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2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24화(124/497)
103. 남부 마굴 (3)
“황자님, 안개가 잔뜩 끼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는 포나인을 건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조금 천천히 이동하심이…….”
원래대로라면 달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청명한 가을 밤하늘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강 가까이 도착하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에 안개가 많이 낀다고는 하지만……. 원래 포나인의 날씨가 이렇게 추웠나?”
루온은 옷깃을 여미면서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늘해지는 가을이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마치, 겨울이 온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웠다.
빠득-
루온 황자는 기분 나쁜 공기에 얼굴을 구기며 거칠게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얄밉게도 그의 눈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안개는 휘젓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나마 지금 이 길이 하론 대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바닥에 깔린 흰 돌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이 길을 따라서 가기만 하면 일단 포나인을 지나 삼국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을 테니까.”
깨끗하게 정비 되어 있는 바닥을 바라보며 루온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황자님.”
경험이 많은 금기사단의 부단장인 아지프 역시 이토록 짙은 안개는 처음이었다.
‘수년간 포나인을 경험해 봤지만 이런 건 이상하군……. 그렇다고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는 혹여나 이것이 올리번의 계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곧 그런 의심을 지웠다.
이 정도 범위의 마법 안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이 필요했다.
‘7클래스의 대마법사 반열에 오른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존심 강한 마법회가 2황자의 편에 설 리는 없고……. 궁정마법사는 아직 중립이니 단순한 자연현상에 불과한 건가.’
몇 번이나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봤지만 이렇다 할 의심되는 것은 없었다.
‘오랜만의 출정으로 예민해진 모양이로군.’
아지프는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닐까 하며 낮게 웃었다.
오랜 경험이 있는 그조차도 압박이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군의 실질적인 지휘관은 자신이었으니까.
‘루온 황자를 황위에 올리고 내가 금기사단의 단장이 된다.’
그 역시 꿈에 그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번 원정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된다.’
남부로 내려오는 도중에도 그는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했다.
철썩…… 철썩…….
얼마나 갔을까.
강물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루온은 그제야 안색이 여유로워졌다.
“조금만 참아라. 어차피 베스탈 후작의 영지까지만 가면 된다. 통신구로 미리 연락을 취해놨으니 등기사단도 출전 준비를 끝마쳤을 거다.”
그는 병사들을 다독였다.
황제는 모든 황자에게 이번 남부의 일을 마무리하라고 명했다.
1황자는 전쟁으로 2황자는 교섭을 통해서 마지막 3황자는 용병의 힘을 빌려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지금 남부를 향하고 있었다.
‘어차피 크로멘은 상관없다. 아버지의 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고든 파비안이 녀석에게 제대로 힘을 실어 줄 리도 없을 터.’
문제는 2황자인 올리번이었다.
애초에 황위는 자신과 그의 각축전이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누구 하나라도 밀려나게 된다면 단순히 자리를 빼앗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을 내어놓아야 하는 일이니까.
‘제길…….’
려기사단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루온 황자는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병사 한둘도 아닌 기사단을 한꺼번에 잃은 사건이었다. 아무리 황자라 하더라도 문책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는 올리번에게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황자 모두를 남부로 보내버렸다.
‘굳이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일종의 시험.
어명에 의한 남부 토벌이지만 단순히 야만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른 의미로 말해 황제가 공식적으로 만들어 준 황자들끼리의 전쟁터였으니까.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가 황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온은 더더욱 지체할 수 없었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귀족들은 나의 편이다.’
루온은 확신했다.
아지프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륵- 스르륵-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보였다.
“경계!!!”
선두에 선 기사가 소리치자 황자의 주위에 있는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무기를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황자님.”
안개 속에서 생각지 못한 옅은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러나 아지프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전방에 무기를 겨누고 있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자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랍게도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였다.
“넌 누구지?”
루온 황자는 마치 신비한 연기처럼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그녀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곧 굴곡 있는 몸매와 옷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새하얀 피부를 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안개가 짙어 엇갈리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루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는 황자님을 모시고자 삼국에서 온 안내자들이옵니다. 근래 포나인의 강가 주위로 안개가 심해져 이동이 어렵기에 저희가 저하를 돕겠나이다.”
“웃기는 소리. 제대로 정체를 밝혀라.”
아지프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루온은 손을 들어 그런 그를 멈추었다.
“진정하게, 아지프 경.”
루온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확실히 자네 말대로 짜증이 날 정도로 짙은 안개야. 새로 지은 것처럼 깨끗하게 놓인 대로가 아니었다면 길을 헤맸겠지.”
그는 왕족 특유의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셨군요.”
“아지프 경, 내 미리 삼국에 전갈을 두었었네. 남부로 향하는 길은 좁은 가도밖에 없지 않은가. 이 대로를 통해 우리 7만 대군이 남부로 가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삼국을 통과해야 할 수밖에 없지.”
“하오나 황자님…….”
“삼국에서 이 정도의 배려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그대들의 안내가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루온은 바보가 아니다.
당연히 믿는 구석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자들은 기껏해야 다섯밖에 되지 않는 무리였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7만 대군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의 눈빛이 여전히 그녀의 전신을 계속해서 훑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공하옵니다. 이것은 이스탄 왕국의 인장이 찍힌 확인서입니다.”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말했다.
“다행입니다.”
베일 뒤로 눈빛이 반짝였다.
두샬라는 루온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실수를 하지 않아서 말이죠.”
* * *
비올라는 멍하니 카릴을 바라봤다.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드레스는 땀으로 찌들어 있었고 가슴과 어깨를 보호하고 있는 갑옷은 이제 그 무게조차 버거워 당장에라도 벗고 싶을 따름이었다.
[크러아아아–!!!]유난히 덩치가 커다란 회색 피부의 오크가 카릴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카릴의 자유군은 리자드맨을 토벌하고 나서 쉬지도 않고 달려 또 하나의 마굴을 공략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세 번째 마굴에 당도했다.
그는 처음에 비올라에게 이 세 개의 마굴을 토벌하는 데 보름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그의 말이 단순히 자신에게 보이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푸욱-!!!
카릴의 얼음 발톱이 오크의 뒷덜미에 박히면서 녀석의 목젖이 있는 부분을 뚫고 검날이 튀어나왔다.
회색 오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저 사람……. 지치지도 않는 거야?’
비올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카릴을 바라봤다.
“전열을 유지해!!”
“부상자는 뒤로!! 선두는 내가 맡겠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외침이 들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레이스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의 뇌속성 마나 블레이드가 전격을 번뜩이면서 회색 오크의 어깻죽지를 갈랐다.
콰드득……!!!
어깨의 1/3 정도 박힌 검이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고 오크의 질긴 살점에 걸려 멈추었다.
“큭!!”
그레이스가 검을 쥔 두 팔에 힘을 주었다.
[크르르르……!!]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회색 오크는 고통에 찬 일그러진 얼굴로 들고 있던 거대한 해머를 그를 향해 휘둘렀다.
“흐아악!!”
“흐읍!!”
해머를 피하며 그레이스는 결국 쥐고 있던 검을 놓으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오크의 뒤를 노리며 두 명의 기사가 있는 힘껏 검을 쑤셔 넣었다.
몇 번의 난도질 끝에 겨우 오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기사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레이스는 오크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았다. 마물의 질긴 살점들은 마치 검을 쥐고 놓지 않을 것처럼 검날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회색 오크는 일반적인 필드에서 사는 몬스터가 아닌 마굴에서만 생성되는 마물이다.
그저 외형이 오크와 닮아 그렇게 붙여졌을 뿐 전혀 다른 마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락을 형성하는 오크처럼 마굴 안에는 수백 마리가 모여 있었고 그들은 모두 트롤에 버금가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란 말이죠?”
기사는 쓰고 있는 투구마저 무겁다는 듯 벗어버리며 말했다.
“하고 있잖아. 저 사람은.”
그레이스는 입술을 깨물며 앞을 바라봤다.
비록.
더러운 정계에 휩쓸려 지금은 약소 가문이 되어버렸지만 판피넬 가문은 유서 깊은 무가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검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레이스의 자존심은 고작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서걱-
차아악-! 착!!
카릴은 있는 힘껏 검을 베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검격의 궤도는 회색 오크의 질긴 가죽이 무색하리만치 깨끗하게 갈라 버렸다.
고작 한 마리에도 몇 명의 기사들이 달라붙어 고전 했던 회색 오크를 카릴의 단 한 번의 공격에 세 마리의 허리가 잘린 채 반 토막이 나 피를 쏟고 있었다.
콰직!
바닥에 착지하면서 카릴이 바닥에 먼저 닿은 왼발을 틀자 그의 몸이 회전하면서 검날이 다시 한번 사선으로 번뜩였다.
이번에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그의 주위에 있던 회색 오크들이 잘려 나갔다.
마물의 시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옷에 튀었다. 하지만 카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퉷.”
카릴은 입술을 닦아내며 더러운 마물의 피를 뱉어냈다. 이미 옷이 피로 범벅이 된 그는 주위에 썰린 시체들을 훑으며 말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시간을 맞추려면 조금 더 서둘러야겠군. 베이칸, 키누, 여길 정리해. 나 혼자 들어가겠다.”
“알겠습니다!”
“넵.”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두 사람과 달리 비올라와 그레이스는 카릴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오크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안쪽으로, 그것도 단신으로 들어가겠다는 그의 말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릴의 무용을 눈앞에서 지켜본 그레이스는 그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도 없었다. 그렇다고 맹렬한 패도의 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검에 닿는 모든 적은 언제나 단 일합에 끝나버렸다.
“…….”
그레이스로서는 그것이 억겁(億劫)의 시간 동안 검을 쥐고서야 탄생 한 극의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빠득-
카릴을 바라보며 느낀 그의 감정은 어쩌면 란돌이 고블린 토벌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
평민이었던 란돌처럼 약소 귀족의 가주인 그가 가지는 강함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을 직접 목격했을 때 더욱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너희들은 왕녀님을 지켜라. 지금부터는 나 혼자 싸우겠다.”
“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왕녀를 수행해야 할 호위 기사인 자신이 전선을 이탈하는 것은 불경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보고 싶었다. 그레이스는 카릴이 들어간 마굴의 안쪽으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 * *
“늦어.”
얼마나 달렸을까.
카릴은 지금껏 봤던 회색 오크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마물의 잘린 머리를 쥐고서 달려온 그를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이게 도대체…….”
그는 너무 놀라 차마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주위에 쓰러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아니, 자신이 지나온 통로에도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시체들이 깔려 있었다.
인정 하고 싶지 않지만 이 결과는 그가 달려온 속도보다 카릴이 오크를 뚫고 온 속도가 더 빨랐다는 뜻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검술을 보기는 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속도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어떤 시체는 시커멓게 타서 재가 되었고 어떤 시체는 새하얗게 얼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또 다른 녀석은 검으로 깨끗하게 갈라져 있었고 나머지 시체들은 번개로 지진 듯 그을려 있었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러 가지의 속성이 뒤엉켜있다.
이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레이스는 도무지 카릴의 전투 방법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툭-
“……!!!”
카릴이 족장의 머리를 그에게 던졌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오크 족장의 머리를 받아 들며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시체들 사이로 족장의 몸으로 보이는 거대한 육체가 고스란히 옥좌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반항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거 잘 챙겨서 따라와.”
“……네?”
카릴은 얼굴에 묻은 마물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가볍게 웃으며 그를 지나쳐 걸었다.
“깜짝 선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