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1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15화(115/497)
96. 건방진 거래
저번과 달리 항만 수비대의 사람들은 카릴의 방문을 기다렸다는 듯 그가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모두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일합에 동료를 두 동강 냈던 그의 이력은 아무래도 그 뒤로도 계속 회자 되었던 게 분명하다.
“카릴 님.”
“저번과 다른 모습이군요. 그 로브는 솔직히 조금 별로였습니다, 공작 저하.”
“하하하, 외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신념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프란 루레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카릴을 존대했다.
고급스러운 옷과 값비싼 액세서리들.
그는 지금 우든 클라우드의 프란이 아닌 공국의 프란 루레인으로 그를 만난 것이다.
얼굴에 미소가 만면한 프란을 보며 카릴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거 가면을 쓰고 안 쓰고 완전히 차이 나네. 이 사람……. 성격이 좀 이상한 거 아냐.’
하긴 생각해 보면 제국이든 공국이든 권좌라는 위치를 두고 싸워야 하는 태생을 가진 자들은 수많은 암투와 중상모략 속에서 클 수밖에 없으니까.
루온과 올리번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정도의 태세변환은 약과일지 모른다.
‘게다가 저번과 다르게 앉아 있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실력자들뿐이군. 항만 수비대라서 그렇다고 둘러댈 수 있는 핑곗거리도 있고.’
자신에게 인사를 한 뒤에 각자 자신의 업무를 보러 흩어진 부하의 모습을 보며 카릴은 생각했다.
펜을 잡은 자세나 짐을 나르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최소 소드 익스퍼트급.’
그 수가 스무 명이 넘는 걸 봐서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프란의 의지가 엿보였다.
‘단칼에 베긴 어렵겠군.’
애초에 카릴 역시 피를 보고 싶진 않기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타고난 검사인 그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그와의 거리를 쟀다.
“화룡의 거처에서의 일은 들었습니다. 저희도 그런 보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놀랍군요. 라바트 길드의 정보력은 황실을 뛰어넘는다…… 라고 봐도 좋겠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러니 우든 클라우드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아시고 말입니다.”
“…….”
프란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손을 저으면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카릴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들 역시 모두 일원이니까요. 물론 뿌리, 줄기, 가지와는 달리 이들은 가드들이지만요.”
‘흐음……. 소속된 일원 말고 전투 요원들은 또 따로 분류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크기가 훨씬 더 거대하겠어.’
카릴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우든 클라우드의 존재가 엄청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 말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조금 남아서 말입니다.”
“그러십시오.”
프란 루레인은 다소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탁자에 앉았다.
‘항만 수비대에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닌데……. 일부러 이곳으로 옮겨 놓은 건가.’
탁자 위에는 가득 쌓여 있는 서류들이 있었다.
프란은 익숙한 듯 깃이 달린 펜을 들고서 한 장 한 장 서류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
카릴은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언제나 전장에서 만났던 그였기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프란 루레인은 탁자에서 펜을 잡은 모습보다는 함선 위에서 지휘봉을 쥔 모습이 더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는 무척이나 뛰어난 지휘관이다.
아마 공국에서 이 남자만큼 전쟁을 잘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제국의 압박이 없다면 튤리 루레인과의 싸움에서도 분명 승리할 터.’
다만.
그 능력만큼이나 자신을 믿는 경향이 너무 강해 부하들의 생각을 듣지 않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앤섬 하워드와 불화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지. 올리번이 대륙 통일을 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평민이었어. 게다가 있었던 위치도 이스트리아 삼국 중 하나인 펜리아 왕국이었고.’
사실 카릴은 이번 일을 끝내고 펜리아 왕국으로 가 그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곳에서 그를 만나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둬도 프란과는 사이가 깨진다는 얘긴데……. 일단은 지켜보는 게 나으려나.’
카릴은 현재 자신의 권세에서 책사의 부재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앤섬 하워드를 빼내고 싶지만 그가 우든 클라우드와 관계가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섣불리 움직일 순 없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드는 의문 한 가지.
‘지금까지는 나는 앤섬 하워드가 그저 펜리아 왕국의 평민이라고 알고 있어서 대수롭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정세(情勢)에 관여했었던 자였다면 그가 프란과 깨진 뒤에 펜리아를 선택했던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왕좌지재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그였다.
공국과 제국에 비해 삼국은 분명 열세였다. 게다가 이시트리아 삼국 중에서도 펜리아 왕국은 약소국에 속하는 나라.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앤섬 하워드가 거길 선택했다는 게 중요하지.’
어쩌면 펜리아 왕국에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쯤이면 두샬라가 삼국의 고위 간부들을 구워삶아 놨을 테니……. 에이단을 시켜서 좀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어.’
제국에 짓밟혀 사라진 인재들.
꽃피우지 못했던 그들을 얻을 수 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스윽- 스윽-
펜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소리만이 집무실 안에 들렸다.
어째서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아마 이건 그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앤섬 하워드가 시킨 일이겠지.’
카릴은 그를 바라봤다.
이유는 뻔했다.
자신을 기다리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저번 만남에서 틀어진 관계의 우위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게 되니까.
탁-
프란은 마지막 서류까지 사인을 끝냈다.
노을이 지던 창밖의 풍경은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족히 세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카릴은 그 시간을 흔들림 없이 기다렸다.
조급해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거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깍-
그러고는 말없이 서슬가시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레어에서 얻은 서슬가시입니다. 하나는 유린 경께서 보관하고 계십니다만 두 사람에겐 비밀로 하나를 더 가져왔습니다.”
세 시간의 지루한 공방이 무색하게 서슬가시를 바라보는 프란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다.
‘내가 너희들 머리 꼭대기에 있다. 이런 뻔히 보이는 수로 날 흔들려고 하다니.’
카릴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서슬가시는 한 쌍을 복용해야 합니다. 하나만 먹어도 효과는 있지만 일시적이죠.”
물론.
거짓말이다.
미명의 독을 해독하는 데에 들어가는 서슬가시의 양은 그저 잎사귀 하나면 충분할 뿐이다.
“그걸 내게 말하는 이유는 뭐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두 사람에겐 비밀이라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프란 경이라면 잘 아실 텐데요.”
카릴의 말에 프란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못 당하겠군. 계약을 이행에 따라 그걸 황제에게 줄지 내게 줄지 결정하겠다는 말이군.”
프란을 바라보며 그는 가볍게 웃었다.
“제국과 공국. 합치면 수십만의 군세가 있는 강대국이 고작 한 명에게 휘둘리고 있다니 이거야말로 놀랄 일이야.”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
공작으로서의 프란 루레인이 아닌 우든 클라우드로서의 모습이었다.
“알겠네. 나 역시 자네가 어떤 식으로 우리와의 약속을 지킬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놓이는군.”
“그럼 프란 경께서 약속하신 건?”
“이미 했잖은가.”
카릴은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이미 자네는 뿌리를 만났네.”
조금 전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봤던 수십 명의 가드들을 떠올렸다.
“아직은 뿌리와 직접 만날 만큼 우리의 관계가 이르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하, 요것 봐라?’
카릴은 당장에 여기서 저자를 베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네도 수를 두었으니 우리도 쥐고 있을 카드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
프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한 모습에서 거만함이 느껴졌다.
짜증이 났지만 아직은 그가 필요했다.
카릴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뭐, 좋습니다. 일단은 저도 조금 양보하죠. 베일에 싸인 뿌리가 절 봤다는 것으로 일단 만족하겠습니다.”
“서로의 계약이 완료될 때 아마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땐 원하지 않아도 뿌리가 직접 자넬 찾을 거니까.”
“부디 그 날이 왔을 때 프란 경도 함께 계시길 바랍니다.”
“하하,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내가 어딜 가겠나. 언제든 코브로 오게나.”
카릴은 그의 말에 나지막하게 웃었다.
다음 날.
프란 루레인은 출항하는 하워드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어젯밤 건물 안에 있었던 항만 수비대의 가드 중 일곱이 죽었다는 보고서가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 *
“아버님.”
티렌 맥거번은 오랜만에 재회하는 크웰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1년이 넘는 북부 원정을 끝내고 돌아온 청기사단은 휴식 시간도 가지지 않고 바로 국경의 수비를 위해 배치되었다.
단지.
크웰 맥거번만이 보고를 위해 황궁에 왔을 뿐이었다.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인 그에 대한 황제의 처우가 너무하다는 말들도 있었지만 크웰 맥거번은 묵묵히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크웰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올리번의 편에 섰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갔다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크웰 맥거번은 북부의 추위로 상한 갑옷을 입은 채로 황궁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둘째와의 재회가 저택이 아닌 황궁이라는 사실에 그의 표정이 묘하게 씁쓸해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북부의 절반을 토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폐하께서라……. 네가 그런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기특한 건지 아니면 오만해진 것인지 모르겠구나.”
티렌은 크웰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조금 전 살기 어린 모습에서 크웰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는 궁에 제법 익숙해진 것 같구나. 그래, 너는 똑똑한 아이니 잘 해나가겠지. 언제가 되었든 황궁이 네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과찬이십니다.”
크웰은 티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려기사단의 소식은 들었다.”
“아직 살아 돌아온 자는 없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교단에서 돌아오신 폐하께서 조사단 파견을 금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으시겠지. 북부 원정에 대한 보고를 위해 황궁으로 왔으나 그 이유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기다려 보거라 내가 직접 물을 터이니.”
“란돌이 쉽게 죽을 아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태생의 차이 때문에 란돌은 묵묵하게 있었을 뿐 그 아이의 재능은 너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란돌이 대련에서 항상 마르트 형님께 한 수를 물린다는 걸요.”
크웰은 눈썰미 좋은 티렌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을 게다.”
그 말을 끝으로 부자간의 상봉은 끝이 났다.
어느새 복도 끝에 있는 황제의 처소의 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후우…….”
크웰은 낮은 한숨과 함께 굳게 닫혀 있는 그 문을 바라봤다.
* * *
어두운 방.
크웰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신(臣) 크웰 맥거번, 폐하의 명을 따라 이단섬멸을 수행한바, 북부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생했네. 내 자네를 옥좌에서 맞이해야 하지만 상황이 이런지라 이해해 주기 바라네.”
“아닙니다. 그저 폐하의 옥체가 상할까 북부에서도 걱정하였습니다.”
“그런가.”
타이란 슈테안은 침소에 앉아 크웰을 향해 말했다.
어쩐 일인지 황제의 처소임에도 불구하고 촛불 하나 켜지 않은 방 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까지 받았다.
“내 옥체를……. 자네가 걱정했다……. 어떤 쪽으로 걱정을 했을지가 궁금하군. 병환이 심해질지 아니면 나을지. 그리고 심해짐을 걱정할지 나아짐을 걱정할지 말이야.”
“송구하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황제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크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자였으니까.
누구보다 황제에 걸맞은 인물이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자식에게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뭐, 상관없네. 인간은 언젠가 죽으니 말이야. 하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네. 자네들이 우려하는 일이 해결되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침 잘 되었어. 사실 자네에게 소개해 줄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야. 아니지. 이미 자네와 알고 있는 사이겠군. 증표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야.”
“예……?”
“내게 아주 귀한 사람을 자네가 소개해 준 것이니 어찌 자네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나.”
크웰은 황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말에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자 침대 옆에는 항상 서 있던 시종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사하거라, 카릴.”
“……!!!!!”
그 순간.
크웰은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자신도 모르게 예의를 차리는 것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설마…….’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아이라면 이민족을 숨긴 죄로 단두대에 그의 목이 잘려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 카릴?”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부르고 말았다. 불이 하나 없는 어둠 속이라 정확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크웰은 황제의 옆에 있는 소년이 카릴이란 것을 확신했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맞았다.
그 순간.
크웰은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이곳이 어디인가.
황제의 침소였다.
귀족 중에서도 정말 선택받은 자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정체마저 숨기려고 했던 카릴이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크웰은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가늠조차 불가능했다.
복도에서 만난 티렌은 자신에게 그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 말은 곧 티렌도 알지 못한다는 말.
오직 황제의 비밀…….
그 안에 카릴이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드래곤을 본 것처럼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크웰을 향해 카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