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01)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01화(101/497)
86. 항구 도시에서
헤임의 성문을 빠져나간 지 약 2주 뒤, 카릴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항구 도시 피아스타였다.
‘흠, 오랜만인걸.’
마차에서 내리고서 찌뿌듯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카릴은 바닷가의 짠 내음을 힘껏 들이마셨다.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교단의 권한은 대단하네요.”
“변변치 않습니다.”
2주 내내 마차를 몬 조이 요한셀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카릴의 말에 답했다.
하지만 그의 겸손과 달리 제국을 통과해 여기까지 오는 길 동안 몇 개의 관문을 지나쳤지만 조이와 유린의 사제 증명서 덕분에 카릴에 대한 신분은 따로 필요치 않았다.
교단의 제1급 사제가 신분을 보증한다고 하니 병사들로서는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피아스타로 향하는 걸 좀 더 알았다면 차라리 이동 마법진을 써도 됐을 것을.”
유린 휴가르는 여전히 고고한 태도를 일관하면 마차에서 내렸다.
항구 도시답게 거대한 수산시장이 열리고 있던지라 그는 도시 전역에 진동하는 비린내가 싫은 듯 로브의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이동 마법진을 쓰면 후유증이 심합니다. 며칠은 쉬어줘야 하니까요. 유린 경은 마법 멀미가 괜찮으십니까.”
“으음…….”
“게다가 헤임에서 여기까지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마법진이 있는 곳도 어차피 일주일 거리니까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카릴은 유린이 마법 멀미가 심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 옛날 이동 마법을 썼다가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던 모습을 많이 봤었으니까.
애초에 쓰지도 못할 것인데 괜히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거였다.
‘솔직히 서펀트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수월했을 텐데 말이야.’
카릴은 구릉의 주인인 샌드 서펀트를 타투르에 두고 온 게 아쉬웠다.
‘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함께 데려왔다면 이동하는 데 편했겠지만 너무 눈에 띄었다.
특히나 려기사단의 소식을 황제께 꺼낼 때 카릴은 남부와 관련이 없는 척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교단에서 샌드 서펀트를 다루는 자신을 황제가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덕분에 좀 더 친밀해지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카릴 님께서 마법사의 반열에 오르신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여전히 건방지긴 하지만 헤임을 떠나기 전보다 유린 휴가르가 카릴을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별말씀을.”
카릴은 조이 요한셀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피아스타를 향하는 여정에서 카릴 일행은 몇몇 산적들을 만났지만 그들에겐 기억에 남을 정도의 일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 조이 요한셀이 카릴을 마법사로 생각한 것은 그가 산적들 상대하는 동안 특기인 검이 아닌 마법을 썼기 때문이었다.
굳이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카릴은 지금까지 오롯이 마법만으로 싸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 경연에서조차 편법 아닌 편법을 썼으니까.
눈앞에 산적.
목숨과 재물을 빼앗으려는 자들.
게다가 유린 휴가르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으니 가책 없이 마음껏 마법을 써도 괜찮으니 이보다 더 좋은 샌드백은 없었다.
“유린 경 덕분에 편했습니다.”
“흥…….”
심드렁한 모습이었지만 솔직히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벽을 허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의 문제였다.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가지는 제국인들 중에서도 마법사의 반열에 오르는 자는 극소수니 유린 휴가르가 카릴을 다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 나이에 4클래스라…….’
검사보다 마법사가 대우를 받는 시대이니 어쩌면 카릴이 검술보다 마력을 증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유린을 변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회귀 이후 처음으로 올리번을 만났었지.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카릴은 수안 하자르를 빼냈던 감옥에서의 그를 떠올리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올리번이 궁금한 건 걱정 같은 따뜻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이맘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저택의 형제들과 말을 트고 예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으니 황자가 뭘 하고 살았는지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 녀석……. 바쁘게도 돌아다니던데.’
저택 안에 갇혀 있던 자신과 달리 그는 이미 황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려기사단의 소식이 황궁에 보고 됐을 터. 황제가 잘 막아주겠지.’
당장 군사를 일으킬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황제와의 만남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조금이라도 더 권세를 늘리기 위해 황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특히 자신의 지지 세력인 려기사단의 괴멸은 올리번이 출병하기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릴은 그런 걱정이 우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타이란 슈테안이 어떤 인물인가.
직접 만나서 겪어도 봤지만 대륙의 명운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늙고 병환이 깊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 휘둘릴 위인은 절대 아냐.’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카릴은 자신이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자유롭게 대륙을 오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뭘 할 생각이지?”
유린 휴가르는 한시라도 빨리 비린내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카릴을 재촉했다.
“따라오십시오.”
카릴은 자신 있게 한 곳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리킨 곳은 피아스타 안에 상인 조합이 몰려 있는 거리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라바트 길드>
음각으로 새겨진 팻말이 그들을 반기듯 흔들리고 있었다.
* * *
“라바트 길드요? 어휴, 유명하다마다요.”
“말도 마십시오. 거기 노예왕이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그 배를 타려고 난리입니다.”
“거기가 세워지고 나서 들어오는 물자도 완전히 달라졌습죠. 솔직히 북부 쪽이나 남부에서 자라는 식자재들은 거기 아니고선 구할 수도 없습니다.”
항구 도시에 입점 되어 있는 라바트 길드의 평판은 시장에 있는 어떤 상인에게 물어도 호평 일색이었다.
“삼국에서만 흥한 줄 알았는데 대단하시군요. 이렇게까지 발이 넓으실 줄 몰랐습니다.”
“제가 한 게 뭐 있습니까. 유능한 부하들 덕분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카릴은 상인들의 칭찬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수안 하자르와 캄마가 그동안 일을 잘 처리했나 보군. 특히 캄마, 그 늙은 너구리를 살려 둔 게 다행이었군.’
카릴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공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를 떠올렸다.
‘어차피 공국을 지나쳐가야 하니……. 기회가 되면 그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공국에는 캄마뿐만 아니라 수안과 미하일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세리카 로렌도 합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만약 일 처리가 잘돼서 그들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카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공국? 우리가 공국으로 가는 건가?”
“음……. 그건 아닙니다.”
“그럼?”
“황제께서 원하시는 약이 있는 곳은 공국에서 좀 더 위로 가야 합니다.”
“으흠…….”
유린 휴가르는 그 위에 뭐가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러나 이렇다 할 생각이 나는 곳은 없었다.
왜냐하면, 공국에서 북쪽으로 가봐야 북부의 이민족이 사는 땅이 나올 뿐이었으니까.
“거긴 이단섬멸령으로 이제 폐허나 다름없을 텐데. 거기서 얻을 게 있을까?”
그의 말에 카릴의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더라도 황제의 이단섬멸령을 당장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흘러간 역사는 인정할 수밖에.
“네. 폐허인 거기서 얻을 건 없죠.”
황제가 당한 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북부 이민족 중 하나인 잔나비 부족이지만 유린의 말처럼 굳이 그들을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보다 더 위입니다. 정확히는 마법회 중 하나인 여명회의 상아탑이 있는 곳보다도 더 위죠.”
“네? 상아탑은 대륙 최북부에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거기보다 더 위라면…….”
가만히 듣고 있던 조이 요한셀이 그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가야겠네요.”
북부의 찬바람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조이가 추위를 걱정할 때 유린은 반대로 뜨거운 열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구겼다.
“설마……. 화룡의 거처를 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
“……!!”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릴의 모습에 조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벌어진 입을 보며 카릴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시다시피 레드 드래곤인 리세리아는 250년 전에 카이에 에시르에게 사냥 당했잖습니까.”
과거에만 하더라도 용사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현존하는 드래곤이라면 나르 디 마우그를 비롯해서 골드 드래곤 에누마 엘라시, 그린 드래곤 크루아흐, 레드 드래곤 퓌톤 등 몇 마리 남지 않았지만 인류는 그들의 레어를 침범하지 않았다.
또한.
드래곤 역시 인류를 손대지 않았다.
마치 불가침조약처럼 암묵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유는 레어 속의 막대한 보물보다 그것을 얻기 위한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빈 레어라 하더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텐데.”
제국의 개국공신인 카이에 에시르가 사냥했던 리세리아.
그 때문에 비록 북부 너머에 있지만 화룡의 거처는 제국에 의해 관리 되고 있었다.
“스승님, 그래도 이미 공략이 끝난 곳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공국과 마찰도 없을 테고……. 차라리 잘 된 것 아닐까요?”
“모르는 소리.”
조이 요한셀의 말에 유린은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의 레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화룡이 죽은 지 25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곳이 모두 탐사되지 않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리세리아도 자신의 보물들 중에 몇 가지를 특수한 봉인진으로 숨겨 놓았으니까.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했다.
‘신탁이 내려지기 전까지도 화룡의 거처는 공략되지 못한 채로 있지.’
레어의 봉인진을 푼 사람은 다름 아닌 나르 디 마우그였다.
신탁이 내려지고 파렐 속에서 타락이라는 마물이 쏟아져 나올 때 인류는 강한 무구가 필요했다.
방관하는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인류의 편에 선 나르 디 마우그가 내놓은 방안이 바로 리세리아의 무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의 극에 도달한 드래곤의 봉인진을 풀기 위해서 필요한 게 신의 힘을 가진 사제였으니……. 지금껏 레어를 공략하는 게 어려웠지.’
교단의 사제들은 유적이나 탐사하지 레어를 터는 행위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평범한 사제가 아닌 마스터급의 사제가 필요했으며 추가적으로 드래곤만이 가능한 특수한 조건도 충족돼야 했다.
사제는 그렇다 쳐도 사실상 리세리아의 봉인은 인간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지.’
용마력을 가지고 있는 카릴은 레어의 열쇠가 되어줄 유린과 조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인헤리에서 카이에 에시르가 남겼던 유서를 읽고 생각했던 걸 드디어 하게 되었군.’
게다가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미명의 해독초인 서슬가시는 뜨거운 열기가 있는 지역에서 동시에 강한 마력이 있는 땅에서만 자라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그걸 얻으러 가면서…….’
드래곤의 보물 몇 가지도 가지고 나올 요량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캄마와 수안이 이미 피아스타에 이 정도로 훌륭한 거점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준비는 완벽했다.
카릴은 회귀 이후 모든 여정 중에 지금이 가장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항구에서 배를 쓰지 못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죄송합니다, 마스터. 사실 저희도 그 때문에 어업을 나가지 못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길드의 관리인은 이미 타투르에서 내려온 지시에 공국으로 가는 배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라바트 길드엔 진짜 주인이 있다.
평범한 고객도 아닌 수안 하자르가 무법항과 피아스타를 오가며 항상 했던 말이었으니까.
그 주인과 관련된 상부의 첫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으니 관리인으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이상하군.”
“군선이 아닌 이상 지금 해역에 배를 띄우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배가 있는데 나가질 못하다니. 무슨 일이야?”
카릴은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을 떠올리며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게…….”
관리인은 카릴을 향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이 수왕(水王)의 산란기이기 때문입니다.”
대륙을 관통해서 흐르는 거대한 강인 포나인의 주인이라 칭해지는 마물.
“아. 벌써 계절이 그렇게 되었나.”
씨 서펀트(Sea Serpent)인 수왕은 대부분을 강에 서식하고 있지만 산란기가 되면 바다로 돌아가 알을 낳는다.
“확실히 포나인의 강물은 바다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런 일이라면 자네가 죄송할 게 아니지.”
카릴의 말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 송…….”
“그만. 고갤 들어.”
결국,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자네 이름이 뭐지?”
“……후안입니다.”
“그래, 후안. 잘 듣게. 마물은 재해와 같은 거다. 이런 일은 탓할 거라면 차라리 그런 괴물을 만든 신을 원망하던지, 아니면 여태껏 서로 눈치싸움을 하느라 토벌도 하지 않은 제국이나 공국을 탓해.”
“크음…….”
유린 휴가르는 카릴의 말에 낮게 헛기침을 했다. 신을 섬기는 그라도 세상의 마물까지 신의 은총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말게.”
“네?”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관리인과 달리 그 얘기를 듣던 카릴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내가 괴물들 다루는 덴 일가견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