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1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13화(113/497)
94. 서슬가시
조이는 혹시나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가 싶어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하지만 카릴의 등 뒤에 서 있는 화염 거인의 모습은 여전히 보였으며 답을 구하는 눈빛으로 유린을 바라봤다.
“…….”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유린의 표정을 보니 적어도 자신의 눈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율라(Yula)의 기쁨이 있으리.”
유린 휴가르는 나지막하게 기도문을 읊었다.
그의 메이스의 머리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전투를 위한 고양 주문(高揚 呪文). 1급 사제 중에서도 이 축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전장의 광인’이란 별명을 만들어 이유이기도 했다.
우우우웅…….
붉은 오러를 뿜어내며 유린은 카릴의 앞에 섰다.
당장에라도 메이스를 내려칠 듯 잔뜩 경계를 하며 그는 소리쳤다.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곳은 화룡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력을 가졌던 염룡이라 불린 리세리아의 레어였다.
조사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증거가 보란 듯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제국의 탐사대는 분명 공동 아래 입구까지 모두 조사를 끝냈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지하로 내려가기도 전에 이런 일이…….’
우연일까?
아니다.
카릴을 바라보는 유린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놈이 우릴 속였어.’
화르륵-
그때였다.
천천히 눈을 뜨는 카릴이 손을 펼치자 그의 손바닥 위로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후우.”
낮은 한숨과 함께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이 노려보던 유린을 향해 카릴은 가볍게 웃었다.
“……?!”
아무렇지 않게 웃는 그의 태도에 유린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구했습니다.”
“……뭐?”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
어느새 카릴의 손바닥의 불꽃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화염 거인의 형상도 없어졌다.
“…….”
유린은 그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약초를 바라봤다.
“그게 뭐지……?”
“서슬가시라는 잎사귀입니다. 폐하의 약이 될 귀중한 보물이죠. 암시장의 정보에의 하면 불의 정령왕의 힘이 담긴 약초라고 합니다.”
“허…….”
틀린 말은 아니다.
불은 가장 생명에 가까운 속성이었으니까.
그리고 서슬가시 역시 불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풀이기도 했다.
‘물론, 정령왕과는 관계없지만 조금 전 일에 대한 핑계로 그럴싸하지.’
유린은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처음 보는 화염초의 모습에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릴은 그런 그의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속이는 건 이토록 쉽구나. 지금 이 풀이 그저 레어 앞에 피어 있는 들풀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인간은 보이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다.
거지를 잘 차려 입혀 놓으면 귀족으로 생각할 수도 귀족에게 넝마를 입히면 거지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처럼.
라미느의 힘이 자신에게 흡수되는 순간을 노려 그는 품 안에 있던 서슬가시를 꺼내었다.
이들은 지금 조금 전 화염 거인의 모습이 서슬가시가 품고 있던 화염의 형상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저 약간의 효과를 주었을 뿐이지만 들풀은 그들의 눈엔 마법초가 되어버렸다.
‘우든 클라우드가 만든 블루 로어의 광신도들을 보며 생각했던 것인데 이걸 내가 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군.’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그……. 영생을 가져다주는 풀이란 말인가요?”
그의 연기의 희생양 중 한 명인 조이 요한셀은 그와 서슬가시를 번갈아 바라보며 떨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카릴은 그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정말 영생을 가져다주겠습니까. 설령 용의 심장을 먹는다 하더라도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건 신이 영역이니까요.”
“그럼……?”
“암시장에서 내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이 풀은 체력을 회복하고 마력을 안정화시켜 줍니다.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데 큰 효과가 있죠. 분명, 이 서슬가시가 폐하의 환우에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카릴은 조심스럽게 서슬가시를 준비해왔던 통 안에 넣었다.
보존 마법이 걸려 있는 값비싼 통이었다.
‘어차피 미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서슬가시를 말려서 써야 하지만……. 이왕이면 보기 좋은 게 낫겠지.’
카릴은 만족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보관하겠다.”
유린은 그가 들고 있는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카릴은 바로 그에게 서슬가시가 들어 있는 병을 건넸다.
하지만 여전히 유린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네 말대로라면 조금 전 그 화염 거인은 이 풀과 관련된 것이란 거지? 벽이 깨진 순간에 방대한 마력이 느껴졌었다.”
“그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설명할 거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너의 단독 행동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스, 스승님…….”
카릴은 그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럴 일 없어?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때문에 나까지 위험에 빠질 생각은 없다. 군도에서도 그렇고……. 죽을 거면 혼자 죽어!!”
유린은 그때처럼 카릴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두 팔은 그때와 다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도 그리고 당신의 제자도 죽일 생각 없습니다. 두 분은 제게도 아주 중요한 분들이니까요.”
카릴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떻게 돌아온 삶인데.
죽는다니.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건 폐하를 위한 일 아닙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완수를 해야 할 사명이라 생각하는데……. 유린 경은 아닌가 봅니다?”
“그, 그건…….”
꿀꺽-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성을 높였던 유린은 카릴의 눈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스승님……?”
광인이라 불리며 셀 수 없는 적들의 머리를 메이스로 찍어 터뜨렸던 그에게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알겠다.”
유린은 끝내 카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황제를 위함이었고 계획된 일이었다면 당연히 뭐라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유린의 태도는 이상했다.
조이 요한셀은 돌변한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지? 설마 내가…….’
그러나 조이의 의아함보다 오히려 유린 스스로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
유린은 자신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는 걸 깨달았다.
‘녀석에게 겁먹은 건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본능이었다.
어쩌면 유린의 실력이 낮았더라면 못 느꼈을 것이다. 이건 그가 뛰어난 전투 사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투와는 무관한 조이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가늠할 수 없는 강함.
그건 자신을 향한 살기라든지 투기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눈앞의 카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순수한 차이였다.
툭.
“……!!!”
유린은 카릴이 자신의 팔을 가볍게 친 것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자, 돌아가죠.”
그런 유린의 모습을 보며 마치 이해한다는 듯 카릴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마스터!!!”
코브로 돌아왔을 때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캄마와 수안 그리고 칼.
‘코브에서 시킨 일을 잘한 모양이로군.’
카릴은 칼이 두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떠나기 전 시킨 명령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수척해진 유린은 피로한 듯 조이의 도움을 받으며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먼저 떠났다.
말수도 확실히 적어졌고 출항 준비가 끝날 때까지 카릴과 머물렀던 저택이 아닌 다른 곳에 있겠다고 했다.
“출항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좋아. 유린 경, 그럼 내일 이곳에서 뵙죠.”
“……알겠다.”
칼은 변해 버린 그의 모습을 신기한 듯 몇 번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나자 카릴에게 물었다.
“마스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 인간 어쩐 일로 고분고분한데요? 항상…….”
칼은 신나게 묻다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가렸다.
“1급 사제님께 저 인간이라니. 너 그러다 교단모욕죄로 잡혀간다.”
“헤에…….”
그런 그를 보며 카릴은 피식 웃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그의 혈맥에서 이따금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라미느의 기운을 흡수한 뒤로 느껴지는 이 기운이 카릴은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광인을 길들이려면 평범한 방법은 안 되지.’
유린 휴가르는 야수 같은 남자다.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피와 살육에 광기를 가진 거친 남자. 처음에 카릴은 그를 차라리 배제를 할까 싶었다.
‘그는 분명 내가 제국을 얻는 데에 있어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신탁 전쟁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도움이 될 터.’
제국의 역사를 크게 3개로 본다면.
황자들의 전쟁인 황권전쟁.
올리번이 즉위한 뒤에 대륙을 통일한 제국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탁이 내려지고 이(異)세계의 마물인 타락과 인류의 전쟁인 신탁 전쟁.
앞선 두 개의 전쟁 역시 중요하지만 카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인류의 존망을 건 신탁 전쟁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린 휴가르의 신성력은 타락과의 전투에서 큰 힘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길들일 필요가 있다.’
구릉의 주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수왕과 해왕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 어쩌면 유린 휴가르는 평생에 있어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함과 마주한 것일지 모른다.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칼, 너도 어서 배를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그렇게 칼까지 떠나보낸 뒤에야 카릴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과의 재회를 제대로 반길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아직은 칼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엄청 놀랐습니다. 교단에 가신다는 분이 공국에 와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말이죠.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리세리아의 레어에 가셨다니……. 수안이 당장에라도 가봐야겠다고 어찌나 난리를 피우던지.”
“나, 난리라뇨. 그저 조금 걱정이 돼서 그런 것뿐입니다.”
“어이구, 자네 같은 덩치를 어떻게 나 같은 늙은이가 막겠나? 아직도 그날 삐끗한 허리가…….”
캄마의 능청스러운 말에 카릴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공국으로 돌아온 소감은?”
“어휴, 말도 마십시오. 화이트 벙커의 귀족들이 어찌나 저희들을 냉대하던지. 그래도 무법항의 주민들을 미리 정착시켜 놓은 덕분에 자유 길드를 몇 개를 뚫긴 했습니다만 속성석을 거래할 만큼은 안 될 것 같습니다.”
“흐음, 정보 판매 쪽으로만 이용을 해야겠다는 말이군.”
“네. 그래서 일단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대로 루레인가와 연줄이 닿는 귀족들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캄마는 슬쩍 카릴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강철왕이 직접 저희에게 연락이 와서 이곳에다가 라바트 길드의 지점을 세워주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강철왕은 프란 루레인의 이명(異名)이었다.
그 이름을 입에 담자 그는 신이 난 듯 말했다.
“솔직히 저희야 코브면 두 팔을 들고 환영입죠. 제국을 싫어하는 대쪽 같은 성격에 절대로 거래가 불가능할 것 같아 화이트 벙커를 선택했던 것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캄마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코브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화이트 벙커에서도 기별이 왔습니다. 저희들을 그렇게 냉대했던 귀족 녀석들이 말이죠!”
“연락이 온 자가 누구지?”
“루엘 일리시드입니다. 일리시드가(家)의 백작인데 튤리 공작령의 자금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거물 중의 거물이죠.”
“어지간히 프란에게 빼앗기는 게 싫었나 보군.”
카릴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들이 몇 달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마스터께서는 단번에 해결하셨네요.”
수안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카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캄마, 아직 그자는 만나지 말고 조금 더 뜸을 들여. 안달 나게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걱정 마십시오. 그건 제 전공이죠.”
“곧 내가 자네에게 몇 사람을 더 붙여 줄 거야. 그 전까지는 코브의 지점을 안정화시키도록 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사람 말입니까? 어디서요?”
“타투르에서. 그리고 몇 군데 더 있긴 한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거점도 확보했으니 빨리 움직여야지.”
“마스터, 그런데 저희가 오고 나서 뱃사람들 말로는 지금 수왕의 산란기라 배를 띄우지 못한다던데…….”
수안이 타투르라는 말에 근심 어린 표정으로 카릴에게 물었다.
“어, 해결했어.”
“네?”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이야. 그러니 수안, 너도 배를 띄울 준비를 해. 너는 타투르에 갔다가 사람들을 태워 와야 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수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수왕까지 해결하셨다는 말이야? 이거야 원……, 놀라서 할 말도 안 나오네. 우린 하나도 제대로 완수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몇 가지 일을 해치우신 거지?’
수안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알수록 더욱 카릴의 역량을 파악할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아직도 그의 끝은 보지 못한 기분이니까.
때로 카릴에게 느껴지는 경외심은 자신을 압도하는 검술이 아닌 이런 계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그러고 보니 미하일은? 데리고 올 자들 중엔 교도 용병단의 용병들도 있어서 그에게 얘기를 좀 해야 하는데.”
“저, 그게…….”
그 순간.
카릴의 물음에 두 사람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으음…….”
하지만 어쩐지 이미 알겠다는 듯 카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두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