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0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00화(100/497)
85. 목적지는?
“이봐.”
수련생은 그저 쪽지 하나를 건네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흠.”
카릴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살짝 혀를 찼다. 하지만 이내 쪽지 안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며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봐라?’
화르륵-
내용을 읽고 나자 손에 들려 있던 쪽지가 순식간에 타면서 재가 되었다.
“…….”
쪽지를 펼치는 순간 저절로 타버리게 마법이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카릴은 손을 털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지간히도 애가 탔나 보군.”
뜬구름 같았던 우든 클라우드의 실세가 이제 조금은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목적지는 같아. 조금 루트만 바꾸면 문제는 없을 테니……. 황제의 측근이 내게 붙을 테니 그 둘을 한자리에 만나게 하는 것도 재밌겠는걸.’
황제와 우든 클라우드.
카릴을 얻기 위해 이 훌륭한 두 거래자의 경쟁을 그는 그저 즐기듯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너희가 무엇을 제시할지 기대되는데.”
* * *
카릴은 교단으로 향할 때 탔던 마차를 다시 보자 감회가 새로운 듯 여기저기 둘러봤다.
“으흠. 무사히 잘 왔군.”
교단에 바칠 물자들이 들어 있던 짐마차는 이동 마법진을 쓸 수 없던 터라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다시 봐도 대단하네요. 이 정도면 헤임의 반년 치 생필품은 될 겁니다. 주교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마차를 살피고 있을 때 조이 요한셀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렇습니까? 이왕이면 속성석 거래도 주교께서 허락해 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카릴의 말에 조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일을 잘 처리하면 가능할지도.”
조이 요한셀의 옆에 서 있던 유린 휴가르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서 있는 조이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는 거구의 그는 카릴이 황제와 거래를 하는 모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대하는 태도였다.
“조이, 주교께서 허락을 하셨다. 너와 내가 카릴과 함께 다녀온다.”
아마도 자신 스스로가 황제의 측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 카릴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였다.
‘뭐, 실제로도 측근이기도 하지. 교단을 대표해서 우든 클라우드의 블루 로어를 믿는 광신도들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지만 사실은 제국을 위한 거였으니.’
그 공으로 그는 교단의 제1급 사제임과 동시에 제국의 작위를 수여 받은 유일한 사제이기도 했다.
‘나중에 교단의 주교 후보까지 올랐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귀족 생활을 했으니 대충 이자의 성품은 알 수 있지.’
기껏해야 지하에서 본 게 처음인 사이인데 유린 휴가르가 카릴을 대하는 태도는 조이 요한셀을 대하는 것보다 못했으니까.
“저도요?”
“그래.”
자신이 지목되자 생각지 못했다는 듯 조이 요한셀이 되물었다.
‘유적 탐사에 능숙한 그가 합류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유린 휴가르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황제의 입김이 있었던 건가.’
카릴의 시선을 받자 유린 휴가르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지? 제대로 계획은 짰는지 모르겠군.”
‘저 인간 몇 년 뒤에 광신도 처단으로 작위를 받은 게 아니라 이미 귀족인 거 아냐.’
유린 휴가르의 몸에 밴 언행은 수도를 하는 사제라기보다 귀족에 가까워 보였다.
‘뭐……. 지금부터 갈 곳엔 애매한 전력보다 미친놈 하나가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그는 여느 귀족들처럼 콧대가 높고 시건방지지만 카릴은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일행이 된 것이 만족스러웠다.
“믿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마스터께서는 허투루 일을 할 분이 아니시거든요.”
“엇……? 어엇?!”
조이 요한셀은 갑자기 자신의 등 뒤에서 나타난 에이단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
그와는 달리 유린 휴가르의 반응은 차분했지만 허리에 차고 있던 메이스의 손잡이에 손이 올라가 있는 걸 봐서 그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누구지?”
“아, 유린 경은 처음이시겠군요. 조이 경은 보셨죠? 교단으로 출발할 때 마부석에 앉아 있던.”
“아…… 네.”
“그냥 상단의 마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여러분들을 모셔야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여기서 돌아가야 할 듯싶네요.”
에이단은 마차를 모는 것처럼 시늉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마부로 두기엔 아까운 재능이군. 충분히 그 이상으로 유능해 보이는데.”
유린 휴가르는 어쩐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지금껏 교단의 가르침으로 눌러 왔던 전장의 광인의 이면이 조금씩 기어 나오는 기분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카릴은 에이단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두 사람에게 떼어 놓았다.
“일부러 그랬지?”
“네? 뭐가요?”
낮게 속삭이듯 말했지만 옆구리를 툭 치는 카릴의 모습에 에이단은 씩 웃었다.
“에이……. 그냥 저 둘도 좀 알아두라고 말입니다. 저치들은 아무래도 마스터를 그냥 평범한 상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지금도 충분히 평범한 상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럼 좀 더 예의 있게 굴어야 하겠죠. 아무리 교단의 사제가 치외법권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례가 용서되는 건 아니죠.”
황제와의 만남에 저 둘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에이단으로서는 나름의 배려 아닌 배려였다.
“특히 저 덩치. 아까부터 마스터에게 얘기할 때 보니 말이 짧은데 뭡니까?”
카릴은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에이단이 그로서는 썩 나쁘진 않았다.
“너 그러다 나중에 저 사제한테 맞는다.”
“제가요? 고작 사제한테요? 아시지 않습니까. 저 암연 출신입니다.”
카릴의 말에 에이단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응. 근데 저 인간은 광인이거든.’
둘이 붙으면 볼만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웃는 그에게 그 말을 하진 못하고 카릴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기척을 지우는 기술, 명칭이 있나?”
교단을 휘젓고 다닌 덕분일까.
아니면 미하일처럼 따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 카릴은 에이단의 실력이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걸 느꼈다.
“네. 인보(忍步)라고 합니다. 특정한 걸음걸이에 맞춰 마력으로 존재감을 지우는 거죠. 마법사들의 투명화와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술법이라고 부르죠.”
“마력변형도 그렇고 신체변형술에 인보까지……. 동방국의 기술들은 쓸 만한 게 많네.”
“신체변형술을 아십니까?”
카릴의 말에 에이단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 주크가 그걸 쓰고 있는 것 아냐?”
“허…….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처음부터.”
물론.
전생에 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알지 못할 일이었지만 에이단은 그저 카릴의 눈썰미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주크에게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야. 동방국의 주인을 언제 한번 만나면 좋겠는데.”
카릴은 동방국의 기술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이몬 코덴.
신탁 전쟁 때 자신을 도왔던 동방국의 주인은 새하얀 피부에 뱀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긴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뱀 같아서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실력만큼은 소드 마스터와 견주어도 꿀리지 않지.’
카릴은 에이단을 바라봤다.
“차라리 교단에 있는 암연의 사람에게 말해볼까? 배신자가 있으니 보내겠다고. 그럼 당장에라도 동방국의 주인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농담은 그만하십시오. 재미없거든요?”
카릴은 에이단의 말에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품 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래. 실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 일을 해야지. 일단 돌아가면 두샬라에게 물밑작업이 끝났으면 지금부터 계획을 실행해도 된다고 해. 작전의 위험은 없으니 플랜 B로 가도 좋다고 말이지.”
“플랜 B요?”
“응. 그렇게 말하면 알 거야.”
에이단은 카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투르를 떠나기 전에 이미 이런 일을 예상을 하고 각각의 경우에 따라 계획을 나누어 지시를 내려 둔 상태였다.
‘도대체 계획을 몇 개나 생각해두신 거야?’
얼마 전 머리 쓰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던 카릴의 모습을 떠올리며 에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는 카릴이 사제들과 함께 잠시 여행을 다녀올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불안했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물론 에이단이 우든 클라우드와 황제라는 두 개의 카드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카릴의 계획을 알 리 없었지만 어쨌든 삼국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릴의 한마디에 이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이제 검은 두고 정치를 하시는 건 어떠세요? 검술보다 더 잘하실 것 같은데.”
“그건 너희가 해야지.”
“네?”
“사실 이런 건 나보다 네가 더 잘할걸.”
“에이……. 설마요.”
에이단은 그의 말에 손을 저으며 웃었다. 하지만 전생에 대륙 최대 규모의 정보 단체인 유성을 이끌었던 자가 바로 그라는 걸 카릴은 잘 알고 있었다.
“그 기술. 쓸 만한 사람 몇 명 추슬러서 익혀 두면 좋을 것 같은데.”
카릴은 본론을 꺼냈다.
당분간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해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솔직히 말해서 미하일에게 마력변형을 가르쳤던 건 그 녀석이 익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익혀버렸지. 그것도 너무 쉽게.”
“그러니까요. 뭐 그런 괴물 같은 녀석이 있나 싶었기도 했지만 어쨌든 인보를 가르치는 건 좀 어렵습니다. 암연의 허락이 떨어지면 모를까.”
“어차피 배신한 마당에 확실히 배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라서요. 미하일처럼 한 명이면 몰라도……. 대대적으로 훈련하게 되면 타투르는 동방국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걸요.”
“그렇게 되면 주인과 더 빨리 만날 수 있겠네.”
“으…….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카릴은 에이단의 말에 피식 웃었다.
‘유성의 설립 시기는 사이몬 코덴을 만난 이후로 정해야겠군. 어차피 수안이 각 나라와 지역별로 사람들을 심어 두고 있으니까.’
그가 미래를 알고 있다지만 지금까지 그랬든 미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변한 것들도 있고.’
카릴은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세력이 확장됨과 함께 유성의 설립 시기도 곧 다가옴을 느꼈다.
‘만약 유성의 맴버들이 모두 암연의 기술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전생의 유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동력과 은밀함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알겠어. 그건 그럼 나중에 생각하지. 그리고 이것도 가지고 가서 두샬라에게 잘 보관하라고 해. 범선의 수리가 끝난 드워프들에게 보여줘서 혹시라도 제작이 가능한지까지.”
카릴은 조이 요한셀에게 받은 아스칼론의 설계도가 든 상자를 에이단에게 건넸다.
“그런데 이건 두 권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
정원에서 카릴과 조이 요한셀의 대화를 들었던 에이단이 잊지 않고 물었다.
“어차피 시동석이 없으면 작동이 불가능하거든.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드워프들이 가공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판단할 거야. 나머지 상권을 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유적의 유물을 아무렇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카릴을 보며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질렀다.
“알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보고 드리죠.”
고서가 든 상자를 챙기고서 에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황제와 거래를 하지 않았나. 이제 사제들과 함께 영생의 비법을 찾으러 다녀와야지.”
“정말 그런 게 있긴 있습니까?”
에이단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카릴을 바라봤다.
“글쎄. 드래곤의 레어 정도 되는 곳엔 있지 않을까?”
“네?”
어쩐지 생각을 알 수 없는 묘한 그의 미소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
“저 덩치는 걱정 마. 앞으로 저절로 말이 길어질 테니까.”
에이단은 갑자기 남부에서의 일들이 생각났다.
‘어후, 엄청 굴리시려나 본데……. 뭔지는 몰라도 제대로 터지겠군. 저런 표정을 지을 때 꼭 큰일을 내시지.’
자신에게 닥칠 고생길을 모르고 그저 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어쩐지 그 역시 조금 전 카릴과 같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타투르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에이단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에이 설마 진짜 드래곤을 치러 가겠어.’
농담처럼 뱉은 카릴의 말을 되뇌며 그는 피식 웃었다.
‘하물며 제국도 못하는 일인걸.’
에이단은 꼭 교단에 왔을 때처럼 마치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떠나는 카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니겠지?”
자꾸만 카릴의 미소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