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92
제91화
나름 개방적인 불의 제단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
그곳에서 유황 해골의 지도자인 잔도와 부족 연맹의 장로인 마그라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마그라 님께서 제 청을 들어주실 줄은 이 잔도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얼굴 전체에 해골 문신을 한 붉은 피부의 잔도가 로브를 쓴 마그라에게 손을 내밀며 연신 반가움을 표현했다
마그라는 그의 그런 태도가 불만인지 퉁명스럽게 답했다.
“인사치레는 그만하거라, 네가 도움이 필요하니 나를 부른 것이고 난 그에 응답했을 뿐이니까. 하나,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아라. 이제 나는 부족에 얽매일 위치가 아니니까.”
“아무렴, 아무렴요! 유황 해골 부족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마그라 님 덕분인데, 어찌 과한 욕심을 부릴 거라 여기시나요?”
“흥, 잔도. 달콤한 말만 늘었구나. 가볍게 행동하지 말아라. 다른 부대장들은 이곳에 없는 것이냐?”
“이번 일은 온전히 제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부대장들의 도움을 받으면 결국 혈통의 후광으로 족장에 올랐다고 부족의 장로들이 떠들어댈 겁니다.”
“…일리가 있군. 그만한 능력이 있기를 바라마.”
마그라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트롤은 뭐가 불만인지 화려하게 치장된 잔도의 방을 불쾌한 눈으로 더듬었다.
유황 해골 부족의 족장이자 대제사장인 잔도는 마그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넸다.
“쟈마드가 스노우맨이라는 수수께끼의 모험가에게 패퇴하면서 바위 어금니 세력이 무너졌습니다. 어지간히 성가신 놈들이었는데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군요. 바위 어금니는 유황 해골에게 걸림돌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쟈마드라… 너와 같은 세대의 아이를 말하는 거구나.”
“예, 정확히는 같은 세대였던 놈이지요. 이제는 원신(原神)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넌 그 아이가 사라져서 꽤나 흡족한 듯 보이는구나?”
“어찌 아셨습니까? 영광된 연맹, 그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경쟁자가 제거된 거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그 자식은 사사건건 제 의견에 반대했고 원신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죠! 저는 그런 놈보다….”
콰앙-!
마그라가 다탁을 후려쳤다.
“…….”
마치 잔도의 방종을 눈 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장로님?”
“너는 아직도 어리기만 하구나, 잔도여.”
“저는 이제 수수께끼를 맞출 나이도, 위치도 아닙니다.”
“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그라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잔도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트롤은 외로운 자들이다. 아무도 우리와 섞이려 하지 않지.”
“모두 우리를 두려워하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묻겠다, 너는 다른 종족들에게 두렵고 싶은 것이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를 바보로 여기시는 겁니까?”
“…아쉽구나.”
“예?”
“…쟈마드가 그렇게 떠나서는 안 됐는데.”
마그라가 내뱉은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과거의 쟈마드를 기억했다.
젊은 나이로 여러 장애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한 부족의 족장에 오른 인물.
– 흥, 나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이다. 너희들의 낡은 규율에 억압받을 생각도 없고 연맹도 언젠가 갈아엎어 주지! 나는 세상 모든 것의 왕이 될 것이다! 두려움이 아닌 존경으로 다른 존재의 섬김을 받는 왕! 원신도 그곳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적대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연맹에 가장 필요한 젊은 피였는데 말이지.’
트롤 부족 연맹.
세계의 강자 중, 트롤을 무시하는 자는 있어도 부족 연맹까지 무시하는 자는 드물었다.
산, 유황, 폭포, 구름, 벼락, 돌풍 등 대부족이 한데 모여 이룩한 거대한 생명체.
그들은 주술과 원시의 집단이었다.
하나, 강대한 힘이 모인 것은 분명했지만 연맹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선천적인 야생성의 극복이었다.
트롤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무너진다. 마음과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면 강자로 나아가는 벽을 허물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것이 바로 트롤이 가진 한계였다.
많은 종족에게 동등하기는커녕 짐승 취급을 받으며 모멸의 역사를 답습해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랜 역사에서 유전병처럼 앓아온 그 한계를 고작 어린 트롤에 불과한 쟈마드가 뛰어넘겠다고 선언했었으니 얼마나 웃겼겠는가.
‘…쟈마드, 네 원대한 꿈은 고작 이 정도였느냐? 이렇게 쉽게 떠나다니.’
잔도가 눈치를 살피며 마그라에게 말을 붙였다.
“저… 마그라 님?”
“그래, 아니다. 내 말은 신경 쓰지 말아라. 원하는 게 있느냐? 제물은?”
“이미 제단에 준비해두었습니다.”
“좋다, 원래는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만 네 부탁을 들어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뭐, 뭐지?”
잔도는 제단의 한쪽 방위가 푹! 하고 꺼지자 놀라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제단의 병사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조용히 얘기했다.
“그것이… 제단의 중심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사슬과의 연계가 원활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잘 있던 중심축이 움직였다고?”
“저… 그게….”
“말하라!”
병사는 잔도와 오늘 치러질 제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마그라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잔도에게 속삭였다.
“제단에… 쥐새끼 한 마리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뭐라? 정체는?”
“아직 정확히는… 일단, 사열 중이던 병사 일부를 투입했습니다.”
“흥, 잘했다. 한 명이라 했으니 곧 해결되겠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중심축을 건드릴 생각을 한 거지? 내부의 인물인가? 감히 유황 해골을 도발해? 놈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예!”
마그라가 잔도의 대화를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는 신전이 출렁거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고, 중심 또한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잔도는 마그라의 안색을 살피고는 그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썼다.
“마그라 님, 죄송합니다. 우리의 행보를 두려워하는 적들이….”
“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침입자의 목적이 우려되는구나.”
“네?”
잔도는 마그라가 허언을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경청했다.
“중심축이 흐트러지면, 그것을 보수하는 동안 그만한 주술력이 제단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게 누구겠느냐?”
“그건 저… 잔도겠지요.”
스윽…
마그라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너를 묶어둘 생각인 것 같은데… 원신제를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염려스럽구나.”
“놈이 노리는 게 뭘까요?”
“정체를 모르니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교란, 양동일 가능성이 있겠군. 꽤 깜찍한 짓을 벌이는구나.”
“송구스럽게 됐습니다. 하필 장로님께서 방문해주신 이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다스려라. 이제는 대부족의 족장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담대함을 지녀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잔도는 마그라가 이번 사태에 대해 별말 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대화를 이끌었다.
“이번에 유황 해골이 네베니아의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확장할 수만 있다면, 이 잔도가….”
“잔도.”
“예?”
마그라가 잔도의 말을 끊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구나.”
“어떤….”
“신전에 침입한 자 말이다. 뭘 노리는 거지? 중심축을 틀어 널 묶어두더라도 그 안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런 타격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야 우리의 출정을 조금이라도 늦출….”
마그라가 언짢아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자, 잔도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캉고! 조제!”
“크르르르….”
“예! 마그라 님!”
전사 캉고는 본능에 지배당하는 자.
그 순수한 무력만큼은 대단한 자였다.
조제는 그를 통제하는, 마그라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이 둘이 유미라 일행을 분쇄한 트롤들이었다.
“내려가 봐라.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조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도는 활짝 웃으며 이 사실을 반겼다.
“조제 님과 캉고 님까지 나서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적에게 절망을 보여주시겠죠.”
“흥, 이제는 유황 해골의 족장이 된 네가 이런 일로 움직일 수는 없지. 염려 말고 중심축을 다시 잡는 데 집중해라.”
잔도가 감격하여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그라 님.”
“그래. 감사를 알면 되었다.”
마그라는 뭔가 불편한 듯이 감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뭔가 놓친 것 같단 말이지.”
* * *
우르르르…
트롤들이 마엘을 찾기 위해 흩어지는 순간에, 쟈마드와 유미라 일행은 포로들을 수용하고 있는 철창에 도착했다.
“흑흑… 그만… 그마안….”
“여기서 내보내 줘! 제발! 제발!”
비명과 아우성이 난무하는 곳.
유미라는 핏발 선 눈으로 수용된 이들을 확인했다.
“어이, 그놈들은 뭐냐?”
“낙오된 제물들이다. 원신제에 쓰일 거다.”
“스으읍….”
간수로 보이는 트롤이 유미라의 곁까지 다가왔다.
후욱… 후욱…
“육질이 연해 보이는데, 제물로 쓰기엔 아까울 정도야.”
쟈마드가 물었다.
“…인간을 먹나? 꽤 낡은 전통 아니었나.”
“흐흐흐… 한번 맛을 들인 후로는 자꾸 찾게 되는걸. 놈들에게만 나는 약자의 냄새가 내 피를 끓게 만들거든.”
쟈마드가 두리번거렸다.
“그건 그렇고 철창은 네가 관리하나?”
“그렇다만, 아하… 알았어. 내게 잘 보이면 네게도 맛볼 기회를 줄게. 지금은 원신제 기간이니까 어렵지만 앞으로….”
“네가 관리하나?”
“그렇다니까?”
“그럼, 됐다.”
“…뭐?”
쟈마드가 순식간에 손을 뻗어 트롤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이봐….”
“열쇠 잘 쓰마.”
콰지이익-!
철창 근처에 앉아 히죽 웃고 있던 트롤이 쟈마드가 벌인 짓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너… 너희….”
“흐읍!”
유미라가 순식간에 풀려나며 쟈마드의 허리춤에 있던 자신의 손도끼를 뽑아 날렸다.
휘리릭-!
푸콰아악-!
“꺼… 꺼어어….”
털썩.
쟈마드가 유미라에게 남은 손도끼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열쇠는 두 개다. 제법 많은 인원이라 두 구역으로 나눈 것 같군. 넌 이곳을 맡아라.”
끄덕.
짤랑.
쟈마드가 열쇠를 건네주고 떠났다.
유미라가 철창 가까이에 다가갔다.
“미, 미라! 너는 미라 아니냐? 어떻게 여기에….”
“미라야… 어흑흑….”
“아저씨, 아줌마. 모두들… 살아있었네.”
“이것아!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죽으려고 왔어? 저 트롤은 또 뭐야!”
“시간이 없어. 키보… 키보 어딨어?”
그때.
“미라야! 뒤!”
푸슈우욱!
“컥… 커허어억….”
지르모의 가슴팍에 거대한 손톱이 관통했고, 곧 양 갈래로 찢어졌다.
촤아악-!
순식간에 지르모가 목숨을 잃었다. 유미라는 이런 일을 벌인 상대를 쳐다봤다.
“지르모오오오오! 너… 너… 이 개새끼….”
“쥐새끼가 또 있던 건가? 이쪽으로 와 보길 잘했군. 너는 그때 그 계집이구나.”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여주마!”
철창에 나타난 것은 조제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유미라의 정신을 어질하게 했다.
휘릭-!
카아아아앙-!
손도끼가 조제의 클로를 쳐냈다.
“그때도 느꼈지만 제법이야!”
카아앙-!
카앙-!
유미라는 상대와 공방을 나누며 느꼈다.
조제와 한번 붙어본 결과, 그녀가 판단했을 때 조제는 그녀보다 약간 더 강했다.
‘이대로면 이길 수 없어….’
거친 추격에 몸은 이미 녹초였고, 정신은 흐릿했으며 그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아마도 이런 공방이 지속된다면 결국엔 그녀의 패배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싸움의 초반.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만이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갈림길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짧게, 행동은 과감하게.
키보의 가르침이었다.
촤라락-!
[혼자가 좋아의 양날의 검이 발동합니다.]
[30초 동안 총 공격력이 50% 증가합니다.]
[이후 20초 동안 총 공격력이 50% 하락합니다.]
[혼자가 좋아의 물어뜯는 송곳니가 발동합니다.]
[지정한 대상의 회피 능력을 2초 동안 방해합니다.]
[피투성이 조제가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뭐, 뭣?”
팟-!
2초.
그 짧은 시간 내에 조제의 품에 파고들어야 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모든 칼날을 피해 조제에게 파고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하!”
쒜에엑-!
자세를 한껏 낮췄기에 날아오는 칼날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었다. 칼날을 회피하기 위해선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다음 기회는 없다. 그러니 물러나지 않았다.
“이….”
촤아악-!
왼쪽 눈이 있는 위치를 일자로 쭉 긁고 지나가는 손톱.
통증은 심했지만, 다행히 눈은 떠졌다.
지금 그녀가 부릅뜬 눈으로 보는 것은 조제의 목이었다.
콰지이이익-!
손도끼가 조제의 목에 박혔다.
“커헉… 컥….”
콰직!
“죽어! 죽어!”
콰직! 콰지익!
쿠우웅…
[피의 조제를 처치했습니다.]
[추가 보상을 획득합니다.]
“하아… 하아….”
눈두덩이에 일자로 그어진 상처는 흉터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살아남았으니까.
[혼자가 좋아의 양날의 검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총 공격력이 50% 하락합니다.]
쿠직-!
간신히 조제의 목에서 손도끼를 뽑아 드는데, 또다시 기척이 느껴졌다.
“크르르르….”
“이런 망할….”
도끼를 끌며 캉고가 나타났다.
이젠 대항할 수단조차 없는 상황. 캉고가 그녀를 발견했다.
“크와아아아!”
부우웅-!
도끼를 크게 휘두르며 접근하는 캉고.
끔찍한 미래를 상상했지만, 유미라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때.
콱-!
거대한 손이 나타나 캉고의 머리를 붙잡았다.
“오랜만이구나, 캉고. 늙은이는 잘 있더냐?”
“크르… 크?”
“그럼, 잘 가라.”
거대한 손의 주인인 쟈마드가 캉고의 머리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쳤다.
콰지이이이익-!
퍼서석…
순식간에 캉고를 처리해버린 쟈마드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서둘러라.”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