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0
제79화
“무슨 일이십니까?”
“큰일… 큰일이 났어! 세라가… 세라가!”
콰아앙-!
세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카렌이 문을 순식간에 열어젖혔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
“세라가… 밤에 나갔다가, 안개 망령을 마주친 것 같아!”
“안개… 망령?”
“이, 일단 세라가 있는 곳으로 가세. 어서!”
강설은 모험의 진행을 위해 실마리가 나타난 것은 좋았으나, 하필 그 실마리가 세라에게서 비롯된 점에서는 안타까웠다.
‘세라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카렌이 충격받을 텐데.’
카렌은 지금,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강설은 그녀가 앞으로 그림자로서의 삶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다.
“허억… 헉….”
강설도 카렌과 함께 마을 어른을 따라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카렌이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세라?”
“언…니….”
세라는 침상 위에 누워있었고 외견상으로 보이는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것이 오히려 강설과 카렌을 불안하게 했다.
“저… 봤어요….”
“뭘? 뭘 봤단 거야, 세라야?”
“안개 속에… 숨은 괴…물들.”
“…뭐?”
“절대, 마주치면… 안 돼요….”
“세라야!”
“너무… 졸려요… 언니….”
강설은 세라를 보기 위해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안개 속의 괴물들은 또 뭐고, 세라는 왜 이러는 겁니까?”
“그, 그것이….”
“세라가 아무래도, 안개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네.”
“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오늘 낮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제 할 일을 다 하던 여인이, 무슨 사고를 당해 갑자기 병에 걸린 것일까.
“…확실한 겁니까?”
“군트 선생님이 안 계셔서 확신은 못 하지만, 아마 그럴 것 같네. 안개 병에 걸린 자들의 초기 증상이랑 똑같아.”
안타깝게도 안개 병의 해약은 현재 없는 상황.
“빌어먹을….”
원인도, 이유도 모른다.
전염병은 아니지만, 마을 인원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을 잡아먹은 무서운 병.
세라가 그 병에 걸린 것 같다.
“안개 속 괴물은? 그건 무슨 소립니까?”
“그게… 안개가 진해지는 날, 안개 너머로 뭔가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네.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확실히 정상이 아닌 존재들이라더군.”
“세라가 그걸 봤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말하니 뭐…. 그리고, 이건 안타까운 얘기지만 마을 인근에서 안개 망령을 본 사람들은 전부….”
고개를 젓는 마을 어른.
빠드득…
카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팟-!
그리고, 그녀는 홀로 어딘가로 튀어 나갔다.
“카렌!”
애써 세라에게 달려왔건만, 또다시 달려야 하는 강설. 강설은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달리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헉… 허억….”
후우웅…
휘리리릭-!
쟈마드가 소환되어 강설을 어깨에 올렸다.
“꽉 잡아라, 요정에게 데려가 주마.”
쿵!
쿵!
쟈마드와 강설의 속도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는 강설이 이제까지 온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한순간에 주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숲에서 방황하는 카렌을 찾았다.
“어디야!”
“뭐?”
“어디냐고? 망할 괴물 자식들아! 얼른 나와!”
카렌은 주변을 보며 소리쳤다.
안개가 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마치 이곳에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검을 쥔 채로 소리를 질렀다.
“카렌.”
“젠장, 젠장, 젠자아아앙! 왜, 왜….”
“진정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응?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냐는 말이야.”
“…….”
“그림자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곳인데…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하는데… 왜….”
카렌의 괴로움이 구체적인 문장이 되어 그녀의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루나가 아직 잠들어 있는 이상, 그녀의 방황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쟈마드는 강설의 그림자 공간으로 되돌아갔고, 강설은 카렌의 곁에 서서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카렌은 잠시 무릎을 껴안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는 강설에게 말했다.
“…미안.”
“아니야.”
“꼴사납지?”
“딱히?”
카렌이 푸념했다.
“예전에 말이야.”
“얼마나 예전?”
“몬트라 시절 말하는 거야.”
“응.”
“난 그때가 편했다고 생각해.”
“어떤 점에서?”
“그냥, 뭐든 명확했거든.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진의 말만 들었으면 다 됐거든.”
카렌이 강설을 쳐다봤다.
“진은 옳았으니까. 나는 그냥, 진을 거들어주기만 하면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아직도 카렌의 뇌리에 오래전 진의 말이 남아있다.
– 카렌, 세상에서 가장 무딘 검이 뭔 줄 아느냐?
– 글쎄? 관리가 잘 안 된 검? 나쁜 철을 쓴 검?
– 둘 다 아니다. 생각하는 검이다.
진은 그때, 먼 곳을 바라보며 카렌에게 말했다.
– 생각하면 늦어, 아무것도 벨 수 없다. 검은 베기 위해 존재한다. 카렌, 그러니까 너와 같은 검은 그저 날카로워야 한다.
– 뭐야 그게…. 나더러 생각 없이 살라는 얘기?
– 나를 믿고 따르라는 얘기다. 검을 쥐고 벨 것을 정하는 건 그 주인이니까.
– 웃기네. 그러면 세상이 바뀌어?
진은 확신하며 답했다.
– 그래, 바뀐다.
그리고, 몬트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그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주인, 세상은 여전해. 약자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고 악인은 들끓어.”
“…….”
“넌 어때? 네가 옳다고 생각해?”
카렌은 괴로워 보였다.
진이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생각해야 했으니까.
카렌의 이러한 질문은, 강설과 카렌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녀가 강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질문에 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는 지금, 강설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강설이 진처럼 그녀를 휘두를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진행된 건지는 모르지만, 강설은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줬다.
“몰라.”
“역시, 너는 모르는구나….”
카렌은 실망한 눈빛을 보내왔다.
“내가 옳은지 틀렸는지는 끝에 가 봐야 알겠지.”
“그러면….”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그 끝에 도달했을 때….”
강설이 이 지독한 게임판을 뚫고 지나가 승천에 도달하고, 신들에게 죄를 물을 때.
비로소 강설이 신들에게 복수를 이루는 바로 그때.
“세상은 더 나아졌을 거야.”
“…정말?”
“아니면 말고.”
“엥, 뭐야?”
– 킹님 갓고!
– (진지한 눈빛) 아니면 말고.
– 역시 스노우맨… 빈말은 못 하시는 그저 빛빛…
카렌은 강설의 얼굴을 한차례 쳐다본 후, 웃었다.
“카하하! 대답 참 능글맞네.”
“아무튼, 그런 얘기도 전부 먼 미래야. 우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침상 위에 누운 세라를 떠올렸는지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안개 망령부터?”
“그게 순서겠지.”
* * *
그날부터 강설 일행은, 나날이 증세가 심각해져 가는 세라를 두고 마을 인근을 수색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성과는 보지 못했다.
“제길, 이거 뭐 잘못하고 있는 건가?”
“정말 안개 속에 뭐가 있긴 할까?”
“세라는 봤다잖아. …죽은 다른 사람들도 봤다고 말했다는 것 같고.”
“왜 안개 낀 날만 나타날까?”
“모르지.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는… 잠깐.”
“카렌?”
“…쉿.”
카렌이 긴장하며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어, 강설 또한 그녀가 느낀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안개 망령?’
기척을 만든 이의 모습은 안개가 너무 짙어 시야에는 정확히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만큼은 또렷이 감지되었다.
스윽…
팟-!
스릉-!
카렌이 벼락처럼 몸을 움직여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다가가 검을 가져다 대었다.
“와아악!”
“…어? 어?”
“뭐, 뭐 하는 겁니까? 누구시죠?”
“안개… 망령?”
“네? 지금 그게 다짜고짜 목에 칼을 겨누고 할 말입니까?”
“아니, 그게….”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괴물도, 유령도 아닌 인간이었다. 그리고 마치 집에 찾아온 듯 당당해 보였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상대의 질문에 강설이 답했다.
“저희는 모험가입니다. 현재는 물안개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이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러셨군요. 검을 거두시죠. 저는 괴물 같은 게 아닙니다. 의사죠.”
“설마, 군트 선생님입니까?”
“오? 제 이름을 알고 계시는군요?”
“…세라에게서 들었습니다.”
“하하! 세라가 제 얘기를 하던가요? 상황을 좀 정리하고 오느라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게 됐습니다. 얼른 마을 사람들을 보고 싶군요.”
“…세라가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
잠시 강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군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혹스러워했다.
“…병?”
“안개 병에….”
“그런… 맙소사, 안 돼! 세라 양까지? 이, 일단 가시죠! 가서 진찰해 보겠습니다!”
군트는 강설 일행과 함께 마을까지 내달렸다.
그의 세라를 향한 걱정은 깊어 보였다.
“헉… 헉… 세라 양… 세라 양, 안 돼요!”
강설과 함께 마을에 도착한 군트는 다급히 세라의 집으로 향했다.
“군트 선생님께서 오셨어! 다 나와봐들!”
“선생님! 저희, 저희 남편이 아직….”
“잠시만요, 여러분. 우선, 세라 양부터 진찰하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여장을 풀 겨를도 없이, 군트는 진찰을 시작해야 했다.
끼이익…
“세, 세라 양?”
“…군트 선생님?”
“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세라는 피곤한 듯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로, 군트의 진찰이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과 강설 일행은 문가에 기대어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기다렸다.
끼이익…
군트가 굳은 표정으로 세라의 집을 나섰다.
“서, 선생님. 세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마을 어른이 군트에게 물었다.
군트는 침통한 어조로 그에게 답했다.
“…세라 양은 안개 병이 맞습니다.”
“맙소사… 그렇게 착한 아이가….”
“세라 같은 아이가 어떻게 안개 병에….”
군트가 기운 없는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선하고, 약하다고 해서 병이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라 양은… 아마 며칠 안에 잠에 빠질 겁니다.”
“그, 그렇다는 얘기는 세라가 죽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끄덕.
군트의 고개가 힘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흑… 세라야. 세라가….”
“여, 여기서 이러지들 말고 움직이자고. 세라가 듣겠어!”
강설과 카렌은 멍하니 그 자리에 남았다가, 다시 숲속을 향해 걸어갔다.
강설은 카렌이 무언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왜?”
“어?”
“내 눈치 보는 거 아니야?”
“아닌데?”
“흐음….”
– 아닌데?(맞음)
– 님 눈치 보는 중…
– 소환사의 인권 추락, 어디까지인가?
카렌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강설에게 말했다.
“괜찮아. 애초에 예상하던 일이잖아.”
“군트가 너무 솔직하더라.”
“응, 때려 주고 싶을 만큼.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좀 진정되면 찾아가 보자.”
“그래, 다른 얘기들도 나눌 것들이 있으니.”
강설은 그렇게 말하며, 차오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아 참, 뭐 찾는 거 아니었어?”
“어, 남자. 그런데 딱히 비슷한 사람도 없네.”
“그 남자는 뭐야?”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남자의 얼굴.
사진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루마리에 그려진 얼굴은 꽤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차오가 찾으라고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일 것 같은데, 비슷한 사람을 본 적도 없어. …어?”
“으음… 잠깐만.”
우뚝.
카렌의 걸음과 강설의 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군트 말고 마을에 올 사람이 있나?”
“없지.”
“그럼 저 기척은?”
그들의 말대로 안개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카렌은 강설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안개의 망령이겠지.”
“이번에는 맞기를 빌어줘!”
팟-!
철컥-!
스릉-
카렌의 검이 뽑혀 나오며 안개 속에서 일렁이는 존재에게 향했다.
화르륵…
서걱-!
검이 멈추지 않고 뭔가를 베었다.
그 얘기는, 카렌이 상대를 적으로 간주했다는 얘기.
‘정말로 존재하는 거냐? 안개의 망령!’
강설이 카렌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그으으으어어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썩은 시체.
이미 머리가 잘렸는데도 그것은 꽤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몸부림쳤다.
화르륵…
곧, 시체의 잘린 몸이 불에 타며 움직임을 멈췄다.
괴물의 절단된 머리만 뻐끔뻐끔 입을 벌리며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줘어….”
카렌이 굳은 표정으로 강설에게 말했다.
“주인.”
“이거 설마….”
“우릴 쫓아온 건가?”
강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기억.
원정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들렀던 땅거미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정체불명의 괴물들과 그것을 부리는 자.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렌에게 말했다.
“그놈이야.”
지금 바닥에서 불타고 있는 안개의 망령은, 땅거미 마을에서 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한 괴물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