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3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36화(136/497)
108.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으아악……!!”
“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뒤에는 포나인의 괴물들이 앞으로는 트윈 아머의 군사가 목을 조여 오는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 제국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제길……!!”
루온은 정리가 되지 않는 병사들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듯 소리쳤다.
“아지프 경!!”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일단 후퇴를 하여 재정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황자님.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피해가 너무 크옵니다.”
“후퇴? 어디로 말인가. 지금 뒤에는 괴물들이 우릴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잖은가!”
조금 전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사라지고 루온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진정하십시오. 수왕과 해왕이 어째서 같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저 둘은 심해의 몬스터들입니다. 다른 수 속성 몬스터와 다르게 뭍으로 나올 수 없는 녀석들입니다.”
“그래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대로를 통해서 온 이곳은 포나인의 수위가 가장 낮은 곳입니다.”
아지프는 황급히 북쪽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여기서 좀 더 위쪽으로 이동하면 깊이가 허리까지 오는 곳이 있습니다. 평상시라면 포나인의 물살이 강해서 도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루온은 처음 강을 건넜을 때 잠잠했던 물살을 떠올렸다. 확실히 지금 정도라면 충분히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게다가 깊이가 얕아서 수왕과 해왕은 거기까지 오지 못할 겁니다.”
아지프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향해 진격하는 카릴의 자유군을 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만일에 경우 강을 건너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위가 안정된 상황이라면 저 정도의 병력은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습니다.”
퇴각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곳을 전장으로 삼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습격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만 사실상 피해는 크지 않다. 병력의 차이는 여전히 우리가 3배.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아지프의 생각을 읽은 듯 루온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명령을 알리는 깃발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퇴각한다!!!”
* * *
“제국군이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좋은 키누 무카리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제국군 사이에서 흔들리는 황자기(皇子旗)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깃발이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군.”
카릴은 키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전략을 아는 자라면 그렇게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뻔한 궁여지책은 적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군.”
“숲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릴의 앞에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으흠.”
그 둘은 두샬라와 함께 루온을 유인했던 부하들이었다.
“고생이 많았군.”
“아닙니다.”
그들의 보고에 카릴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진격을 하던 자유군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키누.”
“네, 마스터.”
“저 깃대에 화살을 맞힐 수 있나.”
그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키누 무카리에게 쏠렸다. 제국군과 자유군의 거리는 아직도 1킬로미터 이상 벌어져 있었다.
게다가 황자의 깃발은 병력의 더 안쪽.
최소 1.5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의 표적을 맞힐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네.”
베이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키누 무카리의 모습에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의 곡궁의 사정거리는 최대 500미터였지만 표적을 맞힐 정도의 정확성을 따지자면 유효거리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조차도 웬만한 비궁족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었다.
그런데 2배, 3배도 아닌 6배나 되는 거리를 맞출 수 있느냐고 카릴은 묻고 있었다.
“허…….”
“저걸……?”
웃음을 터뜨리는 그와 달리 키누의 대답에 나머지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륙을 통틀어 그 어떤 궁수도 자신의 완력과 두 눈으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알른 자비우스가 했던 것처럼 정말로 그는 바람 정령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것일지 모른다.
꽈드드득―――
키누 무카리는 등에 메고 있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있는 힘껏 시위를 당겼다.
초승달 같았던 활이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만월에 가깝게 늘어났다.
파앗!!!
깃대를 향해 당겼던 시위를 놓자 화살은 미친 듯한 속도로 상공을 갈랐다.
* * *
파직―――!!
“우악?!”
강을 따라 이동하던 루온은 갑자기 깃대가 부러지며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자 눈빛이 흔들렸다.
“…….”
그때였다.
부러진 깃대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가 고개를 들자 순식간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하지만 루온의 눈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건…….’
안개였다.
주변으로 갑작스럽게 짙은 안개가 생기는 것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자연 현상에 불과한 안개야 어디에 생긴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아닌 일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낯익었다.
기분 나쁜 느낌.
이건 처음 대로를 따라 길을 갈 때 자신들을 방해했던 그 안개였다.
콰아아앙―――!!
콰강――!!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루온은 황급히 주위를 살폈지만 이미 짙어진 안개는 바로 옆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저벅― 저벅― 저벅―
요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어째서인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만큼은 명확하게 들렸다.
“설마…….”
루온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진하게 뿌려진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러진 깃대에서 왔던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툭―
루온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는 뭔가를 바라봤다.
단순한 돌멩이 같아 보이던 그것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우웅…….
자세히 보니 그건 적명석과 요람석을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속성의 마력이 반응하며 강가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러자 속성석 주변으로 새하얀 연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적명석보다 요람석의 각(角)의 개수가 높은 걸 이렇게 같이 묶어서 붙이게 되면 요람석의 냉기가 적명석의 화염을 누르게 돼 일순간 온도 차이가 생기면서 특수한 안개가 만들어지지.”
안개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별건 아냐. 지금의 마법회 마법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다만 이걸 연막탄으로 만들어 전쟁에 사용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지만.”
솨아악……!!
일순간 바람이 일면서 루온의 발아래의 흙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파헤쳐졌다.
바닥 아래엔 조금 전 떨어진 속성석 묶음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바닥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일대를 뒤덮은 것이다.
‘……함정.’
이미 적은 자신들이 이쪽으로 향할 것을 알고 안개를 준비했다.
“언제부터냐.”
루온은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처음부터 모든 게 네놈 짓이란 거냐.”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부터 모두 네놈이 만든 거냔 말이다!”
생각해 보면 계획이 틀어진 것은 안개 속에서 두샬라를 만나서부터였다.
그녀가 자신들을 트윈 아머로 인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이면 남부에 도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저 올리번과 크로멘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하려던 욕심이 만든 상황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요소가 있었다.
‘안개로 길을 헤매지만 않았더라면 그년을 따라갈 이유도 없었어……!!!’
루온은 거칠게 검으로 안개를 갈랐다.
구토가 쏠릴 정도로 지긋지긋하고 역겨운 기분이었다.
“누가 누굴 탓해? 7만이란 대군의 목숨을 쥐고서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여색에 눈이 멀어 그런 덜떨어진 짓을 한 게 누군데.”
“네놈…….”
루온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기억하고 있었다.
트윈 아머에서 후퇴를 할 때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길을 막았던 자였다.
“역시 그년과 한패였어.”
카릴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스릉―
그 순간 날카로운 검의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카릴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억울해? 전쟁이란 이런 거야.”
콰아아앙―――!!
콰앙――!!
“황자님!!”
그 순간.
묵직한 검기와 함께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루온의 몸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안개 속을 뚫고 온 아지프가 황급히 루온을 끌어안으면서 검을 들었다.
“저놈이다! 아지프!! 저놈이 이 안개를 만들고…….”
“습격입니다.”
“뭐?”
“안개를 틈타 적이 습격했습니다. 병사들이 흩어져 진열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부관들에게 명해놨습니다. 일단 기사단과 함께 후퇴하시는 것이…….”
“후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7만이 고작 2만에게 도망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루온은 격하게 소리쳤지만 아지프는 냉정하게 말했다.
“황자님, 이런 상황에서는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이대로 싸우는 것이야말로 위험합니다.”
“크윽……!!”
“강가가 코앞입니다. 일단은 강을 건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할……. 그 두 녀석에게…….”
더 이상 황궁에서 고고하고 품위 있던 제1황자는 없었다.
절벽의 끝에 몰리는 상황에 오자 황제를 닮은 불같은 성격이 튀어나왔다.
“이 상황에서도 네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형제간의 경쟁을 걱정하는가?”
카릴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급한 네놈이…….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나 하느냐!!”
루온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네가 왜 올리번에게 졌는지 확실히 알겠군.’
“…….”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카릴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 가족 싸움은 내가 알 바 아니지.”
씰룩―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루온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황자님.”
아지프는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 순간 안개 속을 뚫고 나온 금기사단의 기사들이 카릴의 앞을 막았다.
“어서 가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아지프가 루온의 허리를 감싸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네놈……. 기필코 내가 네 목을 베겠다.”
루온은 아지프에 매달리다시피 한 꼴사나운 모습으로 말했다.
비웃을 가치도 없는 그 광경에 카릴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파앗―
“흐음.”
도망치듯 달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쩐 일인지 카릴은 뒤쫓지 않았다.
대신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장막을 거둬.”
* * *
화아아악……!!
화악……!!
거센 바람이 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숲을 뒤덮었던 안개가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거지?”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던 제국군의 병사들은 안개가 걷히고 나자 주위에 적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습격이 아냐?”
분명 들렸던 요란한 전투 소리, 비명, 그리고 피 냄새까지 느껴졌었다.
“그게 다…….”
“가짜?”
물론 사상자는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혼란에 빠진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싸운 결과였다.
“하지만…….”
바닥에 뿌려진 혈흔들.
그중 대부분은 시체가 아닌 무언가 터진 듯 쏟아진 피들이었다.
“이게 뭐지?”
병사 중 몇몇이 바닥에 있는 찢어진 주머니를 들었다. 그 안에는 핏물이 들어 있었는지 걸쭉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
앞을 바라보자 병사들은 바닥에 떨어진 주머니와 똑같은 것을 들고 서 있는 자유군의 모습이 보였다.
안개 속에서 지독하게 퍼졌던 피 냄새.
그건 마굴에서 토벌한 회색 오크들의 피가 담긴 주머니였다.
* * *
“베이칸.”
카릴은 자신을 막아섰던 기사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포로의 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강을 건넌 자들이 있긴 했나 봅니다. 그래도 절반 가까이 생포했습니다. 포로의 수는 4만 정도입니다. 강에서 죽은 자들만 족히 천은 훌쩍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왕과 해왕 둘은 안개 속에서 삽시간에 제국군을 먹어치웠다.
붉은 피가 포나인의 강물을 따라 진득하게 흘러넘쳤다.
“포나인에 빠져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모두 건져라. 그리고 저들도. 어쩔 수 없다지만 그들은 모두 희생자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그와 달리 비올라는 살짝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너무 무르군. 앞으로 전쟁에서도 그러실 건가? 앞으로 수천, 수만의 희생자가 나올 텐데도.”
“그럴 겁니다.”
굳이 그녀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누구보다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카릴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희생자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식적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비올라는 그의 대답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그녀는 어쩐지 부끄러워진 기분 탓에 카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작전이 제대로 먹혔네요. 고작 전투 소리가 들린 것만으로 우왕좌왕해서는 자멸하다니 말입니다.”
“제대로 된 제국군이라면 다르겠지.”
“네?”
“제국군을 쉽게 보면 안 돼.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쉽게 와해가 된 건 지휘관 탓도 있으니까.”
이번 원정의 사령관인 금기사단의 부단장인 아지프는 뛰어난 무장이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청(靑), 녹(綠), 려(綟), 등(藤)과 같은 전방을 수호하는 기사단이 아닌 황실 친위대라는 점.
그 역시 전쟁을 경험해 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황자의 안위.
‘만약 루온이 없이 그가 오롯이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었다면 안개 속에서 기사단을 이끌고 싸웠겠지.’
하지만 아지프는 루온을 구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게다가 전투가 있기 전 카릴이 단신으로 제국군에서 보여줬던 무용(武勇)이 그의 머릿속에 불안감으로 계속 남아 있었던 것도 컸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실력입니다.”
마르제가 카릴의 옆으로 다가왔다.
기다렸다는 듯 카릴이 그에게 물었다.
“마르제 경, 국경지대에 살던 백성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아마 2천은 족히 될 겁니다. 그런데 그건 어째서……?”
자신의 나이보다 몇 배나 어릴 카릴에게 마르제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존칭을 쓰고 있었다.
그는 선대를 모셔왔던 왕국의 노기사로서 부족한 지금의 왕에게 진실로 충언을 할 때면 군신의 관계를 떠나 이따금 호통을 칠 때도 있었다.
반말을 할지언정 스스로 먼저 자신을 낮추어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허…….’
그런 그의 모습을 아벤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솔직히 그 역시 마르제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존경의 대상에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큰 그릇인가.
그것이 중요할 뿐이었으니까.
카릴은 그들을 희생자라고 했지만 10만에 가까운 병력이 부딪힌 전투다.
사상자라고 해봐야 그 숫자는 양측을 모두 합쳐도 고작 2천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승리했다.
‘이런 완벽한 전투가 어디 있는가.’
마르제는 역사상 이런 전투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2천이라…….”
잠시나마 생각에 빠졌던 마르제는 다시금 카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집중했다.
“루온이 2천의 목숨을 걸고 트윈 아머의 문을 열라고 했지.”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4만의 목숨에 대해서 제국은 우리에게 뭘 줄지 궁금하군.”
카릴은 루온이 도망친 북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루온을 황궁으로 살려 보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녀석이 했던 것처럼 4만의 포로를 고스란히 황제의 눈앞에 보여주기 위함이지.”
“허허…….”
“역시.”
그의 말에 모두가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타이란 슈테안.’
카릴은 눈을 빛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멋대로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