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70
제69화
[누적된 피로가 몸을 무겁게 합니다.]
[잠을 청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도착까지 5일 16시간이 흘렀습니다.]
옆에 서 있는 카렌이 강설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수염이 많이 자랐네?”
“그래?”
“하긴, 그리 편안한 여행길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게 중간중간 마을에 들렀다 가자니까.”
“협곡까지 적당한 마을이 없어서 빙 돌아가야 하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렇게 기운이 없으셔?”
“저기,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카렌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눈초리로 답했다.
“닷새 좀 넘게? 왜?”
“아냐, 지루했지?”
“재밌었어, 늪지대에 빠지기 전까진.”
“음….”
강설은 카렌의 반응으로 한 가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소환수들이 시간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것.
‘소환수들을 이 세계의 주민들이나 마찬가지라고 가정한다면… 이들은 시간을 온전하게 누린다.’
가령, 이번 경우처럼 장거리 모험을 한다고 가정하자.
강설은 5일 16시간은커녕 1시간이 흘렀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이다.
반면, 카렌은 5일이 넘는 시간을 직접 거쳐왔다. 늪지대도,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도,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발견한 것도 모두 그녀에겐 진짜 있었던 일인 것이다.
‘신기한데….’
판타지 세계였으니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신들의 마음일 것이다.
심각한 왜곡이 강설과 카렌 사이에 끼어 있더라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장거리 여행에서 소환수들이 멀쩡히 움직인다는 건 행운이다.’
장거리 여행 시, 선택지로 몸을 통제할 때는 어떤 상황에 놓일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때 소환수라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큰 곤경에 놓일 일은 없을 것이다.
‘요리랑 간파도 도움이 됐고.’
무두질이나 도축, 그 외 약초학이나 생존학 등 도움이 될 만한 재능은 요리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가진 잠재력으로는 요리를 누를 재능이 없었다.
“우선 자리부터 잡자.”
“바로 수색하지 않고? 아, 벌써 밤인가?”
“응, 그리고 여행이 좀 피곤했으니까.”
“좋아, 내가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볼게.”
휘이이잉… 후웅…
게양대에 걸린 깃발처럼 옷이 나부꼈다.
협곡은 그 장엄한 모습답게 싸늘한 칼바람과 음습한 온도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도 협곡에 진입하는 순간 떠올랐다.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한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11. 그녀의 마지막 자손]
모험 11. ‘그녀의 마지막 자손’
당신은 하문에게 희귀한 소재를 구해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의 부탁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아는 당신은 그것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하문은 노비라의 남쪽, 외따로 떨어진 그늘 협곡에 오래전 종적을 감췄던 불붙은 여왕 거미 아나킨드리아의 자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를 당신에게 전달했습니다. 하문은 이 정보를 꽤 자신 있어 했습니다.
그의 정보를 믿은 당신은 남부의 모험가들도 꺼리는 험지 중의 험지, 그늘 협곡에 홀로 찾아왔습니다.
아나킨드리아의 전설이 정말 실존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자손이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온 것인지 당신은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고대 종의 피를 가득 받아 갈 것이고요.
우선, 전설의 흔적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목표 : 아나킨드리아의 마지막 자손 정혈 획득.
목표 달성 실패 시 하문의 호감도 하락 및 홍련검의 재연마 실패.
현재 남은 시간 「약 30일」
“한 달이라….”
강설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을 이렇게 줬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마, 불거미의 흔적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든지 혹은 불거미의 위치를 찾더라도 처치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준비가 필요하다든지.
‘아무래도 전자 같지만.’
협곡의 규모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했기에 이런 곳에서 특정한 생물을 찾아내는 건 극악의 난이도일 게 분명했다.
“여기야! 이리 와!”
“그래.”
다행히, 협곡의 초입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이 머물렀을 만한 자리가 있었다.
“하아… 춥네.”
“불 피우자, 장작은 꽤 있어.”
“아껴야지, 그래도.”
“식재는 잃어버렸어도 기름이랑 땔감은 꽤 가져왔어. 괜찮아.”
“좋아, 펑펑 쓰자고. 자, 이쯤 하면 되겠네.”
모닥불 자리가 잡히자, 금세 불이 피워졌다.
카렌이 순식간에 피워낸 것.
강설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찾는 그녀가 신기했다.
“피곤하겠다. 너도 좀 쉬어.”
“아냐, 난 됐어. 둘 다 쉬면 누가 불을 지켜.”
휘리릭-!
카렌의 말에 대꾸한 것은 그림자 공간에서 튀어나온 쟈마드였다.
우드득…
그는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내가 하지. 종일 어두컴컴한 곳에 있었더니 좀이 쑤시는군.”
“쟈마드, 고맙다.”
“흥, 당연한 것을.”
쟈마드가 일부러 외곽을 등지고 불을 쬐었다. 그의 큰 덩치가 모닥불을 지키자, 불은 더 거세게 타올랐다.
“오… 트롤! 이럴 땐 듬직하네!”
“뭐, 이 친구가 날 가장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정말이야?”
카렌이 분하다는 듯이 강설을 노려보았다.
“아직 아니라며?”
“뭐가?”
“날 주인으로 인정하는 거.”
“그야… 그렇긴 하지. 카하핫.”
그녀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타닥… 탁…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강설의 피로를 더욱 가중했다.
툭.
잠시 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미리 깔아둔 가죽 위로 툭 하고 쓰러지는 강설.
카렌과 쟈마드는 멍하니 모닥불을 보고 있었다.
– 어색해…
– 불편해…
– 우리, 친해질 수 있을까?
– 보통 이런 전개면 나중에 둘이 사귀는데
– 물러가라, 우결충아. 대가리 쪼개기 전에.
– 넵, 이만… 총총총…
– (소금을 뿌린다)
침묵을 즐기던 쟈마드가 카렌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인 것이냐?”
“뭐가?”
“녀석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글쎄… 어떨까.”
카렌이 적당한 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모아 양팔로 감쌌다.
“나도 잘 모르겠어.”
“뭐가 그리 복잡한 거지? 뭐가 널 가로막는 거냐?”
“히히… 왜, 가로막는 게 있으면 없애주게?”
“아니, 그런 건 스스로 부숴야지.”
“뭐야, 괜히 기대했네.”
“장난치지 말고.”
카렌은 쟈마드의 진지한 표정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트롤, 넌 그림자가 된 후에 곧장 저 인간을 따랐어?”
“물론. 난 미적지근한 건 질색이라.”
“어째서? 보니까 너도 트롤치고는 어딘가에서 한가락 하는 친구였을 것 같은데.”
“흠흠… 그렇지. 하지만, 결국 저기서 세상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는 놈에게 패배했지.”
“에? 그럼 카루나에게 진 거잖아?”
“다르다, 난 스노우맨에게 진 거야.”
“카루나를 인정하기 싫은….”
“아니, 너야말로 저 친구를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불안한가?”
“…….”
“네가 결국엔 저 친구를 인정하게 될까 봐.”
“넘겨짚지 마.”
“결정이 어렵다면, 내 얘기를 해주지.”
쟈마드가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눈빛으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스리던 바위 어금니 부족은 굳건했다. 누구도 함부로 우리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고, 우리의 규모는 커져만 갔지.”
“얼마나? 다스리던 부족이 컸었어?”
“산 하나를 통째로 지배했었으니까. 대답이 됐나?”
“이야… 예상한 것보다 더 대단하셨는데?”
“아무튼, 난 부족의 지도자로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부족의 생각도, 힘도.”
쟈마드가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한 손으로 그것을 꽉 쥐었다.
푸스스…
손을 펴자, 돌은 모래가 되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스노우맨이 부족이 있는 곳에 잠입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내 부족의 이름은 사라졌다.”
“…….”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난 카루나에게 패했다. 하지만, 분명 내게 한 번의 기회가 왔고 난 모든 걸 쏟아부었다. 분명, 분명 이길 수 있었다. 카루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당시엔 내가 더 강했으니까.”
쟈마드는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난 카루나에게 패했고, 내 부족은 사라졌다. 내가 그림자가 된 후에 그를 섬긴 이유? 쉽다. 뼛속까지 승복했기 때문이야. 내 부족을, 내 형제를, 그리고 나마저도. 모두 쓰러트린 건 카루나가 아닌 저 자식이니까.”
“승부의 결과 때문인 거야?”
“아니, 승부의 과정 때문이겠지. 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식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결국은 해내지.”
“…….”
“그림자가 된 후에, 저 자식이 꾸미는 짓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서게 된다. 내가, 이 바위 어금니의 족장 쟈마드가 저 자식을 돕기 위해 말이야.”
쟈마드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카렌이 얘기가 끝난 듯하자 그에 답했다.
“잘 들었어. 좋은 얘기네.”
“내가 궁금한 건 너다. 단순히 형제 때문에 이곳에 얽매여 있는 것이냐?”
“우움…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카루나는 저 인간이 뭐가 좋다고 붙어 있는 걸까?”
“속단하지 마라. 육체는 나약할지라도 생각은 깊은 녀석이다.”
“카하핫! 그래, 그렇겠지. 네가 이렇게까지 따르는 사람인데 말이야.”
타닥…
끼룩…
새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모닥불은 주변을 따스하게 했지만, 그 따스함이 마음까지 닿지는 않았다.
카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만의 이야기를.
“꿈을 꿔?”
“뭐?”
“너 말이야, 트롤. 그림자가 된 후에 꿈을 꾸냐고.”
“아니,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그래?”
“너는 꿈을 꾸나?”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끼루룩…
또, 새소리.
“그래, 아주 불쾌한 꿈을.”
“듣고 싶군.”
“별건 아니야. 몬트라 시절의 꿈을 꾼다.”
“그 멸망한 제국 말이군. 이제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나? 카루나는 몬트라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게 말이야. 잘 안 돼. 불타는 황도와 찬탈자들의 끔찍한 숨소리, 그리고… 진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내가 이상한 걸까?”
“조금, 기억력이 좋은 편이겠지.”
“나쁜 기억은 쉽게 잊지 못하잖아.”
“조금, 받아들이는 게 느린 편이기도 하고.”
“뭐, 맞는 말.”
카렌은 임시로 가져온 장비 중, 그녀의 검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봤거든?”
“뭘 말이지?”
“그러니까, 마음가짐! 카루나가 돌아오기 전에는 그래도 저 망할 자식 숨은 붙여놔야 할 거 아니야.”
“네가 그러지 않아도 내가 있다만.”
“너로는 불안해. 아무튼 불안해. 아,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말해라.”
“검이 안 뽑혀.”
쟈마드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며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장난 같아?”
“검이 안 뽑힌다니, 그런 정신 나간 소리가 또 있나?”
“나도 이해가 안 돼. 근데… 진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검을 뽑으려고 하니까 막….”
카렌이 영혼이 빠진 듯한 눈으로 쟈마드에게 호소했다.
“검이… 무거워. 너무 무거워.”
“미칠 노릇이군.”
“카하하… 나야말로.”
끼루룩…
타닥…
새소리와 함께, 다시 적막함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때, 잠에 빠져들었던 강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 (사실 다 듣고 있었음)
– (자는 척 연기 중이었음)
– (콧구멍 씰룩씰룩)
“안 그래도 곧 깨우려고 했다.”
“그래, 잠은 일단 미뤄두자.
마치 강설이 당연히 일어났어야 하는 것 같은 반응이 이어지고, 카렌이 하늘을 돌아보며 말했다.
“새소리. 그것 때문에 깬 거지?”
“…응.”
“그래, 새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끼루우우욱!
강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로 오고 있네. 불 때문인가?”
거대한 새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고 있었다.
“노려진다! 어이, 스노우맨을 지켜라!”
“알았어! 일단 불부터 끈다!”
후우웅…
카렌이 손을 휘젓자, 불이 꺼졌다.
이 찰나에 거대한 새는, 어느새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고개 숙여!”
콰지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