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7
제86화
하문을 되찾으러 간다는 강설의 말에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오연희가 대경실색하며 물었다.
“그, 그 말은….”
“그들을 쫓을 겁니다.”
“너무 늦었어요. 이미 노비라가 습격당한 지가 일주일이 넘었어요.”
“국경을 이미 넘었을 겁니다.”
강설은 그들에게 말했다.
“상관없어요.”
“구, 국경을 넘을 생각입니까? 어째서요?”
“당신들이 당신들의 것인 콩고리를 지키듯이, 나도 내 거를 지켜야 하니까. 빼앗긴 다음에 지키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스윽.
강설이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옆에 있던 카렌 또한 다시 후드를 쓰고 그와 함께 걸어 나갔다.
“다시 빼앗아 와야지.”
끼익.
쿵.
문을 잡아주는 이가 없었기에, 쿵 소리와 함께 퇴장한 강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이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저 남자는 미쳤어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왜, 나는 멋있던데.”
“시체로 돌아와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두고 보면 알겠지.”
“안방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사지로 들어가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멋있어 보이는 줄 아나 보지?”
“…뭐라고 했어?”
“어라? 들었어?”
“지금 나랑….”
쾅-!
오연희가 탁자를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탁자의 장식 부분에 금이 갔다.
“하하… 너무 시끄러웠나?”
“자중하지.”
오연희가 마음을 다잡고 한여명에게 말했다.
“이거, 여명 씨에게 결례를 저지른 것 같네요.”
“…….”
“아무래도 눈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섣부른 판단을 내린 저를 탓해주세요.”
“…괜찮습니다. 노을아, 가자.”
“어, 으응….”
한여명이 한노을의 손을 이끌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오빠, 아파….”
“미안, 그럼 먼저 숙소로 돌아갈래?”
“응, 그럴게.”
한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한노을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강설이 사라졌을 법한 길을 향해 뛰어갔다.
“한여명?”
“저 사람 한여명 아니야?”
콩고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점차 많아졌다.
강설의 조언 덕분일까, 검은 손에 숨겨져 있던 힘 덕분일까.
그의 성장 속도는 다른 전이자들에 비해 월등히 앞서나갔다. 연맹 사람들도 한여명의 수준이 다른 전이자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그렇게 일약, 콩고리의 상징처럼 추켜세워졌다.
그것이 그를 거만하게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그의 동생 한노을이 조금 더 안전한 장소에서 생존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기뻐했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까지 쫓아온 한여명은 마침내 강설을 찾았다.
“헉… 허억…. 형!”
“날 쫓아왔습니까?”
“예! 맞아요! 잠시만! 잠시만 멈춰주세요.”
한여명에겐 한노을을 지키겠다는 일념.
오직, 그것만이 남았다.
그런데 어째서, 강설을 불러세우게 된 것일까. 그가 원하는 것이 이곳 콩고리에 있는데.
강설은 자신을 쫓아온 한여명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변했군.’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왔었던 그때의 어리숙한 한여명은 이곳에 없었다.
제법 묵직한 모험들을 돌파했는지 착용한 장비도 고급이었으며 기세 또한 예리해졌다.
“어째서?”
“오늘 일…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에요. 이런 걸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도….”
“그럴 수 있죠. 그렇지만 저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닙니다. 덕분에 할 일이 명확해졌거든요.”
“아! 그 하문 님을 찾으러 가신다는 것 말인가요?”
“네, 그럴 생각입니다.”
한여명은 강설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저도, 저도 도울게요.”
“네?”
“저도 돕게 해주세요. 절 구해주셨잖아요.”
강설은 그를 이해했다.
하지만, 부탁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한여명 씨, 당신은 날 도울 수 없습니다.”
“저… 강해졌어요.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강설이 카렌을 흘겨보았다.
카렌이 그의 뜻을 알아채고 앞으로 나섰다.
“이봐, 그… 자신감에 찬 건 알겠는데 주인의 말은 사실이야. 너는 그를 도울 수 없어.”
“시험해보셔도 됩니다.”
“그래, 시험해볼게.”
팟-!
카렌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한여명의 뒤에 나타났다.
“흣!”
스릉-!
한여명이 검은 손을 사용해 재빨리 발검했다.
“음?”
비이상적으로 빠른 발검 속도에, 카렌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그녀도 검을 뽑아 그에 대응했다.
카아앙-!
“재밌는 힘이네, 그 힘.”
“무시하지 마세요, 갑니다!”
“좋아!”
캉-!
카아앙!
캉!
순식간에 카렌을 몰아붙이는 연격을 가한 한여명. 검사끼리의 싸움에서 상대를 죽일 것도 아니니 능력을 사용하진 않았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붙으면 내가 이긴다!’
한여명은 자신에 차 있었다.
귀신 들린 검은 손은, 같은 검사끼리도 몇 수는 앞설 수 있게 해주는 한여명만이 가진 엄청난 힘이었다.
카아아앙-!
그런데, 연신 몰아치던 한여명의 낯빛이 계속해서 어두워져만 갔다.
오히려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 카렌이 더 여유로운 상황.
‘왜지? 왜….’
한여명은 이유도 모른 채, 검을 휘둘렀다.
그저 이 칼끝이 카렌의 옷자락이라도 스치면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팍-!
“우웁….”
카렌의 발이 틈을 노리고 한여명의 가슴을 걷어찼다.
“미안, 아팠어?”
“괜찮습니다. 다시 가죠. 하앗!”
키이잉-
카앙!
하지만, 몇 번을 해도 똑같았다.
검은 카렌에게 도저히 닿지 않았다.
마치 카렌이라는 실체는 허상이고 오직 그 자리에 검 한 자루만 남아 그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닿지 않는 한, 허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뒤집혔다.
“으윽….”
챙그렁…
카렌이 그의 하체를 가볍게 걷어차, 넘어지게 만든 것이다.
“끝났지?”
“…졌습니다.”
“속도는 쓸 만한데, 나머지는 쓸 만하지 않아. 검, 배운 적 없지?”
“…예.”
“움직임은 뻔하고 공격은 가벼워. 아무리 빨라도 그만한 충격이 없으면 막기가 쉽거든.”
제대로 된 검술 능력이 없고 근력이 낮다.
이곳은 게임 판의 위였으니 조금 더 구체적인 말로 설명하자면 그랬다.
“정말이네요… 제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동생을 지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저를 따라오려는 이유가 뭡니까?”
“모르겠어요, 저도. 그냥… 불안해서요.”
“뒤처지는 것 같아서?”
“네, 그럴지도.”
뒤집힌 시선에는 청명한 하늘과 강설의 모습이 담겼다.
“정확합니다. 뒤처지고 계시거든요.”
“네?”
“만일, 제가 여기서 당신의 여동생을 해치겠다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그건….”
막을 수 없다.
눈앞에서 강설에게 한노을이 살해당할 것이다.
“그게 당신을 좀먹고 있는 불안감입니다. 연맹도, 안전한 거처도 모두 소용없어요. 본인이 강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곳에 남아있는 건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곳과는 떨어진, 곳으로 떠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러면 동생이 혼자 남잖아요.”
“그것까진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군요. 그럼.”
강설이 떠나려 하자, 한여명이 일어나 품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작은 조각상이었다.
“이건 뭡니까?”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물건이에요, 형. 아무래도… 제가 콩고리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아서요.”
강설이 그것을 품에 넣고 손 인사했다.
“또 뵙죠. 제가 당신을 찾아갈 때까지 살아있어야 합니다.”
“예! 꼭 그럴게요!”
* * *
강설은 한여명과 헤어진 즉시, 튼실한 말 2필을 골라 구매했다.
“어? 말도 탈 줄 알아? 안 가르쳐줘도 돼?”
“나도 모르는 재능이 있더라고.”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이대로 노비라로 가봐야 약탈당한 도시의 흔적만 남아있을 것 같았다.
‘놈들을 추격하려면 어디로 움직이는 게 맞는 걸까.’
강설은 잠시 고민하다 진로를 정했다.
“굴리아 요새로 간다.”
“그 약탈당한 위글텅 마을 근방에 있는 요새?”
“기억하네?”
“키보가 말했었잖아. 빵이 너무 맛있어서 충격적이었거든. 충격적인 일은 기억에 잘 남아있는 법이야.”
그림자 속에서 쟈마드가 한마디 했다.
“내 멍청했던 형제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기억법이군.”
“네가 그 빵을 안 먹어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 트롤은 빵을 안 먹나?”
“인간과 식성이 비슷한 편이다, 트롤은. 거기에 다른 종족들까지 잡아먹는다는 점만 추가하면.”
“으… 너무 싫어.”
“나도 종족의 이런 부분은 굳이 좋아하지 않는다.”
콩고리에서 굴리아로 가는 마차가 없으니, 카렌과 강설은 꼼짝없이 말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길이 잘 닦여있는 편이라 문제가 생길 여지가 적다는 점.
그들은 천천히 말을 몰아, 북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 그 한여명인지 뭔지한테는 왜 관심을 가지는 거야?”
“앞으로 쓰일 일이 있거든.”
“그렇게 약한데? 그 손은 특이하긴 했지만.”
“그 손 말이야. 내가 말하는 것도 그거야.”
“아하… 그래서 그런 거구나. 어쩐지 관심 있어 하는 것치고는 계속 동생 타령만 하는 사람이라 별로였거든.”
쟈마드가 다시 한마디 했다.
“카루나 타령만 하는 누구랑 판박이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우린 쌍둥이잖아!”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튼, 주인. 그런데 굴리아로 가면 방법이 있어?”
“일단은 트롤들과 가장 가까운 거점이기도 하고, 굴리아에서 이 일에 개입할 계획이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고… 뭐 그런 거지.”
“없으면? 그런 계획이 없으면 어쩌게?”
“어쩌겠어. 혼자 가는 방법밖에 더 있어?”
“카하핫! 미쳤어, 진짜.”
그때, 쟈마드의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헛기침이 들려왔다.
“흠… 흐흠… 할 말이 있다.”
“무슨 말?”
“이번 일 말이다.”
“노비라?”
“그래. 노비라의 일. 이 일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 알 것 같다. 지금 놈들의 위치도.”
“…그게 무슨 소리야?”
쟈마드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을 이었다.
“바위 어금니 또한 한때는 부족 연맹 소속이었다. 뭐, 의견 충돌로 도중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말이지.”
“그래서?”
“부족 연맹은 대륙 전역에 퍼져있다. 사실상, 서로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다. 끝과 끝에 있는 자들끼리 모여봐야 뭘 하겠나?”
강설은 쟈마드의 얘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트롤 입장에서 듣는 트롤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기가 더 어렵겠지만.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부족 회의다.”
“대부족 회의?”
“인근의 거대 부족이 해당 지역의 다른 부족과 나누는 회담 같은 거지.”
– 꼭 말하는 게 무슨 부녀회 같은 느낌이다? ㅋㅋ
– 다음은 단지 내 베란다 흡연 실태에 관해…
– 부녀회장 쟈마드 ㅋㅋㅋ
강설이 물었다.
“네베니아 인근의 대부족이라면 유황 해골 부족?”
“음? 알고 있었나?”
“아, 유명하니까.”
“그래. 놈들이 가진 힘은 네베니아 인근 부족들에게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지.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다. 아주 오래전, 대부족 회의에서 이번 일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뭐?”
“유황 해골의 후계자인 애송이가 계획한 일이었지. 물론, 당시에는 기각되었지만.”
– 그걸 왜 지금 말해!
– 맛있는 빵을 먹지 않았기에 기억이 흐릿해졌던 것 아닐까?
–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지도를 펼쳐봐라.”
촤라락.
강설이 쟈마드의 말에 따라, 지도를 펼쳤다. 쟈마드가 지도를 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놈들이 있는 곳은 아마도… 여기일 거다.”
“여기는 요그나툰 화산?”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화산.
요그나툰은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는 화산이었다. 네베니아 국경 일대에 문명이 자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여기는… 푸르가가 있는 곳이잖아?”
“그래, 원시 신 프루가가 거하는 곳 중 한 곳이지.”
원시 신 푸르가.
유황의 신이며 그 모습이 거대한 불 원숭이를 닮았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그 힘은 재앙 그 자체였다.
때문에 푸르가를 화나게 할 만큼 간 큰 이들은 없었고, 요그나툰 화산은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은 채 홀로 불타고 있었다.
쟈마드가 강설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유황 해골은 납치해간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푸르가를 이용할 속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