진다거나 강화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기.
또한 마지막 메시지는 아예 점입가경이었다.
“전승을 카루나까지….”
‘저기요’님이 광기를 3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스노우맨! 나와의 결혼을 허락하네! 스노우맨! 나와의 결혼을 허락하네!
– 스노우맨! 내 어깨를 빌려도 좋네! 스노우맨! 내 어깨를 빌려도 좋네!
– 개미쳤다 진짜 ㅋㅋㅋ 젤리 하나가 만든 나비효과
– 접때 요리 조질 때 이상한 개짓거리한다고 비난했던 청자들 나와!
– 난 아님
– 나도 아님
– 사실 그런 악성 청자는 없었던 게 아닐까?
– 우린 사실 통속의 뇌인 게 아닐까?
– 슈뢰딩거는 사실 고양이 대신 강아지를 키운 게 아닐까?
‘차 바꾸시게요?’님이 광기를 3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구매에 감사드리며, 기존에 타시던 차량 또한 새 차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 이 집 장사 막하네.
– 선 넘네…
– ㅖ? 엔진 오일이 아니라 차를요? 미친 건가?
– 카렌 미모 뿜뿜 무엇… 역시 전설이다!
– 포스 개쩐다 ㄹㅇ 전설이라 다른 건가?
– 의문의 카루나 42일 봉인 ㅋㅋㅋ
– ??? : 자 이건 타임캡슐이야. 우리가 나중에 크면 열어보는 거다?
– 카루나 : 꺼, 꺼내줘 미친놈들아…
– 아 카렌 얻었으면 이 정도 페널티는 감수해야지ㅋㅋㅋ
강설은 메시지를 전부 확인하고 탄식했다.
전부 다 때려 넣고 계산기를 두드려 봤을 때, 확실히 엄청난 이득인 것은 맞았다.
‘근데도 뭔가 꺼림칙한 이 기분은 뭐지….’
강설은 눈앞에 떠오른 카렌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쌍둥이 기사 : 카렌]
칭호 : 없음
등급 : 전설
종족 : 그림자
레벨 : 9
HP : 1460/1460
MP : 840/840
보유 능력치 : 0
근력 102(+36) 민첩 81(+28) 체력 108(+38)
지능 65(+23) 지혜 62(+22) 정신력 76(+27)
재능: 변장 2, 심문 2
그야말로 압도적인 능력치.
원래 힘의 50%에 불과한 순수 능력치 중 주요 능력치인 근력과 체력이 무려 100을 넘겼다.
‘그 말은 100%의 능력치는 200이 넘었단 말이네.’
강설은 카루나와 쟈마드가 그녀에게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녀는 기본 능력치도 괴물 같았지만, 강설의 능력과 아이템 효과로 인해 추가적으로 상승한 능력치도 볼만했다.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능력치라면 장비까지 착용했을 땐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마치 카렌은 이 정도 능력치 격차는 되어야, 전설급의 소환수라는 듯 수치로 그것을 드러냈다.
– 처신 잘하라고!
– 꼴 받게 하면 바로 쿠데타니까!
– 내가 괜히 붉은 눈동자인 줄 알아?
물론, 능력치는 이렇다 할지라도 능력의 전승은 대체로 실망스러운 편이었다.
‘대부분의 능력이 봉인됐고… 하긴, 레벨 차이가 그만큼이나 났으니 어쩔 수 없나?’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그걸 활용할 수 없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강설은 그나마 갈로타의 혓바닥이 전승을 도와 능력의 일부라도 온전히 전승된 것에 감사했다.
‘그래도 주요 능력들은 대부분 전승했단 말이지, 특히 특수 능력들은.’
2개의 특수 능력과 주력으로 사용해도 될 만한 능력 몇 가지가 전승되었으니, 이만하면 알짜배기인 셈이었다.
젤리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날들에 대한 보상은 훌륭했다.
– 엥? 그런데 그거 안 하지 않았냐?
– 머시껭이?
– 솬수가 마 신병이 됐으믄 소환사한테 인사부터 박아야지 뭐더냐
– 그러게?
강설도 이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카렌에게 다가갔다.
“카렌.”
“난 아직, 널 인정하지 않았어.”
“…뭐?”
“그러니까, 아직은 널 섬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카렌은 강설이 이제까지 거뒀던 소환수와는 달리, 강적이었다.
‘전설급이라 그런 건가?’
차라리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큭큭… 재밌군.”
쟈마드가 당황한 강설을 보고 그림자 공간에서 웃었다. 카렌은 순간적으로 그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앞으로 잘 부탁해. 트롤, 그리고 어린 왕.”
“나는 왕이 아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후우.”
강설이 이마를 짚었다.
– 전설 등급의 소환수! 충격, 말괄량이로 밝혀져.
– 스노우맨, 반품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존나 무거워 ㅅㅂ… ㅋㅋㅋㅋ
– 목이 부러질 것 같아요…
아무튼, 강설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한시름 돌렸다고 생각한 그때.
“어? 이건 뭐지?”
강설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카렌이 뭔가를 열기 위해 몸을 굽힌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녀가 만지고 있는 건 연이어 계속된 모험의 보상 상자였다.
“그거! 함부로 만지면 안….”
철컥-
[최고 보상인 죽은 자의 상자를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