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68
제67화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확실하게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를 알아?”
“콩고리 출신의 그림자 소환사, 차오. 아닙니까?”
“이것저것 조사를 많이 했나 보네. 그보다 콩고리에 잠시 머물긴 했지만, 그곳 출신은 아닌데 말이지. 뭐,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 네 이름은?”
“스노우맨.”
“못 들어본 이름이네, 이건 불공평한데. 넌 내 이름을 아는데 난 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으니.”
저벅. 저벅.
차오가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왔다.
팟-!
그러더니, 갑자기 눈앞에서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고는 강설의 앞에 나타났다. 경이로운 속도였다.
차오는 그대로 주먹을 뻗었고, 그 궤적엔 강설이 있었다.
파악-!
그녀의 주먹은 카렌의 손에 붙잡혔다.
카렌이 웃었다.
“장난이 심하네, 여자.”
“호! 좋은 그림자네.”
스륵.
차오가 카렌의 손에 붙잡혔던 주먹을 스르륵 빼냈다. 카렌도 별 저항 없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카렌이 그림자인 걸 들켰군.’
일반 사람들은 몰라도, 숙련된 그림자 소환사를 속이기엔 무리였나 보다.
강설은 차오의 행동을 추궁했다.
“왜 이러는 겁니까?”
“그냥, 이것저것 궁금해서.”
차오는 뒤로 빙글 돌며 얘기했다.
“근데, 집주인도 창문으로 들어오는데 불청객들이 과감하게 문을 부수네. 참 신기한 세상이야.”
카렌이 문을 함부로 부순 걸 차오가 끄집어냈다.
“당신은 왜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거죠?”
“열쇠를 잃어버렸거든.”
“네?”
“반응을 보니, 농담도 못 하겠네. 날 쫓는 사람들이 있거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습관이 돼서 뭐… 그런 거야.”
강설이 차분하게 그녀에게 용건을 말했다.
“실종되신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 혹시 어둠의 선각자에 들렀던 거야? 어쩐지, 그럼 나를 알고 있는 게 설명이 되네. 혹시, 콩고리 출신?”
“지금은 아니지만요.”
“널 보낸 것도 그쪽 샌님들이겠네. 잔정이 많은 친구들이야, 정말… 근데 이걸 어떡하지?”
어둠 속에서 차오의 눈빛이 번뜩였다.
“난 이제 콩고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이런.”
“맞아, 이곳까지 찾아온 게 모두 헛수고가 된 거야. 축하해!”
강설은 차오의 반 조롱인 축하에도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소식만 전하면 될 뿐이니까요.”
“…너, 그것 때문에 날 찾은 게 아니구나?”
“겸사겸사라는 말이 있죠.”
“원하는 게 뭐야?”
차오가 강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실력은 좀 있지만, 어수룩한 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딴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는 게 드러났으니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경계하지 마세요. 악의를 가지고 접근한 건 아니니.”
“…뭔데?”
“깨달음의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 그거였어?”
깨달음의 벽.
플레이어가 10레벨을 넘기고 각 도시에 마련된 직업 훈련장에 찾아가면, 이런 선택지가 뜬다.
– [필요 : 그림자 소환사, 깨달음의 벽] 이곳에 그림자 소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강설이 차오를 찾게 된 시작점이나 다름없던 문구가 떠오르게 된다.
플레이어는 깨달음의 벽에 가로막히면 능력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때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직업 훈련소를 찾아도, 능력은 강화되지 않는다.
‘깨달음의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막힌 거지.’
강설은 이번 모험을 통해 막 11레벨에 도달했다. 직업 훈련소에 들러 능력을 강화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가 직업 훈련소에 찾아가봤자 능력 나무가 떠오르지 않을 테니까.
그것을 도울 이가 바로 숙련된 전문가들이다.
여기서 숙련된 전문가라 하면 각 직업의 베테랑들.
예를 들면, 지금 강설의 눈앞에 있는 차오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깨달음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런저런 성가신 부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너를 도우니, 너도 나를 도와야 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논리에 의해.
지금, 차오도 막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음… 어쩌지, 난 시간이 많이 없는 사람인데. 딴 친구를 알아보면 안 될까?”
“그쪽을 찾으려고 몇 달을 고생했는지 아셨으면 좋겠는데요.”
“응? 그렇게 오래됐어?”
강설은 저택에 처음 들렀던 날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차오에게 전달했다.
차오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폭소했다.
“뭐? 거기를 전부 다 갔다고? 푸하하하… 너 진짜 걸작이구나?”
“가사 유도 장치는 왜 훔친 겁니까?”
“그냥 들고 나온 건데.”
“어쨌든요.”
“쓸 데가 있거든. 내 연구에.”
“차오의 연구?”
“으흠… 그러고 보니, 이 그림자… 설마 그 시체야?”
강설은 어깨를 으쓱했다.
숨겨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어깨를 으쓱하며 긍정의 뜻을 내비친 것.
“호… 어쩐지, 강하다 했어.”
“차오, 대답을 들려주시죠.”
“잠깐, 나도 생각할 시간은 줘야지. 남의 소중한 시간을 뺐을 생각은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왜 이렇게 조급해?”
딱, 딱.
차오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것도 가능한 거 아닐까? 아니야, 그랬다가 실수하면 시간적으로 문제가 생기는데… 그래도 한 번….”
“차오?”
“결정했어. 좋아.”
“절 도와주시는 겁니까?”
“물론.”
– 협상, 극적 타결.
– (땀을 훔치며) 싸게싸게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고!
– 이렇게 도와준다고?
“단! 먼저 날 도와야 할 거야.”
“말씀하시죠.”
“혹시 최근에 맡은 일이 있어?”
“한 달 뒤에 그늘 협곡으로 갈 일이 있기는 합니다.”
“음… 그래?”
“왜 그러십니까?”
“그쪽 주변이면… 좋아, 그놈을 맡기면 되겠어.”
그녀는 품에서 두루마리와 화구를 꺼내 뭔가를 적고 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어떤 그림들이 탄생했다.
게슴츠레하게 생긴 사람의 얼굴, 색이 칠해진 약병, 그리고 불길한 문구들.
“자! 받아.”
“놀라운 재능이군요.”
“다른 부분에선 더 놀라운 재능들이 많지. 받아, 팔 아파.”
슥-
[차오의 두루마리를 획득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지령서. 한 달 뒤에 그늘 협곡에 간다고 했지?”
“네.”
“일은 언제쯤 끝날 것 같아?”
“모릅니다.”
“대강도 몰라?”
“길면 한 달이고 최소 보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좋아, 딱 맞겠네. 협곡에서 일이 끝나면,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행동하면 돼.”
“그다음은?”
“노비라로 돌아와. 최소한 석 달 안에는.”
“저택으로 오면 되는 겁니까?”
“그래, 돌아오면 정문 기둥에 흰 천을 걸어두고 매일 자정에 이곳을 확인해.”
“당신은요?”
“문제가 없으면 석 달 안에는 나도 돌아올 거야.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저 방 있지?”
차오의 연구실이라 추측하던 그 방이었다.
“저 방에 불을 질러.”
“범죄자가 되라는 겁니까?”
“들킬 거야?”
“안 들키죠.”
“그럼 됐어.”
“불은 왜 지르라는 겁니까?”
“네가 불을 질러도 의미를 모르겠으면, 우린 인연이 아닌 거야. 다른 소환사를 찾아가.”
“…뭡니까, 그게.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닙니까?”
강설은 차오가 상당히 무대뽀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굳이 그녀에게 목을 매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음, 그렇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후우우웅…
그녀의 기세가 확장했다.
웅혼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단한 기운.
강설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강자다!’
차오를 그저 도시에서 적당히 강한 소환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기세를 보고 나니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가 입매를 비틀고 문장을 내뱉었다.
“난 한때, 그레고리의 제자였어.”
“그레고리!”
그레고리.
수많은 그림자 소환사들 중, 단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 자.
세계의 강자에도 당당히 이름이 언급되는 악마 같은 자.
‘차오가, 그레고리의 제자였다고?’
강설은 눈앞에 보물이 있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원래라면 죽어도 그 영감의 이름을 팔지는 않았겠지만,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지. 이제 네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자가 나여야만 하는 이유가 좀 생겼을까?”
강설은 굳건한 믿음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 그녀에게 답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솔직한 친구네. 좋아!”
[잠이 드는 약 모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 * *
“왜 그렇게 신이 났어?”
“그래 보여?”
“응. 아까 그 조그만 여자를 보고 난 뒤부터는 입이 귀에 걸릴 것 같아.”
“뭐? 그럴 리 없는데.”
강설이 숙소의 거울을 찾으려 하자, 카렌이 웃음기 가득한 몸짓으로 말렸다.
“그냥 해본 말이지롱.”
“…아무튼, 그 정도로 들뜨진 않았어.”
“들뜨긴 했다? 그레고리인가 뭔가 그 사람이 들뜸의 이유인가?”
“아니라곤 못 하지.”
“어떤 사람인데?”
“유명한 사람. 내가 걷는 길에서 꽤 많이 앞서간 사람이야.”
“흐음… 한번 보고 싶네. 근데 그 제자라는 게 너와 관련이 있어?”
“아마도? 있기를 바라야지.”
“뭐야, 난 또 확정적인 건 줄 알았네.”
“다 노림수가 있는 법이야.”
“어쭈! 나한텐 안 알려줄 거야?”
그림자 공간에서 잠을 청하던 쟈마드가 소리쳤다.
“조용히 좀 하자! 언제까지 시끄럽게 굴 셈이냐!”
“어휴… 저러니 아저씨 소리를 듣지. 트롤이 잠도 많아. 내가 아는 트롤들은 다 부지런했는데.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으아아악! 제발!”
카렌은 쟈마드를 괴롭히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쿡쿡거리며 장난하다 어느새 잠에 들었다.
그럼에도 강설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였다.
‘그레고리의 제자라면… 일반적인 그림자 소환사보다는 좋은 능력을 가졌겠지.’
좋은 스승을 두어라.
판데아에서 두루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것이 재능이든, 능력이든 좋은 스승은 좋은 능력을 전수해주거나 최소 능력 효율을 개선해준다.
같은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더 좋은 스승에게 배우면 더 고효율의 능력을 구사할 확률이 높았다.
‘순전히 도박이지만, 그래도 만약에 그녀가 그레고리의 절기라도 전수한다면?’
절기 혹은 비전.
필살기나 마찬가지로, 장비로 예를 들자면 불세출처럼 매우 희소한 가치를 지닌 능력이었다.
그레고리처럼 이름난 소환사의 제자라면, 그런 절기 한 두 개쯤은 필수적으로 배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절기가 자신에게까지 이어진다면.
‘아니, 그럴 확률은 낮지. 기대하지 말자. 효율이라도 끌어올리면 만족해야지.’
기대하면 실망하는 법.
그래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오의 연관 모험들의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긴 했어.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네.’
강설은 뒤척였다.
그를 잠들지 못 하게 하는 생각은 차오 생각뿐만이 아니었다.
‘그늘 협곡… 오랜만에 들르네.’
이것은 낮에 미뤘던 생각이었다.
그는 다음 모험으로 그늘 협곡에 가게 되자, 누군가가 떠올랐다.
‘키리, 그래. 마지막으로 갔던 건 키리였던가?’
그가 플레이했던 말 중, 마지막으로 그늘 협곡에 들렸던 말은 키리였다.
맹금 사냥꾼 직업을 가졌던 그의 캐릭터.
강설에겐 수많은 캐릭터가 있었지만 단 하나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낮에 그늘 협곡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던 건 키리 때문이었다.
‘그런가. 키리 때문에.’
키리가 그곳에서 죽었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됐다, 일단 그곳에 가기로 했으니 굳이 지금 생각해서 뭐 할까.’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강설이 잠을 청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생각이 많았고, 이날 밤은 아주 길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던 강설을 누군가 깨웠다.
“주인! 일어나!”
“으음….”
“이 앞에 빵집이 있나 봐. 아침에 창문을 여니까 냄새가 진동하잖아! 문제야, 문제!”
그를 흔들어 깨운 것은 카렌이었다.
강설이 지친 눈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냄새가 저 정도로 난다는 건 무언가 심각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야.”
“예를 들면?”
“맛이 있다거나 또….”
“…카렌, 맛이 느껴져?”
“내가 말 안 했나? 오감은 그대로인 것 같아. 포만감도 잘 작동하고! 참, 이런 기적이 있을까?”
“갑자기 즐거워 보이네.”
“응! 신나잖아! 얼른 옷 입어! 엉덩이를 걷어차기 전에! 저기 또 누가 사가잖아! 아! 저거 내가 점찍은 건데! 죽일까?”
“참아. 눈도 좋아라.”
강설이 실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쌀에 못 이겨 옷을 막 챙겨 입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스노우맨 님.”
“누구십니까?”
“키보 님의 전령입니다.”
강설과 카렌의 눈빛이 교차했다.
어쨌든 대답부터.
“네, 용건은요?”
“키보 님께서 밑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강설이 카렌을 돌아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혼잣말했다.
“내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