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69
제67화
조용한 숙소를 골랐기 때문에, 2층과 1층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
위층에서 들려온 소리에 잠시 찻잔을 기울이던 키보의 고개가 돌아갔다.
분명, 강설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쿵쿵 소리를 내며 1층까지 쏜살같이 내려온 여인.
그녀는 키보를 보며 물었다.
“네가 키보라는 무뢰배야?”
“어… 누구?”
“감히 이른 아침에 찾아와? 끼니는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작임을 모르는 건가? 대체, 어떻게 된….”
“카렌, 그만해.”
어느새 뒤따라 내려온 강설이 카렌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카렌은 씩씩거리며 강설이 앉은 의자 옆에 앉아 키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 이런… 같이 아침 식사라도 하자는 게 그만… 실례였나?”
“괜찮습니다. 뭐든 좋습니다.”
“이 앞에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좀 사 왔는데, 내가 자주 가는 빵집이거든.”
그 말에 카렌이 키보를 보는 눈빛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뭐야, 빨리 말을 하지 그랬어. 난 또 예의를 가르쳐야 하나 고민했잖아. 아침은 다 같이 보내는 게 좋지! 카하하!”
“저, 근데 이 여인이 누구인지 소개를 좀 해주는 게 어떻겠나?”
“음… 제 동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료라… 뭔가 특이한 조합이긴 하군. 반갑네, 키보라는 늙은이야.”
“카렌, 내 이름이야.”
“허허… 요정을 노비라에서 이렇게 쉽게 볼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군.”
– 키보 : 야레야레… 이거 위험한 콤비가 탄생해버렸는걸?
– 정말 위험해… 이 조합은 진짜 위험한 거야…
– 그리고 카렌이 더 오래 살았어…
강설은 키보의 수하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키보에게 물었다.
“아침 식사도 좋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뭣 좀 여쭙겠습니다.”
“실례될 게 어딨나. 말하게.”
“최근에 노비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말이 돌아서요.”
“으음….”
키보가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맞네, 일이 있었지.”
“어떤….”
“노비라와 가장 가까운 북쪽 도시가 어딘지 아나?”
“그야, 마을까지 포함한다면 북서쪽에 있는 위글텅이겠죠. 접경 지역 아닙니까?”
노비라의 서쪽으로는 대삼림이 있었고 남쪽에는 자유 도시 콩고리가, 북서쪽에는 위글텅이라는 도시라고 부르기 애매한 마을이 있었다.
‘위글텅은 이종족과의 접경 지역에 있는 도시인데?’
키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곳이 얼마 전 습격을 받았다고 들었네.”
“…그게 정말입니까?”
“문제는 흉수를 알 수 없다는 점이야. 인근에 굴리아 요새가 있어도 빈번히 약탈이 일어나는 곳인데, 얼마 전에는 아예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는군.”
“목격자는 없는 겁니까?”
“요새의 감시망을 피해 마을을 습격할 정도로 용의주도한 놈들이니 목격자는 남기지 않았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을 주민의 반 정도는 기반 사업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었던 터라 목숨을 건졌다는군. 돌아와 보니 불타버린 마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야.”
“흐음….”
“이제 노비라의 주민들이 겁을 먹은 이유를 알겠나?”
“확실히, 이해됩니다.”
강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위글텅이든 노비라든 어떻게 되든 그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이곳에서 그는 철저한 이방인.
거기다 그는 애국심이나 하찮은 정 때문에 휘둘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그래서 말인데, 내 얘기를 좀 들어주겠나?”
“이 값비싼 아침 식사의 이유가 드디어 나오는군요.”
“크크… 뭐, 비꼬는 건 아닐 테니 맞다고 해둠세. 자네에게 부탁이 한 가지 있네.”
“말씀하시죠.”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노비라의 주민들이 전이자들과 어우러지는 미래를 그리네.”
키보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문제는, 나 혼자서는 힘에 부친다는 거야.”
“제가 돕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나는 늙었고, 시대는 변하고 있어. 흐름을 잡으려면 젊은 사람인 편이 좋겠지.”
“유미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녀도 있지.”
“직접적인 도움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까지 염치없지는 않네, 다만, 미라가 잘하고 있는지 가끔 들여다 봐주게.”
“꼭 어디로 떠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강설의 말에 키보는 웃었다.
“늙으면 걱정이 많아진다니까, 좋게 봐주면 좋겠네.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정도로.”
갑작스레 유미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키보를 따라가기엔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강인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걱정하실 정도로 나약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미라란 사람은.”
“세상사가 그렇네. 아무리 강인한 배라도 더 큰 파도에는 휘청이는 법이야. 폭풍우가 몰아치면 큰 파도를 피해 가는 법을 배워야지. 내가 보기에 아직 미라는 서툴러.”
키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유미라는 서툴렀고, 강설은 충분히 그녀의 등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는 곧 떠날 사람입니다.”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아니, 미라도 노비라에만 머물 녀석이 아니야. 꿈이 큰 녀석이니까. 그때가 되면 굳이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진 말아 주게. 마음이 앞서지만 그만큼 온 힘을 다해, 미라는.”
별거 아닌 부탁이었다.
딱히 구체적으로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강설은 키보가 소개해준 하문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겨두겠습니다.”
“고맙네.”
* * *
하루하루가 지났다.
모험에 대비해 이런저런 정비를 한 강설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배불러! 더 못 먹어!”
“누가 억지로 먹으라고 시킨 적 없는데….”
“쉿! 지금은 이 여유를 즐기고 싶다, 주인. 부디 내 흥을 깨지 말아줘.”
한시적으로 사용할만한 카렌의 무구 정도는 이미 준비해두었다.
일반 등급이었지만, 무겁고 내구력이 든든한 것으로 준비해뒀기에 이번 두 모험 정도는 버텨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카루나가 돌아오겠지.’
그거면 되었다.
카루나가 다시 돌아오면, 굳이 카렌이 강설의 선봉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사라지니 장비가 불타는 문제는 천천히 해결해도 될 것이다.
‘그보다… 이번엔 장거리 모험인가? 그 시스템이 여기서도 작동하려나?’
장거리 모험.
거점과 모험 지역과의 거리가 멀 때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땐 편의를 위해서인지 플레이어가 푸른 입자에 휩싸여 전송되었다.
하지만, 먼 거리라면 어떨까?
강설이 예전 판데아에서 원래의 거점과는 한참을 떨어진 곳으로 모험을 할 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최대한 빨리 거점에서 거점으로 이동하며 모험 지역과의 거리를 좁힌다.
이 방법은 번거롭고, 도중에 무슨 일에 휘말릴 수도 있기에 특정 상황에서만 취하는 방법이었다.
이것과 다른 방법은, 원정 시스템.
원정 시스템을 선택했을 땐 게임 속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만, 실제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목적지로 지정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선택지를 고르고, 그 선택지의 결과에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컨디션이 결정된다.
‘여행운 주사위도 적용된 걸 보면… 아마도 원정 시스템까지 구현됐을 확률이 높다.’
만일, 전과 똑같이 입자에 휩싸여 목적지로 쓩 이동하게 되면 강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 될 테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미리 생각해두어야 했다.
“다시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카렌이 강설에게 물었다.
“한 달 안쪽으로는 솔직히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정들었는데….”
“음식점에?”
“거긴, 정이 유독 가는 곳들이고. 노비라는 음식들이 몬트라와 달리 자극적이야. 남쪽이라 그런가?”
“그래서 별로였어?”
“너무 좋아. 몬트라 음식은 가끔 식탁을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맛대가리가 없었어. 노비라 최고!”
강설이 피식 웃으며 카렌에게 시간이 됐다고 귀띔했다.
카렌도 강설에게서 갑옷함을 받아들고 짊어졌다. 카렌은 지금, 단출한 가죽 갑옷을 입고 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강설의 전송이 시작되었다.
스르륵…
평소라면 마치 번쩍 번개가 치는 것처럼 시야가 되돌아왔을 건데, 강설은 시야가 암전된 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선택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원정 시스템이야!’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마차 바퀴가 진창에 빠진 듯한 상인을 발견했습니다. 상인이 당신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1.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다.
2. 갈 길이 바빠 무시한다.
3. 그를 도울 다른 사람을 찾는다.
4. [필요 : 악 성향 칭호] 그의 물건을 노린다.
……
이 선택지는 강설이 늘 봐오던 선택지와는 살짝 달랐다. 손으로 누르면 눌릴 듯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2번.’
꾸국…
2번의 선택지를 누르자, 선택지의 색이 변하면서 모든 선택지가 사라졌다.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오!
– 성공인가!
– 역시, 곤경에 처한 이를 보면 모른 척해야지!
이 선택지가 옳은 선택지일 확률은 솔직히 반반.
상인이 선한 인물이라면, 마차를 꺼내줬을 때 작은 보상을 받고 상인이 악한 인물이라면 그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습격을 당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와줘도 보상이 별로야.’
보상이라도 넉넉했으면, 리스크를 짊어졌을 것이다. 강설은 다음으로 떠오른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1. 끼니를 거른다.
2. 근방을 수색한다.
3. 사냥을 나선다.
4. 모험을 포기하고 되돌아간다.
……
당연한 소리겠지만, 모두 리스크가 있는 선택지였다.
‘망할… 여행운이 여기서 또 말썽이네.’
평상시라면 가방에 구멍이 뚫려 식재가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을 테지만 얄궂게도 불운한 여행운과 원정 시스템이 겹쳐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꾸욱…
강설은 2번을 선택했다.
[약간의 체력을 소모합니다.] [피로가 가중됩니다.]카렌이 있으니 실제 사냥 능력은 자신이 있었지만, 원정 시스템에서 사냥이라는 선택지는 플레이어의 실제 근력과 민첩에 영향을 받고 관련 재능이랑도 연계가 되었기에 그리 효율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당신은 주변을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척박한 땅, 그나마 당신을 만족시킬 만한 식재료는 얼마 안 되는 야생 동물들이 전부 뜯어간 후였습니다. 그런데, 수색을 계속하던 당신은 발밑에 무언가 걸리는 것을 느끼고 확인했습니다. 맙소사, 버섯입니다! 그런데 색이….]1. 배가 고픈데 색이 대수일까? 그대로 입속으로 가져간다.
2. 버섯의 색이 파랗다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굶어야 할 것 같습니다.
3. [필요 : 간파] 이 버섯은 독이 있는 버섯입니다.
4. [필요 : 요리] 안전하게 버섯을 요리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4번을 선택한 강설.
[훌륭한 식사를 했습니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집니다.]‘휴….’
피로와 정신병 등 안 좋은 페널티로부터 다행히 몸을 지켰다.
강설은 이밖에도 계속 떠오르는 선택지들을 헤쳐나갔다.
[늪지대를 맞딱….] [피로가 누적됩니다.] [상태 이상 : 오한에 노출됩니다.] [장화의 내구도가 10 감소합니다.]늪지대를 맨몸으로 돌파하고.
[밤새,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쳤….] [피로가 누적됩니다.] [상태 이상 : 수면 부족에 노출됩니다.] [당신은 신경질적인 상태입니다.]동물의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죽은 동물을 발견했습니다. 훌륭한 고기를….] [피로가 누적됩니다.] [훌륭한 조리로 기생충과 식중독의 위험을 피했습니다.] [당신은 매우 만족한 상태입니다.]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마지막 지문에 도달했다.
[당신은 비몽사몽 걸었습니다. 고된 여행은 언제나 추억으로 남지만, 당시에는 괴로운 법.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은 주위를 둘러봅니다.]화아아악…
강설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시야가 뒤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까아아악…
까마귀 소리가 귓전을 맴돌며, 세찬 바람이 그의 눈을 따갑게 했다.
“후우….”
[그늘 협곡에 도착했습니다.]메시지는 계속해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