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11)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11화(111/497)
93. 폭염왕 (2)
카릴이 짚은 비석의 바닥에서 붉은 줄이 생기더니 나머지 4개의 비석과 이어지면서 커다란 마법진이 생겨났다.
우우우웅……!!
바닥이 흔들리면서 강렬한 돌풍이 세 사람을 덮쳤다.
“뭐, 뭐지?!”
“이봐, 무슨 짓을 한 거야!”
영문을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카릴을 향해 소리쳤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붉은색의 구체 하나가 생성되었다.
“정령……?”
조이 요한셀은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며 놀란 듯 소리쳤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도 시대보다 마력이 약해진 지금은 마법뿐만 아니라 정령의 존재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아주 소수의 정령술사들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인간계와 정령계가 단절되다시피 한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부리는 정령은 1클래스의 마법보다도 못한 하급들뿐이었다.
“조이, 정신 차려. 정령의 존재가 미비해진 것이 언젠데……. 의사 표현이 가능한 정령이라고? 아직 인간계에 상급 정령이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그, 그렇긴 하네요.”
유린은 나름 논리적으로 얘기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말은 틀렸다.
화룡의 거처에 숨겨진 보물.
아인 트리거(Ein Trigger).
그건 확실히 5대 정령왕 중 한 명인 폭염왕(暴炎王) 라미느의 힘이 담긴 보주였기 때문이다.
‘정령왕이라는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유일하게 그 힘이 남아 있는 유물이 바로 저 보주다.’
우스갯소리로 비전의 샘에서 정령왕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알른과 얘기를 한 적도 있지만 예상대로 비전의 샘엔 우레군주라 불리는 쿤겐의 잔해는 남아 있지 않았다.
‘뭐……. 덕분에 비전력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긴 하지.’
정령력이 거의 소실된 인간계에서 정령왕의 힘이란 비교 불문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화룡의 뼈로 만든 영원한 불꽃과 함께 폭염왕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아인 트리거의 조합.
‘그 두 개의 무구로 올리번은 옥좌에만 앉아 있는 왕이 아닌 전장에서 직접 타락을 쓸어버리는 장군으로서 사람들에게 각인 될 수 있었지.’
다만.
‘이상한데…….’
아인 트리거의 정체를 알고 있는 카릴 역시 그것을 보면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이곳에 너희와 같은 필멸자들이 있는 것이지? 분명 리세리아는 나에게 안식을 약속했거늘.]똑똑히 들리는 목소리.
전생에 그는 나르 디 마우그와 함께 화룡의 거처에 왔던 적이 있다. 그리고 보주를 회수하는 과정까지 모두 직접 봤었다.
보주가 라미르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라미르 그 자체가 봉인되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마력이 없었기 때문인 걸까……? 그때도 다른 사람들은 똑같이 저 목소리를 들었던 걸까.’
카릴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조금 전 들렸던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듯 굳어 있는 표정은 결코 전생에서는 볼 수 없던 반응이었다.
‘그래. 확실히 보주에서 라미느의 목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마치.
정령왕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 같이 생동감 있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지금의 결과를 전생과 다르게 만든 것일까.
[너로군.]그때였다.
공중에 떠 있는 보주는 서서 내려와 카릴의 정면에 섰다.
[이 봉인을 풀 수 있었던 이유가.]“……!!”
[어째서 드래곤이 없고 필멸자만 이곳에 있는가 했더니 용마력을 지닌 인간이라……. 수천 년을 살아왔지만, 너와 같은 자는 딱 한 명밖에 본 적이 없다. 실로 오랜만이군.]“자, 잠깐!!!”
카릴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유린과 조이는 어쩐 일인지 조금 전과 달리 그저 멀뚱히 떠다니는 구체를 주시하고만 있었다.
[걱정 마라. 네게만 들리는 말이다.]순간.
주위가 어두워졌다.
원래도 어두웠지만 그것과는 달리 마치 공간이 격리된 것처럼 완벽한 어둠이 카릴의 주위를 내렸다.
[용마력을 지닌 인간을 보통 평범한 시선으로 볼 리가 없으니까. 그전에 내가 봤던 그자의 말로도 그랬지.]조금 전 뒤에 있던 유린과 조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곳은 카릴과 아인 트리거 둘만이 존재했다.
[용마력을 지닌 인간의 삶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까.]잠깐이지만 보주를 감싸고 있는 화염이 일렁거렸다.
[영웅이 되든지 악당이 되든지.]그럴 리가 없는데 마치 그 말을 하고 있는 보주가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코, 평범해질 순 없다.]카릴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말에 차갑게 웃었다.
“다행이군.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어. 마력이 없던 내 삶도 애초에 평범하진 않았거든.”
그러고는 어쩐지 떠오르는 옛 생각들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드래곤의 보물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왔을 뿐인데. 쓸데없는 기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어주는군. 짜증 나지만 그럼 묻지. 어째서 내게 말을 건 거지?”
[그건 나 역시 궁금한 일이다. 리세리아의 봉인을 푼 것은 네 마력이라 할지라도 나와의 대화는 불가능 한 일인데…….]보주는 카릴의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감싸듯 맴돌았다.
[나는 이곳에 머물며 리세리아와 계약을 했다. 그는 허물어져 가는 정령계에서 나를 안식에 이끌어주고 그 대신 나는 오직 드래곤에게만 나의 힘을 허락하리라고.]카릴은 그의 말에 생각했다.
‘그렇군. 어째서 카이에 에시르가 황제의 검을 청린이 아닌 화룡의 뼈로 만든 것인지 이제야 알겠어.’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딱! 하고 치고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눈속임.
인간은 용의 마력을 가질 수 없다.
조금 전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화염의 정수를 쓸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마력보다 더 강렬하고 짙은 마력을 가진 검이 있지 않은가.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
‘리세리아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검인 그 검을 쥐고 있으면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아인 트리거조차 속일 수 있었던 거였고.’
그건 확실히 청린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름이 돋는 기분.
이것은 정령왕과 드래곤의 맹약을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직접 두 개의 무구를 쓰는 것을 봐왔던 카릴조차 몰랐다.
‘카이에 에시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영원한 불꽃이 아인 트리거를 쓰기 위한 열쇠라는 걸.’
카릴은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존재가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네가 용마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네가 인간임을 안 이상 나는 네게 힘을 빌려줄 이유는 없다. 하나 호기심이 생기는군. 어째서 인간인 네가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지?]그의 물음에 카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솔직히 나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야. 아인 트리거가 그저 폭염왕의 힘이 담긴 보주라고만 알고 있었으니까. 설마 그 안에 정령왕이 정말로 봉인이 되어 있을 줄이야.”
카릴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화르르륵—!!
순간.
구체에서 일렁이는 화염이 커지면서 작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너는 단순히 용마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군. 용의 마력이 속성이 없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정령의 힘까지 닿아 있는 것은 아니니까.]뭔가를 알아차린 그와 달리 정작 당사자인 카릴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너…….]라미느의 형상이 천천히 그를 가리켰다.
[비전의 샘에 갔었군.]“……!!!”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릴의 양팔에서 알 수 없는 마력이 번뜩였다.
지직…… 지지직……!!
한쪽에는 새하얀 빛이 그리고 반대쪽엔 검은 어둠이 일렁였다.
두 힘은 카릴의 의지와 상관없이 팔에서 흘러나와 뒤엉키자 익숙한 보랏빛의 마력으로 변했다.
“……네 말대로 나는 비전의 샘에 갔었다. 하지만 거긴 정령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 아무것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곳에서 네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지 않으냐.]카릴은 눈앞에 합쳐진 전격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나락 바위는 쿤겐의 무덤이지. 그의 별칭을 아는가?]라미느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레군주.”
[그렇다. 우레는 우리와 다른 정령왕들과 다르다. 빛을 가지면서 열도 가졌으며 물 안에 더욱 자유로운 바람을 머금고 있음과 동시에 먹구름이란 어둠까지 가졌지.]“그건 왜 내게 말하는 거지? 나락 바위엔 당신처럼 쿤겐이 봉인된 물건은 없었어.”
라미느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령계는 거의 소실되었고 정령왕의 힘은 약해졌다. 나와 같이 인간계를 택한 자도 있고 혹은 정령계에서 잠드는 것을 택한 자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강제로 봉인이 된 존재가 있지.]“…….”
[율라(Yula)와 같은 힘.]빛 그리고 어둠.
[빛의 라시스, 어둠의 두아트. 2대 광야의 힘은 율라의 힘과 같기에 신이 인간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선 그들의 힘은 걸림돌이었지.]신은 두 힘을 봉인하기 위해 장소를 찾았다.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곳.
두 개의 상반된 속성이 같이 있어도 특이점이 생기지 않는 안전한 장소.
“그게 우레군주 쿤겐의 무덤인 비전의 샘이군.”
[그렇다.]“당신 말은 내가 비전의 샘에서 얻은 비전력 속에 그 두 정령왕의 힘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천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을 하지 못하겠군. 비전력을 얻기 위해선 용마력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비전력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내 기억 속에 드래곤에게 직접 비전력을 얻은 마법사도 있었으니까.]‘알른 자비우스……!!’
[하지만 용마력을 지니는 것도 부족해 그 인간이 다른 곳도 아닌 나락 바위에서 그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그의 말대로 알른 자비우스는 역사상 유일한 비전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2대 광야의 힘은 없었다.
알른은 비전력을 나르 디 마우그에게 배웠으니까.
‘비전의 샘이 단순히 청린을 얻는 곳이 아니었단 말이구나. 게다가 알른이 그곳을 지키는 파수병을 두지 않았더라면 그는 내게 비전력을 전수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라미느는 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을 천운이라고 말했지만 카릴에게는 오히려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과거. 딱 한 명, 너와 같이 용마력을 지니고 정령의 힘을 쓰는 자가 있긴 했었지. 하지만 그는 너와 조금 다르다.]라미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가 도달한 힘을 그리 불렀다.]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카릴의 귀에 새기듯 말했다.
[위대한 마법.]카릴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도 그런 마법을 썼던 사람이 있다고 듣지 못했다.
“……위대한 마법이란 것이 무엇이지?”
[글쎄……. 그자는 그렇게 말하더군.]라미느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신조차 죽일 수 있는 마법.]꿀꺽-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볼 수 없었다. 그건 명명할 수 없는 단계니까. 어쩌면 드래곤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혹시 모르지 9클래스 마스터가 되면 조금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지금껏 대마법사의 반열은 7클래스에 도달한 자를 뜻한다.
여명회의 회장 베르치 블라노, 제국 궁정마법사인 카딘 루에르, 불멸회의 수장인 나인 다르혼 그리고 루레인 공국의 데릴 하리안까지.
대륙에서 단 4명만이 7클래스의 벽을 뚫고 대마법사가 되었다.
‘1천 년 전 마도 시대 때 마법의 정점에 섰던 알른 자비우스조차 8클래스에 도달했던 것이 한계였다.’
오직.
드래곤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9클래스.
그 영역에 도달해도 닿을 수 없는 마법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쥔 손에 땀이 맺혔다.
“네 말대로라면 내게 2대 광야가 들어 와 있다는 말인데 어째서 그 힘을 쓸 수 없지?”
[말했잖으냐. 그들은 신에 의해 봉인되었다고 네가 정령계를 열 정도의 힘이라도 있다면 모를까…….]“다른 차원을 연다고?”
[정령술의 극에 도달한 술사라면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지금껏 그런 자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곤 없었다.]“그게 네가 말한 용마력과 정령의 힘을 다뤘다는 그 사람인가?”
[그렇다.]라미느는 카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령계를 열기 위해선 정령의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2대 광야의 힘은 지금 얻을 수 없고……. 계약을 하지 않으면 정령술을 익힐 수 없는 건 당연한 얘기니까…….”
라미느의 불꽃이 그의 말에 가볍게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게다가 이렇게 된 이상 카이에 에시르가 화룡검을 만들어 눈속임으로 널 썼던 방법은 나는 쓸 수 없을 테니…….”
카릴은 보주를 바라봤다.
“이거야말로 운명이군. 그 조건을 만족하는 네가 딱 내 눈앞에 있으니 말이야. 너와 계약을 하면 내가 정령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잖아?”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어떻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지?”
그의 물음을 예상했던 것일까.
화르륵……!!
라미느의 불꽃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게 타올랐다.
[불허한다. 나는 더 이상 인간에게 내 힘을 빌려줄 수 생각이 없다.]“그래?”
그 순간.
카릴이 검을 한 번 허공에 긋자 그의 화염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뭐……. 우리가 만난 게 운명이라면 이거야말로 네 말대로 천운일지 모르겠군.”
[네놈…….]“용마력을 지닌 사람이 나락 바위에 가기 전에 회색교장을 들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자 당혹스러운 듯 라미느는 처음으로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화염과는 절대상성(?對相性)의 무구.
콰아아앙—!
카릴은 얼음 발톱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난 네 힘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