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07)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07화(107/497)
90. 프란 루레인
“교단의 사제님들께 무례를 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코브에 있는 동안 편안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프란 루레인이 카릴 일행을 안내한 곳은 코브 시내에 있는 한 저택이었다.
카릴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언덕에 있는 거대한 성을 보며 생각했다.
‘프란의 성은 당연히 저곳일 테니……. 아직은 쉽게 다 보여 줄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
그가 안내해 준 저택은 확실히 화려하고 안락했지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고 사방이 건물로 막혀 있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도망치기도 어렵겠군. 게다가 감시를 두기에도 적절하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지만.
“…….”
항구 도시의 특성상 상인들로 붐비는 시장.
그 한복판에 있는 저택 창밖으로 카릴은 빼곡한 사람들 사이사이를 유려하게 빠져나가는 자들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훈련을 받은 자들.
카릴은 무리들 사이로 숨어드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절한 게 아니라 이미 배치해뒀군.’
훌륭했다.
적어도 프란 루레인의 대처는 여러 가지 경우를 산정한 것이었다.
물론.
그가 카릴의 실력이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면 고작 이 정도의 준비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겠지만.
‘다만…….’
카릴은 프란 루레인이 이렇게 꼼꼼한 성격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는 전투에 능했지만 호전적이고 다혈질적이다.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튤리에게 패배를 했다.
‘건물의 페인트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았어. 아마 그 날 이후 새로 지은 게 틀림없다.’
목적이야 뻔했다.
자신들을 이곳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카릴이 알고 있는 프란 루레인은 이런 준비까지 할 만큼 세세한 남자는 아니었다.
‘조언자가 있는 걸까.’
카릴은 살짝 눈을 흘겼다.
물론 공작인 프란 루레인에게 책사가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자신과 프란의 엮인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우든 클라우드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자 역시 우든 클라우드에 몸담고 있을 터. 어쩌면 그가 프란보다 더 높은 계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자가 뿌리일지도.
카릴은 좀 더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든 클라우드에서는 단순히 세간의 직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그랬다면 공국이 멸망했을 때 우든 클라우드도 함께 사라졌어야 했을 것이다.
콧대 높은 귀족들이 자신보다 더 위에 누군가를 둔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북부로 가신다고요. 그럼 여명회를 찾아가시는 길이십니까?”
저택의 시종이 다과를 내어놓자 프란은 일행에게 권유하며 물었다.
시골 출신인 칼 맥은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져 양손 가득 과자를 집다가 유린의 눈치를 받았다.
몇 년만 지나도 저런 과자들엔 눈길도 주지 않을 대상인이 될 자의 과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밌는 듯 카릴은 낮게 웃었다.
“저희는 그보다 좀 더 위로 갑니다.”
유린 휴가르의 대답에 프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어쩌면 여명회의 상아탑이 그가 상정한 제국인이 공국의 영토에서 갈 수 있는 최대 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위라……. 설마 화룡의 거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카릴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곳은 제국이 관리하고 있는 곳이니까요.”
“하하, 맞습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제국과 공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지요.”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들도 마음만 먹으면 관여를 할 수 있다는 뜻.
“걱정 마십시오. 교단에서 이번에 발견한 유물에서 레드 드래곤과 관련된 고서가 있었습니다. 단지 문헌을 확인하려는 것뿐이니까.”
“흐음……. 문헌이라……. 그 안의 내용이 궁금하군요.”
“궁금하면 교단에 입단하시는 어떠십니까. 아마 주교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하……. 말이라도 감사합니다만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겠군요.”
“율라(Yula)의 품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프란은 그의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대 이상인데.’
카릴은 유린과 프란의 대화를 바라봤다.
전쟁이 터지고 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피 묻은 메이스를 든 모습만 봐왔던지라 카릴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는 대화로도 싸우는군.’
처음에 프란을 봤을 때 자신들의 목적지를 밝힐까 말까, 혹은 어디까지 얘기를 할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유린 휴가르가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카릴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우든 클라우드가 궁금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까.’
단지.
지기 싫어하는 꼬인 성격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유린의 말에 프란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째서 조사가 끝난 화룡의 거처를 이제 와 찾는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일 터.
‘그의 성격이라면 오늘 당장 나를 찾겠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자신이 받을 의심을 유린이 받게 되었으니 프란은 자신과 유린이 한 패인가 하는 의문까지 추가될 것이다.
“공작 저하, 항만수비대를 시찰하실 시간이옵니다.”
그때였다.
홀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시계를 바라보던 프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쉬시길.”
카릴은 문밖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잠시.”
그의 말에 프란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카릴 님.”
“저분은……?”
올백으로 넘긴 회색 머리.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밝은 은색의 안경을 끼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남자는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코브 해군 사령관, 앤섬 하워드입니다.”
“하하. 카릴 님께서도 자네의 기운이 남다르다는 걸 느끼셨나 보군.”
프란은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200년 전, 제도왕(諸島王)이라 불리며 대륙의 섬들을 통치했던 넬슨 하워드의 직계 후손입니다. 그 피가 진해서인지 저희 코브의 해군 사령관을 맡고 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카릴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
분명 그였다.
왕좌지재라 불리며 전투에 관해서는 제국의 책사인 브랜 가문트를 뛰어넘는 천재라 불렸던 그가 분명했다. 자신이 얻고자 했던 책사 중 한 명.
“우아, 저희 배 이름도 하워드호인데. 신기하네요.”
칼 맥은 입안 가득 과자를 물고서 앤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까지 가볍게 인사를 하며 그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럼 이만.”
“다시 한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유린은 멍하게 서 있는 카릴을 힐끔 보고는 대신 방을 나서는 프란과 앤섬에게 대답했다.
탈칵-
방문이 닫히자 유린은 그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는 거야? 아는 사람이기라도 한 거야?”
“…….”
“하여간 별난 놈이야. 조이, 북부로 가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넋 나간 녀석은 두고 나와 다녀오자.”
“아,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조이 역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카릴을 슬쩍 바라보고는 유린의 뒤를 따랐다.
‘넬슨 하워드의 자손인 것도 저 외모도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그와 똑같아.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아는 앤섬 하워드는 평민이었다.’
카릴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앤섬 하워드를 본 것은 딱 한 번뿐.
신탁이 내려지기 전.
황권 전쟁에는 관여하지 않고 저택에 있었던 카릴은 크웰의 영지 근처에서 벌어졌던 앤섬 하워드의 마지막 전투에서였다.
‘그는 아버지와의 전쟁조차 승리로 이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최강이라고 생각하며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크웰 맥거번이 패배한 것은 그 당시 카릴에겐 충격이었다.
그 이후.
신탁이 내려지고 올리번이 황위에 올랐을 때 앤섬 하워드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또 다른 의미로 충격이기도 했다.
‘올리번은 안 거지. 그가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게 자신이 알고 있는 앤섬 하워드의 일생이었다.
‘왜 저 남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아니, 지금은 내가 모르는 과거이기에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카릴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겨 그가 평민이 된 걸까.’
자신이 모르는 공백.
‘이번엔 그가 죽기 전에 내가 얻는다.’
카릴은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그 순간.
그는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죽었나……?’
단지 그렇게 들었을 뿐이다.
애초에 귀족의 일 따윈 관심도 없었던 카릴이었으니까. 그저 신탁을 이행하는 것에 충실했을 뿐.
“왜 그러세요?”
칼은 카릴을 바라봤다.
평상시였다면 이런 우연을 기뻐했을 것이다.
수안 하자르, 에이단 하밀 그리고 칼 맥까지 그가 얻게 된 제국 7강의 인재들은 확실히 운이 따라 준 결과였으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앤섬 하워드만큼은 달랐다.
알 수 없는 이질감.
“…….”
카릴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앤섬 하워드가 지금 프란 루레인 아래에 있다.’
그리고 프란 루레인은 훗날, 광신도로 대륙을 들끓게 했던 블루 로어(Blue Roar)의 전신인 우든 클라우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갓 완공된 저택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고는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은 이질감에 카릴은 생각했다.
‘설마……. 네가 내가 생각한 그 조언자는 아니겠지.’
와그작-
카릴은 고개를 돌렸다.
“아앗, 죄송합니다.”
마지막 남은 쿠키를 깨무는 순간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칼은 입을 가렸다.
황급히 부스러기를 털어 내는 그를 보며 카릴은 그에게 말했다.
“칼,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이 있다.”
* * *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
늦은 밤이 되자 시끌벅적했던 시장이 문을 닫자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저벅- 저벅-
골목길의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뚫고 들렸다. 소리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 앞에 멈췄다.
마지막 U자가 삐걱거리면서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
카릴은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내리자 건물 벽에 약자의 풀 네임이 적혀 있었다.
“코브 항만 수비대(Cove Port Security Unit).”
낮에 앤섬 하워드가 프란에게 시찰을 해야 한다고 했던 장소였다.
잠긴 문에는 작은 외시경 하나만이 달려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탈칵-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건물의 문이 열렸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작은 틈으로 자신을 살피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카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나군.’
낯익은 그 얼굴을 보며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용케 찾아오셨군요.”
건물 안으로 한 발 들어서는 순간 얼굴을 가린 복면인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카릴은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는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를 찾는 건 무린가.’
하지만 모두가 새하얀 로브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체구마저 똑같은지라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긴……. 쉽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다만 조금 전 그의 목소리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가 조금 눈썰미가 좋습니다.”
카릴은 가운데에 있는 로브를 쓴 남자를 향해 말했다.
“공작 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