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8
제87화
강설이 쟈마드의 확신에 찬 답을 듣고 물었다.
“푸르가를 이용한다고? 원신제를 말하는 거야?”
“원신제를 아는가? 대체 네 머릿속엔 뭐가 있길래 이런 것들을 전부 알고 있는 거냐?”
강설은 미간을 좁히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노비라의 사람들을 납치해간 거군….”
“아마 위글텅을 한차례 휩쓴 것 또한 그 일환이었을 거다. 납치한 주민들을 푸르가의 아가리 속으로 전부 집어넣고 그의 힘을 넘겨받았겠지.”
“…가만히 있으면 노비라에서 납치된 사람들도 같은 꼴을 당한다는 거야?”
“물론이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다시 한번 습격을 가하든, 굴리아 요새를 노리든 할 거고.”
“트롤들만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이런, 세테나도 이 일에 연루된 건가?”
네베니아 동북쪽에 자리한 세테나 왕국. 척박하고 부족한 토지 문제로 네베니아와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국가.
세테나가 만일 트롤들과 연루되어 있다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쟈마드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듯 말을 덧붙였다.
“세테나가 아무리 힘을 쌓아도 네베니아의 기사 전력을 뚫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황 해골이 다른 쪽에서 활개를 치거나 굴리아를 흔들어 준다면 틈은 생길 거다. 여기까지가 그 유황 해골의 꼬마 잔도가 주장한 내용이었지.”
“왜 당시에는 기각된 거지?”
“나와 다른 부족의 족장들이 반대했다. 당시에 세테나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기도 했고, 여러 이유가 있었거든.”
강설은 만일, 쟈마드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값어치를 환산할 수 없는 정보를 얻게 된 거나 다름없었다.
“시간은? 시간은 얼마나 남은 거야?”
“시간? 아, 푸르가에게 제물로 바쳐지기까지 남은 시간을 말하는 거냐?”
“그래.”
“글쎄… 놈들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육로로 빠져나갔다면 일주일쯤 그래 딱 오늘쯤 화산에 도착했겠지.”
그 말은, 강설이 화산까지 도달하는 것도 일주일에서 열흘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촉박하겠어.”
“아니, 그건 아니다.”
“뭐?”
“원신이 그들의 하수인도 아니고 그렇게 때맞춰 일을 치러줄 리 만무하지. 푸르가는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마도 꽤 애를 먹고 있을 거다. 놈들이 푸르가가 분노하지 않도록 하는 위로의 의식부터 시작해서 제물을 바치는 데까지 도달하려면 상당 기간이 소모될 거고.”
“얼마나?”
“아마도 한 달.”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그래.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니 네베니아가 막으려 작정하면 쉽게 막을 수 있겠지만, 네베니아의 왕족들은 트롤의 계획을 모르니 저렇게 요새만 지키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강설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무리겠지?”
“뭘 말이냐?”
“굴리아에서 병력을 움직이도록 설득하는 거 말이야.”
“흥, 굴리아에 도착해서 지휘부를 설득하고 다시 그 지휘부가 네베니아 군부를 설득해서 출병하는 게 네 계획인가?”
“말 안 해도 알 것 같군. 좋아, 일단은 굴리아로 간다.”
카렌이 허탈한 듯 웃었다.
“아까랑 똑같은데?”
“달라, 지휘부를 설득하는 걸 포기한다. 애초에 그들이 원하는 건 침공을 저지하는 건데, 나는 그 목적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 하문만 구해내면 돼.”
“뭐, 좋을 대로. 그럼 굴리아에 도착하는 대로 움직이는 거야?”
“그래, 곧바로 움직인다.”
강설의 눈이 북서쪽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요그나툰 화산으로.”
* * *
20명이 넘지 않는 인원.
그마저도 대부분 숨을 헐떡거리는 것이 탈진한 상태로 보였다.
그들은 이미 퍼져서 숨을 거둔 말들은 오래전에 묻어주고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허억… 허억….”
“개자식들… 여기로 들락날락한 거군.”
“통로가 넓지 않아. 소규모 병력만 지나다닐 수 있어.”
“딱 노비라를 습격한 병력만큼 말이지.”
“미라야, 어쩔까? 굴리아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유미라는 충혈된 눈으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인지, 다른 동료들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꾀죄죄하고 피곤한 모습인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있었다.
“굴리아에 들르면 늦어. 그리고 움직였을 거면 벌써 움직였겠지, 개자식들….”
“이렇게 쥐구멍이 나 있는 줄도 모르고 어디를 지키고 있는 거야,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들.”
유미라 일행이 여기까지 흘러온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최근, 모든 유적 사냥꾼을 흡수해 덩치가 커진 키보 연합은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키보가 유적 발굴에 무조건 참여하는 것이 아닌, 키보 산하의 독립적인 유적 사냥단을 여러 개 만든 것.
그중에는 당연히 유미라의 사냥단 또한 있었다.
그들은 첫 유적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여 노비라로 되돌아왔지만 곧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거점이 파괴되었습니다.]
[노비라가 거점에서 해제됩니다.]
[새로운 거점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키보도 노비라의 주민들도 아니었다.
까맣게 그을린, 도시의 잔해였다.
그들은 정신이 나간 채로 노비라를 헤맸다.
무언가, 이 상황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약간의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황급히 노비라를 벗어나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유미라를 불렀다.
– 하아… 하아… 미라냐?
– 아저씨!
유미라는 건물 잔해에 깔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마저도, 이제 얼마 못 가 숨을 거둘 것 같았지만.
–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 노비라가… 놈들에게… 짓… 밟혔다.
– 놈들?
– 트롤… 트롤들이야.
유미라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날아갈 뻔한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말했다.
– 조금만, 조금만 참아. 금방 여기서 꺼내…
– 아니… 난 틀렸어. 이대로 죽게 놔둬.
– 아저씨!
– 가… 이제 노비라는 잊고 살아라, 미라야. 이제 이곳에 네가 돌아올 곳은 없어.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 …키보는?
– 죽었어.
– 거짓말하지 마!
– 안 속네… 맹랑하기는… 놈들에게 잡혀갔다.
– 어디야.
– 모른다, 우리가 달린 마차를 끌고 왔으니 흔적이 남았을 거야…
– …….
– 떠나야 해, 미라야. 살아야지.
– 아니, 그렇게 못 해.
남자는 흐려져 가는 눈빛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 그러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스르륵.
– 얼른, 쫓지 않고….
툭.
남자가 죽었다.
– 찾아.
유미라와 유적 사냥꾼들은 노비라 일대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롤들이 이동한 듯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 북쪽이야.
– 어쩔 거야?
마을에 남아있는 전이자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 가지 마, 다 죽을 거야. 아무도 트롤들을 쫓지 않았어.
– …뭐?
– 노비라에 머물던 전이자들에게 복수 모험이 떴었어. 그리고, 전부 콩고리로 도망갔다. 쫓아봐야 너희뿐이라고.
유미라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물러나.
– 이건… 정신 나간 짓이야! 다 죽을 거라고!
– 어쩔까, 미라야.
유미라가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 쫓는다.
– 가자!
유미라와 함께 있는 전이자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뒤늦은 복수 모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휴식을 건너뜁니다.]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세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13. 뒤늦은 복수]
……
그렇게 유미라 일행은 트롤들의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제대로 된 휴식도, 영양가 있는 식사도 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국경 밑에 만들어진 깊고 어두운 토굴을 지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국경 너머의 세계였다.
“여기서부턴 네베니아가 아니란 거지?”
“이거 토굴을 무너트리긴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까진 할 수 없어. 아마 놈들이 다시 뚫을 수도 있을 거야.”
“그래, 그보다 급한 게 있으니까.”
유미라는 시야에서 저 멀리 보이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놈들이 저기로 향하고 있어.”
“무슨 꿍꿍인 거지?”
그들의 눈길이 향한 곳에, 거대한 산이 있었다.
“…요그나툰.”
원시 신, 불 원숭이 푸르가의 거대한 화산 요그나툰이.
* * *
강설 일행 또한, 유미라 일행과 같이 쉼 없이 북쪽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길이 조금 불편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북쪽은 애초부터 험지였고 상단 또한 굴리아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공급하는 계약 상단을 제외하고는 이쪽 길을 사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트롤들의 습격으로 한창 시끄러운 상황.
혹여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지 모르는 도적들도 더 남쪽으로 향했을 게 분명했다.
“굴리아까지 얼마나 남았지?”
“4일 정도인가?”
“시간 정말 안 가네! 아, 그런데 차오인지 뭔지랑 만날 날짜가 되지 않았어?”
하나 마나 한 이야기였다.
“노비라가 불탔는데 차오가 거기서 기다릴 리가 없어.”
“흐음… 애써 물건을 구해왔는데 헛수고한 건가?”
“이 일을 먼저 해결하고 다시 찾아봐야겠지.”
“또 예전의 그 상황이네. 망할….”
쟈마드가 강설에게 물었다.
“굴리아를 통해 요그나툰으로 향한다 쳐도… 유황 해골을 어떻게 상대할 거냐?”
“일단 가서 고민할 생각이야. 생각하고 움직이면 늦으니까.”
“그렇기야 하다만….”
카렌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나랑 카루나만 믿어. 우리가 함께면 무적이야, 주인.”
“아니, 지금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이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카렌과 카루나는 동시에 소환했을 때 강력해지는 특수 능력이 있었다. 지금의 카렌도 일당백의 능력을 지녔지만 만일 둘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다면 하문을 구해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둘을 동시에 소환할 수가 없다는 거다.’
쟈마드가 카렌을 비웃었다.
“이봐, 요정. 그림자 공간에는 잠깐씩만 들락거리느라 문제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나 보군.”
“뭐?”
“여기는 지금, 매우 좁다.”
바로 그 문제다.
그림자 공간의 부족.
카렌까지는 어떻게 소환이 가능하더라도, 갑자기 능력치가 조정된 카루나까지는 소환이 불가능했다.
‘지혜가 부족하다.’
가진 소환수에 비해, 소환사의 핵심 능력치인 지혜가 부족한 상황.
지금, 그들을 거느릴 순 있어도 완벽히 다루기는 어려웠다.
“단시간 내에 지혜를 늘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딨어?”
“아니면 카렌 혼자서 유황 해골을 상대해야 해.”
“열심히 생각해 볼게.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나오겠지.”
– 태세 변환 ㅋㅋㅋ
– 유황 해골 혼자 못 뿌시나?
– 무협지를 너무 보셨네요 ㅎㅎ
다시 밤이 되고, 강설은 낮에 잠을 자둔 쟈마드를 불침번으로 세워두고 잠을 청했다.
휘이이이이…
북쪽으로 갈수록 밤공기가 차가워졌다.
몸을 파고드는 한기에 강설은 모닥불에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가까이 오라…
강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지?’
환청처럼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
강설은 머리를 흔들고 주변을 살폈다.
쟈마드가 잠에서 깬 강설에게 말을 걸어왔다.
“일어났군, 마침 깨우려던 참이다.”
“…무슨 일 있어?”
“저길 봐라.”
강설이 어두컴컴한 들판 저 멀리, 뭔가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맹수?”
“아니, 기운이 조금 특이하다.”
번쩍-!
들판을 가로질러 오는 존재에게서 갑작스럽게 섬광이 터져 나오자, 카렌도 뒤척이며 일어났다.
“뭐야, 맹수?”
“…다 듣고 있었잖나.”
“헤헤, 장난 좀 쳐봤어. 어떡할까, 주인?”
카렌이 강설에게 물으며 풀어놓은 검 쪽으로 다가갔다.
“접근하기 전에 죽일까?”
가까이…
가까이…
‘…또야.’
강설은 지금 들려오는 환청이 저 존재와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카렌을 만류했다.
“일단 지켜보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정도의 거리까지 도달했다.
강설 일행의 눈에, 들판의 존재가 명확히 보였다.
“…트롤?”
“유황 해골인가?”
강설에게 다가오는 존재는 트롤이었다.
네베니아의 국경 부근에서 마주칠 만한 트롤은 유황 해골뿐이었으니 모두가 전투에 임하려던 그때, 트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스노우맨 님! 접니다!”
“누구… 그 목소리는… 설마!”
상대가 손가락을 휘젓자, 밝은 구체가 그의 모습 앞에 떠올랐다.
고리타분한 안경을 쓴 트롤이 그곳에 서 있었다.
“마엘입니다. 저예요!”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조력자 ‘별의 아이 마엘’이 이번 모험에 등장합니다.]
[조력자 ‘별의 아이 마엘’이 이번 모험에 당신의 아군으로 합류합니다.]
“마엘이 어째서 여기에?”
네베니아의 북쪽에서, 강설은 뜻하지 않은 아군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