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5
제84화
얼마 뒤, 아우데닌을 거점으로 삼은 전이자들은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시끌벅적했다.
“저, 정말이네? 거의 200만 점 가까이 돼!”
“누구지? 박창식은 어제 막 돌아왔는데?”
“그 박창식이 2위로 밀려나는 걸 볼 줄이야…. 신기하네.”
아우데닌의 전이자 중 모험 점수가 100만 점에 가장 가까운 남자, 굵직한 선에 잘생긴 얼굴.
박창식은 지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헉… 헉… 찾았어? 소식은?”
“딱히 없어요, 형. 지금 길드 애들 다 나가서 수소문하고 있는데 애초에 아우데닌에서 전이자 한 명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건 그렇기야 하지. 그래도 최대한 찾아봐. 수상한 새끼들은 다 잡아다가 물어보라고.”
“우리가 뭐 깡패예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얘기야. 아무튼, 젠장… 일단 알았어! 계속 찾아봐!”
“네, 형!”
아우데닌은 5개의 거대 길드를 주축으로 전이자끼리 똘똘 뭉쳐있는 편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융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박창식을 필두로 악인들에게 칼을 뽑아 든 전이자들이 그들을 몰아냈기 때문에 이런 구조로 일찍부터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의 길드는 종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가치관으로 나뉘었고 규모는 엇비슷했다.
콩고리도 뒤늦게나마 아우데닌과 비슷한 구조를 갖추긴 했지만, 아우데닌 보다는 전이자들의 실력이 살짝 뒤처진 편이었다.
그리고 이런 강성한 전이자 풀을 구축한 아우데닌의 실질적인 리더인 박창식은 지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얼마 전, 모험에서 돌아와 회복하고 있던 그조차 길드 사유지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게 만든 인물이 있어서였다.
‘200만 점이라니… 어떻게 그 점수까지 도달한 거지?’
박창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굉장히 특출 난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명확했다.
남들보다 확연히 앞서나가는 점수.
아우데닌의 인근 도시들의 랭커들과 비교했을 때도 자신을 앞지르는 사람은 몇 없었다.
물론 북서쪽 도시에서 들려오는 비공개 전이자가 100만 점을 넘었다는 등의 소리도 있었지만 그가 실제로 본 것이 아닌 이상 믿지 않았다.
그가 그간 어떤 모험을 해 왔는데.
인간이 이 이상의 고난을 겪으면서 그보다 2배는 높은 점수를 쌓아왔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편법, 혹은 아예 점수 자체가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그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보였다.
아우데닌의 랭킹 1위였던 그를 밀어내고 2배의 점수 차이를 만들어내며 1위를 꿰찬 수수께끼의 인물.
‘빌어먹을… 정보까지 비공개니 알아낼 방법이 이딴 단순한 방법밖에 없어.’
그래도 전이자들끼리 똘똘 뭉쳐있다는 아우데닌의 기조는 이런 때에 효과적일 것이다.
서로 왕래가 있는 편이니 새로운 모험가가 등장했을 때 그게 누군지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랭킹 1위 모험가를 찾아 헤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실마리를 얻은 모험.
그 규모는 현재의 박창식으로서는 감히 예측 불가능.
엄두가 안 나는 난이도도 난이도였지만, 장기 모험인 데다 기가 막힌 제한까지 걸려있었다.
5인 이상 입장 불가능.
길드의 규모를 이용하기도, 박창식 혼자서 돌파하기도 애매한 모험.
그러나, 그 모험과 관련된 조사를 하던 중 꽤 여러 정보가 모였다.
바로 보상에 관한 부분이었다.
‘보물 이상의 물건들이 거기 있는데,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있으니….’
박창식은 늘 그렇듯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신용하진 않았다.
즉, 자신보다 강자인 존재만을 인정했다.
‘그곳에 가려면 적어도 나보다 강한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해.’
박창식은 아우데닌의 다른 전이자 랭커들을 이끌고 간다고 한들 그 결과가 불투명할 것 같다고 점쳤다.
다들, 자신보다 약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타난, 무려 모험 점수 200만 점에 가까운 존재만 합류한다면 다른 구성원은 누구로 채우든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빨리 찾아야 한다. 누군지 확인해야 해!’
이건 새로 나타난 강자에게도 좋은 제안이 될 것이다. 강자들은 시련과 위험을 찾아다녔으니까.
그리고 마침 박창식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예정된 위험한 시련의 정보가 있었으니까.
“형! 창식이 형!”
저 멀리서, 박창식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길드의 동생이었다.
“어! 찾았냐?”
“…떠났어요.”
“뭐라고?”
“지금, 막 떠난 것 같다고요. 그 사람, 점수에서 이름이 사라졌어요.”
“제기랄!”
콰직-!
박창식이 홧김에 친 나무 벽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단 이 시간대에 외부로 나간, 전이자 정보들 확인해 봐.”
“경계병들이 알려줄까요?”
“안 알려주면? 그간 돈을 얼마나 퍼먹었는데.”
“알겠어요. 근데 알아내서 어쩌게요?”
“어쩌긴, 다음에 여길 지날 때 낚아채야지.”
“근데 형을 처음 만났는데 도와줄까요, 그 사람이?”
“도와준다고? 아니, 이건 정당한 거래야.”
“음….”
박창식의 눈이 이글거렸다.
“빌어먹을… 다음엔 안 놓친다. 꼭 엮어주마.”
* * *
박창식과 아우데닌 전이자들의 예상대로, 강설은 이미 아우데닌을 벗어나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끄는 말들이 한적한 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덕분에 애가 타는 건 강설이었다.
“저…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 없습니까?”
“여기서 콩고리까지는 족히 10일은 걸린다우. 그리고 마차는 내가 끄는 게 아니라 이 말들이 끈다고?”
10일.
강설이 노비라에서 그늘 협곡까지 도달한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었다.
아니, 오히려 거리상으로는 더 짧고 길도 좋은 편이었으니 이 일정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자, 선택지가 떠올랐다.
[아우데닌의 사람들은 느긋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마부가 말한 일정은 다른 도시의 마차를 탔다면 훨씬 앞당겼을 만했을 겁니다. 마부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1. 미쳤군, 노인네. 이 편한 길을 그렇게 느리게 간다고?
2. 굼벵이가 따로 없군! 그럼 아예 팔다리도 잘라 정말 굼벵이로 만드는 것도 재밌겠어.
3.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는 없습니까?
4. 아우데닌 사람들이 느긋하다고 하더니 정말 느긋하군요. 하지만, 죽음도 그렇게 느긋하게 찾아올까요?
……
살벌한 선택지들이 주르륵 떠오르고, 그것을 본 강설은 잠시 고민했다.
‘아우데닌 사람들은 느긋하지만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심술을 있는 대로 부린다.’
이때까지 남부의 아우데닌을 거쳐 간 그의 말이 몇 개던가. 또 아우데닌 사람들이 너무 느릿하다며 무시했다가 호된 꼴을 당한 적이 없던 것도 아니고.
강설은 신중히 말을 골랐다.
“마부님,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거참, 끈질기네. 내가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니까?”
“일정을 하루 앞당길 때마다 돈을 배로 지급하겠습니다.”
“…뭐?”
한마디로, 일정보다 이틀만 먼저 콩고리에 도착해도 4배의 돈을 받는 셈. 강설 혼자 4명의 승객 몫을 하는 것이다.
마부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어흠… 그래도 힘들어. 말도 쉬어야 하거든. 그리고 거기 같이 탄 승객들은 또 어떻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승객들 몫까지 포함하죠.”
“…제정신인가?”
“예.”
“그만한 돈은 있고.”
철렁-
강설이 품에 있는 금화 주머니를 슬쩍 건드렸다.
외지에서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주위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없기에 한 행동이었다.
“음… 저기 마차에 타신 승객 여러분. 사정이 좀 생긴 듯하여….”
“괜찮소.”
“저는 괜찮아요.”
마부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들에게 말했다.
“얼마 만에 달려보는 거냐, 너희도 힘 좀 쓰거라. 중간중간 건초에 옥수수나 삶은 콩도 섞어줄 테니.”
히이힝!
착-!
마부의 채찍 소리에 놀란 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흔들려도 이해하십쇼.”
강설은 그대로 마차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이로써, 노비라와 가장 인접한 도시인 콩고리에 도착할 시간을 앞당긴 것 같았다.
‘노비라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까 전 마부와 잠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부가 그 이상은 모른다며 물러났다.
강설은 빨리 콩고리에 도착해서 이 불의의 사태에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했다.
그때, 앞에 있던 노신사가 강설과 카렌에게 물었다.
“저기, 그대들도 콩고리에 가족이 있는 거요?”
“네?”
“예?”
“이렇게 흉흉한 때에 굳이 거기까지 올라가는 걸 보면 그만한 사연이 있는 거 아니요?”
이렇게 흉흉한 때.
강설은 노신사가 최근 북서쪽 인근 도시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는 것 같아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노비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알지, 알고 말고. 이래 봬도 전에는 무역상을 크게 했었는데 아직 그때 만든 인연들이 남아있어서 이런 정보는 빠르다오.”
“말씀을…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콩고리에 도착할 때까지는 할 것도 없으니 해드리지.”
“감사합니다.”
강설은 마차에서 이 노신사를 만난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콩고리에 도착해서도 정보 수집을 위해 시간을 허비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혹시 전이자인가?”
“예.”
“그래 보였네. 자네 여기가 네베니아 왕국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네베니아 왕국.
콩고리와 노비라, 그리고 아우데닌을 비롯하여 더 남쪽의 유고까지.
네베니아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남부 최대의 삼림 지역인 대삼림을 품은 국가였기에 남쪽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퍼져있는 왕국이었다.
“네베니아와 국경을 맞댄 곳들을 알고 있나?”
“남쪽으로는 아델린, 동쪽과 북쪽으로는 세테나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트롤들이 있죠.”
“그래. 트롤들은 꾸준히 성장해서 야금야금 세테나의 영토를 갉아먹었지. 이제는 네베니아의 북서쪽 자리를 꿰찼네.”
“세테나의 영토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꺼내신 이유가 있습니까?”
“있지. 혹시 이 일보다 전에 벌어진 위글텅의 일을 전해 들었나?”
“위글텅이라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키보가 강설이 떠나기 전 그에게 했던 말들.
분명, 위글텅이라는 마을이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습격받았다는 내용이었다.
– 요새의 감시망을 피해 마을을 습격할 정도로 용의주도한 놈들이라 목격자는 남기지 않았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을 주민의 반 정도는 기반 사업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었던 터라 목숨을 건졌다는군. 돌아와 보니 불타버린 마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야.
강설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노신사에게 물었다.
“설마, 위글텅에서 벌어진 일이 트롤들 짓입니까?”
“그래. 놈들은 위글텅을 약탈하고 생존자들을 전부 죽였지. 도대체 어디로 침투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설마 노비라도?”
노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글텅 다음에 노려진 것이 노비라네. 놈들은 노비라를 습격해서 그곳을 불바다로 만들고 많은 이들을 잡아먹거나 납치해갔네.”
“납치? 트롤들이?”
트롤은 인간을 노예로 사용하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종족이었으니 인간을 생포하면 그대로 잡아먹거나 재미로 죽이곤 했다.
‘어째서지?’
노신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콩고리로 피신해 있는 상황이야. 그리고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지. 그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까지는 알지 못해.”
“…이야기 감사합니다.”
강설은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후로 이동하는 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빌어먹을… 하문과 차오가 거기 있는데.’
차오는 모를지라도 하문은 노비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기억하기로 무력이 약한 하문은 노비라에서 희생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제발… 살아있어라, 하문.’
하문이 살해당했거나,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강설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그만한 실력 있는 대장장이를 당장 찾기가 어려웠고 이미 그와 관련된 모험까지 완료한 상황이었다.
‘만일 하문이 혹시라도 트롤들에게 죽었다면….’
강설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는, 그의 것을 건드리는 모든 것들에 분노하는 편이었다.
트롤들이 강설이 염려하는 일을 벌였다면, 그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자! 3일이나 일찍 도착했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촤라락.
마부의 손에 금화 몇 개가 떨어졌다.
“이, 이렇게 많이….”
“감사했습니다, 그럼….”
마차가 콩고리에 도착했다.
강설은 지체하지 않고 도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