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98
제97화
강설의 외침에 카렌이 눈을 깜빡깜빡하며 되물었다.
“지금 나한테 화낸 거야?”
“아니, 그걸 지금 열면 좀 곤란해.”
“그래?”
상자를 열면, 모험의 제한 시간과는 별개의 제한 시간이 생겨난다.
새로이 생겨난 제한 시간을 다 쓰거나 모험 종료를 누르면 거점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면 위험해.’
지금 강설의 거점은 아우데닌이었다.
북쪽으로 올라오는 길에 콩고리로 거점을 설정해도 상관없었지만, 굴리아를 거점으로 설정할 것으로 계획해 건너뛰었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의 거점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아우데닌인 것이다.
‘원정 시스템이 발동하면 아우데닌으로 전송되니까.’
그가 장거리 여행을 쉽게 생각했다가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겪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아우데닌까지의 전송은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다.
애초에 아직 노비라에 볼일도 있었고 말이다.
강설이 카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굴리아로 가서 확인하자.”
“알겠어, 그럼.”
카렌이 상자를 낑낑대며 짊어지려고 했다.
“좀 큰데?”
“비켜라, 요정. 내가 들지.”
쟈마드가 유황 해골 전리품을 어깨에 짊어졌다.
“오… 고마워.”
“가지.”
강설은 아직 남은 제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들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폐허가 된 불의 제단을 벗어나 그들이 왔던 길로 향한 강설 일행.
얼마 뒤, 그들은 굴리아를 거치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해준 유황 해골의 토굴을 통해 다시 네베니아의 장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후두두둑…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중얼하는 마엘.
그리고 잠시 후.
콰자자자자자작-!
쿠우우우우웅-!
토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미리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엘과 강설 일행은 토굴을 빠져나와 있어 부상자는 없었다.
“이걸로 된 겁니까?”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황 해골은 이곳의 지반이 무른 것을 이용해 장벽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하지만, 토굴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다시 복구하려면 족히 몇 달은 소요될 겁니다.”
“그전에는 굴리아가 방비를 하겠군요.”
“먼저 굴리아로 향한 인원들에게 언질을 줬으니 알아서 전할 겁니다.”
국경을 통과한 적 없기에 요그나툰에서 굴리아로 곧장 향하면 마음대로 국경을 들락날락한 죄를 덮어쓸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장벽 안쪽으로 들어와 굴리아로 향하면 전부 해결되는 일이었다.
“이제 제 역할은 끝이 났군요.”
“마엘.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스노우맨 님 덕분입니다. 굳이 제게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군요.”
“곧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염려했던 일이 좋게 해결되었으니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죠?”
“글쎄요… 네베니아를 벗어나 서쪽으로 향할 수도 있겠군요. 최근에 새로운 유적지들이 발굴되고 있다고 하니까요.”
“여전하시군요. 다음에 또 뵐 수 있을까요?”
마엘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물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가 있을 겁니다. 단, 제 점술과 천문을 읽는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면 말이죠. 편리하지만 가끔 빗나갈 때도 있어서.”
“또 봅시다, 마엘.”
“네, 또 뵙죠. 스노우맨 님.”
마엘은 또다시 약초와 온갖 잡서들로 가득한 가방을 산더미처럼 메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은 일견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의 힘만큼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제법인 녀석이더군.”
“내가 보는 눈은 있는 편이라.”
강설 일행은 마엘을 떠나보낸 후 굴리아로 향했다.
* * *
며칠이 흐른 뒤 네베니아 북쪽, 굴리아의 경계 초소.
조금 풀어져 보이는 경계병들이 초소로 다가오는 방문객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라!”
경계병들은 조금은 특이한 방문객들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방문객은 강설과 천으로 둘러싼 큰 상자를 짊어진 카렌이었다.
“요, 요정?”
노비라에 머물 때 키보의 힘을 이용해 임시로 만들어 둔 카렌의 신분증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상 없군.”
카렌도 무사히 넘어갔으니 강설이 제지당할 리는 없었다.
“음, 이쪽도 이상 없군그래. 신분이 확실하니 그 짐까지 확인하지는 않겠소.”
“감사합니다.”
“근데 벌써 소문이 퍼진 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황 해골이 허무하게 격퇴되었다는 소문 말이요. 그것 때문인지 그저께까지만 해도 근래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의 숫자는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어제부터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하는 소리요.”
생존자들이 굴리아에 도착해 잘 둘러댄 모양이었다.
“아… 네, 뭐 대충은.”
“소문이 참 빠르네. 뭐, 아무튼 지금 안 그래도 페트릭 님께서 믿고 일을 맡길 모험가들을 계속 찾고 계시니 잘 알아보쇼.”
강설이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강설이 늦지 않게 굴리아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숙소를 잡고 커다란 상자부터 내려놓은 카렌이 신경질을 부렸다.
쿵.
“더럽게 무겁네, 으이씨.”
“이봐, 고작 굴리아 입구에서부터 숙소까지다. 나는 요그나툰부터 굴리아까지 들고 왔다.”
강설의 그림자 공간 속에서 쟈마드가 말했다.
“아무튼! 근데 마엘이 사라지니 일행이 확 줄은 느낌이네.”
“아쉽나?”
카렌이 이제는 붉어진 머리칼을 매만지며 답했다.
“아쉬울 게 있나. 당연한 건데.”
“그래도 하문은 노비라로 함께 갈 생각이니 적적하지는 않을 거다.”
“그 아저씨는 너무 침착해서 정이 안 가. 그리고 애초에 다른 누가 같이 안 가도 만석이야. 4명이나 있는걸. 그치, 카루나?”
“카렌이 말을 조금 줄이면 아무도 우리가 4명인 줄 모를 거야.”
“큭큭큭… 맞다! 이 요정이 4인분을 떠들어대니까 말이야.”
“으윽… 이제부터 말 안 할래.”
“그 말만 오늘 하루 동안 5번째다.”
“세지 마! 망할 트롤아!”
이제 주변에 강설 말고는 소환수들밖에 없는데도 숙소가 떠들썩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소음을 들었다면 강설의 방을 혼자 쓰고 있는 방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이제, 열어 봐도 되겠다.”
“열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카루나가 계속 자제시켜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네가 잘 때 저 요정이 열었을 거다.”
“우리 주인한테 고자질하는 건 없기로 규칙 정하지 않았었나?”
“거기에 그딴 규칙도 있었던가? 자중하지.”
강설은 무슨 토크쇼도 아닌데 규칙까지 정해가면서 설전을 벌이는 걸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 싶었다.
아무튼, 강설이 굴리아까지 유황 해골 전리품을 열지 않고 그대로 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유황 해골 전리품을 개방하면, 제한 시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가까운 굴리아가 아닌 강설의 거점인 아우데닌으로 이동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굴리아를 거점으로 지정한 다음 전리품 상자를 개방할 생각이었다.
카렌이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학생처럼 손까지 들며 말했다.
“주인! 내가! 내가 열어 봐도 돼?”
“그래.”
철컥-
화아아아아아악…
전리품 상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특이한 점은, 여느 때와 달리 상자가 아주 커다랗다는 것.
[유황 해골 상자를 확인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 점수를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획득합니다.]
[알부자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빠른 회복의 각반을 획득합니다.]
[은총의 반지를 획득합니다.]
[불원숭이를 획득합니다.]
[장작의 장화를 획득합니다.]
[긴 잠의 망토를 획득합니다.]
……
물건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와… 물건이 이렇게 많이 들어있었어? 어쩐지 무겁더라!”
“그러니까, 상자는 내가 들고 왔다니까, 요정.”
“잠깐 들고 있었는데도 무겁더라고.”
– 남의 일 생색내기 ㅋㅋㅋ
– 카루나! 말려!
곧 노비라로 하문과 함께 떠나야 했기에 강설은 물건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우선 긴 잠의 망토와 빠른 회복의 각반.
이 둘은 희귀 등급이었기에 카루나와 카렌에게 나누어 건넸다.
그리고 가죽 장화와 중갑 장화가 각기 하나씩 드랍됐다.
이 둘은 보물 등급이었지만, 특별한 권능은 없는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한 장비들이었다.
가죽 장화는 당연히 쟈마드에게 돌아갔고, 중갑 장화를 놓고는 잠시 고민했다.
‘카루나가 맞겠군.’
사실 카렌이든 카루나든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카렌은 저번 모험부터 장비를 꽤 챙겼었고 카루나의 장비는 검을 제외하고 대부분 오래전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반지가 나왔다.
[은총의 반지]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17 – 29
저항력 : 35
내구력 : 70/70
무게 : 0.1kg
푸르가의 은총을 염원하며 만들어진 반지.
다만, 그 재료로 사용된 것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기본 능력 : 지혜 + 12 체력 + 6
특수 능력 : 하루에 한 번 저주를 튕겨냅니다.
반지에 붙기 딱 알맞은 옵션.
반지는 특이하게 2개까지 착용 가능했기에 강설은 늑대의 경고 옆에 이 반지를 끼었다.
남은 것은 이제 2개의 물건.
강설은 기대를 품고 남은 물건들을 살폈다.
[불뱀]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30 – 35
공격력 : 70 – 87
내구력 : 120/120
무게 : 8.0kg
초열의 마그라가 사용하는 병기로 유명한 날붙이.
특이하게 생겼고 공격 방법도 난해하다 보니 이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 불의 정령석으로 만들어졌기에 사용자의 기운이 서서히 무기에 스며들었고 그 결과, 마그라의 정수가 담겨 있다.
기본 능력 : 근력 + 15 민첩 + 7 체력 + 5
특수 능력 : 정확한 공격에 성공했을 경우, 적에게 화염의 인장을 쌓는다. 화염의 인장은 최대 10까지 중첩되며 각 중첩당 공격 성공 시 화염 추가 피해를 입힌다.
“음….”
강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보물 등급의 무기는 언제나 훌륭한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것이 평범한 무기라면 그랬다.
강설은 불뱀을 살짝 들어보았다.
‘무겁다.’
카렌은 근력이 높으니 이런 무기도 가볍게 다룰 수 있을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웠다.
또한, 특이한 생김새도 문제였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불뱀을 다루면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불뱀은 특이한 생김새였다.
‘마그라가 이걸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뤘는지도 의문이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다 그러한 것인지.
카렌이 이 애매한 물건을 고심하며 바라보았다.
마그라가 사용하던 특이한 병기.
이걸 그녀가 다룰 수 있을까.
“일단 가지고는 있을게. 창도 다룰 수는 있지만 이런 형태는 또 처음이네….”
– 저기, 아무도 가지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 선심 쓰는 척 가져가지 마세요;;
– 개뻔뻔해 ㅋㅋㅋ
어차피 마땅히 사용할 데도 없었으므로 불뱀은 이견 없이 카렌이 가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강설은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망토를 손에 들었다.
그가 망토를 드는 순간, 망토에 서린 기운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했고, 새겨진 문양 또한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푸르가?’
꼭 불원숭이 푸르가의 얼굴처럼 생긴 문양이었다.
“어? 그거….”
“이봐, 조심해라.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소환수들이 묘한 소리를 해왔다.
고개를 갸웃거린 강설이 이 망토의 정보를 확인했을 때, 그를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시청자들이었다.
– 야;; 실화야?
– 갑자기 여기서 등장한다고?
– 환장하겠네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쩐지 납득이 가서 더 빡친다 엌ㅋㅋㅋ
– 솔직히 나올 만했지. 안 그럼?
– 공격대 구성해서 깨도 시원찮은 모험인데 ㄹㅇ로다가 혼자서 깨버렸잖어 ㅎㅎ
– 짜잔! 마그라는 전설 몬스터였다는 거 우리 친구들 모두 잊은 건 아니겠죠?
이들이 이토록 놀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불…세출?”
푸르가의 얼굴이 그려진 망토는 자그마치 불세출 등급이었다.
강설은 재빨리 망토의 정보를 읽어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