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67
제66화
“지금으로선 마땅히 수가 없습니다.”
“…네?”
“이 검은 보통 검이 아닙니다. 알고 계시겠죠?”
“그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고대의 기사인 카렌이 휘두르던 검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 남은 것은 손잡이와 아주 약간의 날뿐이었지만 처음 검이 탄생했을 때의 위용을 짐작할 순 있었다.
“상당히 공을 들인 물건입니다. 또, 저번에 손봤던 그 검과도 유사하고요.”
“월광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월광검은 분명 다시 제 모습을….”
“그때와는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지금은 보강에 사용할 소재가 다 떨어진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이 검은 아예 손잡이만 남기고 다른 부분을 재구성해야 하는 수준까지 와 있지 않습니까?”
“소재, 소재라….”
하문의 말에 강설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소재를 구해오면 어떻게든 검을 수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검이 가진 기운을 왜곡하지 않고 북돋으려면 매우 지난한 과정이 소요될 겁니다.”
“어떤….”
“이 무기의 날은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따로 사람을 풀어 알아봤지만, 일치하는 소재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숨결은 그러면 어떻게 복구하신 겁니까?”
“숨결도 그 검의 완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단순히, 그 힘을 흉내 낸 모작일 뿐. 원래 검이 가졌던 힘은 그보다 거대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무려 불세출 등급의 검인 숨결.
아마, 현재 불세출 등급의 무기를 보유한 플레이어는 강설이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를 소환수에게 쥐게 한 이도 유일할 것이고.
‘숨결이… 고작해야 흉내 낸 물건이라고? 대체 원래 검은 얼마나 대단했다는 거야?’
검이 원래 가진 힘이 무척 강하다는 건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었지만, 강설은 오히려 그로 인해 찾아온 역풍에 고민을 거듭했다.
‘소재가 문제인가….’
강설이 카렌에게 물었다.
“카렌, 홍련검 말고 다른 검을 사용해 본 적 있어?”
“물론! 수련할 때는 종종 훈련용 검을 사용했으니까.”
“그래? 그러면 다행….”
“전부 불탔지만.”
“…뭐?”
“못 알아듣겠어? 내가 다른 검을 쓰면 한번 사용하고 나면 흐물흐물 못 쓰는 검이 돼. 변형돼서 축이 틀어진다든가, 날이 무뎌진다든가 뭐,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생긴다고 할까?”
“전혀 사소하지 않은데.”
“적어도 나한테는 사소했어. 아, 황도에서 수련할 때 일인데… 모든 수련생이 일 년 동안 망가트리는 장비보다 내가 한 달 사이에 망가트리는 장비가 훨씬 많았다고 하더라. 웃기지?”
웃기다.
그게 강설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 남의 얘기였을 경우에는.
“그럼 홍련검이 없으면….”
“별수 있나, 전투마다 검을 바꿔야겠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군.”
“내 잘못이라 이거야?”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하문,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하문이 잠시 턱에 손을 얹고 생각하다 강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는 광석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라서….”
“용암 주괴는 어떻습니까? 경매장에 매물이 풀린 걸 확인했는데요.”
“이 검과는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광석의 기운이 검의 숨을 틀어막을 겁니다.”
“불의 정령석은 어떻죠?”
“내구력이 떨어집니다. 이쪽 분께서 말씀하신 게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두어 번 사용하고 축이 무너질 겁니다.”
“끄응….”
강설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카렌은 검이 없는 검사였다.
그녀가 자신을 섬기는 이 없는 기사라고 했던 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꼭 팥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었다.
“난 검이 없어도 강해. 주인의 걱정도 이해는 한다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카렌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 때문에 고민하는 강설의 모습을 흘깃거리며.
하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주인? 어떤 관계의…”
화르륵…
카렌의 아지랑이가 그녀의 얼굴을 핥자 그림자의 검정 기운이 드러났다.
“이런 관계?”
“이럴 수가… 요정치고는 특이한 기운을 풍긴다 했는데 그림자였군요. 정말 감쪽같습니다.”
“카하하, 칭찬 고마워.”
“음… 그림자… 그림자라, 그렇다면 방법이 한 가지 남아 있기는 한데.”
강설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하문의 말꼬리를 재빨리 잡고 늘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림자가 사용하는 물건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죠.”
“혹시, 불붙은 여왕 거미의 전설을 아십니까?”
“아나킨드리아.”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때때로 스노우맨 님의 식견에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유명한 전설에 나오는 괴물이니까요, 이곳 남쪽 지역의.”
– 엥? 곧바로 튀어나온다고?
– 아나킨드리아가 뭐야?
– 여기 설정집 뒤져보니까, 뭔가 존나 큰 거미라고 나와 있는데?
– 거미 ㄷㄷ 개싫어; 아직 살아 있음?
– ㄴㄴ 아주 오래전 괴물이래.
강설은 뭔가를 깨달은 듯 하문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설마, 아나킨드리아의 피를 요구하실 생각은 아니신….”
아나킨드리아의 피는 여러 신묘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그 괴물 거미를 잡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전설이기에 누구도 그 거미를 본 자는 없었다고.
‘근데 갑자기 아나킨드리아의 얘기는 왜 나온 거지?’
아나킨드리아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얘기가 나왔을 리 없었다.
“설마요. 아나킨드리아가 죽었다고 알려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마지막 자손의 피입니다.”
“…네?”
강설은 하문의 얘기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나킨드리아의 자손이라니, 그게 사실입니까?”
“정확히는 그렇게 추정되는 소문을 입수했습니다. 실제로는 확인해 봐야겠지요.”
“…불의 정령석과 거미의 피를 같이 쓰실 생각이시군요?”
강설의 질문은 하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하문은 놀라며 그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런 방법도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하하… 대화가 막힘이 없으니 즐겁군요. 맞습니다. 정령석은 생물의 피를 빨아들이면 약점으로 꼽히는 내구력 저하를 상쇄할 수 있는 특성이 있죠. 특히, 거미의 피는 정령석과 궁합이 잘 맞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둘을 동시에 사용하면 생명체의 정신 타락이라는 문제가… 아! 그래서 말씀을 꺼내신 거군요.”
“맞습니다. 그림자는 생명체가 아니니까요. 직접 사용하실 거라면 타락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정령석도 구하기 쉬운 게 아닐 텐데요?”
“일단,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고민하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검도 급하지만, 이분께서 입을 갑옷도 문제가 될 거 아닙니까?”
강설은 카렌을 돌아보았다.
“타?”
카렌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옷은 좀 덜하지만, 결국 문제가 되긴 해.”
“맙소사.”
“어떻습니까? 일단, 제 제안대로 하시는 게?”
[하문이 아나킨드리아의 마지막 자손이라고 알려진 괴물의 피를 요구합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 이건 미친 짓이에요.
2.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에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3. 다른 방법을 알아보죠.
4. 그 괴물의 피는 어디로 가야 얻을 수 있는 겁니까?
……
강설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 괴물이 목격된 위치를 알려주시죠.”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그간, 여행객들이 줄줄이 사라졌다는 게 아무래도 그 괴물이 벌인 짓인 것 같더군요.”
[그녀의 마지막 자손 모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 * *
강설은 카렌과 함께 하문의 배웅을 받으며 번화가를 향해 걸었다.
“도통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더라.”
“굳이 이해할 필요 없는 내용이었어. 굳이 얘기하자면 네 장비에 관한 내용?”
“으음… 그건 곤란한데….”
“곤란하다고?”
카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난 아직 네 기사가 아닌데?”
– ㅖ?
– 뭐애오 누나… 우리 오늘부터 1일 아니었어요?
– 또 나만 착각한 거야, 빌어먹을 세상….
– (멋쩍음)(창피함)(환멸)
–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노후에 실버타운은 어디로 들어갈지 알아보고 있었는데…
강설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난 또 뭐라고. 장비야 필요하니까 생각해두는 거다.”
“벌써?”
“느긋하게 준비했다가 무슨 고난을 겪으려고.”
“내가 결국엔 널 섬길 거라고 확신하는구나?”
“카루나가 나와 있으니 당장은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얄미운데, 틀린 말은 아니네.”
“천천히 생각해봐.”
“응….”
카렌이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카렌을 쳐다보는데도 그녀는 무슨 고민이 있는지 땅만 보고 걸었다.
“왜 그래?”
“아나킨드리아라는 말, 어쩐지 귀에 익어서.”
“그 괴물을 알아?”
아나킨드리아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불의 거미였다.
입으로는 유황불을 뿜고, 사냥감의 체액을 빨아 죽게 만든 후 그 고치를 둥지에 저장하는 습성을 가진 괴물.
덩치도 거대할뿐더러, 여러 성가신 능력 때문에 악명이 자자했다고 전승이 되었다.
‘판데아는 전승되어 내려온 것들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게 정론이고.’
입으로 전해졌다는 말은, 분명 본 사람이 있다는 거고 대부분 나중에 가면 사실로 밝혀졌다.
강설은 플레이어로 활약할 때 그런 구전들의 진상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일면들이 그를 남들보다 더 앞서나가게 했고.
“아나킨드리아라는 거미 말이야… 혹시 다리가 12개야?”
“어… 그렇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는데. 12다리의 악마라는 이명이 있다고 전해지기는 해.”
“그럼 맞구나, 그 거미.”
“알아?”
“소문만 들었어. 제국 영토 안에 속한 협곡에 자리 잡고 상행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괴물.”
“엄청나게 오래된 얘기겠네, 상대해봤어?”
“아니, 난 소문만 들었어. 토벌에 성공했든가 놓쳤든가? 너무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네.”
– 세대 차이…
– 이런 건 시대 차이라고 하는 거야…
– 갑자기 카렌 확 늙어 보이네 ㅋㅋㅋ
강설은 그녀가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오래전인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꼈다.
‘그건 그렇고, 그늘 협곡이라… 꽤 성가시겠는데.’
그늘 협곡.
숙련된 길잡이, 상인들도 아무리 일정이 촉박해도 되도록 돌아간다는 협곡.
협곡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일단 지형 자체가 험지에 속하는 편이었고 몬스터도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다.
심지어 협곡이 있는 위치도 노비라에서 꽤 떨어진 터라, 왕복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아마도 노비라에 되돌아오기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이다.
‘그늘 협곡엔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말이지.’
그 기억이 무엇인지 강설은 다소 오래간만에 옛 생각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카렌이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다 온 거 아니야?”
“어? 어어.”
“나보다 정신을 더 놓고 있으면 어떡해? 하여튼….”
“너도 놓고 있었어?”
“당연하지!”
– 당연한 거야?
– 당연한 거였어?
– ㅋㅋㅋㅋㅋㅋ 카루나 없으니 근무 기강 개판으로 돌아가는구만.
강설은 지금, 차오가 대여한 저택의 입구에 와 있었다.
늘 그렇듯이, 또 무언가 흔적이 없나 살펴볼 예정이었다.
“여기 뭐 중요한 거라도 있어?”
“정보. 한두 번 오긴 했는데 제대로 된 정보는 찾지 못했어. 이번에도 못 찾으면 포기할까 생각 중이야.”
“포기는 무슨… 근데 여기 전에는 어떻게 들어갔어?”
카렌이 울타리를 넘어와 정문 앞에 선 상태로 물었다.
그녀가 의문을 표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문은 굳건하게 잠겨 있었고, 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거기가 아니야. 여기 창문으로 들어가면 돼.”
“기사는 도둑처럼 숨어들지 않아. 귀 막아.”
“뭐…? 무슨….”
콰아아아앙-!
카렌의 발차기에 저택의 정문이 터져나갔다.
그래도 힘 조절을 어느 정도 했는지, 문짝이 산산이 조각나지는 않았다.
– 이것이 사나이의 길!
–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 정보) 길 있음.
카렌이 벌인 짓에 당장이라도 소리를 듣고 누군가 따지러 올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을.
“너, 임무 중에도 이렇게 들어갔었어?”
“처음에만.”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과했나?”
“…누가 오기 전에 일단 둘러보기나 하자.”
강설은 한숨을 푹푹 쉬며, 저택의 안쪽에 있는 차오의 연구실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우뚝.
카렌이 강설의 진로를 한 손으로 막았다.
“왜 그래?”
“살기. 안 느껴져?”
아우우우우우-!
[늑대의 경고가 발동합니다.]
[착용자는 현재 위험한 상황입니다.]
갑자기 강설의 반지가 반응을 했다.
“물러나, 주인.”
강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뭐지? 살기라고?’
그때, 절대 말소리가 들릴 리 없다고 생각한 저택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냥꾼이 아닌 건가?”
카렌이 강설을 쳐다봤다.
아는 목소리냐는 눈빛.
강설은 불현듯, 뭔가를 깨닫고 어둠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차오! 당신입니까?”
이윽고 대답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